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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3월부터 40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 학생들과 잘 소통하기 위해 노력,
학생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영도이 성장해 있음을 발견할 때 가장 행복과 보람을 느끼다.
교직생활 동안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상,
우수교사상, 국회의원상, 도지사 표창, 복지부 장관 표창,
자랑스런 특수교육인상 등을 수상
제26회 육사백일장 일반부 차상(2005)
전국 특수교사 실천 수기 공모전 우수상(2012)
제26회 전국 새마을 주부 백일장 차상(2015)
제37회 교원 예능 실기대회 산문부 은상(2016)
행복 페스티벌 수기 공모전 우수상(2023) imhyang1@naver.com
수상 소감
눈이 내리던 날 반가운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85년 3월 운동장 조례대에서 갈색 투피스를 입고 23살의 제가 떨리 는 목소리로 첫인사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40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영혼이 성장해 갈 때 자신도 성장해 갈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한 직업입니다. 가르쳐 준다는 건 무조건 다 해주고 돌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도록 말없이 기다려주고 용기를 주는 것입 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배운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마음으로부 터 솟구쳤습니다. 지난여름 내내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마음속의 응어리들을 자꾸 끄집어내었습니다. 부끄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펼쳐 보 일 때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가족 이야기와 아버지, 엄마, 잊을 수 없는 인연들…. 내 삶의 경험 중에서 특히 엄마는 내 영혼의 뿌리입니다.
철이 없어서 엄마는 영원한 슈퍼우먼인 줄 알았고, 엄마도 외할머니를 그렇게 보고 싶어 했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 엄마의 세월을 따라가며, 여자로 의 일생을 이해하게 되며, 나 자신 매일 새로운 삶을 살며 처음 경험하 는 것을 신기해하며 삶과 부대끼고 있습니다.
등단하게 된다니 너무 황송하고,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부끄 러운 마음뿐입니다. 85년 3월 떨리는 첫인사를 했던 것처럼, 24년 12월 떨리는 첫인사를 하 며 인생 2막을 준비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주신 세 분, 나의 아버님, 고3 담임 박운학 선생님, 나의 키다리 아저씨 송성문 선생님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언제나 고맙습니다.
등단작품
최고로 멋진 대우 세탁기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신문에 ‘대우 대학생 아르바이트 1기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보았다. 그 당시 대우전자는 엄청 인기 있는 회사로 나는 ‘이거야말로 나를 위한 기회’로 생각되어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 집은 국립대 아니면 대학 진학은 꿈도 못꾸고 입학금만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면 각자 알아서 장학금을 타든, 과외 알바를 하든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위에 오빠들, 언니들 그런 식으로 학교를 다녔고 막내 남동생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응모원서를 내고 찾아가니 경쟁이 치열하였다. 내가 입학 한 81년도에는 본고사가 폐지되고 학력고사가 실시되었다. 동시에 졸업 정원제가 시행되며 학과 정원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단정한 옷을 입고, 면접에서 “나는 꼭 하고 싶고 꼭 해야만 한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운 좋게 합격하여 업무를 배정받았다. 아르바이트생들이 해야 할 일은 2주 동안 고객 카드를 100장 작성하는 일이었다. 집집이 찾아가서 이름과 그 집 형편, 즉 다음에 필요한 전자제품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작성하는 것이었다. 첫날 용상 1 주공 아파트를 찾아가서 겨우 오전에 열 집, 오후에 열 집 거의 스무 집을 하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 신문사 기자를 하고 있었는데 주말까지 선배가 시킨 특집 기사를 작성해야 했다. 내 계획으로 최소한 수요일까지 아르바이트 일을 끝내고, 목요일 도서관 가서 조사하고 금요일 찾아가서 묻고 인터뷰해서 토요일 오후까지 원고를 마무리해야 했다. ‘아! 이러다가 죽 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서 후배 한 명에게 미리 설명해 주고 다음 날 용상 2 주공 아파트를 함께 찾아다녔다. 나중에 건설한 2 주공 아파트가 평수도 더 넓고 쾌적한 환경이어서 그곳으로 갔다.
지금은 아예 문도 안 열어 주지만 그 당시에는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기특하다며 반갑게 문을 열어주며 음료수를 주는 집도 있었다. 일단 벨을 누르고 “누구세요?”라고 사람이 나오면 무조건 최대한 공손히 인사를 하고 “저는 대우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입니다”라고 했다. 회사에서 만들어 준 명찰을 보여주고 집을 쓱 훑어보며, “우와! 집이 멋지네요. 냉장고도 있네요. 우리가 댁에 꼭 필요한 정보를 주고 다음 제품 만들 때 고객님의 의견을 최대한 참고하고 싶으니 조금만 협조해 주실래요?”라며 나는 계속 말을 붙이고, 후배는 조사 항목에다가 그 집에 있는 전자제품을 빨리빨리 체크를 하였다.
그래서 오전에 스무 집 거의 내가 혼자 할 때보다 배로 할 수 있었다. 오후에도 대략 스무 집, 그다음 수요일도 후배랑 둘이 점심은 떡볶이로 대충 먹고 “우리 이제 뻔치가 늘었네”라고 웃으며 오전 오후 합쳐서 마흔 집을 채우고, “딱 맞게 하면 실력 없다고 해. 조금만 더 해서 두 집을 더 채우자!”라고 달래서 겨우 102집의 고객 카드를 모두 채웠다. 해가 저물어가지만, 부리나케 달려가서 지점장님께 사흘 만에 102장의 고객 카드를 제출하니 무척 놀라시는 눈치였다(그다음 해 겨울방학 때 대학생 2기 아르바이트에도 지점장님이 일부러 전화해서 하라고 추천해 주셨음).
