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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로 살기>
4/14(토)
유태인 광장과 게토 영웅 광장(ghetto hero's square)에 다녀왔다.
게토 영웅 광장에서 바로 앞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게토다.
이 광장에서 유태인들을 모아두고 이들을 게토로 보낼지 아니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기차를 태워 보낼지 결정했다고 한다.
광장에 있는 의자들은 유태인들이 수용소로 보낸진 후 광장에 남게 된 의자를 뜻하기도 하고 제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문에 붙은 사진들은 모두 신들러가 구한 유태인들이다.
신들러는 독일 사람인데 유태인들을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생명 하나를 구한자, 세상을 구하리라”-신들러의 명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영화 <신들러 리스트> 꼭 한번 봐야겠다.
Market place라고도 불리는 Rynekglowny Square에 야경구경을 나갔다. 많은 여행객들이 구경을 나온듯 했다.
연인과 친구들과 가족들과 제각기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그 중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우아하게 저녁식사를 하는 가족들이 제일 부러웠다.
한달간 나는 잊고 살았던 여유와 넉넉함을 그들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카페에 자리잡고 앉아 커피한잔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
하지만 나는 가족들과는 할 수 없는 점핑 인증샷을 성공적으로 찍었으니 그걸로 됐다.
우리는 버스킹 공연을 봤다. 좋은 노래를 들으며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불빛이 반짝반짝,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야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치 중 하나다. 나는 설레고 들떴다.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4/15(일)
일주일 보고서를 쓰기 위해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이렇게 혹사시킨 후, 나는 스스로 병을 얻었다.
전날 저녁부터 슬슬 아프기 시작했던 목이 따끔거렸고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몸이 무거웠다.
아이들이 한 명씩 아프더니 이번엔 내 차례구나 싶었다.
그런데 하필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이동하는 날 아플게 뭐람.
정말 앞뒤로 가방을 메고 걸을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흘렀다.
가방을 메고 걷는데 정말 고통스러웠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아는 표현을 모두 활용해 설명하자면-바늘이 눈을 찌르는 듯한 고통, 몸을 뜨거운 물에 팔팔 끓이는 듯한 고통, 사지를 찟는 듯한 고통-내가 아는 최악의 고통들과 맞먹는 고통을 느꼈다.(내 체감으로는)
보조배낭은 몸을 앞으로 끓어당기는데 큰 배낭은 뒤로 잡아당기고.
그 와중에 내 몸은 어느 한쪽도 어찌하지 못하고 휘청휘청거렸다.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앞의 대열은 너무나 빠르게 걸어가버렸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울음이 나왔지만 울면 힘이 더 빠질까봐 눈물을 꾹 참았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비명소리는 어쩌지 못했다.
체력 약하고 운동 못한다던 민수도 나보다 앞서서 잘 가는데, 초등학생 세훈이도 저렇게 잘만 가는데, 왜 나는 안될까.
회의감이 들었다.
걷는데 갑자기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막 떠올랐다.
그동안 내가 죽음을 너무 쉽게 여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고통이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고통도 이 정도인데 죽을 때 그 고통은 어떨까. 두려워졌다.
다행히 다른 친구들이 자기 배낭을 놓고 달려와 내 배낭을 들어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나는 곧바로 버스역에 쓰러졌다. 4시간 가량 누워있었다.
써니쌤이 바닥에 매트를 깔아주셨고 대장님이 가장 아끼시는 스카프를 내게 덮어주셨다.
다른 아이들이 살금살금 와서 그 위에 자신의 겉옷을 하나씩 덮어줬다. 얼굴에는 모자까지 덮어줬다.
조금 답답했지만 그 손길들이 너무 고마웠다.
새벽 3시에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숙소는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부터 5km거리에 있었다.
지도에는 걸어서 1시간이라고 나왔다. 대장님께서 내 큰 가방을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차마 내가 들겠다고 사양하지 못했다.
1시간을 뒤쳐지지 않고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써니쌤의 짐을 하나 더 들겠다고, 기타를, 북을 하나 더 메겠다고, 공동 짐을 더 챙기겠다고 달려드는데,
나는 내 짐 하나 못들어서 남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내 존재가 ‘짐’ 그 자체가 됐다.
