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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이야기(My Life Story)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1959년 4월 19일 오후
*소 개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교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요한 계시록6장에 예언된 일곱 인봉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 시대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위해 요한계시록10장7절에
예언된 일곱 번째 천사(사자)를 통해서 계시하여준 비밀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은혜로우신 우리 아버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구세주이신 주님께 다가갈 수 있음은 정말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을 들을 때에, 우리의 마음은 주님이 위대하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오늘 오후 우리가 말할 때에, 주님의 위대하심이 새롭게 표명되기를
간구합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려는 것도 오랜만에 처음으로 해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제게 힘을 주시고 제게 필요한 것을 주시옵소서. 과거에 제가 행한 모든 실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디딤돌이 되게 하시고, 주님, 그들을 주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들어 주소서. 죄인들이 시간의 모래 위에 새겨진 그 발자국들을 보게 하시고,
주님께로 인도되게 하여 주소서. 이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앉으십시오.)
[글로버 형제가, "시작하시기 전에 이 손수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한다.] 그러죠?
["저것들과 이것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해 동안 알고 지내온 이 성도님,
글로버 형제님은, 어젯밤 저는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제게 말하길, 그는 잠시 동안 목회를
떠나 쉬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일흔 다섯의 나이에, 주님을 섬기려고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저의
피로는 싹 가셔 버렸습니다. 저는 피곤하다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안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에 손수건들과 편지
봉투들의 형태로, 놓아 두셨습니다. 봉투 안에 들어 있기도 하고 이미 빼낸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 라디오로 듣고 계시거나, 여기에 계시는 분들, 이 손수건을 원하는 분이 계시면... 엔젤레스 템플은 계속해서
그것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여러분 여기 엔젤레스 템플로 편지를 하시면,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왜냐하면 저는 그게 성경에 나오는 것임을 확인시켜드릴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제가 그것들 위에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면,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여러분 제게
사서함 3-2-5, 325, 제퍼슨빌, 철자는 Jeffersonvi, 그리고 l 두 개에다, e이고, 인디애나주로 편지를 보내십시오.
아니면, 그냥 "제퍼슨빌"이라고만 쓰십시오. 인구 삼만 오천 명 가량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도시입니다.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절 압니다. 우리는 기꺼이 손수건 위에 기도드리고 여러분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일은 큰 성공을 이뤘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것과 함께 조그마한 양식이 든 편지를 받게 되실 겁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매일 아침 9시, 정오, 그리고 세 시에 기도를 한다는 것을 알리는 편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전 세계에서, 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몇 시에 일어나야 할건지. 그래서 수십 만 명의,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이 사역을 위해서, 여러분의 병을 위해서, 똑같은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물리치시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제가 말씀 드린대로, 우리는 어떤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지 않고, 단 한 푼의 돈을 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만일 우리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게 우리의 온전한 목적입니다. 다 같이... 누군가 손수건 한 뭉치를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이 보내고 싶은 손수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편지만 쓰십시오. 지금 당장 필요가 없으시다면,
그것을 성경 안에, 사도행전19장에다 보관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보낼 것은 흰 조그만 리본의 형태일 것이고,
먼저 여러분이 어떻게 죄들을 고백해야 하는지 지시해 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죄를 고백하는지.
먼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절대로 어떤 것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죠?
그런 다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을 부르고, 여러분의 목사님을 불러야 한다고 돼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누군가에 대하여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우선 가서 그것을 올바르게 하고 돌아오십시오.
그 다음에 기도하십시오, 가정에서 기도 모임을 여시고, 여러분의 속옷에 이 손수건을 꽂아 두시고, 그리고나서,
하나님을 믿으시고. 매일, 세 시간마다, 전 세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전 지구를 감는 사슬입니다.
자, 이제 그것은 완전히 공짜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냥 보내십시오. 자, 우리는 여러분에게 답장을 써서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지 재촉하지 아니 말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프로그램에 지원하시기를
원하지만, 여러분이 지원할 프로그램이 우리에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여러분은...
이건 여러분의 주소를 얻어내려는 게 아니고, 주님의 일과 사역을 지속시켜 나가려는 것일 뿐입니다.
자 다 같이 머리를 숙입시다. 여러분이 라디오로 듣고 계시다면, 기도할 동안, 거기 놓여 있는 여러분의 손수건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께 이 조그마한 꾸러미를 가지고 옵니다, 어떤 것들은 아기를 위한
조끼인 것 같고, 어떤 것은 속옷, 어쩌면 애들 양말짝이나 그런 것 일 테고, 아프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 갈
손수건일 겁니다. 주님, 이 일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당신의 종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들이나 앞치마를 가져갔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영이 그 사람 위에 임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었기 때문에, 부정한 영들이 사람들에게서 나갔고, 고통과 질병들이 그들을 떠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울 성도가 아님을 알지만, 주님, 주님은 여전히 예수이심을 압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들의 믿음을
존중해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한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중에) 곤경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바다가 있고, 양옆엔 산들이 있고, 파라오의 군대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난 눈으로, 그 불기둥을 통해 내려다보시자, 바다가 놀라서 뒷걸음질치고,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이 건너갈 길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오, 주님, 이 꾸러미들이 주님의 살아 계신 말씀을 기념하며 아픈 몸들 위에 놓여 질 때에, 다시 한 번 내려다
보시옵소서. 질병이 놀라게 하시고, 이 속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아들 예수의 피를 통해 보시옵소서.
원수가 놀라서 달아나게 하시고, 이 사람들이 약속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건강하며
번성하는 것"이 주님의 소원이라는 약속. 아버지, 들어 주소서, 우리 마음속에 그런 태도를 가지고 손수건을
보냅니다. 그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보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글로버 형제님. 감사합니다.
오늘밤은 부흥회 마지막 밤입니다, 저는 이게 방송될지 안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 될지) 라디오 청중들에게
이 부흥회는 제가 여러 해 동안 가진 집회 중 가장 훌륭한 집회였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가져
보지 못했던 건실하고, 든든하고, 사랑이 넘치며, 협력이 잘 된 집회였습니다.
[한 형제가, "네 시 십오 분까지 방송으로 나가는 겁니다, 형제님. 남부 캘리포니아 전역과 근처 섬들과 선박에서
다들 형제님의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그들이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니까? 형제님은 지금 굉장히 많은
청중들, 수십만 명의 청중에게 말씀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니 좋습니다.
그렇다니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언제나 제 마음 한 구석에는 엔젤레스 템플을 향해 애틋한 마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순복음을 들고 서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제겐 아주 친밀하게 여겨집니다.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훌륭한 영을 보고 난 뒤에, 저는 제가 전보다 더욱 여러분 곁으로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 기도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청중이 손뼉을 친다.] 친절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자, 오늘 전 여러분에게 잠깐 “나의 삶 이야기(My Life Story)”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건 하기 힘든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안 하다가 처음 해보는 겁니다. 자세하게 말씀드릴 시간은 없고 일부만
말씀드릴 겁니다. 그동안, 저는 많은 실수를 했고, 잘못된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바라기로는, 라디오로 듣고
계시는 분들과 여기계신 분들이 제 실수들을 거침돌로가 아니라, 여러분을 주 예수께 더욱 가까이 이끌 디딤돌로
삼아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에, 오늘밤에는, 병고침 예배를 위해서 오늘밤엔 기도카드를 나눠드릴 예정입니다.
자, 우리가 병고침 예배다 하면, 그건 우리가 누군가를 고치겠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니까요. 하나님은 계속해서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제게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며칠 전 여기에서, 저는 어느 유명한 부흥전도사의 매니저에게 말했습니다. 그 부흥사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흥사는 제 집회의 매니저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이 부흥전도사는 하나님의 병고치심을 믿고 있죠? 하지만 그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여러 교회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드리는 예배를 망치게 될 겁니다. 많은 교회들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병고치심을 믿지 않으니까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부흥전도사가 자기 자리를, 자기의 직분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그는 어쩌면 할 수...저는 결코 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도 마찬가지로 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함께 연합되어 있습니다. 다른 은사들을, 하지만 동일한 성령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말의 의미는, 다른 표명들이지만 동일한 성령을 가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자, 오늘 밤 예배 시작은...콘서트가 여섯 시 삼십 분에 시작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라디오로 듣고 계시다면, 그 때 이것을 들어보십시오. 항상 그렇듯이, 아주 멋질 겁니다.
