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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삶 II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자꾸 기억해서 감사를 자꾸 표해보면 이제 사이언스 과학이에요. 나를 회복시켜요 지금도 기억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그때는 조례 종례라는 게 있었잖아요. 아침 시작할 때 끝날 때 칠판에 들어오시더니, 어느 날 칠판에다가 사람 인자 5자를 탁 쓰시면서 이거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을 거고, 우리 학생들이 뭐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다 쳐다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딱 사람 인자 5개 써놓고 해석해 주시던 교훈 어릴 때니깐 영원히 입력이 되지요 혹시 사람 인자 5개의 뜻이 뭔지 아세요.
교수님 역시 사람 인 자 5개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사람답다는 게 뭘까요? 사람답다는 게 뭘까? 그 질문을 가슴에 안고 오늘 강의를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엊저녁 탈벤 샤하르의 행복이 뭐냐 하는 에 그 질문을 가지고 시작했었습니다. 그가 학문적으로 정의하기를 사실 이 하나의 문장이 나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발표된 이 학문 세계에서 발표한 세계적인 학술지의 수많은 실험 논문들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그가 즐거움과 의미에 대한 전반적 경험 즐거움은 상당히 정서적인 내용이지만요 즐거움은 상당히 선택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똑같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슬프게 바라볼 수 있고 누군가는 즐겁기로 선택할 수가 있는 거지요 그쵸. 2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는 사람들 에 그들의 선택이 다 다르잖아요. 두 번째 의미가 뭘까? 즐거움이 굉장히 정서적인데 거기에 선택적이고 의지적인 어떤 사람의 작용한다는 것을 생각함과 동시에 의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굉장히 강력한 힘의 의미예요. 우리가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렇게 하고 안 합니다.
거기에 의미가 있다고 하면 내 동기가 일어나게 되는 거지요 그쵸. 의미 의미가 뭘까? 즐거움과 의미에 대한 전반적 경험 어제 우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헤이투로 볼 거냐 러브로 볼 거냐 똑같은 사물인데도 내가 어떻게 보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을 바라봄으로 나타나는 나 자신에 대한 반응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요 제 눈의 안경 우리는 나쁘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결국 제 눈에 안경을 쓰고 살아갑니다. 무슨 안경을 쓰기로 선택하느냐는 거죠. 신앙은 그런 의미에서 선택입니다.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변화지요 복음이라고 하는 눈으로 보는 겁니다.
같은 글자로 같은 글자이지만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지되는 것처럼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마저도 부담으로 읽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해야지 해야지 너희를 향하신 했는데 사실은 그 의미가 너희를 위한 이었다고 하는 것 그래서 어제는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회가 또 앞으로 있다면 가운데 거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가 뭔지를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구요. 오늘은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하는 얘기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요 많은 학문들이요. 사람다운 게 뭔지를 찾아갑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게 사람이지 하는 게 호모사피엔스라고 합니다. 사람이 동물하고 영 다른 게 뭐죠 여러분 짐승들도 놀긴 하는데 도구를 만들어 가지고 기구를 만들어 가지고 노는 건 인간뿐이에요. 그래서 호모 루덴스라고 그럽니다. 아 호모 그담에 도구를 만들어 가지고 일하는 걸 호모 파벨 어떤 분들은 제가 아는 분은요, 이렇게 길 가다가 사람 보면서 야 신기하다 그럼 뭐가 신기해요. 그러면 어떻게 2발로 걸어가지 호모 에라투스라 그럽니다. 여기 호모 경제 활동하는 인간이 인간다운 게 경제활동 한다는 거예요. 인간이 인간다운 게 짐승하고 영 다른 게 뭐죠 이중적인 것 이중적인 건 짐승을 못 해요.
