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건빵의 족보
어렸을 때 어쩌다 군인아저씨가 주는 건빵을 먹고 그 맛에 홀딱 빠진 적이 있다.비스켓처럼 바삭한데 구수하고 약간의 단맛도 뒤끝에 남았다.별사탕까지 버무려 먹으면 화룡정점이었다.
여행이나 등산을 갈 때도 배낭 한 구석에 건빵 한 봉지 들어있으면 괜히 든든하다. 언제 어디서든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건빵은 간식이나 과자로 먹지만 그 시작은 휴대용 전투식량으로 만든 일본 제국주의 군대다.
일본은 섬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전투식량이 필요했다.특히 전쟁터가 중국과 동남아 지역, 태평양의 섬지역까지 확대되면서 보급선이 길어지고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육군은 야전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전투했다.하지만 수분이 많은 주먹밥은 따뜻한 기후에서는 부패 속도가 빠르고 추운 곳에서는 곧바로 얼어 버리니 먹기가 힘들고 많이 갖고 다닐 수 없는 것도 단점이었다.
16세기 무렵 포르투갈 선박이 일본에 들어왔다.선원들의 비상 식량인 비스켓도 함께 전해졌다.
일본인은 처음 본 비스켓을 남만과자라 불렀다.
남만과자는 일본육군의 전투식량 개발에 영감을 주었는지 1877년 일본 육군에서는 두 번 구운 빵이라는 뜻의 빵인 '중소면포'라는 휴대용 전투식량을 개발한다.
1894년 청일전쟁 때 식량공급에 도움이 될 줄 알았던 중소면포는 크기도 수첩만 한데다 잘 부서지기까지해 불편했다.
일본 육군은 영국,독일,오스트리아 등에 기술자를 보내 유럽 여러나라 군대의 군용식량을 연구했다.
결국 오늘날 같은 형태의 건빵이 만들어진 것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이었다.
건빵을 휴대용 전투식량으로 보급하는 나라는 일본 자위대,한국군, 북한군,중국 인민해방군이라고 한다. 일본군이 만든 건빵은 동북아지역의 전투식량이 된 셈이다.
건빵에 관련한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군대 내무반에서 건빵을 입에 물고 바짜작 씹는 소리 나지 않게 침을 발라 퍽퍽한 건빵을 부드럽게 만들어 먹었던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살이를 이야기하는 글에서도 배고품을 견디며 긴 밤을 견딜 때 누군가 혼자 건빵을 씹어 먹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는 내용이 나온다.
며칠 전 신호대기중일 때
도로 한 켠에 보리건빵을 파는 분을 봤다. 추운 날씨에 잠바 주머니에 손을 깊숙히 넣고 제 자리에서 종종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런 건빵 한 포대 사 놓고
긴 겨울 보내는 간식으로 활용했던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서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