다음에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예배가 끝나자마자 기도 카드를 나눠드릴 겁니다, 이 예배 마치자마자, 여러분이
여기 계시고 기도카드를 받길 원하신다면. 저는 몇 분전에 저 안에서 들었습니다, 제 아들이나 머써 씨나 고우드
씨가 기도 카드를 나눠드릴 거랍니다.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십시오. 이 예배가 끝나자마자,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시면, 청년들이 서로 나눠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기도 카드를 나눠드릴 겁니다. 발코니에서든, 아래층에서든,
여러분이 아래층에 계시든, 어디든지 간에,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시면 청년들이 여러분이 여기에 기도카드를
받고 싶어 하심을 알 겁니다. 그래서 오늘밤에는 아픈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제 생각을 바꾸시지 않으신다면, 전 오늘밤에, 주께서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시면,
우리가 만족하겠나이다.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싶습니다.
오늘 전 본문으로, 히브리서13장에서 찾은 말씀으로 나의 삶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12절부터 읽어볼까요.
12.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친히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13.그런즉 우리가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
14.여기에서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고 우리가 다가오는 도시를 찾나니.
자 그게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그게 삶의 이야기이든, 아니면 인간에게 속한 뭐든지 간에, 우리는
그 이야기를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특히 한 사람의 과거를요, 만일 그게 제 과거처럼 어둡기 짝이 없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만일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축복하실
겁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한 것은 이렇습니다.
14.여기에서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고 우리가 다가오는 도시를 찾고 있노라.
자, 여러분이 로스엔젤레스를 아주 좋아하심을 전 압니다. 여러분은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매연과 그런 것도 있지만, 아름다운 도시이고, 온화한 기후입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계속될 수 없습니다, 끝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위대한 황제들이 살던) 로마에 갔었고,
그들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하면서 건축했던 도시들을 가 봤는데, 그 잔해를 캐내기 위해서 6미터나 파야했습니다.
또 파라오가 거대한 왕국을 가졌던 곳에도 가봤는데, 파라오들이 통치하던 곳을 발견하려고 땅을 파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도시와 우리 집에 대해 생각하길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건 계속되지 않을 것을 명심하십시오.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커다란 단풍나무에 가곤 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는 단단한 나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 단풍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단단한 단풍" "연한 단풍"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엄청 커다란 나무는 가장 멋진 나무였습니다. 제가들에서 짚을 묶고 추수하느라 들에서 일하다 들어올 때는,
저는 이 커다란 나무에 가서는, 그 아래에 앉아서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큼직하고 굵직한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몸통도 보고. 저는, "이 나무는 틀림없이 수백 년이라도 이 자리에 있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그 고목을 보았는데, 밑동밖에 남아 있지 않더군요.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계속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종말이 있어야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것은 불멸의 것에 굴복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속도로를 아무리 멋지게 닦아 놓고, 우리의 건물을 아무리 잘 세워놓는다고 해도, 그것은 다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계속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계속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살았던 옛 집을 전 기억합니다, 낡은 통나무집이었는데, 진흙을 틈새에 바른 집이었죠. 아마 진흙을 이겨
틈새마다 발라놓은 집을 본 분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집은 진흙을 사방으로 발라놓은 집이었고,
그 옛 집 안에는 커다란 통나무들이 가로질러 있었는데, 그때 전 그 집이 수백 년은 갈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오늘 그 집이 서 있는 곳은 택지 개발 구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이 달라졌습니다.
모든 게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제 아버지를 보면, 아버지는 좀 키가 작고, 뚱뚱한 분으로, 힘이 아주
장사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힘이 센 분이셨습니다. 저는 쿠츠 씨를 만났는데, 그 분은 벌목업자로,
나무 베는 일을 했던 분입니다, 한 일 년 전입니다. 쿠츠 씨는 저와도 절친한 사이인데, 제일 침례교회에서
집사로 계시던 분이었는데, 제게, "빌리, 너는 정말로 힘센 사람이 될 거다." 하셨습니다.
"아뇨, 전 그렇지 않아요, 쿠츠 씨."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만일 아빠를 닮았다면, 넌 힘이 셀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63키로 밖에 안 나가는 양반이 400킬로그램 나가는 통나무를 혼자서 차에다 올려 싣는 것을 본
적이 있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요령을 알고 계셨던 거죠? 아버지는 힘이 장사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식사하라고 부르시면 아버지가 씻고 저녁을 먹으려고 집으로 들어오시던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앞마당에는 오래된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리고 뒷마당 쪽을 가는 길에는 작은 사과나무가
세 네그루 더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있는 나무에는 낡은 거울이, 깨진 거울이, 커다란 게 있었습니다.
못을 몇 개박아 구부려서 나무 옆에 박아놓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목수 일 하는 분이 듣고 계시다면,
"옷걸이"라고 부르시죠. 못을 구부려 거울이 빠지지 않게 고정시켜두었던 거죠. 그리고 낡은 양철 빗도 하나
있었습니다. 양철 빗 보신 분 계세요, 옛날에 쓰던 양철 빗? 그게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조그마한 벤치가 있었는데, 비스듬한 다리가 받치고 있는 조그마한 나무판자가, 그 나무에 바짝
붙여 못 박혀 있는 벤치였습니다. 물은 펌프질해서 썼는데, 조그만 낡은 썰퍼 펌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고목
옆에서 씻었습니다. 엄마가 그 곡식부대를 수건으로 만들어 사용하셨습니다. 부대자루로 만든 수건을 써 보신
분 계십니까? 음, 저는 이제 정말로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크고, 옛날에 쓰던 거친 수건들을
생각하면! 엄마가 어린 우리들을 씻겨주실 때는...얼마나 아픈지 등 껍데기가 벗겨질 정도로 밀곤 하셨습니다.
전 그때 그 곡식부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그 올을 몇 가닥 당겨 멋을 내느라 술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짚을 넣은 매트리스 위에서 자 본 경험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세상에, 놀랍군요! 옥수수 껍질을 넣은 베개가 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글로버 형제님, 정말이지 전 고향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짚 매트리스에서 내려온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자면 시원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겨울철이 되면 그 낡을 대로 낡은 깃털이 들어간 요를 그 위에다 놓고, 아시죠?
그리고는 누워있는 우리 위에다 홑청을 다 덮어 씌워야만 했는데, 집의 틈새사이로 눈발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시죠, 낡은 판자 지붕 널이 들려서, 눈이 그 새로 불어 닥치곤 했었습니다. 오, 저는 그 시절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아버지는 면도솔이 있었습니다. 저는...이제 이것은 모르실 겁니다.
그건 옥수수 껍질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옥수수 껍질로 면도솔을. 아버지는 엄마가 잿물로 만든 비누를 가지고
이 옥수수 껍질 면도솔로 얼굴에 거품을 칠한 다음에, 크고 날이 시퍼런 면도날로 면도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일요일 날은 종이를 목 주위에 꼽고는, 그 때는 천이 얇은 칼라를 달고 있었으므로, 비누거품이 그 셔츠 칼라에
스미지 않게 하느라 목 둘레로 이렇게 대곤 했습니다. 그런 거 본 적 있으십니까? 세상에, 이럴 수가!
제가 기억하기로는 저 아래에 샘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들은 거기 가서 물을 마시곤 했습니다, 낡은 바가지로
물을 퍼 마셨습니다. 몇 분이나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럼, 도대체 켄터키 출신이신 분
손 좀 들어 보시겠습니까? 네, 여기 이 켄터키 주 사람들을 보십시오. 세상에, 저는 정말로...여기 계시는 분들이
오클라호마 주 사람들, 아컨쏘 주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켄터키 주 사람들도 이사를 오셨나 봅니다.
어, 몇 달 전 켄터키 주에서 유전을 발견했다고 하던데, 아마 그들 가운데 몇 분이 이리로 이사를 오셨나 보군요.
또 아버지가 퇴근하셔서 저녁을 드시기 전에 씻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그 짧지만
뭉뚝한 팔들. 아버지가 팔을 올리며 씻고, 물을 얼굴에 끼얹으실 때면, 그 작은 팔이 근육으로 단단해진 것을
보곤 했습니다. 저는, "야, 아버지는 백 오십 살까지는 사실 거야."하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죠. 아버지는 아주
튼튼하셨습니다! 하지만 쉰 두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시겠죠?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계속 있지 못합니다. 자 우리 모두 잠깐 여행을 떠나 봅시다. 저처럼, 여기 있는 분들 다 삶의
이야기를 갖고 계십니다. 때로는 기억의 숲길을 산책해 보는 것도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옛날로 돌아가, 다 같이 잠깐 어린 아이 때 겪었던 비슷한 경험들로 돌아가 봅시다.