서 혼내와 뭐라 그러죠 다떼바야 그렇지 혼내와 다떼바야라고 그러나요? 일본말로 이렇게 겉으로 이렇게 웃으면서 속으로 다른 표정 막 이건 인간만이 할 수 있잖아요. 기분 나쁜데 웃을 수 있는 건 인간밖에 없어요. 그쵸. 속으로는 나쁜 인간 참 한국말 참 재미있죠. 사람이란 단어하고 인간이라는 단어 뉘앙스 다르죠 그 사람이 이렇게 하다가도 기분 나쁘면 그 인간이 이러잖아요. 예 이케 그쵸. 이렇게 하면서 그 인간이 이렇게 하는 인간뿐이지요 사회 활동하는 거 뭔가 소망하는 것 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하는 개념은 인간밖에 없죠 이게 인간다운 거라는 거죠.
사실은 이렇게 뭐 학문적으로 호모호모호모하면서 이렇게 인간을 정의해 가는 모든 게 인간이 짐승과 달 동물과 달라서 인간다운 게 뭐냐 인간을 인간이라고 정의하게 만드는 게 뭐냐 하는 것을 찾아가는 거지요 여러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게 뭘까요? 나를 짐승 차원으로 만들지 않고 나를 인간 차원으로 만들어주는 게 뭘까요? 생각하는 거 걸어다니는 거 경제 활동 하는 거 소망하는 거 뭐 종교 활동 하는 거 많은 게 있을 수 있겠죠. 다 예 세상에는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는 과학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무신론적 과학이죠.
그 무신론적 과학이 정의하는 인간은 앞에다가 인간이 인간답다고 하는 걸 뭐라고 붙이든 간에 뒤에는 동물이라고 붙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사회적 동물 직립보행하는 동물 경제적 동물 그래서 인간의 짐승과 다른 걸 확 강조하는 그 표현 속에서도 뒤에 가면 다 동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다 뭐예요? 이렇게 하면 과학적 정의에 의하면 우리는 다 뭐죠 어찌됐든 간에 우리는 뭘 뭘 하든지 간에 뭐 해요.
동물을 동물 여러분 그런데 이 무질론적 과학자들 하나님이 안 계시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마저도 대단히 곤혹스럽게 만드는 인간이 가진 놀라운 특징 8가지가 있습니다. 특징 다 8가지가 뭔가 하면 진화론하고 설명하는 데는 정반대가 되는 5가지하고 인간의 짐승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는 3가지 이 8가지인데 이거를 프랑스 국가과학자 학위를 받은 한 교수님이 발표했습니다. 그 8가지가 뭔가 간단하게 한번 보시죠. 첫째는 여러분 인간은 뭐가 없어요.
이런 작은 털은 있기는 하지만 인간에게는 짐승 같은 털이 없죠 여러분 털이 있는 게 야생에서 살기가 좋아 유리해요. 털이 없는 게 유리해요. 어 털이 있는 게 유리하죠. 짐승틀이 근데 인간은 짐승에서부터 시작됐다고 그러는데 인간은 반대로 됐잖아요. 털이 없잖아요. 그쵸. 이거 어떻게 설명할 거냐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냐 이거죠. 첫 번째 체모 없는 피부 둘째, 예민하고 민감한 피부입니다. 체모 없는 것 두 번째는 여러분 이게 시력을 잃은 분들이 손가락 끝 하나로 점자 엑스입니다. 그 점으로 만들어진 글자잖아요. 점자 그 가지고 이렇게 만져가지고, 다 알죠 저는 그 시력을 잃은 분하고 같이 이렇게 마라톤을 같이 뛰어본 적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가이드 로너가 돼가지고 근데 아 그분들 정말 예민합니다. 여러분 피부가 예민하면 야생에서 살아가기가 유리해요. 불리해요. 불리한데 인간은 더 예민해졌어요. 이게 반대했다는 거죠. 아주 간단한 겁니다. 세 번째 여러분 이 야생에 존재하는 소위 유기체 중에 피부의 치유 속도가 가장 느린 게 인간입니다. 제가 1번은 대학에 있는데요. 개 1마리가 돌아 야 이 개 유기견이 돌아다니는데 어느 날 보니까 개가 자꾸 말라가는 거예요. 우리 그 제가 학생들 데리고 있던 대학 뒤에 생활관 뒤에 이렇게 보니까 저 개를 잡아서 고쳐주고 싶은데 이 개가 잡히지가 않아요.