2주일 후 마지막 날 수당이 지급되었는데 대학생 용돈으로는 엄청 거금이었다. 후배에게 수고비를 주고 나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멀리 여행을 할까? 식구들 언니들 옷도 사주고 광을 내어볼까? 책을 왕창 살까?’ 이리저리 행복한 상상과 고민을 하다가 할배, 할매 모시고 살며 추운 겨울에 한복을 손빨래 하시는 엄마가 눈에 띄었다. ‘아! 엄마 는 이 추운 겨울에 얼마나 손이 시릴까?’ 그 많은 식구 속에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밥을 먼저 하고 항상 빨래를 하시고 계셨다. 철이 들며 속옷 빨래를 했으나 그전에는 양말 한 켤레 내 손으로 세탁한 적이 없었다.
‘그래! 바로 저거야!’ 나는 눈 딱 감고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대우세탁기를 샀다. 대리점에서는 대우 1기 아르바이트 학생이라고 말하니 할인도 해주었다. 엄마는 마당에 벽돌로 지어진 욕실 안에 세탁기를 두고 손님이 올 때마다, “ 이게 우리 딸이 대우에서 일하고 산 세탁기다”라고 자랑하시며 세탁기에 덮개를 씌우고 매일 깨끗이 닦으셨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내 자부심은 하늘로 치솟았다.
오래된 옛날 세탁기만 보면 ‘최고 일류 대우’ 로고와 함께 간판도 생각나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쓴 김우중 회장도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엄마가 가장 간절히 보고 싶다.
심사평
이임향의 「최고로 멋진 대우세탁기」
박 춘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신문에 ‘대우 대학생 아르바이트 1기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보았다. 그 당시 대우전자는 엄청 인기 있는 회사 로 나는 ‘이거야말로 나를 위한 기회’로 생각되어 꼭 해야겠다고 결심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 집은 국립대 아니면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꾸고 입학금만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면 각자 알아서 장학금을 타던, 과외 알바를 하던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위에 오빠들, 언니들 그런 식으로 학교를 다녔고….
서사는 작가의 푸릇한 시절, 대학 1학년의 겨울방학 기억으로부터 열린다. 수필은 삶의 반영이라고 하는 명제로부터 생각해 보자. 수필은 작고 소소한 이야기다. 작가의 생활 속 경험과 체험에서 길어 올린 성찰 과 추체험을 서사화한다. 수필이라는 장르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규율이다. 성찰과 추체험은 무엇을 말할까. ‘겨울방학의 기억으로부터 글 이 열린다’라고 했다.
예컨대 기억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서 누군들 ‘기억’이라는 정신 작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물론 서구 철학자들, 대표적으 로 ‘후설’의 경우 정신현상학을 자신의 학문 세계로 삼아 왜 어떻게 정 신활동이 이루어지는가를 궁구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기억은 심사평 박 춘-315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처럼 당연한 일에 불과하다. 본래적으로 익숙하 고 그냥 지나친다. 공간이 있고 시간이 있고 산이 있고 강이 흐르고 바 다가 있는 것이 당연하듯 ‘기억’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굳이 생각하고 의문을 갖지 않는다.
문학은, 글을 쓴다는 것은, 특히 수필을 쓴다는 것은 기억으로부터 시작되고 기억으로 끝난다고 해도 무방한 일이다. 어느 날 문득 과거의 경 험 중의 하나가 지금 보는 어떤 장면이나 사물에서 겹쳐 일어나는 기억 (생각)을 붙잡아내고 그것이 주는 추억과 내게 다가온 어떤 감정을 서 사화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재미를 선물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장르가 체험적 시간, 즉 의식(기억)을 의미화 로 이끌고 조직하여 예술성을 부여한다는 것에 이르면 조금 달리 생각 할 이유가 생긴다.
말하자면 ‘기억’이라는 작용을 무의식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기억’이 라는 작용에 대해 치열하게 모든 방식으로 생각해 보고 글을 쓰는 것은 다를 것이다. 어느 날의 기억이 돋아나 글이 되어주는 게 추억의 기록이 라면, 기억 현상을 추론해 보고 글을 쓰는 행위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추억 속의 경험 의식에 작가가 가진 생의 태도 내적 의미를 실어 드러내 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자신이 생에 구하는 태도를 육화시키는 일. 일상의 사실 속의 진실을 실어내는 일 같은 것. 성찰이거나 추체험이라 고 하는 그것은 조금은 다를 것이다.
기억을 잃는 것은 치매다. 그러나 기억 자체가 없는 것은 치매와는 다르다. 기억작용을 하는 뇌세포가 죽거나 기억세포로 가는 혈관이 막혀 아예 기억 자체가 없다면,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기억은 단순히 경험을 보전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니고 생명 그 자체다. 나와 세계는 오직 기억이라는 작용에서만 살아있는 존재일 수 있는 놀랍고 어마어마한 지점이다.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고 마는 기억이라는 작용의 실재다. 바로 이처럼 너무나 당연한 거여서 그냥 지나치게 되는 어떤 걸 다시 인식하면서 제재를 궁구해보는 그것이, 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수 필이 되지 않을까.
풋풋한 수필 등단 응모작을 읽으며 수필을 생각해 본다. 정성과 열정을 담은 응모작은 가슴 설레고 따뜻하게 한다. 설혹 아직 보살펴야 할 곳이 있고 이겨내야 할 지점이 있다 해도 글을 쓰겠다는 의지 실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단한 용기가 요구된다.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과 세계에 어제와는 다른 시선을 갖는 일이고 다 른 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 그의 등단을 축하하는 이유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약간 예민해야 하고 깨어있는 일이다.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쓰 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