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대와 거제도 역사사 | 거제도 역사 거제도는 수월 석기재료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했으리라 추정해본다. 신석기시대(BC 3,000~4,000)이수도,내도 유물로 보아 사냥,고기잡이,채집 등으로 살았으며, 청동기시대(BC2,500~BC200)에는 수 많은 고인돌을 보아 남방계 주민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철기시대(BC200~)에는 사도도(사등)에 자리 잡았으며, 그 이후에 독로국과 가라국이 있었다. 가라국은 4~7세기경 남부면( 다대부근)에 있었고, 일본과 빈번한 무역이 행해진 소국이었다. 기원전 300~기원후 8세기까지 일본과의 모든 통로는 거제도-대마도-이키섬으로 이어졌다. 거제도 연혁은 BC239년독로국-BC3~5세기 칠포국-AD520소가야-532금과가야-677년 상군3속현(거로현,남수현,명진이형)-757년 거제군 3속현(아주현,송변현,명진현)이 있었다. 이하생략 ♣지명: 加串望(해금강),登山望(홍포등생이),지세포 訥逸串, 구조라 가을곶 柯乙串山 |
변한 (독로국) | 고조선시대:BC2333~BC108, 중국한나라에 의해 멸망된 위만조선까지 (한,부여,예맥,옥 저,동예,진) 삼국시대: BC2~AD5세기(부여,고구려,옥저,동예,마한,진한,변한) 후삼국시대: 기원전부터~8세기까지(고구려,신라,백제,가야) 삼한시대: 백제,신라,가야 이전에 있었던 마한(충청,전라54국), 진한(경상도 동북부,사로국14국),변한(경상도서남부,김해가락국12국)으로 위만조선이BC108년 한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BC110년 우거왕이 주민2000여명을 다리고 진국(마한,진한,변한)에 유입되어 성립되었다고 봄. 변한은 경상도 서남부에 위치한 소국(12국)으로 고성군은 소가야, 김해시는 금관가야, 함안은 안라국, 거제도는 독로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독로국은 거제,동래 또는 거제와동래등으로 설이 분분하다)
변한(변진소국,변진가야국)은 5~6세기 까지 존재하였는데, 주로 철을 생산하여 중국(낙랑군,대방군),일본(왜),이웃 마한, 예(濊)에 수출하였다. 백성들은 농사와 잠업(蠶業)을 하고 살았으며 소도(蘇塗)라고 하는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다.
♣사등 소도(蘇塗)제사: 사등면: B·C 4세기부터 A·D 4세기까지, 삼한시대 변한의 12개국 중 두로국으로 사등이 왕도지(王都址)였다. 대리 뒷산에 천신제를 지내던 소도(蘇塗)가 있다. 군장(君長)이 5월 단오날과 10월 상달에 천신께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곳이다. |
거제도와 삼속현 | 거제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삼한시대이다. 신라 유리왕 19년(42) 신라의 국운이 아직 미약한 때에 변한의 땅에 가락국(駕洛國)이 창건되어 도읍을 지금의 김해에 두고, 6가야와 포상팔국(浦上八國)이 다투어 일어났다고 삼국사기에 기술하고 있다. 6가야는 금관가야(김해), 아라가야(함안), 고령가야(진주), 대가야(고령), 성산가야(성주), 소가야(고성) 등이고 포상 8국은 골포(마산), 고자( 고성), 사물(史勿 : 사천),고사포( 삼진), 칠포(칠원), 독로(瀆盧 :거제)이라고 경상남도지리지에 기술하고 있다. 독로국은 신라 법흥왕 19년(532) 가락국이 신라에 통합되자 문무왕 17년(677) 상군(裳郡)을 설치하고 속령으로 거로(巨老), 남수(南垂), 매진이(買珍伊)의 3속현을 두었다가 경덕왕 16년(757) 거제군으로 개칭하고는 3속현을 아주(鵝洲),송변(松邊), 명진(溟珍)으로 바꾸었다. 신라 진흥왕 25년(564) 지방의 군(郡)에 태수(太守)를 두고 고을을 다스리게 하였다. -고려시대 거제도의 큰고을은 거제군과 3속현(명진현,송변현,아주현)이고, 작은 고을은 향(鄕)이나 부곡(部曲)을 두었다. 하청,고정(고현),죽토,말근향(송정), 덕해향(덕치)에 부곡을 두고 연초 야부에 연정장을 두어 농기구를 제작하고, 북사의 범종도 여기서 만들었다. ♣ 거제도 토속성씨: 고려초에 성씨가 등장하는데, 아주현 토호세력중 그 수장이 申씨라는 성을 취하였다. 거제에 본을 둔 성씨는 기성반씨와 아주신씨가 유일하다. 거제옥씨는 본이 아니고 구전으로 전해오는 가짜 뉴스다. |