보니까 걔가 아주 힘들어 보여요. 어떻게 어떻게 해서 학생들한테 이야기해서 그 개를 잡았습니다. 보니까 이 개가 어릴 때 이렇게 목줄을 이렇게 해놨는데 이게 이 개가 목줄을 감은 채 유기견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유기견에 의해서 이 목줄이 목을 파고 들었습니다. 이게 개가 커지는데 목은 줄이 안 나아지니까 이게 막 옮아 가지고 이게 개가 비정상이 됐죠 그런 상태에서 개를 잡아서 목줄을 끊어줬어요. 여러분 아무것도 안 발라줬는데 금세나 이 개가 며칠 만에 저는 그걸 눈으로 봤습니다. 그렇게 개의 치유 속도가 그렇게 빠른 거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피부는 이렇게 찢어졌다가 놔두면 소위 해주지 않으면 금방 파상풍이 돼 버리잖아요. 그쵸. 느린 치유 속도는 야생의 적자 생존에 해롭습니다.
근데 인간은 반대로 됐다는 거 이거 어떻게 설명할 거냐 이거예요. 네 번째 여러분 화석이 발견되면 그게 인간 거냐 짐승꺼냐를 구분하는 딱 기준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전문적으로 다이아스테마타 그렇게 합니다. 근데 치과 의사 선생님들은 이거 너무너무 상식적이죠. 치아와 치아 사이에 틈을 가리켜 치아와 치아 사이의 특을 헬라우드 디 아스테마타 영어로 발음하면 다이아스테마타 이렇게 갑니다. 여러분 이 치아와 치아 사이에 틈이 있었고, 날카로우면 야생에서 뭔가 잡아 딱 찍기에 훨씬 유리하겠죠. 근데 인간은 틈이 없 치아 틈이 없어요. 이게 이게 유리한 게 아니고 불리해요. 그런데 반대로 됐다는 거죠.
이거 어떻게 설명할 거냐 뭐가 사람다운 거냐 여러분 식사하는 데 사람만 위까지 넘어갔는데 6주가 걸리고 남은 건 쑥 넘어갑니다. 느린 느린 속도는 적자 생존에 불리한데 인간은 반대로 됐다는 거예요. 자 그 다음 여기 이 5가지는 반대로 된거구요. 지금부터 3가지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어떻게 다른가 슬프고 기뻐서 우는 거 이거는 짐승하고 사람이 완전히 달라요. 흉내를 냅니다. 조금 있다. 보여드리겠지만, 짐승이 흉내를 내지만 이건 완전히 다르다는 그다음 말하는 거 예 구간조 비슷하게 흉내를 냅니다만 이 말은 완전히 다른 것이 진화됐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죠. 이건 과학자가 하는 말입니다.
여덟 번째 종족 보존의 본능 이외에 목적으로 성 활동을 한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이건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짐승은 어떤 경우도 종족 보존 소위 배란기 교미를 위한 목적 이외에는 짐승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그쵸. 그건 너무나 다르다는 거죠. 이렇게 8가지를 발표하면서 어 이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전학적으로 볼 때 인류와 같이 복잡한 종이 이처럼 급속하고도 큰 돌연변이를 일으킨 예는 없다. 결국 돌연변이라는 거예요.
저는요 대학교 2~3학년 때 학교에서 저녁에 하루 수업을 마치고 나면 아 전 생활관에 살았는데 기숙사에 학교 기숙사에 가끔 저녁에 인제 청량리 지하철역에 나가 가지고 그 지하철역 입구에 서 가지고 한 1시간씩 서서 구경했습니다. 뭘 구경했을까요? 그 청량리 지하철역 입구에서 구경했어요. 무슨 구경이었을까요? 사람 구경 한번 해보세요. 진짜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 지하철 역에서 취재하던 사람들 얼굴 쳐다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겼을까?