하반하 사람들 모두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4/16(월)-세월호 4주기
어제 일로 나는 신데렐라가 됐다. 튼튼해질때까지는 일만 하라는 써니쌤의 명령이었다.
신데렐라는 단어와 독해, 일기를 안쓰고 식사 준비, 설거지, 시장보기 워커일을 하루 종일 한다.
계모들 아래에 구박을 받지는 않지만 대장님과 찬희쌤께 꾸중을 많이 듣는 나름 극한 직업이다.
언제 튼튼해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평생 신데렐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냥 이참에 일을 잘 배워보기로 마음 먹었다.
재료 다루는 것도 눈여겨 보고, 요리하는 것도 잘 배워두어서 찬희쌤 다음으로 대장님 직속 조수가 되야겠다.
신데렐라로 첫 저녁 준비를 했다.
닭고기와 배추와 각종 야채들을 넣어 음식을 만들었는데, 대장님께 요리의 이름을 여쭤보니
요리는 그날 기분과 재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건 따로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대장님 요리에 이름을 붙여주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오늘 저녁 요리의 이름: ‘닭고기 아래 깔린 배추가 닭고기보다 더 맛있는 닭도리탕’- 겉보기엔 닭고기가 메인 같지만 사실은 그 아래 깔린 배추들이 훨씬 더 매력적이기 때문.
워커일을 통해 배운 꿀팁:
-야채는 보관할 때 무조건 비닐이나 포장지를 빼고 보관해야 한다.(야채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버섯을 씻을 때는 검은색 이물질이 사라지도록 잘 문질러 주어야 한다.(생각보다 버섯이 많이 더러움)
4/17(화)
이곳은 우크라이나 리비브(Lviv)다. 우크라이나에서도 가장 서쪽이다.
양옆으로 나란히 서있는 집들을 따라 골목길 걷다보면 보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가 나온다.
곳곳에서 시골 마을의 분위기가 풍긴다. 엄마가 왔다면 정말 좋아했을 고요한 마을이다.
모든 집에 개들이 한마리씩 있는데 길을 지나갈때마다 무섭게도 짖는다.
이제는 우리가 익숙해 질만도 한데 집을 매우 열심히 지키는 충성심 넘치는 개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숙소 베란다에 빨래를 널었다. 그동안은 항상 실내에서 히터에 빨래를 말렸는데 밖에 널어두니 확실히 잘 마른다. 마른 옷에서 나는 바깥 공기의 냄새가 참 좋다.
이곳은 매일매일이 일요일 같은 평화로운 곳이다.
오늘 저녁 요리의 이름: ‘먹다보면 학창시절 어머니가 자주 싸주시던 소시지 도시락 반찬이 떠올라 눈물이 울컥 차오르는 소시지 케찹 볶음’
대장님께 전수 받은 생존 비법:
<산에서 목이 마르면?>
방법1) 고여있는 물이나 계곡물을 받아 침을 뱉어본다.(가래침은 안됨)-침이 옆으로 퍼지면 마셔도 되는 물이다.
방법2) 돌이나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을 30분에서 1시간 가량 통에 받는다.(물이 쬐끔쬐끔씩 떨어지기 때문)-무인도에서 살아남기에 보면 통에 자갈과 흙을 넣어 물을 정화한다고 나오는데 그것보다 바위 틈 사이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게 더 좋다고 한다.
워커일을 통해 배운 꿀팁:
-감자나 호박 같은 재료는 상온에 보관해도 된다.(여름에도 ok)
-두명 이상이 설거지를 할 때는, 큰 냄비 같은 것에 따로 물을 받아놓고 거기서 퐁퐁으로 그릇을 비누칠하고 다른 사람이 싱크대에서 그릇을 헹구면 좋다.
4/18(수)
조깅하면서 공원에서 이런 표지판을 봤다.
해석하자면 ‘인간이면 쓰레기를 버려라’-즉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매우 신박한 우크라이나 공익광고인 것 같다.
우크라이나 시장을 드디어 방문했다. 헝가리에서 한번, 슬로바키아에서 한번 시장을 다녀왔는데 폴란드에서 시장을 못가본게 정말 아쉽다. 각 나라에서 적어도 한번은 시장 구경을 가보는게 나의 목표다.
이번에 간 마켓은 몰 안에 있는 깨끗하고 좋은 마켓이었다.
