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8,28-30; 마태 1,1-16.18-23
+ 찬미 예수님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입니다. 매일 미사 책에 설명이 나와 있듯이 이 축일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지내기 시작했고, 가톨릭은 예루살렘에 세워진 ‘마리아 성당’ 봉헌일인 9월 8일을 성모님 탄생 축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축일은 오늘로부터 아홉 달 전인 12월 8일에 기념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요, 모두가 남자 이름인데 여자는 네 분이 언급됩니다.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왜 이 네 분이 언급되는지에 대해 세 가지 학설이 있는데요, 첫째는 이분들이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라는 말씀과 연관이 있다는 것인데요, 하지만 룻은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학설은 틀렸습니다.
두 번째는 유대인이 아닌 분들의 명단이라는 주장인데요, 예수님께서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 즉 모든 세상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이방 여인들의 명단이 소개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정상적이지 않은 출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타마르는 창세기 38장에 나오는데,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신전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하여 페레츠와 제라를 낳았습니다. 라합은 여호수아기 2장에 나오는데, 창녀였습니다. 룻은 룻기의 주인공인데요, 모압 출신 이방인입니다. 모압은 에즈라-느헤미야의 개혁 시기에 일차적 척결의 대상이 될 정도로 배척된 민족이었습니다.
지금까지만 해도 충격적인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는 대목입니다. 다윗이 왜 남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을까요. 다윗은 불륜을 저질렀고 우리야를 죽게 만든 후 밧 세바를 아내로 삼지만, 성경은 여전히 그를 ‘우리야의 아내’라 부릅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에 굳이 이 여성들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 다윗 혈통인 요셉을 양부로 해서 태어나시는 데, 이 일들도 소용이 되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들까지 벌어졌는데, 이런 인간의 나약함과 죄악 안에서도 하느님은 당신의 섭리를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여성의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그렇기에 여성들의 명단은 이방 여인들의 이름이 아니라, 정상적이지 않은 출생과 관련 있는 분들이라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결국, 인간들이 역사를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역사의 주도권은 하느님께서 쥐고 계시며,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역사를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족보를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은 필요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고 그 일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해 나가고 계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종 족보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아직 모른다 하더라도 하느님 안에서 결코 헛된 순간은 없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계속해 오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족보는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가 로마서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그러나 우리의 눈이 아직 가려져 있고 우리의 믿음이 약하기에 우리는 성모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