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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은혜와 복을 받는 사람 (이사야 30:15-22)
좋은 생각 박재현 기자가 쓴 “버틸 수 있는 힘”이란 이야기입니다.
플린트는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렌 버핏의 전용기 조종사로 10년 넘게 일했습니다. 어느 날 플린트가 자신의 경력과 목표에 대해 버핏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버핏이 플린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목표가 무엇인가? 현재 가장 중요한 목표 스물다섯 가지를 적어 보게.” 플린트는 몇
분에 걸쳐 25가지 목록을 완성했습니다. “스물다섯 가지를 다 적었으면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에 동그라미를 쳐 보게.” 플린트는 이내
다섯 가지 목록에 동그라미를 치고 나서 말했습니다. “아! 이제 제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목표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나머지 스무 가지도 놓칠 수 없으니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노력해서 이루어야죠.” 이 말에 버핏이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자네는 지금 실수를 하는 거야. 동그라미 친 다섯 가지 외에 목표는 어떻게든 버려야 할 것이지. 자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 목표를 전부 달성하기 전까지는 나머지 스무 가지 목표에 관심도 기울여서는 안 되네.”
여러분! 워렌 버핏이 플린트에게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때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할 때는
그 하나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중해야 시간도 절약하고, 일의 효율이 높아지고, 성과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왔으면 예배에 집중해야 하고, 찬양과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하면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마음이 분주해지면 근심하고, 염려하다가 불평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을에 가시면서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사는 집에 들렀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해졌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마리아에게 나를 도와주라고 말씀해주소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선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눅
10:38-42)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시대, 정보의 비만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잘 모릅니다. 가장
중요한 정보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관심 결핍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생명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께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내 관심을 어디에 집중하고,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내 관심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 것인가?’ 잘 생각하고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나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관심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나의 관심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나는 주의 은혜와 약속하신 복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내 심령까지 잠기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에 집중할 때 생명을 얻고, 육체가 건강해집니다. 심령이 마르지 않고, 생명의 근원이 마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언 기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기 때문이다.”(잠 4:20-23)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고, 애굽의 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을 통하지 않으면 죄에 죄를 더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 권력을 의지하면 수치를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힘 있는 사람이 결코 돕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치와 수욕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사 30:1,5) 하나님의 사람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세상의 압박과 허망에서 벗어나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무너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다.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여기서
“돌이키다(베슈바/?????/beshuba)”는 말은 “돌아오다, 회개하다”라는 뜻입니다. “조용히(나하트/???/nakhath)”라는 말은
“하강하다, 평온하다, 조용히, 조용한 태도, 휴식하다, ~내리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참 안식이 있고, 참 평안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돌아오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회개해야 모든 죄에서 떠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죄악이
패망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겔 18:30) 이 세상의 모든 죄악에서 건지고,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회개하여 죄 사함을 얻어야 성령을
선물로 받기 때문입니다.(행 2:38)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유쾌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행 3:19) 죽은 행실을 회개해야 하나님의
믿음을 갖기 때문입니다.(히 6:1) 회개한 사람은 책망할 것이 없습니다.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습니다.(요일 3:21)
회개한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삽니다. 회개한 사람은 조용히 눈을 감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왜 ‘조용하라, 휴식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조용함과 휴식은 회개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심령이 평안합니다.
