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한민국 다 족구 하라 그래 (제 8회)

[kimdeoksoo]

□ D. -96

“최 이사님 계십니까?”

사무실 문을 열고 왕인베스트의 진 대표 모습이 보였다. 로비에서 왕인베스트 대표가 찾아왔다는 통보는 받았지만 최 이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인베스트 대표가 체육회장도 아닌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예, 들어오십시오.”

짧은 인사와 함께 진 대표는 최 이사 사무실에 들어섰다. 최 이사가 소파로 안내하며 커피포트에서 뜨거운 물과 함께 차를 가져왔다.

“예, 반갑습니다. 왕인베스트의 진 대표입니다.”

진 대표가 명함을 내밀자 최 이사도 자신의 명함을 진 대표에게 건넸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스포츠베팅사업을 준비 중이시라고요.”

“예, 맞습니다. 회장님께 안부 인사차 찾아 뵈었는데 출장 중이라고 하시면서 이사님을 뵈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준비 중이신 사업은 잘 되고 있죠?”

“예, 덕분에 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WOC에 다녀오셨다면서요?”

“예, 회의 마치고 며칠 전에 돌아왔습니다. 중국체육회 총괄경리님도 만나고 왔지요.”

가벼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진 대표도 처음 만나는 최 이사를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었다. 최 이사도 언젠가는 만난 줄 알았지만 진 대표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중국에서 총괄경리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스위스에서 만난 최 이사님 찾아 뵙고 인사를 꼭 드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겸사겸사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잘 됐습니다. 저도 총괄님을 만나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예, 그러시군요. 요즘 한국이 부럽습니다. 스포츠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예, 우리 중국이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좋은 조언 부탁 드립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는 진행되고 있었다. 진 대표는 특별한 이유 없이 찾아온 듯싶었다. 최 이사도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개인적인 친분도 중요하다 싶은 두 사내는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유 없는 만남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두 사내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사님, 중국에도 꽤 많은 스포츠협회가 있습니다. 특히 구기종목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정하자면 축구죠.”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예, 그래야죠. 그런데 이사님이 족구협회 설립에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족구가 WOC에서 채택되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 그래요? 어디를 가나 족구이야기입니다. 중국체육회장님도 관심이 많으시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예, 관심이 많으십니다. 족구가 중국에서도 익숙한 종목이거든요. 필요하시다면 WOC에서 족구가 채택되도록 중국도 협조할 생각입니다. 이 이야기는 꼭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이세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으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서로가 도움이 되어야죠. 아시아는 중국과 한국이죠. 일본은 영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

진 대표의 호탕한 웃음 속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최 이사도 같이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중국의 속내를 알아 낼 수는 없었다. 스포츠 도박사업을 추진중인 기업을 동원해 한국체육회를 휘젓는 그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기업하시는 분께서 스포츠외교도 하시네요. 대단하십니다.”

“그런가요? 시키니까 하는 거죠. 제일하기도 바쁩니다.”

“허허~ 솔직하십니다.”

두 사내는 허심탄회하게 첫 대화를 나누었다. 진 대표가 돌아갔지만 최 이사는 개운하지 않았다. 체육회장이 부재중임을 알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것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의미 없이 낭비한 시간은 아니었다. 진 대표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 된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 대표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 목적은 전혀 알 수 없었다.

□ D. -95

“한국은 참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그러게요. 항상 새로운걸 좋아합니다.”

WOC 종목채택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집요하게 요구하는 족구에 대한 채택여부를 다시 한번 검토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도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전국 마을단위 족구예선전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새로운걸 시도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죠. 솔직히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위원들은 각자 생각하는 내용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브레인스토밍에 익숙해 보였다. 하지만 결정이 바뀔 것 같은 첨예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최 이사의 절박함에 형식적인 자리를 마련한 듯 보였다.

“그러게요. 지금 종목들 관리하는 것도 버거운데 새로운 종목을 추가해 달라는 건 무리죠.”

“예, 맞습니다. 하지만 몇 년째 요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제는 채택해 줄 만도 합니다만……”

“그렇지요.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약속은 지켜야죠.”

위원들은 아무런 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보이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난, 솔직히 아시아에서 구기 종목을 선도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립니다. 스포츠는 우리 서구가 지배하는 분야입니다. 아시아는 변방일 뿐입니다. 그저 돈 내고 구경만 하면 그만입니다.”

“예, 그렇죠. 그런데 아시아가 너무 앞서갑니다. 16세기부터 유럽이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그리고 영국에서 파생된 미국. 세계는 우리 손 안에 있었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시아가 고개를 드는군요. 허허~ 물론 일부 분야이지만 경계해야 합니다.”

“난 한국을 좋아하지만 너무 공격적입니다. 이름도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도 이름을 내밀려고 하는 건 정말 막아야 합니다.”

“예, 맞습니다. 아시아인은 작고 약합니다. 체격이나 체력에서 세계 스포츠 강자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 신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개인들이 일부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죠. 진정한 스포츠는 몸끼리 부딪히며 싸우는 구기종목입니다.”

“그럼요.”

위원들은 도취되어 있었다. 스포츠는 이미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있었다.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21세기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했다.

“영국은 축구의 나라입니다. 아니 유럽은 축구의 대륙이죠. 축구는 스포츠를 떠나 문화입니다.”

“문화? 그렇죠 문화이자 삶이죠. 영국이 축구를 만들지 못했다면 지금의 영국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무서운 겁니다. 신체접촉이 없는 족구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도 해볼만한 경기입니다.”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를 하던 위원들 사이에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스포츠라는 한 분야이지만 문화전반에 미치는 효과는 상상할 수 없는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국가가 과연 이런 이면까지 고려해서 접근하고 있는지 그들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용하던 회의실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웃음이 위원들 얼굴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다행이죠. 밥그릇이 무서운 겁니다. 그게 그들의 한계입니다.”

“맞습니다. 허허~”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때 긴장감이 감돌던 회의실은 다시 활기를 되찾으며 회의를 이어갔다.

[여명(정봉혁)]

잘 읽었습니다

[kimdeoksoo]

보여주시는 관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