이제 생의 이야기 첫 부분입니다. 그게 책으로 나와 있고 여러분들 중 많은 분이 그 책을 가지고 계시니까?
저는 그 부분을 살짝 건드리기만 하겠습니다. 저는 켄터키주 산골 마을에서, 산속에 있는 조그마한 오두막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한 방에서 다 같이 살았습니다, 바닥에 러그(깔개)도 없고, 마루바닥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흙바닥일 뿐이었습니다. 다리가 셋 있는 나무 윗부분을 잘라서 뒤집어 식탁으로 만든 게 하나 있었습니다.
어린 브래넘 꼬마들은 그 주변에 둘러서 있었고, 좁은 오두막 밖에서는, 흙에서 뒹굴며 놀았습니다, 마치 주머니
쥐들이 흙에서 뒹굴고 있는 것처럼, 우리 형제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아홉 형제였는데, 그 중에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애는 남자애들 틈에서 정말로 힘들게 보냈습니다. 우리가 그 당시에 했던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 애에게 잘 대해줘야 합니다. 그녀는 어디든 우리와 함께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애를 쫓아버렸기
때문이죠, 그 애는 여자 애니까. 그래서 그 애는 아시다시피, 그걸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다...
식탁 뒤에는 의자가 두 개 밖에 없었던 게 생각납니다, 그 의자는 나무 가지 껍질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히코리
묘목들을 엮어서, 그 앉는 바닥은 히코리나무 껍질로 엮어 만들었습니다. 히코리 껍질 의자를 보신 분 계십니까?
네. 아직도 엄마가 내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오, 나중에 엄마가 나무마루 깐 바닥으로 이사 갔을 때,
아기들을 무릎 위에 안고, 그 낡은 흔들의자를 바닥 위에서 쿵 쿵, 소리를 내며 흔드셨습니다.
엄마가 빨래를 하시거나 일을 하시면, 제가 어린 동생들이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던 게 기억납니다,
엄마는 의자 하나를 놓고, 그것을 문을 가로질러서 구석을 만들어서, 엄마가 물을 길으러 샘에 가야할 때나
그럴 때, 어린 동생들이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엄마는 제가 태어났을 때, 열다섯 살이었고, 아버지는
열여덟이었습니다. 저는 아홉 중에 첫째였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제게 말씀해 주셨는데...
자, 우리는 아주 가난했고, 제일 가난한 축에 속했습니다. 이 오두막에는 창문도 하나 없었습니다. 조그마한 나무
문이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창문 대신에 열었던 조그마한 문을
낮에는 열어두고 밤에는 닫곤 했습니다. 그 당시엔 전깃불을 켠다거나 등유 등을 켜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기름 등"이라는 걸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 저는 여러분이 기름 등이 뭔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음, 그게 뭐...여러분 소나무 옹이를 사...태워보신 적 있습니까? 소나무 옹이를 가져다가 불을 부치고 뚜껑 같은
데에다 두면, 탑니다. 그게...연기를 내 그 으름을 내는데, 부모님은 가구랄 만한 게 없어서 그 으름이고 말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오두막은 온통 그을렸습니다. 천정에는 검게 그을린 부분이 아주 많아서 그림을 그리듯이
많이 그을렸습니다. 그래서...저는 1909년 4월 6일에 태어났습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지금 전 오십 살이 조금
넘은 나이입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난 날 아침에, 엄마는 그들이 창문을 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때는 의사도 부르지 못했고, 산파가 있었습니다. 단지...그리고 그 산파는 제 할머니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을 때, 엄마는 아기가 보고 싶으셨습니다. 엄마도 역시 어린애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이 그 조그만 창문을 열었을 때, 날이 새고 있을 무렵 다섯 시 쯤이었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울새 한 마리가 나무 숲 근처에 앉아 있었답니다. 여러분도 다 “나의 삶 이야기 책”에서 그것의 그림을
보셨을 것입니다. 울새 한 마리가 거기에 앉아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답니다.
전 언제나 울새를 좋아했습니다. 자, 라디오로 듣고 있는 소년들, 절대로 제 새를 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그 새들은--그 새들은 제 새들입니다. 여러분 울새의 전설에 대해서, 어떻게 해서 가슴이 붉은 색이
되었는지 들어보셨습니까? 잠시만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어떻게 해서 가슴이 붉은 색이 되었는지...만왕의 왕께서
어느 날 십자가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을 겪고 계셨는데 아무도 그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못을 빼고 싶어 하는 작은 갈색 새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계속 십자가에 가까이 날아가서 그 못을 끌어당겼습니다. 그 새는 너무나 작은 새여서 그 못을 뽑지 못했고
가슴이 피에 젖어 완전히 빨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이후로 그의 가슴은 붉은 색이 되었습니다.
소년들, 그 새를 쏘지 마세요. 가만 놔두세요.
울새는 창문 옆에 앉아서, 울새가 노래하듯 지저귀고 있었답니다. 아버지는 그 창문을 밀었다고 합니다.
그 조그만 창문 달린 문을 밀자, 사진에서 보시는 그 빛이 창문 안으로 소용돌이를 치며 들어와서는 침대 위에
머물러 있더라고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영문을 몰라 아무 말도 못하셨다고 합니다.
1번. 브래넘 형제님 머리 위에 사진으로 찍힌 불기둥.
자, 우리는 종교적인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제 친척들은 카톨릭교인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다 아일랜드계입니다.
아버지는 완전히 아일랜드인 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의 성은 하아비 였습니다; 오로지, 엄마의 아버지는 체로키
인디언과 결혼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게 아일랜드계의 혈통을 끊어놓은 겁니다. 부모님은 교회엘 다니지 않으셨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종교를 전혀 가지지 않았습니다. 거기 산 속에는 천주교 교회도 없었습니다.
초기 정착민 틈에 끼어 그 두 분이 와서, 거기서 브래넘 가의 세대가 형성된 겁니다; 가족의 족보는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 창문을 열고 이 빛이 거기에 머물러 있었을 때, 그들은 영문을 몰랐습니다.
아빠는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가슴 앞이 달린 작업복 바지를 새로 사셨다고 엄마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에 나무꾼과 벌목업자들이 입었었던, 그 낡은 작업복의 가슴 받이 안에 팔을 집어넣고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일은 그들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습니다. 음, 제가 태어난 지 십 일짼가 얼마 됐을 때,
부모님은 절 "주머니쥐 왕국" 이라 불리는 조그마한 침례교회에 데려가셨답니다, 주머니쥐 왕국 침례교회. 이름이
참 재미있죠? 어떤 나이 지긋한 순회 설교자가, 옛날 식 침례교 설교자가 거기에 격월로 들리곤 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같이 예배 시간을 갖고, 가서 찬송도 몇 곡 부르곤 했죠, 그러나 그들은 순회 전도자가 올 때만
설교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매년 호박 한 자루와 그들이 재배한 것들을 약간 주는 것으로 사례를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든 설교자가 들렸고, 거기서 그는 갓난애인 저를 위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게 제가 교회에 처음 가 본 때였습니다. 두 살이 좀 넘었을까?...그 때쯤에 처음으로 환상이 일어났습니다.
어, "이 빛이 들어왔다."고 산골에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집 안에 있는 거울에 햇빛이 반사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에는 거울이란 게
없었습니다. 해는 아직 뜨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일렀습니다, 아침 다섯 시였으니까?
그때, 오, 그들은 그냥 그 일을 넘겨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세 살 가량 되었을 때...저는 솔직해야만 합니다.
전 여기서 얘기하고 싶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냥 지나가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분의 가족에 대한 것이라면 여러분은 진실을 말해야만 합니다.
그 일을 솔직하게 말하면, 말할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는 종교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술을 입에 달고 사는 전형적인 산골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 싸움판에 크게
연루되었습니다, 그들이 산에서 파티 같은 것을 열다가 몸싸움을 하며, 총을 쏘며, 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동안 두세 명인가가 목숨이 위태하게 되었답니다. 아버지는 이 싸움에서 두목 축에 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가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의자를 가지고 누군가를 내리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칼을
꺼내 바닥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친구를 칼로 심장을 찌르려고 했고, 아버지는 그걸 보고 가만있지 못했답니다.
그 싸움은 격렬했나 봅니다, 그들이 보안관을 보내 아버지에게 벅스빌까지 수 마일을 말을 타고 달려온 걸 보면.
