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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을 기억하라
(신 25:17-19)
우리말 성경은 ‘너희가’라는 단어로 본문을 시작하고 있지만, 영어성경은 본문을
‘기억하라’는 선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는 잊지 말찌니라’라는 말씀으
로 종결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평안을 누
리고 살지라도 아말렉 족속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결코 잊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아말렉이 행한 일은 잊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
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삼상15:2).
유대인들이 율법을 해석해 놓은 두 가지 책이 탈무드와 미드라쉬입니다. 미드라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포도를 수확할 때
가 되면 꼭 이웃이 와서 도적질을 해가곤 했습니다. 보다 못한 포도원 주인이 개 한
마리를 사서 포도원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웃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고 여느 때처럼 포
도원에서 와서 포도를 훔치다가 그만 개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일 년의 시
간이 지나서 다시 포도를 수확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웃사람이 다시 포도를 훔치러
올 것을 걱정한 포도원 주인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포도원 앞에 경고 팻말 하나를 세워
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팻말에다가 ‘내 포도를 훔치지 마시오’라고 기록하면 이웃
을 도적으로 모는 셈이 되어 곤란하므로 고민한 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지
난해에 우리 개가 어떻게 행했는지 기억하시오.’ 그랬더니 그 이웃이 다시는 포도를
훔치러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거듭 말씀하십니다. “아말렉이 광야에서 너희에게 어떻
게 행하였는지를 기억하라.” 기억에는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기억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아말렉은 누구인가
아말렉은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창36:12)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아말렉이 에서의 손
자이므로,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손이 됩니다.
에서는 야곱의 쌍둥이 형으로 태어나서 사냥을 좋아하고 활달하여 아버지 이삭의 사랑
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자권, 즉 영적인 권리를 소홀히 여겼습니
다. 그는 육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아넘긴 것입
니다. 그 결과 장자가 받는 축복도 야곱에게 모두 빼앗겼고 축복을 모두 빼앗긴 에서
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자기가 저지른 죄의 책임
을 남에게 돌리려고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에서입니다.
창세기 33장을 보면 야곱과 에서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화해를 하기는 했지만, 에서
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야곱을 향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분노가 손자인 아말렉에게까지 이어져서 아말렉 족속의 마음속에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가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속은 친척이지만 공존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신다고 설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모든 사
람을 사랑하시지만 단지 사람이 안 믿어서 구원받지 못한다는 알미니안주의 설교입니
다. 이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저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아말렉도
사랑하셨을까? 하나님께서 과연 아말렉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까?’ 왜냐하면 하
나님께서는 아말렉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칭찬도 남기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말렉을 향한 단 한 마디 구원의 약속도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
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출17:14),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
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출17:16)고 기록되었습니다.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삼상15:3)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에서도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1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런 구절들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은 아말렉을 결코 사랑하지 아니하셨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동일하게 사랑하시지는 않으셨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아말렉의 사악함
왜 하나님은 아말렉을 그처럼 미워하셨을까요?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대적했기 때문일
까요? 아닙니다. 모압과 암몬, 블레셋과 아람도 이스라엘을 대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들을 향해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함께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독 아말렉을
향해서는 ‘진멸’, ‘도말’ 같은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까지 그들을 심판하고
자 하셨습니다. 사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잘 될 수 있는 나라였
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뿌리 깊은 사악함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공
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째, 아말렉은 사상적으로 사악합니다.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18절).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의 존
재를 인정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실제적인
무신론(無神論)자들이었습니다. 실제적인 무신론자란 설령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그 분
은 세상과 동떨어진 분이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악
을 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
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성경은 이런 실제적인 무신론자들을 향해 어리석은 자라고 평가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족장 시대의 신에 관한 이방 세계의 지배적인 사상은 신
은 종류도 많고 숫자도 많다는 다신론(多神論)이었습니다. 한국의 사상도 다신론입니
다. 무속신앙에는 삼신할머니, 성황당 신, 귀신, 악신 등 온갖 신들이 존재하고 있습
니다. 이처럼 이방세계의 사상은 대부분이 다신론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이 다신론에 대항해서 유일신론(唯一神論)을 주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한 분
이시며 다른 영적인 존재들은 존재할지라도 신이 아니라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아말렉
의 사상은 무신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니체와 같은 사상가나 사신(死神) 신학
자들은 아말렉의 영적 후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신론자들보다 더 악합
