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주요명소
울진 금강소나무림
태백산맥줄기를 타고 금강산에서 울진, 봉화와 영덕, 청송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는 주위에서 흔히 보는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고 마디가 길며 껍질이 유별나게 붉은데,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소나무(金剛松) 혹은 줄여서 강송이라고 학자들은 이름을 붙였으며, 흔히 춘양목(春陽木)이라고 더 널리 알려진 바로 그 나무이다.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의 나무로 쳤다. 세계 최고! 금강소나무 서식지 울창한 금강소나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금강소나무 집단 분포지는 숙종때 황장봉산으로 지정 관리 하였으며, 1959년 육종림으로 지정된 후 2001 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할 정도로 유명한 숲으로 금강소나무 미인송 (520년 된 할아버지 소나무)이 있는 지역으로서 특별 보존 관리하고 있는 청정지역이다.
500년이 넘은 천연수림의 소나무 터널을 통과하면서 금강소나무들의 열병 사열을 받아 볼 수 있다. 소나무 숲이 품어내는 식물성 호르몬인 피톤치드도 느껴볼 수 있다.
울진군 서면 소광리 29
남부지방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054-780-3940~2
울진 후포항
경북 울진의 산세는 경상도의 여느 곳과 달리 우람하고 육중하다. 골이 깊어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심심산골 오지마을도 간간이 남아있다. 한 때 강원도 땅 이었다는 것이 자랑인지 한탄인지는 몰라도 그 만큼 심산유곡에 빼어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는 말로 비유되기도 한다. 동해바다 푸른 절경을 끼고 7번 국도를 따라 올라오다 보면 영덕 고래불,백석해수욕장을 지 나 울진으로 들어선다.
울진군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항구는 후포항이고, 그 바로 아래에는 고운 백사가 깔린 후포해수욕장이 있다. 여름철에는 동해안 다른 해변들처럼 들끓는 해수욕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하지만, 손꼽히는 해수욕장이고 겨울은 겨울대로 너무나 한적하 고 쓸쓸해 서럽기까지 할 만큼 해변을 거니는 맛이 각별하다는 곳이다. 이처럼 동해안의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아름다운 해변 풍광을 자랑한다.
후포 백사장을 걷다가 갈매기떼가 몰려드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리면 그건 틀림없이 후포항으 로 입항하는 어선의 기우뚱거리는 모습이고, 배가 닿는 곳이 후포항이다. 생선냄새,사람냄새가 나서 더욱 정감이 간다는 후포항은 동해바다 어족들이 없는것 없이 나 고, 여름 성수기와 명절때는 울릉도행 여객선이 1일 1~2회 뜨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수평선 너머 울릉도 뱃길도 가늠해 본다.
또 후포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바라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는 후포등대가 서있다. 후포항 뒷편의 일명 등기산(해발 64m) 작은 언덕위에 세워진 후포등대는 울진바다를 운항하 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 뿐 아니라 차를 타고 가더라도 멀리서 후포등대가 보이면 후포에 다 왔구나 하는 인식이 들만큼 그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후포등대는 후포항과 동해바다를 관망하는 전망대 역할도 한다. 후포항 부두끝자락에서 동북쪽으로 난 해안길을 조금 따라가다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후포항로표지관리소(500m)" 라는 이정표가 있는 왼쪽 콘크리트길로 들어서면 별로 어렵지 않게 오른다. 정상에는 어린이놀이시설과 휴게매점이 있고, 등대관리소 담벽을 돌아 남쪽언덕에서면 후포, 울진일원의 경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한쪽은 오로지 파란 바닷물 너머 아득히 수평선만 보이고, 좌우로 들쭉날쭉 이어진 울진 바 다의 해안절경이 발아래 후포항 전경과 여객선 터미널, 그리고 후포해수욕장과 멀리 영덕강 구 해안까지 이어지며 눈길을 이끌어간다. 그와 반대로 뒤를 돌아보면 백두대간의 낙동정맥 굵은 산줄기가 장벽처럼 막아서는데, 특히 한겨울 하얗게 눈덮인 울진 백암산 (1,004m) 의 웅장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파란 바다풍경이 어우러진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좀체로 찾아보기 어려운 풍광이라고 자랑할만 하다.
이른아침 때를 잘 맞추면 후포항 부둣가에서 고깃배에서 부려지는 각종 어패류와 어시장 풍 경을 구경할 수도 있고 싱싱한 횟감이나 어패류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즐비하게 늘어서 후포항 횟집촌도 동해안에 손꼽는 규모를 자랑한다. 주변 볼거리로 최남단 관동팔경인 평해 월송정과 구산해변, 북쪽의 기성 망양바닷가,그리고 동해안 제일을 자랑하는 백암온천 등이 이어져 해안드라이브와 함께 많은 볼거리와 추억거 리를 담을 수 있다.