그래서 그 남자는 생명이 위태한 상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를 아는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겠습니다, 윌 야버러였습니다. 그들은 어쩌면...그의 아들 중 몇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깡패였습니다, 아주 힘이 세고, 담을 두르는 레일(rail)로 아들까지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어쨌든 그 사람은 아주 힘이 세고 흉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아버지 둘이 칼을 들고 난투를 벌인 겁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을 거의 죽여놓은 상태였으므로,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고 켄터키 주를 떠나 강 건너 인디애나 주에 가게 된 겁니다.
그 당시, 아버지의 형제 한 사람이 켄터키 주 루이빌에 살고 있었는데, 루이빌에 있는, 켄터키 우드 모자익
제재소의 부감독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의 형을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형제 중, 열일곱 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형을 찾으러 갔습니다, 아버지가 근 일 년 간 안 계시는 동안에. 아버지는
현상수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편지로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냈죠? 아버지는 미리 어머니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할 건지 일러두었던 겁니다.
다음에 생각나는 일은 어느 날 그 샘은 (이 조그마한 오두막) 집 뒤쪽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아홉...저와
제 바로 밑에 동생은 열한 달 차이가 났습니다, 동생은 아직도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손에 커다란
돌멩이를 들고 있었는데, 동생에게 이 돌을 저기 진흙탕에까지 던지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샘이 땅 밑에서 솟아나니까. 땅이 진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마리 새가 나무에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를 올려다보자, 그 새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때 어떤 음성이 제게 말했습니다.
자, 전 여러분이 제가 그런 것을 생각해내고 기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계심을 압니다. 하지만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과, 땅과 하늘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제가 지금 사실을 얘기하고 있음을 압니다.
그 새는, 그 새가 날아가자, 한 음성이 새가 있던 그 나무에서 나와서, 마치 덤불숲에 바람 한 자락이 걸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음성은, "너는 뉴 앨버니라는 도시 근처에서 살게 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 살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인디애나주 뉴 앨버니에서 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집으로 들어가서 어머니에게 그 일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음, 어머니는 제가 꿈을 꾸었던지 뭐 그런 걸
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어쨌든 나중에 우리는 인디애나주로 이사를 했고, 아버지는 워든이라는 어느 부유한 남자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워든 양조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었고; 굉장한
부자였고, 루이빌 콜로넬즈 야구팀과 기타 여러가지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 근처에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데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위스키 밀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를 힘들게 했는데 장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 양조장에다 물을 길어다 주어야 했습니다,
위스키를 만드는 동안 코일을 식히기 위해서였죠? 다음에 아버지가 그것을 팔기 시작하면서 그 양조장이 두세
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말하길 꺼려합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어느 날, 헛간에서 집으로 오면서 울었던 걸 기억합니다. 그 이유는 그 곳 뒤쪽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얼음을 자르곤 하던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얼음을 잘라서 그걸 톱밥 속에 집어넣는 걸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워든 씨는 그 지역에서 그런 식으로 얼음을 보관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운전 기사였습니다,
개인 기사. 이 연못에 물고기가 가득할 때, 그들은 얼음을 자르러 가서 그것을 가져와 톱밥 속에 넣었고,
그 얼음이 밑으로 내려가면서 여름철에 녹으면, 제 생각에는 그건 호수 얼음처럼 깨끗했습니다,
그들은 그걸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을 시원하게, 양동이와 우유 주변에 놓기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어느 날 뒤에 있던 이 펌프에서 물을 길어오는 중이었습니다, 펌프는 한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돌아왔고 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나머지 친구들은 다 그 연못에 낚시하러
갔었기 때문입니다. 전 낚시하길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만 빼고 그 애들은 다 낚시를 하러 갔고, 저는
이 양조장 때문에 물을 길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 사실은 비밀로 지켜야 했죠? 불법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전...
그 일은 너무도 고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뭉툭한 발가락으로 걸었던 게 생각납니다, 흙에 안 닿게 하려고
발가락 밑에 옥수수속을 대고 끈으로 묶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 본 적 있으세요? 이렇게 발가락 밑에
다 옥수수속을 두고 끈으로 묶는 겁니다. 그러면 마치 거북이 머리처럼, 발가락이 쑥 올라가게 됩니다.
제가 발가락 밑에 옥수수속을 대고 있었으므로, 제가 어디로 가든지 여러분은 절 추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제가 쿵쿵대면서 가는 곳으로. 저는 신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철 반쯤은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건 누군가 우리에게 준 신발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입다가, 자선단체가 준 옷을 입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나무 아래서 멈췄습니다. 거기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죠(구월이었습니다) 낚시를 가고 싶었는데,
이 당밀이 담겨 있던 양동이로 물을 여러 번 길어서 날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 높이의 1.9리터 정도의
물을, 전 고작 일곱 살 정도의 아이였기 때문에. 큰 통 속에다 물을 붓고는 다시 가서 양동이 두 개에 물을
가져다, 펌프질을 해서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게 우리에게 있던 물이었으니까요.
그 날 저녁에 아빠와 이 사람들은 집에서 그 옥수수 위스키를 한 차례 만들어 내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울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뭔가가 회오리바람 같은 소리를 내는 걸 들었습니다, 뭔가가 이렇게
(자, 이 소리가 너무 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우우우우쉬이, 우우우우우쉬이," 이런 소리를 냈습니다.
어, 주변엔 무척 조용했기 때문에, 전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여러분 작은 회오리바람이 어떤지 아시죠?
그걸 작은 싸이클론이라고 부르지요? 가을이 되면 그 선풍이 옥수수 밭에 휘몰아쳐, 잎이고 뭐고, 아시죠?
가을에, 잎들은 노랗게 되어가죠. 저는 커다란 흰 포플러 나무 아래 있었는데, 헛간과 집의 중간쯤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까, 이 안처럼 조용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잎사귀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소리가 어디서 난 걸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어, 전,
"여기서 난 게 아닐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렸습니다.
저는 양동이를 들고 두세 번 큰 소리로 울면서 길을 가다가, 쉬고 있었습니다. 이 커다란 나무 가지들 아래에서
제가 있는 사이거리는 얼마쯤 떨어져 있었는데, 오 세상에 그건 회오리바람 소리를 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까,
그 나무의 중간쯤에 또 회오리바람이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서 떠나지 않고 잎사귀들을 흔들면서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음, 저는 때가 때인 만큼, 그것에 대해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을이니까?
회오리바람이 불겠지 하고. 작은...우리는 그 바람을 "회오리바람"이라고 부릅니다. 그 바람은 흙먼지를 끌고
올라갑니다. 여러분 사막에서 그렇게 바람이 부는 걸 보셨죠? 똑같은 겁니다. 그래서, 전 가만히 지켜보았는데,
그 바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대개는 순식간에 불어와서 가버리는데, 그건 거기에 이 분 이상 있었습니다.
전 다시 언덕길을 올라갔습니다. 다시 이것을 쳐다보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지금 제 목소리와 똑같은 인간의
음성이, "너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고, 담배도 피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네 몸을 더럽히지 말아라. 네가 크면
할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저는 그 소리에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가 어떤 느낌을
받았을 지 짐작하시겠죠? 저는 그 양동이들을 떨구고, 비명을 지르면서, 집을 향해 죽자 살자 뛰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구릿빛 머리 독사들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정원 옆에서 독사를 밟았나보다 생각하시곤
절 맞으러 달려오셨습니다. 전 소리를 지르면서 어머니의 품에 뛰어들어, 엄마를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엄마는, "왜 그러니, 뱀에게 물렸니?"하고 물으시며 절 여기저기 살펴보셨습니다.
전, "아뇨, 엄마! 저 아래 저 나무에 어떤 남자가 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오, 빌리야, 빌리야! 진정해라."라고 하셨고, "너 쉬다가 잠이 들었었니?"하고 물으셨습니다.
전, "아뇨, 엄마! 저 나무에 한 남자가 있고, 제게 술을 마시지 말고 담배도 피우지 말아라. 하고 말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위스키나 그런 걸 마시지 말라." 저는 그 때 밀조 주 공장에다 물을 나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는, "너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몸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건 부도덕한 생활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의 청년시절을 여자들과 보내는 걸. 제가 자신하건대, 전 한 번도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그런 일에 도와주셨기 때문에, 제가 얘기하는 걸 좀 더 들으시면 여러분도 아시게 될 겁니다.
