전동제 저수지의 물길 위에 가로 놓여진 다리와 그 주변에 서 있는 2기의 비이다. 다리는 ‘도매다리’라고도 불리우며, 가까이 있는 부용산이 ‘약마부정(躍馬浮定:도약하려는 말의 자세)’의 형태를 하고 있어 이 다리를 ‘도마교(逃馬橋)’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리에 사용된 돌은 화강암으로, 이를 각이지게 다듬어 아래에 기둥을 세우고, 각 기둥 위로 넓적한 돌을 가로로 걸쳐 다리를 완성하였다. 본래는 지금의 길이보다 훨씬 더 길었다 하나, 1989년 여름 홍수 때 일부가 떠내려가 그 절반만이 남아있다. 다리 인근에 소재한 도마교비(逃馬橋碑, 181번지)와 중수비(559번지) 내용으로 보아 인조 25년(1645) 현지(낙안군 고읍면) 읍인 정창락(鄭昌樂), 장선용(張善龍) 등에 의해 처음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중수비 음기에 「도간전시주정공창락증손유학새순화주전시주장공선용손가선익순(都幹前施主鄭公晶樂會孫幼學在舜化主前施主張公善龍孫嘉善翼純)」이라고 한 것과 도마교상의 시주명단에 상기 정창락(鄭昌樂)의 이름이 확인되는 것 등이 위 사실을 뒷받침 해 준다. 숙종 8년(1682)에 새로이 보수를 거쳤음을 알 수 있다. 20여년전 까지만 해도 농사일은 물론이고 마을 제사를 치르는 대상의 한 일부를 차지하였으나, 마을의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그러한 의식들이 사라져 그저 농사일을 돕는 존재로만 남아있다. 비록 일부가 없어져 본래의 규모는 아니나, 처음 지어진 시기와 보수된 연대를 알수가 있어 다리를 연구하는데에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