다대의 역사 | 다대는 거제도 최고 수봉인 가라산 자락에 위치한다. 일본과의 거리도 가까워, 무역의 통로가 되었으며 사신도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당시에는 거제 중심과 떨어져 있고 육상 도로가 불편하여 대부분 해상 교통을 이용하였다. AD677년 일본과 중국과 교역이 자자지자 신라 문무왕은 거제도를 상군이라 칭하고 3속현을 두게 된다. 아주현, 남수현(송변현),명진이현(명진현) 즉 다대부근은 거제군 3속현 중하나인 남수현이 있어 해상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가라산 정상에는 봉화대와 기우단이 있고, 절터도 남아 있다. 가라산 중턱에는 다대산성이 있어 이곳에 남수현(송변현)치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마도는 우리땅 :세종실록에 보면 1420년 대도도 어민 일부가 가라산도(거제도) 이주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1419년 이종무장군이 대마도를 정벌하여(227척,17,285명군인)대마도주가 조선정부에 항복한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세종실록 세종2년 1월 1420년 (대마도인의 이주)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이 곤란하니 섬사람들을 가라산도(加羅山島 :거제도)등의 섬에 보내 거주하게 하고 대마도를 조선영토의 주군(州郡)으로 생각하셔서 주군의 명칭과 인신(확인서,임명장)을내려주신다면 저희는 마땅히 신하의 예절로서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
다대산성 | 7세기경 조성, 신라현 치소는 산성 중심으로설정되어방어 및 행정구역 성격을 띄었다. 다대산성(多大山城)은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의 해발 283m 산봉(山峰)에 위치하는 석축산성이다. 다대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남부면 다대리 일대는 통일신라기에 송변현(松邊縣)이 설치되어 있었던 곳인 만큼 다대산성은 입지, 축성법, 출토유물 등을 감안해 볼 때 통일신라기에 있었던 송변현의 치소의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다대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거제 송변현의 치소성으로 축조되어 유지되어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적인 가치가 큰 산성이므로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한다. -거제도에 산재하고 있는 20여개의 성 중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 |
가라산봉수대 | 경상남도 기념물 제147호『경상도지리지』에 보면, 가라산연대봉화((加羅山烟臺烽燧)는 현의 남쪽 35리 정도에 있으며, 서쪽으로 율포진 소관으로 별장1, 봉수군13명,수자리망군40(가을곶 柯乙串山)이 배치되었으며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이다. 고성의 미륵산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가라산봉수는 처음 봉화를 피우는 경상도 남해안의 중요한 봉수의 하나였으며, 봉수대는 가라산 정상에 있다. |
가라산 | 가라산(加羅山)서기 503년 가야시대 북으로는 해인사 뒷산이 가야산이고, 남으로는 끝이 가야산이다, 가라산은 가야산이 변음된 것이다. 가라산의 어원인 ‘가라뫼’는 비단처럼 별들이 수 많이 모여 수를 놓은 뜻 아름답다는 뜻이다. 거제의 최남단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탑포리 해변에 위치한 가라산은 거제도의 수봉이다. 그 높이가 585m로 노자산과 같은 준령에 있다.학동몽돌해수욕장 뒷산이 노자산이라면가라산은 다대마을 뒷산이다. 가라산에는 남해안 왜적을 감시하던 봉화대의 흔적이 있는데 통영 항배골 봉화대와 연결하는 전초 봉화대였다. 봉화대 못 미쳐 기우제를 지내던 기우단이 있다. 고려말 몽고의 일본정벌 때에도 몽고군이 여기에서 일부군단이 출발했다고 기록에 전하고 있으며, 왜구가 침입할 때 이곳에서 씻은 쌀뜨물이 바다에까지 흘러간 것을 보고 절에 많은 병사가 있는 줄 알고 적이 도망갔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다. 가라산 남쪽 끝에 다대포 성지가 산중봉에 막돌로 쌓여져 있다. 