그래서 그때, "술을 마시지 말고 담배를 피우지 말고, 몸을 더럽히지 말아라, 네가 크면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음, 저는 엄마에게 그 얘길 했는데 엄마는 그저 절 보고 웃기만 하셨습니다. 저는 신경과민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의사에게 전화를 해서, 의사는, “그 애는 좀 예민한 애입니다, 그래서 그래요.”
하고 대답했답니다. 그래서 엄마는 절 재우셨습니다. 전 그때 이후 지금까지 절대로 다시는 그 나무 옆을
지나가지 않습니다. 전 무척 놀랐던 겁니다. 전 그 정원의 반대편으로 내려가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무에
남자가 있고 그가 제게 말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음성은 아주 크고 굵직한 음성이었습니다.
그 뒤 약한 달쯤 지나, 앞마당에서 동생들과 공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제게 이상한 느낌이 엄습했습니다.
저는 공기를 멈추고 나무 옆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오하이오 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둑에 있었습니다. 저는 제퍼슨
빌 쪽을 내려다보았는데 한 다리가 일어나 그 강을 가로질러 뻗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열여섯 명의
남자가(저는 그들의 수를 세었습니다) 다리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달려가서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제가 잠이 들었었던 거라 여기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했고,
이십 이년 뒤에 (지금 여러분이 건너다니시는) 도시대교가 바로 그 장소에 세워졌고, 그 다리를 건설하다가
열여섯 명의 남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환상은 한 번도 실수함이 없이 완벽하게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이 강당에서 그 사실을 보시듯이, 그것은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자, 그들은 제가 과민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전 과민한 사람입니다. 보시면, 영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과민합니다. 시인들과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윌리엄 코퍼를 보십시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라는 유명한 찬송을 지었던 분. 여러분 그 찬송 아시죠? 얼마 전에 그 분의 묘에 가봤습니다. 줄리어스
형제님은, 그 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요, 아닌가요...네, 맞습니다. 거기 묘지에 우리와 함께 가셨습니다.
거기서, 그가 그 찬송을 만들고 난 뒤에, 영감이 그를 떠났고, 그는 자살하려고 강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아시겠죠? 영이 그를 떠나고. 시인들이나 작가 같은 사람들은... 제 말은 선지자들은.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는 산 위에 서서 하늘에서 불을 불렀고 하늘에서 비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그를 떠나자,
한 여자의 위협을 받고는 도망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동굴 속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사십 일 뒤에.
요나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거기 니느웨에서 말씀을 전하라고 기름부음을 주셨을 때는 영감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죠? 니느웨는 세인트 루이스만한 크기의 도시로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요나를 떠나자,
요나는 어떻게 됐죠? 우리는 요나가 성령이 떠난 뒤에, 자기 목숨을 거둬 가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걸
봤습니다. 아시겠죠? 그건 영감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그건 여러분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다음에 전 성장기를 기억합니다. 저는 소년이 되었습니다.(서둘러서 빨리 끝내겠습니다.) 제가 소년이 되자,
다른 소년들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학교에 다니면서, 여자애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정말로 수줍음을 많이 탔습니다. 저는 마침내 여자 친구를 하나 사귀게 되었습니다. 다른 애들처럼, 한 열
다섯 살 때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 그 애는 예뻤습니다. 세상에, 비둘기 같은 눈과 진주 같은 이와
백조 같은 목덜미를 가진 그 여자애는 정말 예뻤습니다. 다른 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앤...우린 친했고,
그래서 그 애가 자기 아빠의 낡은 모델-티 포드차를 가지고 우리 여자 친구들을 태우고 데이트를 했습니다.
우리는 여자 친구들을 태우고 데이트를 했습니다. 우리는 돈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휘발유를 7.5 리터
정도 살 수 있었죠? 우리는 차 크랭크를 돌리기 위해서 뒷바퀴를 잭으로 들어 올려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기억하시는지 못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차 크랭크를 돌리기 위해.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꽤 잘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머니에 니클이 몇 개 있었고, 작은 가게에 들려서...니클 하나에
햄 샌드위치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 저는 부자였습니다, 네 개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아시겠죠?
샌드위치를 먹고 콜라를 마신 다음에. 저는 병을 돌려주러 갔습니다. 가게에서 나왔는데, 놀랍게도, (그 당시에
여성들은 우아함에서, 여성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비둘기 같은 애인이 담배를 피고 있지 뭡니까.
저는 항상 나름대로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때 이후로 그 견해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천한 일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저는 생각할 때...전, 담배 제조 회사가 이 말을 듣고 절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전 그건 마귀가
부리는 수작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건 이 나라에 있는 가장 흉악한 살인 무기요 태업(怠業) 행위입니다.
저는 제 아들이 흡연자가 되기보다는 음주 자가 되길 바랍니다. 사실입니다. 저는 아내가 담배 피우고 있는 것을
보기보다는, 바닥에 술에 취해 누워 있는 걸 보는 편을 바랍니다. 그 정도로...자, 제게 있는 이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이 의문을 가지듯이) 만일 그게 하나님의 영이라면, 흡연자 여러분은 거기에 이르면 가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매 번. 여러분은 강대상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것을 정죄하시는지 보셨을 겁니다. 그건 끔직한
일입니다. 그걸 멀리 하십시오. 여자분들, 흡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신다면, 제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떨쳐 버리십시오! 담배는 여러분을 망가뜨립니다. 여러분을 죽일 겁니다. 그건 여러 대의 차에 가득 실은
암입니다. 의사들은 여러분에게 애써 경고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걸 팔 수 있는지! 여러분 약국에 가서,
"내게 오십 센트 짜리 암을 주시오."하고 말할 수 있다면. 아니, 그들은 여러분을 감옥에 쳐 넣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오십 센트짜리 담배를 사면, 여러분은 그 만큼의 암을 사는 게 됩니다. 의사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 이 나라는 돈에 미친 나랍니다. 너무 심각합니다. 담배는 살인 무기입니다. 증명도 된 사실입니다.
글세, 그 예쁘장한 소녀가 손에 담배 한 대를 들고 똑똑한 체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전 죽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그 애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음..." 지금, 저는 "여성 혐오가"라고
불립니다, 여러분도 그걸 아시죠? 그 이유는 제가 항상 여성들을 반대하는 것이지, 여러분 자매들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현대 여성들이 행동하는 것들을 반대합니다. 맞습니다. 훌륭한 여성들은 한데 묶어서.
하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의 양조장이 그 위에 있을 때, 저는 거기에 물을 날라야 했는데,
제 나이 또래의 남자애들과 함께, 열일곱, 열여덟 살도 넘지 않은 여자들이 술에 취해 있는 것을 봐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 여자들에게 블랙 커피를 줘 정신이 들게 해서, 남편의 저녁을 차려 주러 집에 보내야 했습니다.
오, 그런 것들, 저는 말하길, "나는.." 전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훌륭한 탄알이 아까워서도
죽이지 못할 존재이다." 맞습니다. 저는 여성들을 미워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똑같은 생각을 여전히 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동작을 조심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하지만, 선한 여자는 남자의 면류관에 달린 보석입니다. 그녀는 존경받아야 합니다. 그녀는...제 어머니도
여자이고, 아내도 여자이고, 그들은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지극히 존경하는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인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존중한다면, 어머니상(像)과 진정한 여왕의 상을, 그건 괜찮습니다.
그런 여자는 하나님이 남자에게 주실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아내입니다. 구원 말고, 아내가 가장 좋은
것입니다. 만일 아내가 착하다면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솔로몬은, "착한 여자는 남자의 면류관의 보석이지만
좋지 못한 여자는 그의 피 속에 있는 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그건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나쁜
일일 겁니다. 그래서 좋은 여자는...형제님, 여러분에게 좋은 아내가 있다면, 형제님은 그녀를 최고로 존중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셔야 합니다. 진정한 여자! 그리고 자녀들, 여러분에게 진정한 어머니가 계셔서 집에
계시면서 여러분을 돌봐주시고, 옷을 깨끗하게 빨아주시고, 학교에 보내주시고, 예수에 대해 가르쳐 주신다면,
여러분은 성심껏 그 다정한 늙으신 어머니를 공경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녀가 진정한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를 존중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켄터키 산골의 무지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다 개 모양의 천을 덧댄걸 보십니다. 켄터키 시골에 사는 나이든 엄마들은 여기 할리우드에 와서
여러분 현대적인 어머니들에게 어떻게 애들을 양육해야 되는지 가르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저녁에 자녀가
머리를 엉망으로 해서 나가고, 입술에는...슬립(그걸 뭐라고 부르죠?) 얼굴에 화장인가 뭔가를 하고,
옷을 한쪽으로 딱 달라붙게 입고는, 저녁 내내 외출했다가 술에 취에 들어오도록 허용하시는데,
형제님, 그녀는 그 히코리 나무에서 잔가지를 꺾어서 다시는 그 애가 나가지 못하게 할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녀는... 만일 여러분이 그런 걸 좀 더 가진다면, 이 할리우드가 좀 나은 모습이 될 거고,
우리나라도 더 나아질 겁니다. 맞습니다. 사실입니다. "현대적이 돼 보세요," 그건--그건 마귀의 간계입니다.