다 달라요. 구조는 딱 제한됐는데 눈 코 입 귀 딱 제한적인데 그 구조를 가지고 사람이 지금 40년 같이 살고 있는 제 내자도 이렇게 보면 어느 날 아침 보면 여자를 왜 이렇게 생겼지 싶으믄 굉장히 신기하죠. 그건 정말 신기해요. 신기하단 소리 자주 합니다. 사람은 왜 귀가 우리 귀는 왜 요렇게 안 묻고 이렇게 붙었을까? 여기 눈썹은 왜 있는 걸까 코는 왜 구멍이 위로 안 뚫리고 아래로 뚫렸을까? 다 합목적적이라 그러잖아요. 이렇게 복잡한 종이 이처럼 급속하게 큰 돌연변이를 일으킨 예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이렇게 특별한데 사람이 사람다운 게 사람인데 사람다운 게 뭐냐 말이에요.
이렇게 특별한 게 많은데 이 모든 걸 갖고 있으면서도 그게 짐승이라는 뜻일까요? 이렇게 침승하고 다르면 3가지만 달라도 아니라고 결정을 내려야지 무엇이 논리적이냐구요. 사람이 짐승과 이렇게 다르면 아 사람은 짐승이 아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게 논리적인가요? 아니면 이렇게 짐승의 특징이 다 달라도 여전히 짐승이니 이런 짐승이야 이렇게 정의를 내리는 게 논리적인가요? 생각해 봐 주세요.
사람은 짐승인가 뭘 해도 짐승인가 뭘 해도 동물인가 동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까 성경에 보면요 사람을 창조하는 것에 대해 다른 모든 것과 달리 인간을 창조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3가지 다른 동사가 사용됩니다. 성경이 아주 독특한 부분이에요. 첫째,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영어로 메이드 시브리어로 아사라고 뜻 하나하나를 설명드리지도 않겠습니다. 두 번째가 우리말로 다 창조하시니 이렇게 번역됐습니다. 영어로 크레이티 히브리아로 바라 라고 합니다. 이게 같은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말로도 다르게 번역됐고 영어로도 다르게 번역이 됐습니다.
세 번째가 우리말로 주로 지으신이라고 번역된 포럼프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메이크 메이크 크리에이트 포럼 3가지 다른 동사가 사용됐고 히브리어 원어로도 다릅니다. 아사 바라 야사르 성경에서 인간에게만 3가지 다른 동사가 사용됩니다. 짐승과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강조 하고 있는 것이죠. 성경은 인간을 어떤 경우에도 동물 혹은 짐승이란 단어로 그 특징을 묘사하면서 정의하지 않아요. 성경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소생 혹은 하나님의 자녀들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렇게 인간이 동물이 아니고 그렇게 인간의 짐승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성경이 인간보고 짐승 같다고 말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맞어 인간을 짐승 같다 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일상 용어에서 사람을 좀 이렇게 욕하고 비난할 때 짐승같은 인간아 그러지요 네 그것보다 좀 더 심한 게 뭐죠 이 모반도 짐승만도 예 짐승만도 못한 인간아 하다가 그거보다 더 심하면 뭐라고 그래요.
그거 말고 뭐 비유한 거 이 짐승 같은 인간 하다가 이 짐승만도 못 한 인간아 하다가 그 다음에 더 심한 욕이 뭐예요? 짐승만도 못한 게 뭐 있잖아요. 버러지 이 뭐 만도 못한 인간아 그래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버러지 같은 인간아 혹은 버러지 만도 못한 인간아 그렇게 하죠. 여러분 성경에 그런 표현이 나와요. 인간의 존귀함을 인간을 짐승이 아니라고 그걸 증명 그걸 선포하는 것이 성경의 전체 내용인데 성경에서 인간을 짐승 같다 그러고 버러지 같다 그러고 이렇게 하는 표현이 나와요. 어떤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말할까요? 자 우선 얘기 볼까요? 이사야 10편 49편 20절입니다.
