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아마 연휴 기간 내에 계속 그러하겠지요.
긴 연휴임에도 고향(부산)에 가질 않는 이유는 직장 생활이 벌써 끝난 전업작가이기에
조카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나눠 줄 현금이 없다는 사실과
이번 10월 말 우리 산청문협이 책임지고 실시할 행사 준비
그리고 그 행사가 끝난 후 출판될 저의 장편소설 '리벤지 게임'에 들어갈 작가의 말, 표사 글, 프로필 사진 등 준비가 많아서입니다.
그래서인지
어제 모처럼 사천 (대포항 전어 전문점)에서 가족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장성한 아들이 이렇게 묻더군요.
"돈도 되지 않는 문학 활동, 멀쩡한 직장 빨리 때려치우시고 전업작가로 소설 쓰는 아버지! "
"왜?"
" 그래서 행복합니까?"
약간의 망성일 끝에 ........ 저의 대답은 "그렇다." 였습니다. ㅎ
다들, 추석 연휴 잘 보내시고 아래 글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방자치시대, 기초의원의 조건
이인규/소설가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선거는 1949년 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시읍면 의회 의원선거’와 ‘도의회의원 선거’이다. 하지만 이는 5.16 군사 정변에 의해 해산되어 임명제로 바뀌다가 무려 31년만인 1992년에 재차 시행되었다.
그때 나는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당시 야간 근무가 싫어 사직한 교정직 공무원에 이어 두 번째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부산시의 모 동사무소였다. 그곳에 입사하여 맡은 첫 업무는 병무, 통계, 통장협의회 등 관변단체 관리 그리고 선거업무였다. 그런 상황에서 1992년 3월 26일에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담보한 지방 선거(기초의원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당연히 이 선거로 나는 각종 교육 및 회의에 이어, 선거인 명부를 작성하느라 근 몇 달은 매일 야근이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없는 시절이었으니 수기 작성은 날 몇 배로 힘들게 하였다.
선거 막바지에 후보자 연설이 있었다. 동네에서 제일 넓은 광장에 전날부터 나를 비롯한 전 직원 그리고 선거 사무원들이 수레로 의자 등 집기를 직접 나르고, 입간판과 현수막을 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일 여러 후보자의 연설이 있었는데, 대게는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전직 고위 관료, 현직 변호사, 의사, 자산가 등이었으나, 단 한 명은 내가 잘 아는, 그저 그런 평범한 주민이 있었다. 그는 시골 태생으로 평생을 농사짓다가 자식들 교육을 위해 이 동네 시장통으로 이주하여 쌀장사하던 김 씨였다. 그러면서 그는 오랜 기간을 지역 봉사단체 및 현 통장으로 정말이지 열심히 활동하던, 당시에 보기 드문 지역 활동가였다. 하지만 그가 기초의원으로 입후보할 때 많은 주민과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정의롭고 성실하지만 다른 후보에 비교하여 학력, 경력, 재산 등이 현저하게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는 후보 연설 때에도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고 종내엔 낙방하고 말았다.
그렇게 선거가 끝난 어느 날, 어떤 자리에서 지역 주민과 술을 마시다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주민의 말에 의하면 첫째, 그는 농사꾼이자 장사꾼 출신으로 이번 풀뿌리 민주주의 선거에 자신과 같은 사람도 입후보할 수 있다는 걸 자신과 같은 하층민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둘째,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당선된다면 당연시되는 ‘관과 지역 토호 세력의 유착’을 막고 오롯이 주민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그간의 경험(통장 및 봉사활동)을 토대로 깨끗하게 정치하고 싶었으며 셋째, 관을 철저히 견제, 탁상행정을 뿌리 뽑아 진정으로 주민이 참여하는 구정을 실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는 경황이 없어 자세하게 살펴보지 못한 그의 공약을 보자, 그 주민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는 평생을 지역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이웃인 주민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인 기초의원이 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때 다른 이들처럼 그를 폄훼한 게 후회가 되었다.
2012년 시골에 귀촌한 뒤 이 지역에서 지방 선거를 세 번 치르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 작년 내란의 밤을 겪으면서 우리는 이 땅의 고학력자들이자, 기득권인 그들( 서울대 법대, 육사, 일부 국회의원과 정치인 그리고 검사, 판사 등 법조인 등)이 어떻게, 피 흘려 만든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동조하는지의 민낯을 보았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그때 낙선한 그가 생각났다. 당시에 만약 나를 비롯한 다수의 주민이 학력이나 경력, 재산, 인지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개 통장이었지만 정치에 진심이던 그를 선택했으면 어떠했을까.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 동네부터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한다.
내년 지방 선거가 머지않았다. 벌써 후보자들이 물밑에서 움직인다는 소문이 들린다.
지방자치(Local Autonomy)는 지방분권을 위하는 행정 형태, 즉 전국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나 주민이 선출한 기관을 통해서 스스로 그 지방을 통치하는 정치체제이다. 4년에 한 번, 제대로 된 지역일꾼을 뽑는 게 우리나라 전체 정치판뿐만 아니라 국민의 향상된 삶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나는 시골에서만큼 낙하산(특히 고위 관료, 검사 등 법조인)이 아닌, 지역에서 꾸준히 주민과 소통하며 일해본 사람들, 즉 이장이나 주민자치회 등 주민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던 후보가 기초의원에 당선되면 좋겠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지속해서 성장하여 도의원, 나아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한다.
단, 지나치게 한쪽당에 매몰된 후보는 빼고, 말이다. 아니면 말고 …….
이인규
- 2006년 제9회 공무원문예대전 장려상 수상
-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소설(내 안의 아이) 당선
- 작품집 : 장편소설 '리벤지 게임(신간 예정)' 등 다수
- 음반 :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 ( '생일축하해요' 등 창작곡 8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