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에서 하노이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에 호텔에서 나왔다
체크아웃 하는데 아침식사를 못하고 가는 우리에게 호텔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출발지인 사파 익스프레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네덜란드인 에드워드와 우춘희를 다시 만났다
엔 하우스에서 일정이 달라서 언제 떠났는지 몰랐는데 여기서 다시 보다니 반가웠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의 사진들을 보았는데 "닌빈"의 풍광들이 새로웠다
에드워드가 우리에게 닌빈에 가보았느고 물으며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박하시장 대신에 닌빈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시 하노이로 가는 버스도 6시간이니 버스타는 시간이 길지만
스쳐가는 풍경을 보니 졸음이 오진 않았다
휴게소에서 찐 옥수수를 사 먹으면서 우춘희 커플에게 두 개를 사주었다
한국의 이름 석자를 잊지 않은 우춘희.. 그녀는 옥수수를 받으면서
한국말로 감사인사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왔다
"고맙습니다" 라고 가르쳐 주니까 "고맙습니다" 라고 따라서 말했다
내가 "감사합니다"도 같의 의미라고 덧붙여 주었더니 잘 따라서 한다
그녀가 어머니"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궁금하지 않았을까.. 마음 한 구석이 찡하다
하노이에 도착하니 거리가 인파로 술렁거렸다
일주일 전 하노이에서 하루 머물다가 사파로 갔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걸 보고 크리스마스 이브임을 실감한다
우리는 대성당 앞으로 갔다가 성당 앞의 축제와 인파에 밀려 성당에 가는 건 포기하고
맛집으로 알려진 피자집으로 갔다
그러나 피자집도 예약손님만 받고 있었고 27일까지는 예약이 다 되어 있다고 한다
음식점을 찾다 보니 "박항서가 다녀간 집"이라는 레스토랑이 보여서 들어가 먹었다
성당에 가지 못한 것이 걸렸지만 종일 버스를 탔더니 지쳐 있어서 일찍 호텔에 들었다
사실 오늘은 나에게 애도의 날이었다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을 맞았는데 여행지라서 연미사도 못 드렸던 것이다
집에 가면 연미사를 드리기로 하고 간단히 기도만 바쳤지만 2년 전의 슬픔이 조용히 밀려왔다
엄마와 함께 여행했던 일들이 그리움이 되어 잠을 쉬 이루지 못했다
성탄절인 오늘은 하롱베이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크루즈 여행은 일박이일로 한화 40만원에 예약했다
하루 숙박비가 40만원이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지내보니 그 가치가 충분하였다
아침에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니 가이드가 우리를 찾는다
하롱베이행 여행객들은 우리까지 모두 열다섯 명
자기 소개를 하는데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이태리인으로 다국적이다
하노이에서 세시간 반 걸려서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넓은 바다로 나가서 크루즈 선박에 승선했다
대형 크루즈는 아닌데 이곳이 5성급 호텔이라니 숙소가 넓고 깨끗하였다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 물결의 생생함에 이번 여행의 정점에 와 있음을 느낀다
승선 인원도 하노이에서 같이 온 15명만 있어서 가족적 분위기이다
점심 식사를 하며 바다를 보니 섬들의 오묘한 아름다움이 스쳐갔다
하롱베이 바다에 삼천 여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그래선지 파도가 치지 않는 고요한 바다이다
숙소에 짐을 두고 모두 카누를 타러 나갔다
남편과 둘이서 노를 저어서 섬을 돌아오는 코스였다
수영이 미숙해서 약간 두려웠지만 물이 잔잔해서 탈 만 하였다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바다에 배 떠나간다.."
고산지대인 사파와 또 다른 바다의 매력에 이끌린다
점심과 저녁이 코스요리로 나오고 아침 점심은 간단하였다
특히 저녁은 성탄절 만찬답게 요리마다 화려한 장식이 되어 나왔다
캐롤에 맞추어 가이드가 춤을 추고 파티 분위기를 부추겼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 혼자 여행 중인 영국 여자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케잌과 촛불 속에 다국적 친구들이 축하노래를 불러주고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축하 건배를 세 번 외쳤다
그리고 모두 갑판에 올라가 와인을 마시고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원래 선셋 파티 일정이었는데 생일 잔치 때문에 어둠이 내려 있었다
나는 저녁 식사 후 컨디션이 안 좋아서 숙소로 내려와 쉬었다
크루즈는 계속 항해중인데 밤 사이 정박할 곳을 찾아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아침에 되니 섬과 섬 사이에 안개가 흐르고 신비한 섬들이 다시 나타났다
갑판에서 요가 시간이 있어서 올라갔더니 몇 명 나오지 않았다
하얀 옷을 입은 요가 선생을 따라 하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기를 모으는 운동이었다
아침 식사 후 수영을 하러 간다고 모두 나서는데 난 가지 못했다
수영을 못 하더라도 구경은 할 수 있었는데 어제 저녁 이후 배가 살살 아팠다
