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시조 대조영 - 1
고당(高唐) 최후(最後)의 승부(勝負)-1 서기 655년 2월, 당(唐)의 고종(高宗)은 그 동안 숨도 크게 못 쉬고 있다가 대호(大虎)가 기력을 잃자, 즉각 군을 동원하여 또다시 가우리에 도전해 왔다. 이에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淵男生 혹은 泉男生)이 병중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말치[莫離支]에 올라 가우리와 중국의 제9차 대전을 맞게 되었다. 남생말치는 용맹한 가우리군을 잘 이끌어서 당의 정명진(程名振)과 소정방(蘇定方)군을 귀단수(貴湍水)에서 격멸하고, 아홉 번째의 대승을 기록하였다. 서기 657년, 소위 중화(中華)라고 부르며 지상의 최강국으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노리던 화산족(華山族)의 중국(中國)과 아홉 번에 걸친 대전쟁을 연전연승하며 동북 대호(大虎 : 큰 호랑이)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저들의 목을 짓밟고 기를 죽여 동이족의 우위를 확인시켰던 연개소문(淵蓋蘇文) 신크말치[太大莫離支]도 오랜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신크말치의 죽음으로 가우리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국장이 끝난 후, 그 동안 말치[莫離支]로 있던 남생(南生)은 불과 24살의 나이에 크말치[大莫離支]에 올랐고, 가우리의 삼군대장군(三軍大將軍)직도 겸임하여 가우리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장악하였다. 그렇게도 두렵고 무서웠던 동북의 호랑이가 숨을 거두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당 고종은 즉각 출병을 명령하였다.
서기 658년 6월, 대장군 정명진(程名振)과 설인귀(薛仁貴)는 제3차 대전에서 남생(男生)에게 빼앗겼던 요서(遼西)의 땅을 되찾고 동진(東進)을 계속했으나, 이번에도 크말치[大莫離支] 남생의 새로운 방위선을 뚫지 못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크말치 남생으로선 아버지 연개소문의 후광없이 단독으로 승리한 회심의 일전이었다. 이전쟁의 승리로 남생의 명성은 한층 더 높아졌고, 정권의 최고 권력자로서 명실 공히 인정을 받게 되었다. 천하를 정복하여 기고만장했던 당나라였지만, 가우리와 무려 10번에 걸친 전쟁에서 연전연패의 치욕을 당하니, 이제는 나라의 체면과 운명을 걸고서라도 기어코 가우리와 승부를 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10차 대전의 패전이 있은지 불과 15개월 후인 서기 659년 9월, 당은 또다시 온 국력을 모아 제11차 원정을 감행하였다. 이번에는 제10차전 참패의 책임을 물어 정명진을 파면하고, 설인귀를 총대장으로 하여 침략해 오니, 크말치 남생은 온사문(溫沙門)을 장군으로 하여 당군과 횡산(橫山)에서 결사전을 벌여 또다시 이를 물리쳐 가우리의 기세를 천하에 드높였다. 그 후, 당나라는 가우리에 대한 작전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제11차 대전(大戰)에서 참패한 당나라에 마침 행운의 손길이 뻗어 왔으니, 가우리의 숙적인 실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가우리의 후원군인 백제를 공략하자는 것이다. 당나라는 이 행운을 놓치지 않고 즉시 출병하여 서기 660년 6월, 설필하력(契苾何力) 장군에게 가우리의 요동을 공격하게 하여 가우리군이 백제를 도울 수 없도록 북방 전선에 묶어 놓았다.
나 · 당(羅唐) 연합군의 기습적 대부여 작전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개전 3개월 만에 부여의 왕성(王城)을 격파하고 그 왕을 잡는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두고 개선하였다.
소정방이 이끄는 남방군의 대승리와는 달리, 설필하력의 북방군은 또다시 가우리의 역습을 받아 고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가우리 정벌이 목표였던 당은, 대부여전에서 승리한 소정방의 남방군을 빼돌려 요수전선(遼水戰線)에서 허덕이는 북방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가우리 남부의 요충인 남펴라[南平壤]를 기습하니, 가우리는 남북으로 전선이 벌어져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크말치 남생이 집권한 이후 가우리는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거의 매년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대전쟁에 가우리의 경제는 극도로 피폐하였으나, 젊은 남생은 그 나름대로 두터운 방위 체제를 조직하여 당군의 침입에 결사적인 항전을 하고 있었다.
| | | | | | ※ | 발해는 태양민족임을 뜻하는 “밝은 해”를 줄인 “밝해”의 소리말을 한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 ※ | 대신국의 “신(辰)”자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으로 발음하여 대진국으로 읽는데, 크다는 의미를 두 번 강조하는 “대신국”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신국의 국호는 이외에도 “세상의 중심 땅“을 의미하는 가우리[句麗]라는 국명을 계속 쓰기도 했는데 대쥬신제국사에는 대가우리(=대씨가우리 大氏高句麗)로 표현되어 있다. | ※ | 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 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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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물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