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방일에 소질이 없나 봐 딸아이는 결혼 전 그렇게 자주 말했다. 직장 다니랴 취미 활동하랴 바쁜 나날이었다. 결혼하면 결국 제 살림하느라 힘들 것이 뻔한데 미리 할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밥을 지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죽에 가까운 밥이었다고 했다. 딸아이가 가족을 위해 밥상을 준비하려는 그 마음만으로도 남편과 나는 무조건 흡족했다.
퇴원은 했으나 아직 몸이 부실했던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는 딸아이가 밥상을 차렸다. 오무라이스를 시작으로 닭도리탕뿐 아니라 삼겹살을 노릇노릇하게 구워냈다. 오이지를 납작하게 썰고 송송 파를 썰어 올려놓았다. 오이지를 물에 두 번 정도 씻어 짠맛과 군내를 빼야 하는 과정을 어찌 알까. 짭짤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김밥을 얌전하게 말기도 했다. 칼이 잘 들지를 않아 김밥이 정갈하게 썰어지지 않는다는 투정은, 대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탈 수 없었던 네 살 딸아이가 토라져서 뒤돌아 앉아있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사실 요즈음 세상에 먹는 일이 무슨 문제랴. 음식점은 많고 국이나 찌개를 비롯한 반찬가게도 주변 상가에 서너 집씩 있고 즉석요리가 가능한 냉동 포장 제품들은 마트 한쪽 유리 진열장에 가득하다. 더구나 된장찌개나 부대찌개 김치찌개등 야채가 포함된 음식들도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게 포장되어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충분히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만들기 쉽고 맛있다고 해도 누군가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음식과 비교될 수는 없는 일이다. 집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생각난다. 남편을 만나던 벚꽃잎 빛깔 같은 날들 말이다. 그는 취업 준비로 나 또한 공무원 시험을 대비해서 남산도서관을 다녔다. 공부와 연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연애 쪽으로 기울어졌음은 인지상정이다. 점심은 대부분 집에서 가져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내가 처음으로 해 본 음식이 김밥이었다. 그를 위한 점심이었다. 매일매일 그를 위한 점심을 준비하고 싶었다. 나는 대치동 큰오빠네 집에서 지냈으므로 주방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적었다. 올캐 언니가 집에 안 계신 틈을 이용해야 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고 싶어지는 게 사랑에 빠진 여자의 진심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결혼하고 딸아이는 유튜브를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고 있다. 동영상을 보고 딸아이가 만든 음식은 내가 사십여 년을 만들어온 음식보다 맛과 모양새가 월등했다. 우리 세대처럼 친정어머니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어졌다. 매일매일 메뉴를 바꿔 간다. 결혼 4개월 차인데 이미 국 종류와 나물 종류도 골고루 끓이고 무칠 줄 알게 되었다. 밥상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주는데 매번 아기자기하면서 정성이 가득하다. 사진이나 글이 작가의 마음을 닮듯이 밥상은 딸의 마음을 빼닮았다. 따스하고 변화있고 정갈하다. 근육질인 사위는 일단은 식성이 좋고 더 좋은 점은 딸아이의 정성을 백 퍼센트 알아준다는 것이다. 고마워하면서 밥이며 국이며 반찬들을 맛있게 싹 비운다. 싹 비운 밥상 사진도 내게 날아온다. 알콩달콩이다. 나와 남편을 웃게 한다. 내가 얼굴이 환해졌다는 말을 듣는 것은 모두 딸아이와 사위 덕분이다.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날, 딸아이가 말했다. 이번 엄마 생일은 내가 결혼하고 처음이니까 수요일에 미역국 끓여 줄께 내 집으로 와요. 생일날은 일단 내 집에서 미역국 먹고 토요일에 사위랑 오빠랑 함께 맛있는 저녁 먹어요. 사위가 이미 예약했어요. 딸아이는 우리집 일이건 친구들과의 일이건 무엇이든 앞장서서 계획하는 타입이다. 사위는 더 계획적이고 치밀한 젊은이다. 무엇이든 미리 알아보고 공부하고 계획하고 준비한다. 결혼식 준비며 신혼여행이며 얼마 전 필리핀으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다녀올 때도 그랬다. 딸아이가 신경을 쓸 일이 없어 편안한 여행을 즐긴 것은 물론 소소한 걱정이 많은 나를 완벽하게 안심시켜주었다.
생일날 자동차로 십오 분이면 도착하는 딸아이 집에 갔다. 미리 오면 안 된다고 난리였다. 준비가 완료된 식탁을 보여주고 싶단다. 약속한 12시에 도착했다. 김밥과 도토리무침과 김치와 미역국을 식탁에 정갈하게 차려놓았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수북하게 쌓였을 법한 설거지도 말끔하게 끝내놓았다. 아휴 힘들어서 혼났네. 두 시간이나 걸렸어. 어리광은 얼마나 어여쁜가. 그래그래 힘들고말고. 애썼네. 딸아이의 지극한 마음이요 정성이다. 그동안 엄마가 해줬으니 이제는 내가 할 차례인거야. 감동이다. 눈물을 흘리고 싶은 감동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눈물샘이 마르는 병에 걸려있다.
남편이 깁밥 자투리를 얼른 집어서 맛을 보았다. 맛있구나. 흐믓한 표정이었다. 나는 미역 국물부터 한 숟갈 삼켰다. 구수하면서 간이 잘 맞았다. 김밥을 한 개 입에 넣었다. 밥알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딸아이는 그 맑은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살짝 내밀고 상기된 채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데 살짝 긴장한 눈길이다. 맛있다 맛있다. 이구동성으로 그와 내가 합창을 하니 그제야 배시시 웃는다. 진짜 맛있지? 진짜야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들였게 맛이 없을 수 없지 엄마 딸인데 엄마 닮은거지. 뭐야 내 칭찬까지 곁들여주고. 또 감동이다. 잘했어 그래그래 고마워.
나만 그럴까. 크거나 많은 것에는 감동이 덜한 편이다. 오히려 작고 소소한 것에 감탄한다. 꽃송이도 큰 것보다는 작게 피어난 것에 눈길이 머문다. 애쓰고 이겨낸 흔적이 엿보여서일 것이다. 오늘도 그렇다. 토요일에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계획이니 사실 일부러 미역국을 끓이지 않아도 될 터였다. 딸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차려진 밥상이 아닌가.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한 사랑의 선물이다.
언니와 오빠와 여고 동창들에게 자랑을 했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렇게 말하지 않고 딸아이의 노력과 어미인 내 애틋한 마음을 눈치채고 공감해줄 사람들이다. 카톡방이 카톡 카톡 칭찬으로 이어졌다. 언니들로부터 꽃다발이 날아오고 직접 꺾어온 매화꽃과 개나리꽃망울과 생강나무꽃을 도자기 화병에 작품처럼 꽂은 귀한 선물이 친구에게서 날아왔다. 기쁨을 나누고 보태 주는 사람들 있으니, 잠자던 내 기쁨의 꽃망울이 불룩불룩 불거지는 것이었다.
토요일 저녁, 분홍빛 꽃다발과 달콤한 아이스크림 케익과 저녁 만찬까지 딸아이와 사위가 준비했다. 당신의 딸로 태어나 행복합니다 라는 리본을 달고 있는 꽃다발을 받는 동안,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생일 축하 노래를 듣는 동안, 맛깔스런 음식과 유쾌한 대화가 오가며 눈을 맞추는 동안, 기쁨의 꽃망울이 내게서 팡팡 터지는 것이었다. 2023년 이 봄, 벚꽃만 팡팡 터지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