수영에서 돌아온 독일 커플에게 혹시 약이 있는지 물었더니 알약 8개을 주었다
10개를 먹어야 되는데 8개 밖에 없다고 먹어 보라고 한다
그 약을 먹어선지 좀 증세가 나아졌다
점심 식사 후 육지로 간다고 해서 진주 만드는 어장을 다녀 온 후에는
크루즈는 아주 느린 속도로 항해 중이다
갑판에서 모두가 망중한인듯 비치 의자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긴다
하노이로 다시 돌아오니 각자 호텔 앞에 내려주어 편리하였다
이틀 간 크루즈 여행을 함께 했던 외국 친구들이 하나 둘 "바이바이" 손을 흔들고 내린다
나는 내게 약을 다 털어준 독일 젊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전하고 헤어졌다
이제 내일 밤 이면 열 하루만의 베트남 여행도 막을 내린다
호텔에 오니 매니저가 "닌빈"에 갔었는지 묻는다
그동안 만나는 여행객들에게 들었던 질문이
호텔에서 연계해주는 여행 코스에 닌빈여행이 한화 8만원이면 다녀 올 수 있었다
우리는 내일 하노이에서 보내려던 일정을 바꾸어 닌빈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가이드가 동승한 버스로 아침 일찍 닌빈으로 떠났다
과연 닌빈은 지상의 하롱베이에 다시 온 것 같았다
호수와 섬들로 이루어진 대자연의 작품 앞에서 찬탄이 나왔다
발로 노를 젓는 여사공의 작은 보트에 우리 부부 둘만 탔다
섬과 호수를 거슬러 동굴을 세 번이나 지나서 돌아오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노를 젓느라고 수고한 여 사공에게 팁 10만동(5천원)을 더 주었다
우리는 일정에 없던 닌빈에 온 것을 너무 보람되게 느꼈다
하노이에서 같이 온 캐나다 노신사들이 옆으로 지나가면서 우리 모습을 찍어 주었다
그분들은 자전거로 섬을 돌아볼 때도 셔터를 눌러 주었고 메일주소를 물어왔다
귀국 후 보니 사진들이 와 있어서 우리도 그분들의 사진을 보내 주었더니 감사 편지가 왔다
닌빈에서 다시 하노이로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호텔에서 밤 열 한시 반에 체크아웃 하기로 하고 쉬었다
그래도 숙박비는 이틀을 계산하였다
공항으로 바로 가면 쉴 곳이 없었기 때문에 몇 시간이라도 쉬었다가 가기로 한 것이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는 자가용 영업을 하는 차였는데 공항까지 30만동에 가기로 했다
팁을 2불만 주려고 보니 1불짜리가 하나도 없었다
1불 짜리로 50불을 바꿔 갔는데 다 쓴 것이다
말을 안 걸던 기사님이 어디서 왔느냐고 한 마디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박항서 감독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내게 2불이 없으면 5불 짜리를 주라고 해서 5불을 더 주었다
나는 이 여행기에 행선지 외에 숙박료와 입장료, 팁 내역까지 참고로 적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보니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걸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인간관계가 그렇고 인생이 그렇듯이
세상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로 인해서 움직이는지 모른다
4년 전 터키 여행은 기록하지 않았더니 명소의 지명조차 아련해졌다
여행사에서 가는 패키지 여행보다 자유여행은 확실히 여행의 묘미가 있다
이젠 시대가 바뀌어서 자유여행이 젊은 사람들의 전유믈이 아니다
혹시 영어가 서툴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동 번역기 어플을 깔아도 유용하고 세계 공통어인 바디 랭귀지도 있다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편안한 휴양지에만 머물다 왔다면 이처럼 추억을 만들었을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베트남에 다시 간다면
우리에게 따뜻한 저녁을 대접해주신 미스텀의 집을 다시 찾아가고 싶다
시를 쓰신다던 미스 텀의 어머니..
우리에게 민요조 노래를 불러 주시고 차를 따라 주시던 그 분과
미스 텀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빈다
첫댓글 형숙님, 베트남 여행기, 하노이 사바, 그리고 닌빈의 호수와 섬들...
그 남쪽나라의 산천들과 인가들의 모습... 나도 함께 가서 보는 듯
선명한 장면들이에요. 베트남 전쟁이 북의 공산군의 승리로 남북이
통일됐지만 그 후의 정치와 역사, 사회는 그처럼 자유국가가 되었군요
박항서 감독 이야기이며, 인간관계... 참말 베트남은 많이 새로워졌어요.
.. 세상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로 인해서 움직이는지 모른다.. 는
말씀 뜻 깊은 인생철학이지요. 비아님, 현숙님은 그 능숙한 문필로
세계를 잘 그려내고 있어요. 거듭 축하합니다.
향강선생님의 성원에 힘입어 여행기를 마쳤습니다
문장 하나라도 허투로 보시지 않으시고
미학적이고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 주시니 제가 신이 나지요..ㅎ
그저 사진에 설명이나 덧 붙이면 편하겠지만 자주 못 가는 여행이니
기행문 형식이라도 남겨 놓고 싶었습니다
전 평소에 집 근교의 산이나 공원에서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여행이 필요하한 것 같습니다
잠시 떠나 있었지만 역시 집이 제일 좋으네요..
비솝의 "즐거운 나의 집"이 왜 세계인이 즐겨 부르는 명곡이 되었는지 알거 같아요..ㅎ
향강선생님..겨울나기 잘 하고 계시지요?
겨울날씨는 변덕스럽답니다..추웠다가 포근하다가...
늘 감기 유념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