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말렉은 윤리적으로 사악합니다. 하나님이 전혀 두렵지 않기 때문에 담대하게
악을 행합니다. 아마도 아말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셔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출애굽할 때는 홍해를 갈라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키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반석에서 나는 생수를 먹여주셨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은 함부로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처음 침공한 나라가 아말렉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
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들은 이스
라엘 앞에 나타나서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약점을 틈타 공격하
였습니다. 본문 18절 중반부터 보면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고 기록되었
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노약자들, 연약한 사람들을 뒤에서 비겁하게 공격한 족속이 아
말렉입니다. 이처럼 아말렉은 윤리적으로도 매우 사악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말렉은 영적으로 사악했습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방해했습니다. 아말렉은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살고 있던 족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약 애굽에서 계속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아말렉을 만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아말렉이 그 중간에
서 이스라엘을 방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도 기록되어야 하
고, 메시야도 그 백성들 가운데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에 들어가야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아말렉이 그 가운데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상적, 윤리적 사악함보다도
더 사악한 행동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즉각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무신론자나 다신론자가 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그 선택에 대한 결과로 영원한 지옥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복음
운동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공격하는 행동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복음운동을
해치고 방해하는 것은 사악함의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성품과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는 것처럼 보일만큼 혹독하게
아말렉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말렉은 사상적으로, 윤리적
으로 사악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영적으로 사악해서 복음운동을 방해했기 때문입
니다.
3. 아말렉의 공격대상
사실 아말렉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발람은 아말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민
24:20).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않고 복음운동을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비록
그 마음에 사악함과 분노가 있다고 할지라도 열국 중에 으뜸가는 나라가 됐을 것입니
다. 그러나 복음운동을 방해했기 때문에 멸망이라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
말렉은 사울 왕에게 혼나고, 다윗 왕에게 박살이 났으며, 역대상 4장 43절에 기록된
것처럼 히스기야 왕 때에 시므온 자손들에게 세일산에서 도말 당했습니다.
사람이 악할 수도 있고 믿음을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운동을 방해해서
는 안 됩니다.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어떤 교수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
이 다니는 교회에 한 여자 성도님이 있었는데, 이 성도님의 남편은 기독교를 몹시 핍
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를 볼 때마다 때리고 핍박하다가, 어느 날에는 성경을 전
부 찢어서 화장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만 일주일 뒤에 갑자기 병
이 들어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간혹 이처럼 신앙생활을 잘 하는 아내를 구박하고 때리는 남편들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부인이 교회에 와서 남편 잘 되라고 기도하는데 그런 아내를 때리면 어떡
하겠습니까? 그런 행동들이 복음운동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악하더라도 하나님
께서 즉시 심판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복음운동을 방해하는 것은 아말렉이 행한
영적인 사악함처럼 악한 행동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멸망당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공격했는데, 그 공격대상은 세 가지
였습니다.
첫째로 뒤에 처진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약해서 떨어진 사람, 게을러 처진 사람, 피곤
해서 뒤떨어진 사람들을 골라서 뒤에서 공격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악한 영들
은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 기도하지 않는 사람, 성도의 정상적인 교제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서 공격합니다.
여러분들은 뒤로 물러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히10:39). 우리의 신앙은 물러나면 안 됩니다. 기도로, 충성으로, 예배로
한 발 더 나가야지 뒤로 물러나면 아말렉의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
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아말렉을 물리치고 신앙에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둘째로 아말렉은 가정을 공격합니다. 사무엘상 30장에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블레
셋으로 피신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블레셋 왕은 다윗과 그의 추종자 600명에게 시글락
이라는 동네를 주어 살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블레셋 왕이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할 때 다윗을 불러 “네가 이스라엘에서 쫓겨 왔으니 네 고국에 대항하여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속으로는 싫었지만 할 수 없이 600명을 이끌고 고국 이스라엘과 싸우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왕의 신하들 중 한 사람이 다윗은 본래 이스라엘
사람이므로 전쟁 중에 자신들을 배반하면 곤란하니까 돌려보내자고 제안합니다. 그래
서 다윗은 600명의 군대와 함께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시글락에 돌아와보니 아말렉 족속들이 쳐들어와서 집을 모두 불사르고 여자들
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아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신하 600명은 그 자리에서
기력이 없도록 울고 다윗을 원망하며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곤란한 상황
에 이른 다윗은 하나님께 아말렉을 칠 것을 묻고,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
으리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응답대로 다윗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아말
렉으로 가서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빼앗겼던 양 떼와 소 떼를 찾아 귀환할 수 있었
습니다.