성경이 인간을 짐승 같다고 말하는 순간 1권 읽어주시겠어요. 네 시작 현대에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쓰시면서 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지요 인간의 존기 화물 디그리티라고 그럽니다. 인간의 존기함을 얼마나 큰데 이걸 모르고 산다는 거예요. 이게 짐승 같다 성경이 말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베드로 후소 2장 12절에 보면 죄를 짓는데도 겁이 없어 계속 더 악해져 어 이런 걸 베드로 후소 이장 12절에서 이성없는 짐승 그다음에 세 번째가 유다소 10절에 보면 사람이 은혜를 받았는데 그 은혜를 저버려요 그걸 또 뭐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이성 없는 짐승 같다 3가지로 요약하면 자기 존귀를 깨닫지를 못해요. 두 번째 양심이 마비돼서 계속 더 알을 증강시켜라 세 번째 은혜를 잊어버려 요런 내용들을 성격이 짐승 같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여기 짐승 같은 정도를 넘어 짐승만 너무 못한 경우를 말합니다. 이사야 일장삼절인데요.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시작 이게 인제 소만도 못하고 나기만도 못하다 그 뜻이잖아요. 그쵸. 짐승만도 못한 거지요 손 소는 임자 알고 나귀도 구율을 아는데 주인의 구율을 알지마는 내 백성은 이 내용이 다 뭔가 하면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온갖 걸 다 베풀어 줬는데 이 사람들이 배반의 역사만 계속 끌어가기 때문에 요약하면 은혜를 모르는 뜻입니다.
제가 젊은이들에게 혹시 이렇게 신앙 강연 인문학 강의를 할 경우가 있을 때 제가 하기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함부로 쉽게 말하지 마 부모님에 대한 감사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나님 믿는다고 말하나 제가 그렇게 말할 땐 제 나름대로 깊이 농축된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파운 게 뭐냐는 거지요 소는요 태어나자마자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면 송아지가 탁 태어나면서 엄마 자궁에서 툭 떨어지고 난 다음에 다리 이렇게 피워 태어나자마자 띕니까 안 띕니까 저 어릴 때 봤어요.
근데 돌봐주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가 누구예요? 인간이에요. 인간은 태어나고 난 다음에 그러니까 이 나이 제가 20살 30살 사실 이 나이 되도록 살아남아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랑이 우리에게 쏟아부어졌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되는 거죠. 가장 어릴 때 부모로부터 시작해서 그쵸. 돌봐주지 않으면 제가 저는 솔직히 고백합니다. 제가 뭐 교수라 그래서 혹은 선생이라고 그래서 목사라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 앞에 서서 하는데 어 뭐 제가 이렇게 인사하고 교양을 갖추어서 서로 나눕니다만 제가 이렇게 여기 하늘마을 왔는데 딱 들어오자마자 모든 분들이 고개 돌리고 되돌아 앉아서 저를 쳐다보지도 않으면 좀 금방 고민합니다.
저 그렇게 연약 우리 다 그렇게 연약한 존재들이에요. 서로 쳐다 눈 맞춰 쳐주고 사랑해 주는 것 때문에 우리 살아가잖아요. 그쵸. 그 수많은 은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쏟아졌는데 그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는 거예요. 까 이게 소만도 못하고 나기만도 못하다 그렇게 만납합니다. 그 다음 나오는 표현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그다음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러고는 그렇게 하고는 뭐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나님 저버리고 은혜 저버리고 감사하는 걸 표현할 줄 모르고 이렇게 살아가면서 자기 잘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 취해 있다.
하나 하나님 하나님 끝까지 거절하고 하나님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중에 하나가 스스로 취해 있다. 하나 성경은 그걸 가리켜 뭐라 표현하는가? 우준하게 되어 요 그게 오히려 어리석다고 표현하구요. 그렇게 된 사람들이 그다음 하나님의 영광을 그다음 내려갑니다. 썩어질 사람으로 떨어집니다. 두 번째 금수 짐승으로 떨어집니다. 그다음 버러지 단계가 나오죠. 하나님에게서 사람으로 갔다가 그 다음 금수 짐승으로 갔다가 벌어지는 벌레로 떨어지죠 인간이 점점 더 떨어져 가는 순서와 관리 그대로 묘사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돼 가는 인간이 이런 단계로 떨어져 가는 모든 근원이 뭐냐 감사치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사은의 마음이죠. 요걸 잊어버리는 순간 감사를 잊어버리는 순간 인간이 인간다워지지 못한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드린 모든 말씀을 딱 한마디로 압축하겠습니다. 무엇이 인간다운 거냐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할 때 그 사람탑다는 게 뭐냐 이거죠. 그렇게 사람을 하나님 짐승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성경이 인간을 가리켜 짐승 같다 짐승만도 못하다 벌레 같다 벌레만도 못하다 하는 차원으로 출발하게 되는 그 첫 출발지가 뭐냐고 하는 거죠. 그게 감사를 들어버린 마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기 병아리를 돌보고 있는 놈이 닭이 있습니다. 보시죠. 강아지를 돌보고 있는 어미 개가 있습니다. 제가 이 사진 보여줄 때마다 뭐가 보이냐 강아지가 보이냐 어미 개가 보이냐 여러모로 뭐가 보이세요. 예 강아지가 보이시나요?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있는 어미개를 보세요. 예 병아리를 돌보는 어미다 강아지를 돌보는 어미게 여러분 2008년 4월 오전 9시에 실제로 광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19에 전화가 왔습니다. 불이 났다고 하는 신고가 들어와서 가봤더니까 주인 없는 집에 불이 났어요. 119 대원들이 불을 끄는데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막 찾아서 보니 이 모습이었습니다.