이 여자애는, 제가 그녀를 보았을 때, 제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저는, "가엾은 애."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오, 빌리, 담배 한 대 필래?"하고 물었습니다. 전, "아니."하고 대답했습니다. "난 담배 안 피워."
그녀는, "아니, 넌 춤도 추지 않는다고 말했지 않았니."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춤추러 가기를 원했는데 제가
가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그들은 저 아래, 씨카모어 가든즈에 춤추는 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 춤도 안 춰."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아니, 넌 춤도 안 추고,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는구나. 그럼 너한텐 뭐가 재미있니?"하고
물었습니다. 전 "어, 난 낚시랑 사냥하는 게 좋아."하고 말했습니다. 그 애는 그런 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애는, "이 담배를 피워."하고 말했습니다. 전, "아니, 사양할게. 난 담밸 안 피워."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펜더 위에 서 있었습니다. 옛날 포드 차에는 발판을 달아놨었는데, 생각나십니까?
저는 그 펜더 위에 서 있었고, 그녀와 저는 그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말로 담배 안 피울 거야?”
하고 말하면서, "우리 여자들이 너보다 더 용기가 있구나."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렇지 않아, 난 피우고 싶지 않을 뿐이야."하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세상에, 넌 다 큰 계집애 같은 남자야!"하고 말했습니다. 오, 세상에! 전 다 큰 나쁜 빌이 되길 바라지,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전 상을 받는 전사(戰士)가 되고 싶었고, 그게 제가
추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집애 같은 남자라고! 계집애 같은 남자라고!"하고 말했습니다.
그걸 참을 수 없어서, "줘 봐!"하고 말했습니다. 손을 뻗으며, "내가 계집애 같은 애가 아님을 보여 주겠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담배를 받아서 성냥불을 그어 불을 부치려고 했습니다. 자, 저는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선 책임이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할 책임만 있을 뿐입니다. 담배에 불을 부치고, 이 성경을 들어 올리려
할 때 결심하듯이 피우려고 결심한 순간, 아시겠죠? 저는 뭔가, "우우우쉬이!"하는 바람소리를 들었습니다.
전 다시 시도했는데, 그걸 입에다 갖다 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그 담배를 땅바닥에 팽개쳐 버렸습니다.
그 애들은 절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전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들판을 걸어 올라와 거기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정말로 힘겨운 삶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애들과 함께 강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제 동생과 저, 우리는 보트를 타고 강에서 위스키를 담을
빈병을 찾느라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우리는 강에서 주워 올린 병을 열두 개를 주우면 니클 하나 받았습니다.
아빠는 저와 같이 있었고, 그 조그마한 납작한 걸 가지고 계셨습니다...반 핀트짜리 병이었을 겁니다. 거기에는
바람에 쓰러져 누워 있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아빠는... 그리고 돈부쉬라는 남자도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그는 쓸만한 보트를 가지고 있었고, 저는 그 보트를 빌려 쓰고 싶었기 때문에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 보트에는 키도 있었는데 우리 거에는 키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널판지 같은 걸로 노를
저었습니다. 그 분이 제게 그 보트를 쓸 수 있게 해 준다면... 그래서, 그는 용접을 했고 아빠를 위해서 양조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나무에 다리를 걸쳐놓고, 아버지는 뒷주머니를 더듬어 조그마한 납작한
위스키 병을 하나 꺼내더니, 그에게 건네주었고, 그는 한 모금 마시고 아버지에게 건네주었고 아버지는 한 모금
마시고, 넘어져 있는 나무 옆에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돈부쉬 씨는 그 병을 들더니, "빌리야, 자 마셔라."하고
말했습니다. 전, "고맙습니다만, 전 술을 마시지 않아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브래넘 가(家) 사람이 술을 안 마신다고?" 했습니다. 거의 모든 친척들은 급사했습니다.
그는, "브래넘 가 사람이 술을 안 마신다고?" 말했습니다. 전, "네." 했습니다.
아빠는, "그렇다네. 난 계집애 같은 앨 하나 키웠어."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가 날 그렇게 부르시다니! 저는, "그 병을 줘 보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개를 열고, 그걸 마실 참이었습니다, 제가 술병을 기울이기 시작했을 때, "우우우쉬이!"하는 소리가.
저는 술병을 돌려주고 죽자 사자 뛰면서, 들판으로 내려갔습니다, 울면서. 뭔가가 제가 술을 못 마시게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제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그런 일을 할 결심을 했었으니까요),
제가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한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겁니다.
전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께서 못하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한 소녀를 만났는데 제가 스물 두 살쯤 되었을 때였고, 그 여자는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녀는 독일계 루터교 교회를 다니는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브럼박, Brumbach, 브럼바라는 이름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그녀는 참 훌륭했습니다. 그녀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안마시고, 춤도 추러 다니지 않았고,
참 참한 여자였습니다. 저는 한 동안 그녀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제가...그때가 스물 두 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전 돈을 좀 벌어서 낡은 포드 차를 하나 살 수 있었고, 전...우린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가까운 루터교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워드 파크에서 그 쪽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선교사 침례교회에서 절 목사로 임명하신 목사님은 로이 데이비스 박사님이셨습니다. 업쇼 자매님, 업쇼 형제님을
제게로 보냈던 그분, 저에 대해서 업쇼 형제님에게 말했던 분은 로이 데이비스 박사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설교를 하고, 제일 침례교회를 시무하고 계셨는데, 제일 침례교회가 아니라, 제퍼슨빌에 있는 선교사
침례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그 목사님은 거기서 설교 하셨었고, 우리는 밤에 교회에 나갔고, 그래서...
같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교회에 등록하지 않았고, 다만 그녀와 함께 가는 것을 좋아했을 뿐입니다.
주된 목적은 그녀와 함께 다니는 것이었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래서 그녀와 같이 교회에 나가던 어느 날 전...그녀는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말이야, 그녀의 시간을 빼앗아선 안 돼.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그녀는
좋은 여자인데 난 가난하고 난..."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고, 전--전... 좋은 집과 바닥에 러그(깔개)를
까는 데에 익숙해 있던 여자를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본 러그를 기억하는데, 전 그게
뭔지 몰랐었습니다. 저는 그걸 밟지 않으려 돌아갔습니다. 평생 그렇게 예쁜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것을 바닥에 깔아둘까?" 그건 제가 처음 본 러그였습니다. ...그걸 "매트형 러그"라고 부르더군요.
제가 잘못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고리버들"같은 것, 엮어 짠 것을 바닥에 깔아 두었더군요.
예쁜 녹색과 빨강색, 그 가운데는 커다란 장미 무늬가 수놓아져 있던 러그였습니다. 정말로 예쁜 러그였습니다.
그래서 전 그녀에게 청혼하지 말고, 그녀를 멀리하다가 그녀가 다른 좋은 사람과 결혼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게 생각납니다, 그녀에게 잘 해 줄 사람,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다정하게 대해줄 수 있는 누군가와.
저는 그녀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전 시간당 이십 센트 벌이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녀를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저에겐 돌보아야 할 가족들이 많았고,
아버지는 몸져누워 계셨고, 전 가족 전체를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전 정말 힘들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생각했습니다, "어, 그녀에게 내가-(그녀는)-내가-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할 도리밖엔 없겠다,
그녀의 삶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고 그녀가 나에게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길 바라니까."라고...
다음에 전, "누군가가 그녀를 만나 결혼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을 거야.
어쩌면 내가 그녀와 결혼을 못한다면, 그녀가 행복하다는 걸 알 수는 있을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지만 난-난 정말-난 그녀를 포기할 수 없어!"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전 정말 괴로웠습니다.
