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는 조선시대 말 개척 당시 사슴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녹도라고 불렸던 통영 바다의 섬입니다. 욕지도라는 이름은 100여 년 전에 한 노승이 시자승을 데리고 연화도 상봉에 올랐는데, 시자승이 도(道)에 대해 묻자 '욕지도 관세존도(欲知島觀世尊島)`라고 답하며 이 섬을 가리킨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해석은 통영 바다에 점점이 이어진 각각의 섬들에 불교 경전 속의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於世尊)'이라는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연화세계를 알고자 한다면 그 처음과 끝을 부처님에게 물어보라. 통영의 사람들에게 바다에 떠있는 섬은 이상향이었고 불국토였습니다. 그 섬들 중에 오늘 갈 곳은 욕지도입니다.
하동을 지나 통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섰습니다. 삼덕항으로 가는 길. 보슬보슬 비가 내립니다.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비는 내리고 그 물기가 마음에도 맺힙니다. 매표하는 아저씨께 여쭤보니 오늘 들어갔다가 오늘 나오라고 하십니다. 욕지도에서 하루를 지내고 연화도를 거쳐 나오려는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넘어집니다. 아무튼 비나 좀 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배에 오릅니다. 바다는 평온합니다. 비는 내리지만 바람은 거세지 않고 파도도 잔잔하고 그렇게 한 시간여를 달려 욕지도에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비를 맞고 걸을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욕지도에 도착하니 비는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시간이 맞으면 욕지도를 순환하는 버스를 타고 산행을 시작하는 야포로 가려고 했으니 여지없이 시간은 맞지 않습니다. 걸어서 가기로 결정하고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방향을 물어봅니다.
"할아버지 이 쪽이 야포로 가는 길 맞습니까?" "응"
"걸어서 얼마나 가야 됩니까?" "걸어서 가기는 너무 멀어"
"한 시간쯤 가면 도착 안 할까예?" "그쯤 걸릴 낀데"
선택의 여지가 없이 씩씩하게 욕지일주로를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이정도 쯤이야 믿을 건 단단한 두 다리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 금방이지만 이렇게 천천히 걸어서 가면 걸은 시간만큼 더 많은 풍경을 눈에 마음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급할 게 업습니다. 비록 아스팔트 깔린 도로지만 옆에 탁 트인 바다를 끼고 걸으니 유유자적, 여유작작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걸어서 야포 들머리에 도착, 이제부터 욕지도 숲길을 걷습니다.
삼덕항에서 출발해 욕지항에 도착, 욕지일주로를 걸어서 야포 들머리
일출봉에서 바라본 삼여도~대기봉~천왕봉~약과봉~호랑이바위
욕지도를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노적고개
출렁다리, 펠리칸바위~고래강정~혼곡으로 이어진 비렁길
욕지도 최고의 전망대인 매바위에서 바라본 섬의 전경
여기까지가 오늘 걸은 길입니다. 욕지도는 작은 섬이지만 걷는 내내 탁 트인 에메랄드빛 바다와 눈부신 수평선, 점점이 이어진 섬들과 푸른 조망. 쉼 없이 부서지는 해안절경을 보여줍니다. 거기에 산길, 숲길. 해안길, 비렁길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며 지루할 틈이 없는 아기자기한 매력을 아낌없이 드러냅니다. 섬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특히 지금 같은 철에 욕지도에 가면 여기저기서 파릇파릇 솟아나는 싱그러운 봄내음을 마음껏 마시며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욕지도 숲길을 완주할 욕심이 있었다면 걸음을 바삐해서 약과봉에 올라 논골을 지나 욕지일주로를 걸어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겠지만 마음을 내려 놓고 욕지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취한 듯 천천히 걸었기 때문에 이만한 걸음에도 만족스럽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다 보고 돌아오면 다시 가기 힘들지만 뭐라도 남겨 놓고 오면 다시 가기 쉽다 이런 마음가짐입니다.
욕지도 여객선터미널~야포 들머리(4km)~일출봉(0.6km)~망대봉(0.84km)~노적고개(0.48km)~젯고닥(0.6km)~출렁다리(0.45km)~고래강정(0.8km)~입석목넘이(0.7km)~혼곡(1.2km)~대기봉(1.2km)~천왕봉(0.5km)~태고암(0.65km)~배 타는 곳(2.0km).
17시 45분 욕지도에서 삼덕항으로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탔습니다. 한 시간여를 지체하면서 마지막 배를 탄 이유가 있습니다. 날이 흐려서 볼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 없었지만 배에서 일몰을 보고 싶다는 희망. 그리고 거친 파도에 심하게 출렁이는 배에서 바다에 지는 아름다운 일몰을 만났습니다.
첫댓글 저도 꼭 해보고 싶었는데~~ 튼튼한 두다리도 있는데~~~ㅋㅋ 아직도 도전을 못하고 있어요ㅠ 이노무 용기가 ㅎㅎ
하지만 이글을 보니 꼭 도전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생기네요~~ 사진 너무 멋져욥~~^^!
용기를 내서 도전해보세요
희수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옛날에 갔던 곳 또 가고 싶게 만드시는군요ㅎㅎ
좋은 곳은 가도 가도 좋은 곳이죠
전 벌써 또 가고 싶어요 ㅎㅎ
멋진 일몰을 보셨군요....
가끔 혼자 떠나보고싶은 섬여행....
사진보다 훨씬 아름다운 일몰이었을것 같네요...
나오는 배가 출렁출렁거려서 힘들었는데 난간을 잡고 일몰을 봤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이 있습니다
선실에 있는 분들이 저 놈 미친거야 !! 했을 듯 합니다.
멋진사진이야 그렇다쳐도
잔잔한 기행문 또한 일품일쎄
ㅎㅎ
갑자기 욕지도 가보고잡다
맘먹으면 가는게 나의 행동수칙
종남이 형
얘기도 많이 못 나누고 술도 많이 못 마셔서 아쉽네요
구례주막에 놀러갈게요
행동수칙대로 맘 먹고 욕지도 함 다녀오세요
음.. 비 내리는 여객선터미널에 같이 있는 듯.. 할아버지가 옆에서 말씀 하시는 듯..
돌아오는 배에서 일몰을 볼 수 있기를.. 글을 읽어가는 내내 내 기분도 참 좋아지네요..
차분하게 읽어보니 더 좋네.. 사진도 더불어 감사.. ^^
성님 맘에 드신다면 다행 ^^
이런거 울 마눌님 보면 안되는데... 또 가자꼬 난리일낀데... ㅎㅎㅎ
가자꼬 하면 또 가셔야지요. ㅎㅎ
바쁘시더라도 열 일 제쳐놓고 가시는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