어미 개가 4마리 강아지를 품고 자기 몸에 불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게 어미의 본능입니다. 송아지를 돌보는 놈 미소 여러분 짐승은 정서적으로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그랬죠 아까 근데 이 장면을 한번 보시죠. 소를 팔아 갑니다. 어미 소와 송아지들이 지금 에 팔러 나왔습니다. 여기 송아지가 있고요. 어미소가 있는데, 어미소의 눈을 보십시오. 눈을 보세요.
눈을 오미소가 계속 웃습니다. 닭똥같은 눈물을 툭툭 흘리는데 송아지는 철이 없습니다. 예 눈물 맺히는 거 보세요. 예 계속 울지요 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이 이걸 보고 가슴이 아파가지고 앞에 앉아서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예 죄송합니다. 지금 짠 데 있잖아요.
예 결국 주인은 이날 안 팔았습니다. 송아지가 더 크면 팔기로 했어요. 여러분 뭘 나타내 주나요? 개도 닭도 소도 내리사랑해요. 내비 사랑은 본능이에요. 아무리 나쁜 인간도 내비사랑은 본능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유기체는 내리사랑의 본능이에요. 그런데 이런 짐승 보셨나요? 그렇게 눈물 뚝뚝 흘리며 어미 소가 키워줬는데 송아지가 큰 다음에 그때 나를 위해 눈물 흘리신 우리 어머니하고 집 물어다 주는 송아지 보셨나요?
자기 몸이 그렇게 다 타 가면서 자기 살려줬는데 어머니 하면서 이거 드시고 몸보신하세요. 하고 뼈다귀 물어다 주는 강아지 보셨어요. 어미 닭들이 병아리 키울 때 어떻게 키우는데요. 그 순한 어미 닭이 병아리 부화시키고 나면 달려드는 매하고 싸운다고 달려들며 싸웁니다. 네 그거 기억해 가지고 엄마한테 보답하겠다고 지렁이 물어오는 병아리 보셨어요. 짐승은 그런 게 없어요. 뭐가 짐승이냐 짐승은 자기가 받은 사랑을 기억을 못 해요. 짐승은 사랑에 보답할 줄 몰라요. 내리사랑은 짐승도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본능이에요.
그런데 애리사랑은 본능이라면 그래서 저는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해 할 줄 아는 이름하여 치사랑은 본분이다. 이렇게 표현하기를 좋아합니다. 뭐가 사람다운 거냐는 거지요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뭐가 사람다워지는 거냐는 거죠. 인간이 뭐냐 인간은 받은 사랑을 기억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받은 사랑에 반응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받은 사랑에 보답할 줄 아는 겁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요, 자기가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이에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요?