매일같이 전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전 너무나 수줍어서 그녀에게 나와 결혼해주겠느냐고 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밤 전, "내일은 꼭 해야지."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 그게 뭐죠? 불안하기가,
속이 불안한 거...? 형제님들은 아마도 그런 면에서 동일한 경험들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아주 이상한 감정이, 얼굴은 금세 빨개지고 그랬습니다. 전 몰랐습니다. 전 그녀에게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전 그녀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그녀의...자, 그건, "친애하는 누구양:"이라고 쓴 편지가 아니라,
다소 (아시겠죠) 연애편지에 가까웠습니다. 그건 어떤 약정이 아니라... 전 최선을 다해 그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그녀의 어머니가 좀 무서웠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좀 드센 분이었는데,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부드러운
네덜란드인 출신이셨고, 아주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는 철도회사의 형제회, 노조원들을 조직하기도 했고, 그때에도
한 달에 오백 달러를 버셨습니다. 전 한 시간에 이십 센트를 버는데, 그의 딸과 결혼을 하려하고 있었습니다.
아 참! 저는 그건 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아주...자, 그녀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녀는--그녀는 좀 상류층에 속하는 분이었습니다, 아시죠? 좀 깐깐한 분, 그래서 그녀 입장에서
보면 전 그다지 탐탁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그저 시골 촌뜨기에 불과했기에, 그의 딸 호프가 좀 더 낳은 청년과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제 생각에 그녀의 생각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 그 당시에는 그걸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 "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녀의 아빠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물어보지도 않을 거란 건 확실한 거고. 그러니까 먼저 그녀에게 물어야겠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편지를 썼습니다. 그날 아침 직장으로 가는 길에, 그 편지를 우체통에 집어넣었습니다.
그 편지는...우리는 수요일 저녁에 교회에 갈 예정이었고, 그날은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일요일 하루 내내
그녀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려고 뜸을 들였는데, 결국 용기를 내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날 직장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그 편지를 받으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 세상에! 그녀의 어머니가 편지를 받는다면 난 끝장이다. 는 걸 알았습니다,
그녀는 절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 진땀이 났습니다. 수요일 날이 되자 전 가면서, 오, 세상에,
전, "어떻게 그 집에 가지? 그녀의 어머니가 편지를 받았다면, 날 가만두지 않을텐데, 호프가 그 편지를 받았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호프에게"라고 썼습니다. 그게 그녀의 이름입니다, 호프. 그래서 전, "그걸 호프
에게라고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가 그것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밖에 차를 세우고 나오라고 빵빵 소리를 내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 세상에!
집까지 걸어가서 문을 두드리고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용기가 없는 남자는 그녀와 사귈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건 너무나도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건 저급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전 제 낡은
포드 차를 세우고, 아시죠? 그 차를 반짝거리게 닦았습니다. 그래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자비를,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시지 뭡니까! 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저는, "브럼박 부인, 첨-처음—처음 뵙겠습니다." 네. 그녀는, "윌리엄, 처음 뵙겠어요."
저는, "어, 날, `윌리엄'이라 부르시는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들어올래요?"하고 물었습니다.
전, "감사합니다,"하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전, "호프가 갈 준비가 됐나요?"하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때, 호프가 팔짝팔짝 뛰면서 집안을 가로지르며 나왔습니다, 열여섯 살밖에 안된 소녀였습니다.
그녀는, "안녕, 빌리!"하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안녕, 호프."하고 말하며, "교회 갈 준비 다 됐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잠시 후에." 했습니다.
전, "오, 세상에! 그녀는 편지를 안 받았나보다. 안 받았나봐. 좋아, 좋아, 좋아. 호프가 그걸 받지 못했어,
그러니까? 괜찮아, 받았다면 나에게 말을 할텐데." 그래서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교회 갔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프가 편지를 받은 거 아냐?" 아시겠죠? 전 데이비스 박사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를 흘낏 쳐다보았고, "모르는 체 하고 있는 거라면, 예배 끝나고 나가서
말하려고 벼르고 있나보다, 그녀에게 청혼한 것 때문에."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 데이비스 형제님이 뭐라고
하는지 영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전 그녀를 다시 흘낏 쳐다보고, "세상에, 난 죽어도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난-난...결정의 시간이 반드시 올 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 거리를 함께 걸어가면서,
집에 갈려고, 우리는 낡은 포드 차 있는 곳까지 걸었습니다. 달은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아시겠죠? 그녀를 흘낏
보니까 참 아름다웠습니다. 전 그녀를 바라보고 속으로, "세상에, 그녀를 너무나도 원하는데, 그럴 수 없나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조금 더 걸으며, 아시겠죠? 다시 그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밤 기분이 어때?"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오, 나 기분 괜찮아."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낡은 포드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서, 아시겠죠? 옆으로, 모퉁이를 돌며 걷다가 그녀의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문까지 걸어갔고, "그런데 말이야, 그녀는 편지를 아직 안 받았나봐, 그러니까?
그건 잊어버리자. 은혜의 한 주가 또 올 테니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녀가, "빌리?"하고 불렀습니다. 저는, "응."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편지 받았어."하고 말했습니다. 오, 세상에! 저는, "그래?"하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음."하고 말했습니다. 어, 그녀는 계속 걷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 속으로 "호프, 말 좀 해. 날 쫓아버리든지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말 좀 해봐."하고 생각했습니다.
전, "어 그-그거 읽었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으-응."하고 대답했습니다.
세상에, 여자들이 얼마나 뜸을 잘 들이며 얘기하는지 잘 아시죠? 오, 말하자면 그런 의미지만 제가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아시죠. 아시겠죠? 하지만, 어찌됐건, 전 속으로, "제발 뭐라고 말 좀 하지 그러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해하시겠죠? 전 계속 말을 붙였습니다. "편지 다 읽었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테이프에 공백 있다.] "으-응."
그래서 우리는 문에 가까이 이르렀고, 전, "세상에, 날 현관까지 끌고 가지마. 네 부모님을 보지 않고 도망갈
수가 없으니까? 지금 말해."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전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빌리,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하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널 사랑해."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그녀의 혼에 축복해 주시기를, 그녀는 지금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그녀는, "널 사랑해."하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부모님들께 그걸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그래서 전, "들어봐, 우리 반반씩 나눠서 하자."고 말했습니다. "너는 어머니한테 하고 난 아빠한테 말하기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더 힘든 부분을 그녀에게 떠맡기는 걸로 시작한 거죠?
그녀는, "좋아, 네가 아빠에게 먼저 말한다면 그럴 게."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좋아, 일요일 저녁에 말씀드릴게."하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일요일 저녁이 왔고, 예배를 마친 후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고 전...그녀는 계속 절 쳐다보았습니다.
보니까? 시계는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집에 갈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촬리는 책상에 앉아서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브럼박 부인은 구석에 앉아서, 뜨개질인가 뭔가를 하고 계셨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바늘로 고리를 만들어 뜨는 거 그거 말입니다. 그걸 정확히 뭐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그런 걸 하고
있었습니다. 호프는 계속해서 절 바라보고, 제게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아빠에게 말하라는 암시를 주면서. 저는...
오, 세상에! 속으로 "그가, `안 돼'하면 어떻게 하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음, 이젠 가봐야겠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문으로 걸어 나갔고 그녀도 문까지 따라왔습니다. 항상
문까지 배웅하면서, "잘 자."하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전 문으로 나갔고, 그녀는, "아빠에게 말하지 않을 거야?“
하고 물었습니다. 전, "어! 하려고 하는데 말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하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들어갈 테니까 아빠를 불러내."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들어가고 전 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촬리."하고 불렀습니다. 그는 뒤로 돌아보고는, "왜 그러나, 빌?"하고 물었습니다.
전 "잠깐 얘기 좀 드릴 수 있을까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럼."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하던 책상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브럼박 부인은 남편을 쳐다보았다가, 호프를 바라봤다가, 마지막으로 절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전, "바깥 현관으로 좀 나오시겠어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래, 나가지."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깥 현관으로 걸어 나오셨습니다.
저는 "참 아름다운 밤이지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렇군."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날이 덥군요."하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구만," 하시더니 절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요,"하고는 말을 이어서, "손에 못이 다 박히네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빌, 내 딸을 데려가도 좋네."하고 말했습니다. 오, 세상에! "내 딸을 데려가도 좋네."
저는, "오, 맘에 쏙 드는 소리군."하고 생각했습니다. 전, "촬리, 그 말씀 진심이신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하길... 전, "촬리, 그녀는 당신의 딸이고, 당신은 돈도 있다는 걸 잘 알아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손을 뻗어 제 어깨를 붙들었습니다. 그는, "빌, 내 말 좀 들어보게, 돈이 사람 사는 데 전부가 아니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촬리, 전 한 시간 일해야 이십 센트밖에 못 벌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는 절 사랑해요.