고려시대 성지로 외침을 막기 위한 성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허물어져 그 흔적이 옛 성벽임을 겨우 말해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가라산 남쪽 십리 지금의 다대 부근에 송변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가라산절터 | 아주 오랜 옛날 가라산 정상 서쪽아래에 견암사라는 절이 있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70명의 스님이 살았는데 밥을 짓기 위하여 쌀을 씻는 쌀뜨물이 바다까지 흘러 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왜놈들이 침입하여 왔을 때, 그 쌀뜨물이 흘러내려 오는 것을 보고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
가라산 방어소 | 1330년(충혜왕 즉위년)에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어전주(銓注)주 02)를 담당하였고, 이듬해 6월 대호군 박련(朴連)이 전주의 불공평에 대하여 상주하자 장형(杖刑)을 당하고 경상남도 거제의 가라산방어소(加羅山防禦所)에 유배되었다. 김문귀 |
가라산목장 | 1445년 거제도에는 7개의 목장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탑포와 가라산에 목장이다. 약3,000여필 방목하고 있다. 거제도 7목장(산달도,구천동,탑포,구영등,장목포,구조라,지세포)1445년 거제도 9목장 (산달도,구천동,탑포,구영등,장목포,구조라,지세포, 칠천도,가조도)1678년 |
다포리 | 다포리는 옛날 송변현 소속이었다가 1769년에는 고다대포방, 1889년큰다대(다대),작은다대(다포리)로 분리되었다. 가라산 아래 자리잡은 다대리는 쌈채소로 유명한 ‘곤달비’자생지이다. 다포에는 수산종묘시험장이 있으며, 새해 일출장소로 유명하다. 그리고 1890년 경상도 관찰사가 거제군 남부면 소다포(少多浦)의 염전과 곽전의 세금 징수에 관한 새로운 절목을 만들어 시행하게 한 문서이다. 그 이전에는 민씨 집안 고관인사의 소유로 되어 있었으나, 관리가 되질 않아 국가에 귀속케 하였고, 또한 그 세금을 거제 읍내 아전이 징수케 하였다. 염전세는 매년 350냥으로 새로 책정하였고, 곽전세는 염전의 둑을 쌓는 잡비로 사용하라는 절목(節目, 시행규칙)이다. 절목(節目) : 조선시대에 특정 정책이나 사업의 시행지침 또는 규칙을 나열한 것. 다대에 있었던 염전은 전통 소금인 '자염(煮鹽)'이다. 갯벌에 써레질을 하고 볏짚으로 움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철솥에 담긴 뻘이 섞여 있는 염수를 장작불로 증발시켜 추출한 것이다. 아마 다포리에 있었던 염전은 ‘자염’일 것이다. |
다대,다포 관광 | 다대유람선: http://www.dadaecruise.com/ http://www.tourpangpang.com 다대어촌체험휴양마을:http://www.dadaeri.co.kr/ (055-633-1064) 다대낚시:http://www.ddfish.kr/ 거제 맛집 일번지 : 바람의 핫도그http://baramhotdog.com/ 거제 최고봉 가라산 등반 http://geojedo.net/bbs/board.php?bo_table=tourplace&wr_id=50 다대~다포 해안테크 : 최근에 개통됨, 다대해안에서 다포해안까지 약 500m 해안길 기타 남부면 문화유적:탑포산성과절충장군묘, 기암바위, 다대산성, 가라산봉수대, 근포마을땅굴, 남부면포로수용소, 천장산레이다기지, 쌍근포진지, 남부면폭포, 숭어둘이, 쌍효문
|
주변관광지 | ~ 거제도 관광의 50%가 이곳 주변에 몰려있다.~ 해금강 : 10분 바람의 언덕,신선대 5분 여차해수욕장 10분 홍포전망대 15분 근포땅굴 10분 저구 수국 단지 5분 쌍근무지개길 30분 (차량으로) 가라산등반 1시간 (봉수대) 다대산성 30분 천장산 등반 30분 |
~ 다대,다포리 관련 사진~ 이름다운 다대항 다대~다포간 해안테크 중간에 있는 석방림 가라산 봉화대( 가라산 정상에 있다) 거제도 수국(다대,다포,저구에 집중적으로 개화하고 있다) 다대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근포 동굴
|
왼쪽의 등대는 다대등대이고, 오른쪽에 있는 등대는 다포 등대이며,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천장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