회개한 사람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쉼을 얻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못 박히셨습니다. 바로 그때 한편 강도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던 그 강도가 다른 강도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사람(예수)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눅 23:41-43) 여기서 “낙원(파라데이소/παραδεισω/paradeiso)”은 “미래의 행복한
장소, 천국, 기쁨의 처소, 경건한 영혼들이 거하는 처소”를 말합니다. 주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죽은 행실을 회개합니다. 주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주님과 함께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어떻게 삽니까? ‘위기가 왔는데 왜 그러고 있느냐? 이제 큰일났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난리와 소문에 법석대지 않습니다. 마음을 격동시키지 않고, 격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고위 관리들이 거짓으로 핍박해도 구원 받은 사람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을 경외합니다. 거짓을 미워하고, 거짓을 싫어하고, 오직 주의
율법을 사랑합니다. 의로운 규례들을 따라 살고,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법을 사랑하면 큰 평안이 있고, 장애물이 없기
때문입니다.(시 119:161,163-165) 주의 법을 사랑하면 장애물을 장애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조용히 주님께로 향할 때 주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오늘 본문 15절 하반절에 보세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여기서
“잠잠하다(솨카트/?????/behasheqet)”라는 말은 “쉬게 하다, 진정시키다, 가라앉히다, 안정하다, 평온하다, 방해받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신뢰하다(비트하/????/bitkhah)”는 말은 “믿음, 확신, 신뢰”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용히 믿고 신뢰하고, 의지할
때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인간이 하나님과 맺을 수 있는 모든 관계의 관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견고한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하라.” 지금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지난해 9월에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가 육상경기 200미터 단거리에서 28년 만에 동메달을 따고, 1600미터 계주에서
16년 만에 은메달을 땄는데, 그 선수가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 선수는 400미터 계주를 뛰었는데, 다른 선수가 바통터치에 실패해서 실격을
당해 쉬고 있었습니다. 35분쯤 쉬고 있는데, “야. 여호수아, 1600미터 계주 선수 하나가 다쳐서 못 나간단다. 네가 나가라.” 여호수아
선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1600미터 계주에 출전했습니다. 마지막 계주 주자로 내내 3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여제선 목사님)가 아들을
위해서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에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거 같았습니다. ‘여호수아야. 조금만 더 달려라.’ 그 순간에
누가 뒤에서 미는 것 같아서, 온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결승선에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메달 색깔이 바뀐 것입니다. 쭉 2등으로 달리던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를 0.004초 앞서 통과해서 은메달을 땄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판독을 하지 못하고 비디오로 판독해보니 0.004초 차이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여호수아는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여제선 목사님)가 여호수아 같은 사람이 되라고 성이
‘여’ 씨니까 ‘호수아’로 지었답니다. 어렸을 때는 그 이름 때문에 많이 놀림도 받았지만 철이 들고 나서 그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육상을 하면서 잦은 부상을 당하고,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어주겠다.’ 그 이후로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굳게 붙잡고 믿음으로 달려왔고,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스타트
라인에서 항상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평안을 주소서.’ 저의 삶의 목표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사람들과 선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뛰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무기력증에 빠질까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이 견고히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번뇌에 차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불신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영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진리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부정합니다. 서로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사람은 기쁨이 없습니다. 새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사람은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잘 풀리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시련을 통해 나를 단련시키고, 시련을 통과하면 은혜와 복을 주신다. 여러 상황을 통해서 내 안의 문제를 깨우쳐
주신다. 나를 먼저 바꾸시기 원하신다. 시련은 성장과 발전의 기회다. 시험은 나의 믿음과 인격, 인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기회다.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여러분! 주의 은혜와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가장 큰 주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가장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과 위로입니다. ‘내가 곤란 중에 주의 위로를 받고, 주의 말씀으로 나를 살리셨다.“(시 119:50)
하나님께서 언제 구원하시고 어느 때에 위로하실까요?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믿어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은혜와 복을 지연시키실까요? 지연시키는 원인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지연시키는 이유가 사랑이요, 긍휼이요, 은혜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다.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하실 사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본문 18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기다리신다.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다. 일어나신 이유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다.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그(여호와)를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세상의 정욕과 정열이
사라지기를 기다리십니다. 시간이 흐르면 무엇이 중요한지, 세상 욕심이 얼마나 무상한지 깨닫게 되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기를
기다리십니다. 자기 사랑, 집착, 명예욕에서 돌이켜서 생각의 초점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경솔함, 서두름,
불안과 시비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답답한 이기적인 생각으로 미래를 기다리지 않기를 기다리십니다. 자기만을 구원하려는 이기적인 모면책,
도피의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겸손하고,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겸손하고,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 응답하십니다.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 네게 응답할 것이다.”(19절)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바른 길이다. 이것이 생명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다. 너는 예수님의 그 길로 가라.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이것이 긍휼이다.’ 매일 주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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