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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현현(1-3)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 밝히시기 위해 창조의 위대함을 제시하십니다. 욥은 하나님께 자기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다루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세계 가운데 인간의 공정과 정의의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1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1-3)
하나님께서 드디어 하나님을 애타게 찾던 욥 앞에 등장하셨습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욥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엘리후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폭풍우를 일으키시는 분이지만, 그의 말과는 다르게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그들 앞에 나타나셔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욥에게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엘리후와 욥의 친구들이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지혜가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애타게 부르짖고 찾을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23-25에서 보면 애굽에서 노예로 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잠잠히 계시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적극적인 구원의 활동을 시작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처음 하신 말씀은 욥이 무지하다는 것, 즉 지혜가 없다는 책망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욥이 얼마나 지혜가 있는지를 시험하겠다며 이제부터 하는 질문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최선을 다해 대답하라고 명하십니다. 허리를 묶는 행동은 일을 할 때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으로 민첩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는 표시입니다. 이것은 욥과 욥의 친구들의 논쟁이 누가 더 지혜로운지를 겨루는 지혜 논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지혜롭다고 주장하는 이들 앞에서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땅의 기초에 대한 질문(4-7)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고 원망하던 욥에게 피조세계를 펼쳐 보이며 ‘네가 보는 것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가 가진 지식의 한계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교정해 주십니다. 심판관의 추궁처럼 들리지 않고 아비의 설득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4-7)
4절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질문은 창조주만이 알 수 있는 세상 창조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질문은 세상 창조 시 너는 어디에 있었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욥의 존재적 위치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잠언 3:19-20(“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지혜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욥이 참으로 지혜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욥과 그의 친구들이 말하는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제한적이며 미미하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4-6절에서 기초, 도량법, 줄로 재는 것, 주춧돌, 모퉁이돌 등의 단어를 통해 세상의 창조를 마치 건물을 건축하는 것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는 우주를 일종의 성전으로 보았으므로, 세상 창조를 성전을 건축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7절에서는 세상 창조 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욥과는 대조적으로 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보고 기뻐 노래를 부르고 찬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은 창조에 관한 한 별들과 천사들보다 지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바다의 탄생에 대한 질문(8-11)
욥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섭리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섭리의 비밀을 보여 주신다 해도 인간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8○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8-11)
8-11절에서는 바다의 창조에 대해 질문하시는데, 마치 아기를 출산하는 은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바다는 혼돈의 세력으로, 세상을 파괴하는 강력한 신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 신화에서 마르둑이나 바알은 티아맛이나 얌으로 불리는 바다의 신을 정복하고 세상을 창조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바다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통제하시는 아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8절의 “가두다”, “옷을 만들고 강보를 만들다”, “한계를 정하고 문과 빗장을 두신다”는 표현은 철저한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들입니다. 고대 근동의 신들은 바다와 싸워야 했지만, 11절(“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넘어오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다스리십니다. 즉, 바다는 하나님의 규례에 온전히 순종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악인들의 심판에 대한 질문(12-15)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는 곳은 더 이상 사망과 음부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행복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망 권세를 물리치시고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에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2○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13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12-15)
이 단락에서는 빛과 어둠을 통해 악인들의 심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아침과 새벽이 오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하시는 일이지만, 인간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침과 새벽은 어둠과 악을 드러내는 빛을 상징합니다. 13절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에서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라고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였는데, ‘붙잡고’라는 단어는 빛이 땅 끝까지 완전히 비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아침이 와서 빛이 세상을 비추게 되면 어둠 속에서 은밀히 악을 행하던 자들이 전부 드러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먼지를 털듯이 땅에서 털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빛은 진흙에 인장을 찍으면 아름다운 무늬가 나타나듯이 혹은 아름다운 옷처럼 나타나서, 아침이 오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세계가 드러나고 세상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악인들에게는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든 팔이 꺾일 것이라고 하십니다. 팔은 힘의 상징으로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의미하며, 빛이 차단되는 것도 죽음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과 인간을 통치하시는 것을 같이 연결하심으로 세상과 인간 모두의 통치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악은 없으며,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며, 죄를 지었을 때는 빨리 죄를 자복하고 용서하심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지하 세계에 대한 질문(16-18)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하여 덮어 버리는 재앙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러한 두려움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바다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찬송해야 합니다.
16○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16-18)
이제 하나님의 질문은 지상에서 지하 세계로 옮겨집니다. ‘바다의 샘’은 바다의 근원을 뜻하는 것으로 스올의 입구에 있으며, 깊은 물인 ‘테홈’은 무저갱으로 스올을 의미합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바다 밑 세계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가는 저승에 대한 질문으로서 그곳을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영역은 산자들이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17절은 좀 더 구체적으로 사망의 문을 본 적이 있는지, 즉 죽어서 가는 곳에 가본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이것은 28:22(“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에서 멸망과 사망에게 지혜를 들어보았는지 물어보았다고 말한 욥에게 죽음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죽음의 세계에 가보지도 못한 그가 마치 사망의 세계까지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 것에 대한 질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기는 겸손한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십니다. 더 놀랍고 깊은 지식으로 이끄십니다. 스스로 묻고, 생각하고, 발견하고, 깨닫는 일들을 통해 한층 성장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성숙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문의 시간들을 성숙의 시간들로 바꿔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