고기 10kg을 샀다. 10kg이면 우리집에서 6개월은 쟁여놓고 먹을 양인데, 하반하에서는 한끼 식사다.
10kg을 달라고 하자 고기 코너 아가씨가 깜짝 놀랐다.
저울에 고기를 아무리 올려도 10kg이 안돼서 아가씨가 당황한 듯 보였다.
카트 가득 담긴 고기들을 통해 23명이 함께 한끼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만두를 자주 먹는 것 같다. 만두를 많이 판다.
지난번에 먹어봤는데, 겉반죽은 만두같고 속은 송편과 비슷한 맛이다.
우리와 비슷한 음식을 이곳 사람들도 먹는다는 것에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토끼 통조림을 발견했다. 사실 토끼 고기도 발견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토끼고기를 즐겨먹는다고 한다.
먹어볼 의향은 없지만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여기는 비닐과 함께 비닐 장갑도 이렇게 걸려있다.(우크라이나 마켓은 모두 이렇다)
비닐을 뒤집어서 음식을 집고 바로 비닐에 넣으면 될 텐데 굳이 비닐 장갑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
만약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가르쳐주고 싶다.
하기스매직팬티는 정말 세계적인 기저귀인가 보다. 이곳에서도 기저귀 코너는 절반 이상이 하기스로 진열되어있다.
오늘 저녁 요리의 이름: ‘입에 넣자마자 육즙이 터져나와 입 안이 흥건해지는 느끼느끼 삼겹살’
워커일을 통해 배운 꿀팁:
<고기 손질법>
고기를 손질할 때는 고기의 결과 반대방향으로 고기를 썰어준다.-그래야 씹는 식감이 좋다.
<배추 손질법>
1.맨 겉의 세겹정도를 떼어내며 배추를 찬물에 씻는다.
2.세겹을 떼어내고 남은 배추는 통으로 물로 살짝 씻어준다.
3.배추를 한겹한겹 다 떼어낸다.
*내 경험으로는, 배추를 떼어낼 때 잎파리 부분을 보면 어떤게 한 포기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배추심지를 보면 한포기를 구분하기가 쉽다.
<파 씻는법>
1.파의 뿌리부분을 모아 잡는다.
2.파가 갈라져 나오는 부분을 특히 주의해서 닦아준다.(그 사이사이에 모래알갱이들이 많음)
*파 뿌리쪽을 잡고 닦아주면, 물이 쭉 내려가면서 아래까지 잘 씻긴다.
4/19(목)
아침 장을 보러 민승쌤과 마켓에 갔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빵을 하반하 식구들에게 먹이기 위해 우리는 빵을 사자마자 달렸다.
(첫번째 사진은 민승쌤이 직접 빵이 따뜻한지 확인하는 장면이다)
양쪽 어깨에서 구수한 빵의 열기가 올라왔다.
한 점 떼어먹고 싶었지만, 식구들 입에 들어가기 전에 혼자 먹을 수는 없는 터.
침을 꿀꺽꿀꺽 삼켜가며 가방을 어깨에 꼭 메었다.
철로를 따라 10분을 달려서 숙소에 도착했다.
따뜻한 빵을 받고 흥분해하며 손을 뻗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했다.
식구들 입에 따뜻한 빵을 넣어줄 수 있어 기뻤다.
신기하게 이곳에는 흑임자 빵이 정말 많다. 정확히 흑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맛과 생김새가 흑임자와 유사하다.
흑임자가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도 있다니 매우 반갑다.
오늘 저녁 요리의 이름: ‘버섯즙을 베이스로, 뜨거운 야채와 단호박을 곁들인 닭고기+갈비 collaboration dish’
4/20(금)
동네 학교에서 북공연을 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는 학교였다.
친구를 한명 사귀었는데 이름은 마리아고 10살이었다. 가져온 기념품 중 거울과 핀을 줬다.
메일을 못받은게 아쉽지만 그래도 통성명을 한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써니쌤과 대장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우리는 일주일 전, 아우슈비츠로 가는 버스에서부터 계획했던 서프라이즈 파티를 실현시키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에는 축하송을 부르며 케익을 간단히 전달해드렸고, 본격적인 서프라이징은 저녁식사와 함께 시작됐다.
우리는 예쁜 꽃으로 테이블을 장식하고 잔잔한 사랑노래를 틀었다.