내가 이 순간 여기에 이르기까지 태어나자마자 나를 누군가 보듬어 줬기 때문에 그 갓난쟁이가 살아남았고 살아오는 긴 세월 동안 누군가 내게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살펴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랑받은 존재라는 사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 삼육대학교 학생들이 일본에 봉사활동을 갔습니다.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게 아니라 한류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구경하기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그때 뜻도 모르고 이 한글로 발음을 옮긴 일본어로 당시에는 사랑받기 위해 이 노래를 일본어 발음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한국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자 둘러서 있던 일본 사람들이 1명 2명 울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불러주는 그 노래 하나에도 우리는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에서 감동의 눈물이 흐를 수 있는 존재들이죠. 그게 짐승과 인간을 구분 짓는 기준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처럼 되는 순간이 언젠가요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저 고대 제국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의 세계사에서 내비유 카드네사르라고 부르는 성경이 느브가네사르라고 음력하고 있는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제국을 건설한 다음에 어느 날 자기 나라를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말하죠. 내가 나의 능력과 권세로 나의 도성을 삼고 내 위엄 내가 내가 내가 IIII 모든 관심이 자기에게로 집중되는 그 순간 영어로 이거 이스트라고 하는 단어가 이거 티스트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거 나라는 단어인데 이거 이스트라고 하는 단어는 모든 관심이 자기 이익에만 돼 있는 사람 이거 티슈트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이 아이 아이 성경은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내가 내가 내가 내가 IIIII 내가 내가 내가 이렇게 한 순간 그가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이렇게 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된 존귀한 인간이 짐승의 차원으로 전락되는 그 출발은 내가 내가 하는 순간 내가 내가 내가 하는 순간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관심이 자기가 되는 순간 인간은 짐승처럼 돼 버립니다. 왜냐하면, 짐승은 철저하게 감사를 모르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살아 가니깐요. 이런 걸 이름하여 리컨트로피 카스라는 헬러 단어 늑대라는 단어에다가 안트로피라고 하는 인간 단어를 합쳐서 리클 안트로피라고 합니다. 인간이 짐승 같다 인간이 새 같다 에이비 엔트로피 인간이 속았다. 모양크로피 이런 전문 단어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갔던 사람들의 역사적 인물들도 있죠. 양상은 다르지만 인간이 감사를 잊어버리는 순간 마음들이 짐승 같아진다라고 하는 겁니다. 차라리 글자 재미있죠. 효잔데 아들 자 자를 뒤집어 놨습니다.
어쩌면 글자 하나로 어쩌면 이렇게 모든 세태를 요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효자에 아들 자자를 탁 돌려놓고 등 돌린 자식 이게 잊어버린 게 뭐예요? 은혜를 잊어버린 게 배은이고 자기가 받은 덕을 망각하는게 망덕 아닙니까 배은망덕 그렇게 정신 잃었던 누브강네살이라는 사람이 힐링됩니다. 치유됩니다. 회복됩니다. 그 회복되는 첫 순간이 뭔가 하늘을 울어러 보았더니, 이것이다. 요 순간인 그의 방향 전환의 순간입니다.
IIII 모든 관심이 자기였던 사람이 하늘을 울어라 공기도 그냥 주어졌네 물도 주워졌네 산도 주워졌네 이거 내가 번 게 아닌데 내 생명마저도 던져줬네 주어졌네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그다음 총명이 다시 내게 돌아온지라 제정신 차려진 겁니다. 제정신 차려졌어요. 제정신 차려진 사람이 보이는 가장 첫 번째 반응이 뭔가요 감사하면 인간이 감사를 잊어버리면 인간 짐승 차원으로 가는 거구요. 제정신 차린 사람이 찾아오는 첫 번째 반응이 뭡니까?
예 감사하다 저는 무슨 과목을 강의하든지 간에 이제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연세 드신 은퇴하시는 우리 선배 교수님들도 계신데, 저도 이제 은퇴를 곧 예 해야 할 이런 즈음에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젊은이들을 참 어떻게 하면 소중한 이 젊은 인생을 어떻게 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라고 가르칠까 그게 저의 주 관심사가 됐어요.
그래서 전공 과목을 강의하는 것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 교양 강의를 하는 것을 제가 훨씬 더 인생에 미션 샤명감이 느껴져 가지고 어 제가 자원해서 교양강좌를 한두 개 신청하고 제가 매 학기마다 강의하는데 어떤 과목을 가르치든지 간에 학생들에게 제가 꼭 내놓은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과제는 감사 감사 숙제예요. 부모님께 감사평하기 친구에게 감사표 하기 선생님께 감사 여러분 이거 과학이에요. 해보면요 회복이 돼요. 이게 정말 감사하라니까가 아니고 감사를 하는 사람이 회복이 돼요.