촬리, 제 손에서 이 못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일해서 딸을 먹여 살리겠다고 약속드릴게요. 그리고 그녀에게
성실한 사람이 될게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빌, 나도 그러리라고 믿네. 빌, 들어보게. 말하고 싶은 게 있네,
그거 아나, 행복이란, 돈만 가지고 행복할 수 없는 거야. 그 애에게 잘 해 주게. 그러리라 믿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촬리,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에 그녀가 엄마에게 말할 차례였습니다.
전 그녀가 어떻게 엄마를 설득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우린 가진 게 없었습니다, 가재도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에겐 이삼 달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글세 집을 얻었고, 한 달에 사 달러를 내야 했습니다. 그 집은 조그마한, 방 한 칸과
부엌이 딸린 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낡은 접었다 폈다하는 침대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침대 보신 분 있을까요? 그들이 우리에게 그 침대를 주었습니다. 전 씨어즈 앤드 로벅스에 가서 의자 넷 달린
식탁을 사왔습니다, 페인트칠이 되어 있지 않은 제품이었고, 아시겠죠, 월부로 산겁니다. 그 다음에 전 고물상을
하는 웨버 씨에게 가서 요리용 스토브를 샀습니다. 그건 칠십오 센트에 사고, 그 안에 들어가는 석쇠 같은 것은
일 달러 얼마쯤에 샀습니다. 우리는 가재도구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칠을 할 때, 전 의자에다 토끼풀을 그리던
게 생각납니다. 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해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있는 것, 그걸로 만족해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선하심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신혼부부였었습니다.
전 이걸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세상의 물건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몫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잠시 후에, 하나님은 내려오셔서 우리가정을 축복하셨고, 우린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애 이름은 빌리 폴인데, 지금 여기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11개월 뒤에,
하나님께선 우리를 다시 축복해 주셔서 샤론 로즈라는 딸을 허락하셨습니다, "샤론의 장미"라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었습니다. 전 돈을 저축해 두었었고 짧은 휴가를 다녀오려고, 파 파오라는 호수에 낚시를 하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이 때쯤에...전 제가 회심하게 된 얘기를 뺐습니다. 저는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선교사 침례교회에서 로이 데이비스 박사에게 목사 안수를 받았고 지금 설교를 하는 제퍼슨빌에 있는
이 성막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조그마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돈도 없었고,
전 십 칠년간 목회하면서 단 일전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거기에는 헌금 걷는 자루도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번 돈으로 십일조를 내고 등등, 건물 뒤쪽에 조그마한 상자를 하나두고 그 위에 이렇게 쓴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들 나의 자녀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니라." 그렇게 해서 교회의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우리는 십 년 상환의 빚을 이년도 채 안 돼서 다 갚았습니다. 전 헌금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전 휴가를 위해 몇 달러를 저축해 두었습니다. 아내도 파인 셔츠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사랑스런 여자였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무덤은 오늘 눈에 덮여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는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전 그녀가 제가
이 호수에 낚시를 가게 하려고 돈을 저축하는 걸 도우려고 너무도 열심히 일을 했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전 인디애나 주 미쉬와카(Mishawaka)와 싸우쓰 벤드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오직 예수"라고 쓴 표시를 뒤에 부치고 있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직 예수'라니,
이상한 소리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표시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자전거에도, 포드 차에도, 캐딜락
차에도, 어디나, "오직 예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전 그들을 좀 따라가다가 어느 커다란 교회에 이르렀습니다.
전 그들이 오순절교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전 오순절교인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러나 그들은
"바닥에 누워서 개 거품을 품고 있는 홀리 롤러(holy-rollers)야," 사람들이 제게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런 것과 관련되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들이 그 안에서 하는 소리를 다 들었고,
"한번 들어가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낡은 포드를 세우고 들어갔는데, 찬송 소리는 절 매료시켰습니다!
전 거기에 두개의 큰 교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쪽은 J.C 오순절교회고 한쪽은 W 오순절교회였습니다,
여러분 많이들 그 옛날 조직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지금은 그들이 통합했고, 연합 오순절 교회라고
불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 전 그들의 교사들 몇 명이 설교하는 걸 들었습니다. 거기 서서, 오, 그들은 예수에
대해서 가르쳤고,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모든 일이 얼마나 위대한 지와 "성령 침례"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속으로 전, "무슨 소릴 하는 거지?"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가 펄쩍 위로 뛰더니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 전 평생 그런 걸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일어나더니 있는 힘껏 빨리 달렸습니다. 그러자 남은 사람들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 "오, 형제님, 그들은 정말 교회에서 처신을 형편없이 하고 있군요!"하고 생각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치는 걸 보며, "이 사람들 도대체 왜 이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앉아 있는 동안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게 이상한 노릇이었습니다. 뭔가 알 수 없지만 정말로 좋은 게 있었습니다.
전 그들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전, "잠깐만 참고 지켜보자, 난 문에서 가까이 있으니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면, 저 문 밖으로 달아나야지. 차가 주차된 곳도 알고 있어, 저 모퉁이에."하고
생각했습니다. 전 어느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었는데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어, 전 속으로,
"맘에 드는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 시작이 되자, "다들 저녁 드시러 오세요."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 "어디 보자. 집에 갈 때 쓸 일 달러 칠십오 센트 남았군, 그런데 난..." 그게 제가 휘발유를 사는데
쓸 돈이었습니다. 집에 가는데 필요한 돈이었습니다. 전 낡은 포드를 가지고 있었고, 그건 꽤 좋은 구형 포드
차였습니다. 그건 낡아서 그렇지 쓸 만했고, 여기 있는 이런 차와 같은 차였습니다. 그런데 그건...전 그 포드가
시간당 삼십 마일(48km)을 간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왕복을 합해서죠. 아시겠죠? 다 합쳐서, 삼십 마일입니다.
그래서...전, "어, 밤에는 밖에 나가 있다가 나중에..."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녁 예배에도 참석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교파에 상관하지 마시고, 목사 되시는 분들은 다 강단으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 약 이백 명이 되더군요, 저도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 여러분이 다 설교하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냥 여러분의 이름과 어디서 오셨는지 만 말씀하시고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어, 제 차례가 되어, "윌리엄 브래넘, 침례교, 인디애나 주 제퍼슨빌."이라고만 말하고 옆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저는, 나머지 대부분의 분들이, "오순절교, 오순절교, 오순절교, W 오순절교, J.C 오순절교, W. 오순절교, 등등...“
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전 걸어 나왔습니다. 전, "어, 내가 미운 오리새끼인 것 같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그날, 그들 젊은 목사들은 훌륭했고, 설교도 힘차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밤에 말씀을 전해주실 분은..."
그들은 그 사람을, "장로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목사님" 대신에 "장로님" 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연로한 흑인 목사님을 모셨는데, 그는 옛날에 목사들이 입던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옷 본 적이 없을 겁니다. 뒤에 비둘기 꽁지 같이 나와 있고, 벨벳 칼라를 댄 옷인데,
그 분의 머리는 흰 머리가 빙 둘러서 나 있었습니다. 불쌍한 양반, 그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거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거기엔 예수님에 대해, 그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기타 등등에 대해서 설교를 한 목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늙은 목사는 욥기에서 본문을 정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두 기뻐서 소리쳤을 때 어디 있었느냐?"
그런데 그 불쌍한 목사님은, 전 속으로, "왜, 젊은 사람들을 설교하게 세우지 않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굉장히...그곳은 많은 사람들로 꽊 차버렸습니다. 전, "왜 그러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로한 목사님은 이 아래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교하지 않고, 항상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 그는 시간이 시작된 때부터 시작해 재림 때까지의 하나님을 수평의 무지개로 쭉 끌어냈습니다.
세상에, 전 그런 설교를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때 성령이 그 사람에게 임했고, 그는 이 정도로 높이 뛰어올랐고
뒤꿈치를 딱하고 부딪쳤고, 어깨를 뒤로 젖혔다 재주 넘어 강단 아래에서 두 발로 서서는, "설교하기엔 자리가
좁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는 지금 이곳보다 더 넓었습니다. 속으로, "나이든 분이 저렇게 하도록 만든다면,
나에게 그게 임하면 난 어떠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어쩜 나에게 그게 좀 필요한지도 몰라."하고
생각했습니다. 어, 그가 설교를 시작했을 때, 전 그 분을 불쌍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설교를 마쳤을
때는, 제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전 그가 거기서 나가는 것을 쳐다봤습니다.
*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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