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도립공원
유네스코 등재
청량산 497m
수어장대
남한산성 남문 북문
남한산성 수어장대 산행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산1
하늘에서 만들어준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
남한산성 산행코스
단대오거리역 ㅡ남한산성 유원지 ㅡ
남한산성 남문 ㅡ남한산성 로터리
ㅡ남한산성 북문 ㅡ수어장대 ㅡ
청량산 정상 ㅡ남한산성 터널 ㅡ
남한산성 유원지 ㅡ단대오거리역
ㅡ원점 산행 ㅡ
약 14km 약 6시간 소요
남한산성은(사적)는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있는
청량산의 주봉우리를 중심으로
뻗어있는 봉우리의 능선을
연결한 포곡식의
대형 석축산성이다.
인조14년(1638년) 병자호란 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굴욕적인 화의를한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성은 한성백제의 온조에
의해 처음 쌓아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통일신라 때 당의 침공에 대비해
쌓은 주장성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성의 규모는 전체 둘레 11.76km
(본성 9.05km, 외성 2.71km)이다.
남한산성은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반해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고 적의 접근이
어려운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로써
단 한 번도 전투 중
함락된 적이 없는 성이다.
남한산성 남문 지화문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남문(南門)이다
남한산성 서남쪽
해발 370m 지점에 있다.
선조 때 남문·동문 등을 수축
(修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정조 3년(1779년) 성곽을 개축
하면서부터 지화문이라 불렀다.
남한산성 행궁은
조선시대 20여개의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까지
갖춘 시설이 들어설 정도였다.
인조에 의해 대대적인 수축사업이
이루어진 뒤에도 조선 후기까지
지속해서 정비가 이루어져
우리나라 산성 중 각종 시설이
잘 완비된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는 성벽과 여장, 행궁지,
동 · 서 · 남문루와 장대 · 돈대 ·
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남아있다.
남한산성 도립공원은
경기도의 대표적인 도립공원으로
서울과 성남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근린자연공원이다.
산의 정상부를 포함한 내부는
상대적으로 완경사의 평지
그리고 외곽은 급경사의 사면으로
이루어진 국방상 천연 요새지의
특성을 살려 산성을 쌓았다.
산의 위용도 좋지만, 역사적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능이 오리백숙
손질한 오리를 능이 부추 마늘
등과 함께 푹 끓인 백숙 요리.
손질한 오리에 부추와 능이버섯를
넣어 끓인 백숙 요리이다.
오리고기는 최근 여름철 보양식으로
알려지면서 각광받는 식재료로 백숙,
탕, 구이 등 여러 방법으로 조리할 수 있다.
그러나 손질을 잘못할 경우,
누린내가 심하여 조리 시
유의하여야 하며,
마늘, 우유, 레몬 등을 사용하거나
조리 전에 한 번 데쳐주는 등 누린내
를 잡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리백숙은 더위에 지친
여름철 보양식으로 인기가 있다
오랫동안 조리하여 국물 맛이
깊고 고기가 담백하면서 쫄깃하다.
남한산성 북문 전승문
북문(北門)이다.
남한산성 북쪽 해발 365m
지점에 있는 북문으로,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다.
인조 2년(1624)에 신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한 후 전승문(全勝門)
이라 이름 붙였다. 현재
편액은 걸려 있지 않다.
성문은 홍예기석 위에 10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든 홍예문으로
높이 3.65m·폭 3.25m이다.
성벽의 두께는 7.1m에 이른다.
단층의 문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며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을 올렸고,
주심포 양식의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남한산성 서문 우익문
서문(西門)이다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에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부른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성문은 반원형 홍예문이며
높이 2.5m·폭 2.1m로 작고 좁다.
남한산(南漢山)은
북한산에 대칭되는 이름으로
한강 남쪽의 산, 높은 산을 의미한다.
남한산은 산의 사방이 평지여서
밤보다 낮이 길다고 하여
일장산(日長山),
주장산(晝長山)이라고도 한다.
광주산맥의 영향 아래 있으며
주봉인 청량산(497.9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 (467.6m),
동쪽으로 망월봉(502m)과
벌봉(515m)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성곽 내 평균고도는 350m로
성곽외부의 가파른 경사와는
대조적으로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남한산성면 산성리 815-1
남한산성에서 수어청의 장수(將帥)가
군사를 지휘하던 군사시설이다.
2021년 12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수어청의 장수(將帥)가
서장대라고도 불렸으며,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에 자리하여
성의 안쪽과 바깥쪽을 굽어볼 수
있는 관측소의 역할을 하였다.
수어장대는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개축할 때 함께
건립되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후금의 군사적 압박, 이괄의난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이에 조정은 왕실의 보전과
한성의 수비를 위한 보장처
(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한성과 가깝고 방어요새로 적합한
남한선성을 왕실의 보장처로 삼았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정비하고,
조선 왕실의 보장처로 갖추어야 할
여러 행정, 군사 시설을 설치하면서
군사 지휘소인 수어장대도
함께 건립되었다.
17세기 조선의 국내외적인
불안한 상황에서 이에대한
대응으로 세워진 군사시설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 내에서
연무관과 함께 대표적인 군사
건축물로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남한산성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로서
희소가치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21년
12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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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도립 공원 ㅡ유네스코 등제ㅡ 남한산성 행궁 ㅡ남한산성 안에 있는ㅡ 조선시대의 행궁
남한산성 행궁 南漢山城 行宮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의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시대의 행궁터. 사적 제480호이다.남한산성의 행궁은 1624년(인조 2) 7월에 착공하여 1626년 1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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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내여인아ㅡ현 철 노래ㅡ8월의 마지막더위ㅡ잠시라도 잊으시라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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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도립공원 ㅡ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ㅡ성곽따라 한바뀌ㅡ남문.동문ㅡ북문.서문ㅡ수어장
남한산성南漢山城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사적.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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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이름의 조상 민망한 이름의 조상 ㅡ역사 이름 ㅡ한국사 속 실제로 있었던ㅡ'민망' 이름 8
민망한 이름의 조상역사 이름 한국사 속 실제로 있었던 '민망' 이름 8명을 소개합니다.1. 김자지(金自知, 1367~1435)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1428년(세종 10) 지금의 법무부 장관과 비슷한 형조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