울진군 후포면 후포1리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054-785-6903
고포마을
고포마을은 경상도의 가장 북쪽 마을이자 강원도 동해안의 가장 남쪽 마을이기도 하다. 전체 2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동네 하나가 두 개의 도에 걸쳐 있는 것이다. 즉, 동네의 한복판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경계로 해서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2리이고, 남쪽은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6리이다.
그러나 주민들 간에는 같은 마을 사람이라는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다. 예컨대 월천2리에 하나뿐인 포구를 나곡6리 주민들도 아무 거리낌없이 이용하고, 월천 2리에 사는 사람들의 농토는 대부분 나곡6리에 몰려 있다. 서로 말씨나 풍속도 똑같을 뿐만 아니라 마을 잔치를 열거나 미역을 채취하는 따위의 공동작업도 도(道)의 구분없이 전체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다.
그러나 행정구역의 구분은 아주 엄격해서 주민들이 감내하는 불편이 이만저만 한게 아니다. 바로 앞집에 전화를 걸 때도 지역번호를 먼저 눌러야 하고, 군청이나 읍.면사무소에 볼 일이 있거나 선거를 할 때도 이 집은 삼척, 저 집은 울진으로 나가야 한다. 마을 이장도 두 사람이다. 또 마을에서 남쪽 5㎞ 쯤 떨어진 북면 부구리에는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섰는데, 발전소 인근 마을에 대한 지원금도 월천2리 주민들에게는 한푼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특이 상황이 외지인들에게는 흥미로운 얘깃거리로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고포마을의 주민들에게는 하루 빨리 벗어나고픈 현실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주민투표를 실시 결과 월천
2리의 주민 가운데 90% 이상이 나곡6리로의 통합을 찬성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진정서를 청와대 등의 행정관청과 기관에 수십 차례나 접수시켰다.
마침내 문민정부시절에 대통령이 직접 월천2리와 나곡6리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를 해당 부서에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내무부(행정자치부)의 담당실무자가 후속 조처의 실시를 계속 미루다가 결국 유야무야 돼버렸다. 지금도 이곳 주민들은 그 실무자가 강원도 출신이어서 통합이 무산됐다고 믿고 있다. 게다가, 삼척시에서도 "마을의 통합은 반대하지 않지만, 삼척시의 어로구역은 한 치도 내줄 수 없다"면서 사실상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바닷가까지 뻗어내려간 산자락 아래의 작은 골짜기를 비집고 들어 앉아있다. 주민들이 처한 현실은 참으로 답답하지만, 마을의 정경은 한없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동쪽의 해변을 제외한 서·남·북쪽이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어서 고향 같은 아늑함도 느껴진다. 그리고 마을 앞 바닷가엔 콩알만한 갯돌과 고운 모래가 뒤섞인 아담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곳곳에 갯바위들이 많아서 해수욕과 갯바위 낚시를 즐기기에 좋다. 그냥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좋지만, 무더운 여름철이라면 해변에다 텐트를 치고 하루 이틀쯤 머물고 싶은 마을이다.
이곳은 원래 돌미역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고포미역은 임금께도 진상했던 명품이다. 이곳 바다는 수심이 얕고 물빛이 맑아서 햇빛이 물속 깊숙이 비춘다. 게다가 동해안에서는 조류가 가장 빨라서 양질의 돌미역이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고포미역의 명성이 드높다보니 고포 미역에다 슬쩍 타지의 미역을 끼워 파는 얌체 상술도 적지 않다. 주민들 말로는 "고포어촌계"의 직인이 찍혀 있는 것이 진짜 고포미역이라고 한다.
울진군 북면 나곡리
울진군청 해양수산과 054-789-6860
죽변 등대
호미곶을 제외하고 동해안에서 바다로 가장 많이 뻗어 있는곳이 죽변곶이다. 파도소리와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이 곳에 죽변 등대가 우뚝 솟아있다. 죽변은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붙여진 지명이다. 특히 이 곳에 자생하는 소죽(小竹)은 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어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보호하였다고 전한다.
이 등대는 1910년 11월 24일 건립되었으며, 구내에는 1911년 일본국 수로부에서 설치한 수로측량 원표가 남아있다. 죽변은 우리나라 동해안 항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울릉도와는 직선거리상 가장 가까운 곳이다.
등탑의 높이는 16m로 백색의 8각형 콘크리트구조로 되어 있으며, 불빛은 20초에 한번 반짝이며 약 37㎞까지 불빛이 전달된다. 등탑은 2005년 9월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어있다. 현재 등탑 내부 천정에는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원래는 대한제국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한다. 등대 주변풍광 또한 아름다워 2004년 이곳을 배경으로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를 촬영하였다.
* 최초점등일 - 1910년 11월 24일 * 구조 - 백8각콘크리트(16m) * 등질 - 섬백광 20초 1섬광(FlW 20s)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산 1번지 죽변항로표지관리소 054-783-7104
* 특징 - 죽변만은 국토의 중간지점으로 용의 꼬리 형상의 용추곶에 등대가 위치하여 연안표
지을 역할을 하고 있다.