아파트 경비아저씨한테 고맙다고 말해 보라니까 어 매일 운전해 주시는 마을버스 기사님한테 해보라니까 그분이 어떻게 반응 나오는지를 보고하라고 과제거든요. 여러분 이거 수많은 실험으로 죽는 우울지수 세계에서 최고 높은 마을 영국의 어느 마을이 다른 거 없어요. 감사실천 전문가가 투입돼 가지고 한 변화되는 거예요. 정신건강 당연히 마음이 몸으로 바뀌는 거지요 감사하며 감사할 줄 모르면 짐승이 아닌 인간이 짐승처럼 된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제 우리는 비로소 이해합니다.
떼살랑에게 전 소장 18점 범사에 감사하라 내가 너희들이 니 니 고맙다는 말 듣고 싶어서가 아니고 이놈 너희를 향하신 정도가 아니고 너희를 위한 감사 표현하고 감사 생각하고 제가 꼭 손글 씻으라 그럽니다. 숙제 과제 해주면요 우리 학생들이 엄마 고마워 하고 편지 쓰잖아요. 그러면 반응이 더 재미있습니다. 왜 뭐 용돈 필요하냐? 이렇게 갑자기 부모님들도 너 갑자기 왜 그러냐 걱정하고 막 어떤 사람 요즘 하도 세상이 무서우니까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러니 갑자기 그러니까 제가 무슨 생각하지 뭐 무서워하고 반응들을 이렇게 얼만큼 우리가 표현 안 했으면 좋겠답니다.
다 그렇게 고마웠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스폰했더니까 선생님이 막 너무 기뻐가지고 보여줬던 그 반응 때문에 행복해하고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자꾸 기억해서 감사를 자꾸 표해보면 이제 사이언스 과학이에요. 나를 회복시켜요 예 그래서 제가 만들어낸 제가 만들어낸 저의 이론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호모 사피엔스 호모 루덴스 호모 에렉투스 하는데 저는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호모 그라치아스 이건 제가 만들어낸 용어예요. 감사하는 존재 감사하는 동물이 아니구요.
감사하는 존재 호모 라틴어로 그라지아스 인간이 다 인간이냐 인간이 인간다워야 인간이지 인간다운 게 뭐냐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감사를 표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자기가 행복해진 사람 여러분 하나하나 찾아서 감사를 표현하고 실천하면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과 몸에 과학적으로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다시 벌떡 누구가 내 삶처럼 회복되고 힐링 되시고 기뻐하는 그런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맑은 아침을 주시고, 또 청명한 하늘과 또 우리를 회복시키는 따스한 햇살도 허락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이 순간 여러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 만나고 또 다른 일을 하면서 보낼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 만나고 또 주님을 생각하고 무엇이 사람다워지는지의 그 의미를 생각하는 그런 시간으로 이때를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참 감사할 게 많습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그런 것 잊어버리지 않게 해주시고 조용히 생각하면서 하나 둘 찾아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그렇게 표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그마하나마 은혜를 보답하고 또 그렇게 해주므로 그분들의 마음이 행복해지고, 기뻐져서 우리도 그것이 전염되어 더불어 행복해지는 삶의 과학을 경험하며 살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들을 너그럽게 해주시고 따뜻하게 해주셔서 마음으로 녹아지는 경험들을 허락해 주시고 그렇게 해서 혹 굳어졌거나 혹 딱딱해진 신병들이 쌓으면 부드럽게 녹아서 하나님께서도 다가오시기에 편안하고 사람들 함께 대화하기도 편안하며 그렇게 어린아이가 좀 10년들 되도록 우리 모두에게 회복의 역사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 가족들 있는 것 감사합니다.
이 시대에 이렇게 함께 만날 수 있는 것 감사합니다. 그래도 여기 와서 이렇게 머물 수 있는 또 나름의 여유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그렇게 느끼는 우리 모든 가족들의 마음에 오늘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치유의 광선이 함께 비추어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위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