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르타쿠스 발레모음곡(Spartacus, Ballet Suite) 발레 「스파르타쿠스(Spartacus)는 하차투리안이 작곡한 3개의 발레음악 중 하나로, 1954년에 작곡하여 1956년 12월 27일에 Kirov Theatre of Opera and Ballet(Marinsky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하차투리안(Khachaturian)의 음악에 그리그로비치(Grigrovich)가 대본과 안무를 담당한 발레 작품이다. 로마 제국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주도한 노예 반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하차투리안은 작품을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하였다. 고대 로마 시대의 그림과 조각, 노예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개선문, 콜로세움들을 보았고,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돌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면서 자유와 해방의 상장인 스파르타쿠스를 작곡했다고 한다.
▲ 제1모음곡 (26:02) 1. Introduction – Dance of the Nymphs 2. Introductio, Adagio of Aegina and Harmodius 3. Variation of Aegina and Bacchanalia 4. Scene and Dance with Crotalums 5. Dance of the Gaditanian Maidens and Victory of Spartacus
▲ 제2모음곡 (20:42) 1. Adagio of Spartacus and Phrygia (00:00) 2. Entrance of Merchants,Dance of Roman Courtesan General Dance (8:52) 3. Entrance of Spartacus, Quarrel, Harmodius’ Treachery (13:15) 4. Dance of the Pirates (19:21)
▲ 제3모음곡 (16:11) 1. The Market 2. Dance of a Greek Slave 3. Dance of Egyptian Girl 4. Dance of Phyrigian and Parting Scene 5. Sword Dance of the Young Thracians
◆ 소련 정부가 예술가들에게 바랐던 바로 그 이야기 하차투리안이 발레음악 〈스파르타쿠스〉를 위해 곡을 쓴 것은 1950년대 초반이었지만, 그는 나중에 이 발레음악에서 몇몇 곡들을 뽑아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으로 만든다. 오늘날 더 자주 연주되는 것은 〈스파르타쿠스 모음곡〉이다. 그는 이 작품 안에 총 네 개의 모음곡을 남겼는데 그 중 ‘모음곡 1번’부터 ‘3번’은 1955년에서 1957년에, ‘모음곡 4번’은 1967년에 작곡되었다. 1967년 그는 〈스파르타쿠스〉 전체에 대한 개정작업을 단행했고, ‘모음곡 4번’은 개정버전이다. 하차투리안이 이 곡에 왜 이렇게 큰 에너지를 썼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스파르타쿠스〉의 원작 이야기 때문인 듯하다.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의 전사로, 로마에 대항하여 노예들을 이끌고 자신들의 요새를 구축하였지만, 크라수스와 폼페이에서의 엄청난 전투 끝에 패하고 말았다. 6,000명의 노예들이 이후 아피아 가도에서 십자가형을 당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노예들이 억압적인 군주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이야기는, 당시 소련의 상황에 비추었을 때 다른 소련의 예술가들도 다뤄주었으면 하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 중앙아시아적인 감성이 곳곳에 발레 <스파르타쿠스〉의 절반이 넘는 음악이 〈스파르타쿠스 모음곡〉의 1번부터 4번에 사용되었다. 전체 발레음악은 50개 정도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때로 그의 모음곡은 몇몇 곡들을 합쳐놓기도 했기 때문에 사실상 절반의 발레음악이 나중에 재활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파르타쿠스〉에서 들어볼만 한 부분들은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중앙아시아적인 정취이다. 이는 아르메니아 출신 작곡가 하차투리안의 장기이기도 했다. 가령 ‘모음곡 3번’의 2번, ‘이집트 소녀의 춤’이나, ‘모음곡 2번’의 4번 곡, ‘해적들의 춤’에서 들을 수 있는 발레음악 〈가야네〉의 유명한 ‘칼춤’과 비슷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중앙아시아적인 정취를 흠뻑 만끽할 수 있다.
◆ 스파르타쿠스의 난 기원전 73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봉기가 2년여만에 로마군에 의해 진압됐다. 검투사 출신으로 봉기를 이끌었던 영웅 스파르타쿠스는 크랏수스가 이끄는 로마 군대의 공격에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온몸에 수십 군데나 칼에 찔려 장렬히 전사하였다. 사로잡힌 6천 명의 봉기노예들은 카푸아로부터 로마 성에 이르는 길에 십자가에 매달려 못박혀 죽었다. 봉기의 주요 세력이었던 검술 노예들은 가장 비참한 노예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귀족들의 오락을 위해 서로 싸움을 했다. 귀족들은 정복지에서 잡아온 노예들 중 건장한 노예들을 사들여 무술을 연마시킨 후 로마의 원형경기장 등에서 싸움을 시켰다. 검투사들은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싸움을 계속해야 했으며, 심판은 쓰러진 자가 완전히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뻘겋게 달군 쇠몽둥이로 몸을 지져 근육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죽은 투사의 시체를 끌어내갔다. 스파르타쿠스는 노예 검투사 출신으로 훈련소의 노예들을 조직하여 탈출에 성공한 봉기군의 지도자였다. 그는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을지언정 절대로 로마 귀족의 오락을 위하여 죽지는 않겠다"고 외치며 로마 군대와 맞서 싸웠던 것이다. 그의 봉기는 실패로 끝났으나 로마 노예주의 통치에 깊은 타격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스파르타쿠스는 두려움을 모르는 투쟁정신, 탁월한 조직능력과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피 지배 노예들 가슴속에 영웅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 감상
▬ Adagio of Spartacus and Phrygia(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의 사랑) (10:03) 하단에 ▬ 발레 장면(위 음악과 발레) ▬ 해설과 감상 (15:21) 상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