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이 소란스럽다. 창문 너머로 ‘깍깍깍’ 경쾌한 까치 소리에, ‘까악 까악’ 음산한 까마귀 소리, 틈새를 비집는 ‘뻐꾹 뻐꾹’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왁자하다. 온종일 새들의 지저귐으로 내 아파트에는 자연의 하모니가 넘쳐난다.
우리 부부가 걷기 운동을 하는 뒷산 오솔길은 소나무 군락지다. 몇 해 전만 해도 청설모가 이 지역을 주름잡았다. 언젠가 까치가 나타나 청설모를 떼로 공격하더니 숲의 주인이 바뀌었다. 요근래 오솔길 아래, 곧게 뻗은 소나무 우듬지에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 특이하게도 까마귀가 그 주위를 맴돈다.
오늘은 평생교육원에서 까치에 대한 글을 합평했다. 노련한 여류작가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를 해서 우리 집 뒷산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하다. 휴식시간에 집 뒤의 요란한 까치 소리 이야기를 했더니 산란 철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나는 까치집 주위를 맴도는 까마귀가 생각나서 까치와 까마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고 물어봤다. 옆에 있던 남자 문우가 한 마리씩 맞붙으면 아무래도 덩치가 큰 까마귀가 이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까마귀는 혼자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떼로 몰려다니는 까치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어느 날 시골 마을 감나무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나 홍시를 파먹고 있자 텃새인 까치 부부가 쫓아내더라고 한다. 그 이후로 까마귀는 감나무 근처에 얼씬도 않더란다. 까치가 둥지 주위에서 얼쩡거리면 까마귀를 소 닭 보듯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손자가 주말을 이용해 집에 왔다. 나는 손자가 오면 주려고 맛있는 과자를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딸은 아토피에 걸릴까 봐 단속이 심하다. 까치 소리를 들려주겠다며 손자의 손을 잡고 슬며시 서재로 쓰는 작은방으로 데리고 갔다 창문을 열고 새소리를 들려주면서 숨겨 놓은 과자를 슬쩍 입에 넣어 줬다. 난생처음 단 것을 맛본 손자 녀석은 까까가 먹고 싶어 별짓을 다 한다. 그 방에만 가면 깍깍거린다. 볼 일이 없어도 저 혼자 가서는 깍깍거리며 할아비를 찾는다. 나는 딸에게 혼날까 봐 딴전을 피우며 얼른 데리고 나왔다.
내가 즐겨보는 블로그에 뻐꾸기에 대한 수필이 한 편 올라왔다. “뻐꾹 뻑뻐꾹”, 남의 집에 알을 낳은 뻐꾸기가 어미 품으로 찾아오라고 애달피 우는소리라고 한다. 새끼가 어미를 찾아오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 피를 토하듯 울어댄다고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아본 권위 있는 자료에는 울음소리의 의미가 글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 “뻐꾹뻐꾹”은 수놈이 짝짓기를 위해 암놈을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간혹 “뻑뻐꾹”하고 울기도 하는데 암컷이 가까운 곳에 있을 때 수놈이 내는 소리라고 한다. 암놈은 그저“삐삐삐삐”거린다고 하니 해외 입양아를 다룬 감동적인 글이 뻐꾸기 울음소리의 오류로 희석되고 말았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멧새, 때까치 등 소형 조류에 탁란(托卵)하는 여름새이다. 5월 하순에서 8월 상순까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남의 집에 1개씩, 도합 10개 남짓의 알을 낳는다. 새끼는 포란 후 열흘이면 부화되고, 태어나자마자 같은 둥지에 있는 알과 새끼를 모두 밖으로 밀쳐내고 둥우리를 독점한다. 둥지가 꽉 찰 정도로 자라면 키워준 어미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날아간다. 기르는 어미 새도 새끼의 덩치가 유별나서 내 새끼일까 하고 의구심을 품는다고 한다. 그래도 먹이를 물어다 주며 양육하는 것은 자기 핏줄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어서 그렇단다.
뻐꾸기의 얄미운 짓거리를 보니, 김동인의〈발가락이 닮았다〉는 단편 소설이 생각난다. 가난한 월급쟁이인 M은 서른두 살의 노총각이다. M은 혈기를 이기지 못해 유곽으로 달려가곤 하다가 성병으로 인해 생식능력을 잃고 만다. 결혼을 한 M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그 아이가 반년쯤 자랐을 때, M이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이를 안고, 친구이자 소설 속의 화자인 의사를 찾아온다. M은 아들이 제 증조부를 닮았으며, 아이의 발가락이, 가운뎃발가락이 가장 긴 자신의 발가락과 닮았다고 한다. 화자는 동정을 느끼며 발가락뿐만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다고 말해준다. 집안에 남의 씨로 의심되는 자식을 들여놓고 안절부절못하는 형태가 탁란을 당한 어미 새와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뻐꾸기는 몸이 길고 다리가 짧아 구조적으로 알을 품을 수 없다. 부리조차 남달라 둥우리를 틀지도 못한다.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알을 남의 둥지에 몰래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다른 가설로는, 뻐꾸기는 아주 짧게 머무는 철새이다. 산란기에 알을 많이 낳기 위해서는 포란과 육아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다른 새의 둥지에 탁란하여 위탁모가 키우게 한다고도 한다.
탁란을 당하는 새도 가만히 손을 놓고 있지는 않는 모양이다. 흔히 뱁새라고 부르는 붉은머리오목눈이는 탁란을 당하지 않으려고 알의 색깔을 바꾸는 등 나름의 방책을 세운다. 뻐꾸기 역시 알을 비슷하게 바꾸는 등 고도의 술수로 대응한다. 높은 나무에 앉아 숙주 새가 둥지에서 언제 자리를 비우는지, 알을 몇 개나 낳았는지 면밀히 관찰한다. 체내 부화 시간까지 조절하여 최적 시간에 알을, 한 개 낳으면, 반드시 알 한 개를 제거한다고 하니 희대의 모사꾼이 따로 없다.
손자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재롱이 부쩍 늘었다. 음악 소리만 들리면 엉덩이를 흔들며 신나게 춤을 춘다. 원하는 게 있으면 거짓 울음 연기로 실소를 자아내게도 한다. 그 귀여운 모습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제 부모는 물론 할미까지 가세하여 녀석에게 점수를 따려고 별궁리를 다한다. 그래도 나에게는 손자와 교감할 비장의 무기가 있다. 내 둥지인 서재로 가면 손자도 얼씨구나 하고 뒤를 따라온다.
손자 녀석은 제 아빠 판박이다. 딸이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 아들을 둘이나 돌보고 있다고 할 정도다. 소설 속의 M과 달리, 사위는 제 자식을 보며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제대로 남겼다고 뿌듯해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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