한찬희 주방장님께서 메인 셰프를 맡으셨고 정우진 웨이터가 서빙을 했다. 메뉴는 코스요리.
식전 빵-연어말이-구운 버섯 샐러드-크림 파스타-티본 스테이크-마카롱과 하트 케이크.
정말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분위기와 요리였다.
우리는 써니쌤과 대장님이 식사하시는 동안 앞에 나가 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불렀다.
부모님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엄마아빠 생신, 크리스마스는 초등학교 3학년 이후 7년간 내게 가장 부담이 되었던 날들이다.
한달 전부터 어떻게 준비해야하나 고민하고, 선물을 알아보고, 이벤트를 기획했던 때가 떠올랐다.
가끔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오실 때에 맞춰 촛불을 켜놓고 기다리며, 차 소리가 들릴때마다
심장이 쿵쾅쿵쾅하는 그 시간이 너무 설레고 좋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며 기뻐하는 엄마,아빠의 모습을 볼때는 더없이 행복했다.
내가 찬희쌤처럼 요리를 잘해서 이렇게 더 멋진 이벤트를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이벤트의 크기가 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깥에서 사온 케익과 선물을 드리는 것이 다였지만,
찬희쌤은 정말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대접하셨다.
물론 어떤걸 선물하든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같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대장님, 찬희쌤께 열심히 요리를 배워서 다음 기념일에는 나도 꼭 코스요리 깜짝 이벤트를 해봐야겠다.
오늘 저녁 요리의 이름: 볼로녜즈(이미 음식 이름이 있어서 따로 지을 수 없었음)-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스파게티다. 고기를 주제료로 한 스파게티로 소고기 간고기와 토마토, 마늘, 양파만 들어간다(버터도 큰 역할을 함).
음식이 서빙될 때 소스를 면 위에 올리기만 하고 버무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스피킹:신이 있다? 없다?>
저는 엄마 뱃 속에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17년간 교회에 다녔습니다. 물론 제가 선택한 종교가 아니었고, 저는 가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가듯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곤 했습니다. 쉬는 날 아침까지 늦잠과 휴식을 포기해야 하는게 너무 싫었고,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장황한 설교도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교회 다니기를 싫어하면서도 저는 늘 어렵고 힘들때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누군가는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이기적인 기복 신앙이라고 하겠지만, 17년간 저는 이렇게 하나님과 소통해왔고 하나님은 언제나 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들어주셨습니다.
제가 처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생긴건 9살 때였습니다. 수영대회에 나가기로 했는데, 전날 저녁 걱정이 되어 펑펑 울었습니다. 대회에서 잘 못하면 어쩌나, 그냥 내일 안나가면 안되나. 온갖 걱정들에 묻혀 덜덜 떨었죠. 그날 밤, 엄마와 기도를 하고 잤는데 다음날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초등 저학년 자유형 부문에 등록을 하러 갔는데, 저를 포함해서 선수가 총 3명 밖에 안되지 몹니까? 어렵다는 평형 부문에도 7명 이상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말입니다. 중간에 포기하지만 않아도 동메달은 따놓은 단상이었습니다. 대회가 시작되고 모두 열심히 나아가던 중, 셋 중 가장 앞서가던 아이가 물을 마셔서 중간에서 레일을 잡고 헐떡였습니다. 마침 이곳 수영장 물이 소금이 들어간 바닷물 비슷한 것이어서 그 아이는 시합이 끝날때까지 다시 출발하지 못했죠. 그리고 다른 한 아이는 머리를 물 깊숙히까지 넣지 못해 속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몸집이 작았고 수영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일등으로 달리게 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저는 이때 이 신기하고,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일을 겪은 후, 하나님께서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힘들때, 걱정되는 일이 있을때면 제일 먼저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체육 수행평가나 시험이 있을때는 일주일 전부터 가족들을 모두 소집해 매일 저녁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농구공 10골 넣기와 배구공 20번 튀기기, 쌩쌩이 20개 하기를 모두 만점 받았다는 걸 기억하시죠? 저는 제가 열심히 노력하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신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가졌던 꿈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학생회장이 되는 거였어요. 입학식 날 앞에 나와 인사하는 것도 멋져보였고, 학교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도 많았거든요. 