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자칭 그리스도의 대표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 가운데 남녀들이 하늘에 적합한 사람들이 되려면 수도원에 묻혀야 한다는 아무런 모본도 주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랑과 동정심을 억제해야 한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으셨다. 구주의 마음은 사랑으로 넘쳐 있었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완전해지면 질수록 그의 감수성은 더욱 예민해지고 죄에 대한 지각은 더욱 밝아지며 고통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심은 더욱 깊어진다. 법왕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품성을 우리 구주의 품성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하늘의 왕으로 존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감옥이나 고문대에 넘겨주신 일이 있었는가? 그분께서 당신을 믿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등한히 여김을 받으시자 사도 요한은 의분을 참지 못하여 질문하였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쫓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운 눈으로 당신의 제자를 보시며 그의 과격한 정신을 책망하셨다.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눅 9:56 난외 주).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그 정신은 그분의 대표자라고 공언하는 사람의 정신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오늘날 로마교는 그의 무서운 잔학성의 기록을 변명으로 덮어 버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세상을 대한다.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차림으로 나서지만 실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지나간 시대에 존재했던 법왕교의 원칙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가장 암흑한 시대에 고안된 교리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천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도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오늘날 개신교도들이 존경하고자 하는 법왕교는 종교 개혁 당시에 세상을 지배하였고 그 당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그의 죄를 폭로하기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걸고 항쟁한 그 동일한 로마교이다. 그는 왕들과 군주들을 다스리고 하나님께 속한 권한을 가졌노라고 공언하던 동일한 교만과 뻔뻔스런 주장을 오늘날도 가지고 있다. 그의 정신은 인류의 자유를 억압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죽인 당시와 똑같이 오늘날도 잔인하고 포학하다.
법왕교는 성경의 예언이 마지막 시대에 배도하는 일이 있으리라고 말한 바로 그대로의 단체이다(살후 2:3, 4).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 데 가장 편리한 길을 취하는 것이 그의 정책의 하나이다. 그는 여러 가지 가변적인 모양 아래 변함없는 뱀의 독을 감추고 있다. “우리는 이단자나 이단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Lenfant, vol.1, p.516)고 법왕교는 주장한다. 성도의 피로 기록된 천여 년의 기록을 가진 이 세력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일부로 인정되어야 할 것인가?
가톨릭교와 개신교
천주교가 개신교와 옛날처럼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오늘날 개신교 국가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유가 없는 말이 아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법왕교에서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개신교가 종교 개혁 시대 이래 크게 타락하였기 때문에 천주교는 오늘날의 개신교와 매우 비슷해진 것이 사실이다.
개신교회들이 세상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노력해 옴으로써 거짓된 사랑이 그들의 눈을 가리워 버렸다. 그들은 모든 악을 선으로 믿는 것이 옳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필연적인 결과로서 그들은 마침내 모든 선을 악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제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어진 믿음을 옹호하는 위치에 서는 대신에 이른바 로마교에 대하여 무자비한 견해를 가졌던 것을 사과하고 그들이 완고하였던 점에 대하여 용서를 빌게 되었다.
많은 부류의 사람들, 로마교에 대하여 아무런 호감도 갖지 않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그 세력과 영향력에 대하여 별반 위험을 느끼지 아니한다. 많은 사람들은 중세기 동안에 퍼져있던 지적· 도덕적 흑암이 로마교의 교리와 미신과 압박을 조장하게 되었으므로 현 시대의 지성적 발달과 일반적인 지식의 보급과 종교 문제에 대한 자유사상의 진보 등이 편협과 압제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계몽된 시대에 그런 상태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조롱을 받고 있다. 지적·도덕적·종교적 큰 빛이 이 시대를 비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펼쳐져 있으므로 하늘로부터 오는 빛이 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주어진 빛이 크면 클수록 그 빛을 곡해하고 거절하는 자들의 흑암은 더욱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로마교가 인심을 얻는 비결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개신교도들은 법왕교의 정체를 알고 그를 싫어하며 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부하므로 그들을 진리로 인도해주도록 겸손하게 하나님께 간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깨닫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한 가지로 무지하다. 그들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양심을 진정시켜야 하므로 가장 신령적이 아닌 것, 가장 굴욕적이 아닌 것을 찾아 구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방법이다. 법왕교는 그런 사람들의 요구에 잘 맞도록 되어 있다. 법왕교는 거의 전 세계를 망라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 곧 자기의 공로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들과 그들의 죄 가운데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적합하도록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법왕교가 세력을 얻는 비결이 있다.
지적 어둠이 심했던 시대가 법왕교의 성공에 유리했던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지적 빛이 밝은 시대도 꼭 마찬가지로 그의 성공에 유리하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지나간 시대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눈이 가리워져 자기들의 발 앞에 펼쳐 있는 그물을 보지 못하고 걸려들었다. 이 시대에 “소위 과학” 이라는 인간의 그릇된 이론에 눈이 부시어 올무를 분별하지 못하고 마치 눈이 가려진 것처럼 그리로 걸어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능을 창조주로부터 받은 선물로 생각하고 진리와 의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만과 야심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들 자신의 이론을 더욱 높이기 때문에 총명이 무지보다 더욱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리하여 성경에 대한 믿음을 암암리에 손상시키는 오늘날의 거짓 과학은 암흑시대에 있어서 지식을 억제함으로써 로마교의 발전의 길을 열어 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형태로 법왕교를 받아들이게 하는 일에 성공적인 길임이 입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