민물고기 생태체험관
경상북도 울진에 자리잡은 민물고기연구센터는 국내 최초로 살아있는 민물고기를 전시하고 있다.지난 `99년에 전국최초로 100여평 규모의 민물고기전시관을 개관·운영하여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아 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06.11.8에 기존 전시관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민물고기 생태체험관을 건립·개관 하였다.
617평의 실내공간에 마련된 체험관에는 우리나라 및 외국에서 서식하고 있는 119종 4,400여 마리의 민물고기가 실제로 헤엄쳐 다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민물고기가 표본병 안에 진열되어 있다. 야외생태학습장 및 야외수조에서는 비단잉어, 향어, 대두어 같은 큰 물고기와 산천어, 금붕어 같은 작은 물고기가 사이좋게 헤엄쳐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물고기 먹이 주기 등 야외현장체험학습장이 마련되어 있어 새로운 문화, 학습,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멸종위기에 있는 민물고기를 학술적 으로 연구, 보존하며, 어류생태계보호 및 복원사업, 어업생산 활동지원으로 농어가의 소득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물고기 생태체험관 054-783-9413~4
관람문의 054-783-9413~4, 안내 054-785-8042
응봉산(경북 울진군)
응봉산 998.5m 백두대간 낙동정맥으로 동해를 굽어보며 우뚝 솟아 있어 산세가 험준하고 변화스럽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조씨(趙氏)가 매사냥을 하다가 매를 잃어버렸는데 산봉우리에서 매를 쫓아 이곳을 응봉(鷹峯)이라 부르고 그래서 속칭 매봉산이라 부른다.
산맥이 남서쪽 통고산으로 흐르고, 동쪽 기슭에는 덕구계곡이 있고 그 너머 남동쪽에는 구수곡계곡이 있어 맑은 물이 항상 흐르고 있다. 특히 덕구 및 구수곡계곡의 상단부에는 울진금강송 천연림이 있으며 동남쪽 계곡절벽 등에는 천년기념물인 산양이 서식한다.
서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가곡리에 면해 있다. 응봉산 정상에서 동해바다가 보이며 등산로가 있어 등산을 즐길 수 있고 주변 관광지로 덕구계곡, 덕구온천, 구수곡자연휴양림이
있으며 가까운 거리에 죽변항구가 있어 산림욕, 온천욕, 해수욕을 고루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웰빙 관광지이다.
울진군 북면 덕구리
* 울진군청 산림녹지과 054-789-6828 * 울진국유림관리소 054-780-3920~3
해월헌
해월헌은 선조 21년(1588)에 건립되어 헌종 13년 (1847)에 중수되었고 해월 황여일의 별구였다고 하며, 기성면 사동리 산정에 있었으나 후손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한다. 해월헌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측면의 앞쪽 1칸은 마루를 깔고 난간을 돌렸으며 지면에서 떨어져 지었다. 황여일의 자는 회원, 호는 해월, 본관은 평해이다.
그는 응경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문장으로 이름 났고 선조 9년(1576) 사마시를 거쳐 1585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여러 청환직을 지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원수 권율의 종사관으로 공을 세우고, 동 27년 형조정랑을 지낸후 길주목사, 동래진 병마첨절제사를 거쳐 참판에 이르렀다.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번지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054-785-6922
운암서원
이 서원은 조선 순조(純朝) 26년 1826) 온정면 반암동에 창건하여 백암(白岩) 김제(金濟), 물제(勿薺) 손순효(孫舜孝) 양현(兩賢)을 봉향하다가, 순조 33년(1833) 향토인들의 주도로 온정면 노은동에 이건하였다. 그 후 고종5년(1868)에 서원이 철원되어,고종 15년(1878) 본원 유생들의 주창으로 현 구산리에 이건하고 백계 김회 선생을 추배하여 배향하고 있다.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중정일에 행한다. 서원내 소재한 해단은 백암 김제선생 치제단으로 조선 정조 13년(1789) 평해 유림에서 제단을 설치하여 선생의 불사이군의 정신을 기리며 매년 음력 9월 24일 지체하고 있다.
* 김제 선생의 호는 백암, 시호는 충개이며 선산인이다. 고려말 평해군수 재직시 고려의 망국을 통분히 생각하고 시 한수를 써서 벽에 걸어둔 채 동해로 행방을 감춘 고려의 충신이며, 두문동칠십이현 중의 한 분이다.
* 손순효 선생의 호는 물제, 시호는 문정공이다. 조선 세조 3년 (1475) 문과중시에 급제, 성종때 전한 겸 집의, 형조참의를 거쳐 상호군, 도승지 등을 지냈다. 선생은 성리학의 대가였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화죽에 능하였다.
* 김회 선생의 호는 백계이다. 힘란때 비안현 의병장으로 출정하여 상주 단밑에서 순절하니 호조정랑에 증직 받았다.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운암서원 054-788-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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