2년을 기다려 정말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 학년이 됐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모님이 두분 다 맞벌이셔서 함께 나갈 러닝메이트를 구하는데 제약이 있었습니다. 회장자리를 포기하고 부회장으로 나가야 하나, 나같은 조그만 애가 회장을 하겠다고 하면 비웃을까, 그냥 포기해야 하나. 이런 저런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입후보 마감기한이 가까워져왔는데, 저는 막판에 아슬아슬하게 함께 나갈 좋은 친구들을 구하게 됐습니다. 저는 회장후보로 나갈 수 있게 됐고, 매우 기적적이게도 전제의 절반 이상의 표를 받고 회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들이 이렇게 가능하게 된 것 또한 신께서 간절한 제게 내려주신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신을 부정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신의 손길들을 경험했습니다. 신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기도했습니다. 제발 아침운동이 취소되게 해달라고.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제 안에는 신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스피킹 후 느낀점: 나는 오직 내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 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는데, 다른 친구들은 정확하고 객관적인 증거들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나의 세 근거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나의 경험이라 서로 다른 근거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받기는 했지만, 이 이상으로 내게 신에 대한 확신을 준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신이 있고 없고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존재하거나 아무도 볼 수 없도록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는 신이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스피킹을 통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신께 의지해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필요할 때만 찾지 말고 교회를 열심히 다녀야겠다.
첫댓글 은재가 해주었던 수많은 서프라이징을 기억해본다. 덕분에 벅차고 행복했던 순간들^^흐흐흐
너에게 매트를 깔아주고 배낭을 대신 져주고 겉옷을 덮어준 고마운 손길들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신데렐라 일을 열심히 해야겠구나^^
요리 이름도 많이 지어주라.
읽다가 빵터짐 ㅋㅋ
정말 생생하고 재미있는 글이네.
엄마 아빠는 몇 번씩 읽고 있어 :)
경험하는 작은 일 하나 하나, 만남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특별한 경험,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 가는 은재 모습이 정말 대단하구나....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 마다 가능하다면 시장을 꼭 가보는 것, 나도 정말 좋아하는 일인데...
올 해는 은재 덕분에 그 즐거움을 누리는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되었네~ 고마워~ ^^
근데..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한게 말이야~~'학창시절 엄마가 자주 싸주시던 도시락 소시지반찬이 떠올라 눈물이 울컥 차오르는 소시지 케찹 볶음' 말이야~~
넌 도시락 세대가 아니라 급식 세대인데
그걸 어떻게 알았니? ㅋㅋ
엄마는 '입에 넣자마자 육즙이 터져나와 입안이 흥건해지는 느끼느끼 삼겹살'이 제일 맛있을거 같아.
빵을 양쪽 어깨에 매고 갓구운 빵의 온기가 사라질새라 달려가는 그림은 정말 생생한 표정과 따뜻한 마음과 약간 코믹한 분위기가 느껴져 자꾸 보게 된다.
네가 깜짝 놀랄 소식 하나 전하면
아빠가 빵 굽는 수업을 9월부터 다니기로 했다는거 ㅋㅋ 아빠 빵의 이름도 지어줄거지?
이번에도 다양한 소식과 생생한 인터뷰 덕에 한층 더 친근해진 느낌이야~ 따뜻한 빵을 먹이기 위해 뛰었다는 민승샘과 은재의 마음이 참 이쁘고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
매주 은재 보고서를 보면 하반하생활을 세심한 부분까지 잘 알수 있어서 항상 기대하며 보게되네.
음식 재료 손질부터 보관 방법까지 깨알 꿀팁들과
여행지에서의 만남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인터뷰 형식으로 남기는 등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은재는 체력도 키우면서 무리하지말고 항상 건강 잘 챙기렴^^
정리의 달인 은재!~ 어쩜 이리 정리를 잘했는지...
"걷는데 갑자기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막 떠올랐다. " 이런 지경까지 갔음에도 정리를 어찌나 꼼꼼히 잘해주었는지 새삼 은재한테 고마움을 느낀다. 이렇게 정리하는 습관은 이미 잘 관리되고 있으니 이제는 체력을 키우는 운동습관을 더 추가한다면 은재의 삶이 더 윤택해질것 같구나~~
매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습관이 멋져요.
출판사 연락만 하면 책이 되겠네요.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