이처럼 아말렉은 성도들이 바쁜 틈을 타서 성도의 가정을 공격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자녀들이 세속사상과 세속문화에 젖어서 하나님을 멀리 하다가 급기야는 돌이
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바쁠지라도 우리
가족들의 영혼을 사랑으로 잘 돌봐야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고
백하고 자녀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가 직장에서 집에 돌아오니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들이 문에 얼굴을 파묻
고 울고 있었습니다. 왜 울고 있는지 묻자 그 아이는 “아빠. 이건 남자끼리 이야기인
데 나는 도무지 아빠 와이프하고는 잘 지낼 수가 없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를 살
살 달래 집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자신의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그래도 자녀들을 원할까?”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죠. 그러나 저 아이하고는 조금 다른 아이가 나왔으면 좋겠군요.”
가정을 소홀히 하면 아말렉의 공격을 받습니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가정 문제 전
문가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혼 위기에 있는 사람
들을 상담해서 가정 파탄을 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다 보니, 너무 바빠서 정작
자신의 가정은 돌보지 않아 이혼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직장과 교회도 중
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정이 중요합니다. 늘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들을 나누시기 바
랍니다.
셋째로 아말렉은 지역교회를 공격합니다. 에스더서에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시대에
한 아말렉의 후손이 바사에 살고 있던 유대인 전체를 몰살시키려고 시도한 장면이 나
옵니다.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은 왕궁의 문지기인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신을 경배하
지 않는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었습니다. 하만의 분노가 얼마나 깊었던지 모르드개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바사에 있는 유대인들을 모두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역전이 되어 하만과 그 열 아들과 유대인을 대적하려 한
75,000명이 도리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바사에 사는 유대인들은 오늘날 지역교회의 모형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아말렉의 공
격으로부터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성도들은 어떤 일에 대해 각각 의견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침례교회는 민주주의의 회중정체를 따르기 때문에 민주주의 원칙
에 의해 통과된 의견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따라야 합니
다. 그러나 의견이 다르다거나 내 의견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해서 복음운동을 방해하
고 교회를 해친다면 그는 아말렉입니다. 하나님은 아말렉에게 단 한 치의 긍휼과 자비
도 베풀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 론
우리는 어떻게 아말렉을 이길 수 있을까요?
먼저 기도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이스라
엘이 전쟁하고 있었을 때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산에 올라가 두 손을 높이 들어 기도
했습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 손을 받쳐 들고 기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기도를 힘입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말렉이 사상과 가정
과 교회를 공격하면 기도를 통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싸우라고 하실 때는 싸우고, 중지하라
고 하실 때는 중지해야 합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
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 두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수아
와 갈렙은 믿음으로 승리의 가능성을 보고했지만, 열 명의 다른 정탐꾼들이 불신앙적
인 보고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을 좇아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게 될 것이
라는 심판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후회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인
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민14:43)는 모세의 만류
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다가 결국 아말렉에게 패하게 맙니다. 불순종하
면 아말렉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말렉에 맞서 싸워야 이깁니다. 우리는 무신론, 윤리적인 부패, 복음운동
의 방해자들과 싸워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고 약자를 노략하며 사회를 파괴
하려는 아말렉과는 싸워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를 무장할 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평
안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비겁과 비열은 아말렉의 것이요, 용기는 성도들의
것입니다.
영적인 아말렉은 지금도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공격합니다. 여러분은 기도와 순종
과 말씀을 통해 날마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피영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