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모든 것이 주님의 사랑” 全てが主の愛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 뉴스에 보니, 혹시 여러분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주에서 최초로 블랙홀을 사진 찍는 데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한 번 우주로 나가버리면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상식이 아니게 됩니다.
하루라고 하는 것은 지구가 이렇게 혼자서 한 번 도는 것이고, 1년은 지구가 태양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인데, 지구는 24시간
걸려서 혼자서 한 바퀴 돌고, 1년 걸려서 태양 주변을 한 바퀴 돕니다. 당연히 1년에 비해 하루는 짧죠. 365분의 1이니까요.
하지만 이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계 거의 끝 쪽에 있는 천왕성을 보면, 1년과 하루가 똑같다고 합니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84년이 걸리지만 그 중 절반인 42년은 낮만 계속 되고 나머지 42년은 계속 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7시간마다 남극과
북극이 서로 바뀌고 있다고 해요.
좀 황당하지요? 이런 걸 지구와 비교를 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이번에 최초로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고 하는 블랙홀이라고 하는 것은,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보통 별 같은 것은 고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게 돌이거나 아니면 얼음덩어리인 경우도 있고요, 또는 표면이 대부분 가스 형태로 되어 있는 별들도 있습니다. 태양계에서
목성 같은 경우를 보면 크기는 대단히 크지만 그 표면은 대부분 두꺼운 가스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돌이든 얼음이든, 하물며 가스이든 간에 이는 모두 우리 육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블랙홀……번역하면 검은 구멍…이라는
뜻인데 이는 별은 존재하지 않고 무지무지 강한 중력만 있다고 해요. 그래서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빨아들인다고 합니다.
얼마나 그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냐 하면 주변에 있는 빛까지도 흡수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 주변에는 빛이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은
시커멓게 보이는 것이지요.
우주를 보면 여러 기준도 우리가 사는 지구와 많이 다릅니다. 쉬운 예로 본다면 예를 들어서 우주에는 위 아래가 없지요? 그건 지구에서
살 때에나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동서남북도 없고 그저 방향만 존재할 뿐입니다.
우주에서 일반적으로 거리를 말할 때에는 광년……이라는 말이 있지요? 1광년이라고 하는 것은 빛으로 가는 데에 1년이나 걸리는
거리입니다. 빛이 초속, 그러니까 1초에 어느 정도를 가냐 하면 30만 킬로를 가요. 30만 킬로……라고 하면 무슨 서울 부산 간이
아닙니다. 동경에서 오키나와까지도 아니에요. 지구 전체 둘레가 4만 킬로미터이니까 1초에 30만 킬로를 간다는 것은 7바퀴는 28만
킬로, 거기에 절반 정도를 더 도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게 1초인데 이 속도로 1년을 가야 한다는 거리입니다.
그러면 1광년을 킬로로 바꾸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냐 하면 약 9조 4600억 킬로라고 합니다. 이게 1광년이에요. 근데 1광년
2광년…… 이 정도는 우주 차원으로 본다면 대단히 짧은 거리에 속합니다. 간단하게 말씀 드리자면, 우리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게
지름은 10만광년이고, 두께는 15000광년이라고 합니다. 대충 상상이 가시나요? 아니요. 안 갑니다. 어려워요.
이번에 촬영에 성공했다고 하는 블랙홀. 어디에 있는 것이냐 하면 지구에서 약 5500만 광년이라고 합니다. 1광년이 9조 4600억
킬로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면 5500만 광년은 몇 킬로가 되는지, 머리가 좋으신 분들께서는 한 번 계산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ㅎㅎ
숫자로 보면 정말 상상도 안 가는 일이지만, 그나마 좀 더……아주 쪼끔 더 이해가 갈 수 있게 말씀 드린다면, 빛의 속도로 5500만
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거기서 빛이 우리가 사는 지구까지 도달했기 때문이지요.
이걸 거꾸로 계산해 본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그 블랙홀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5500만년 전의 빛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뭐,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잘 감이 안 잡히는 건 어쩔 수가 없겠지요. 어찌 되었거나 놀라운 발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발견에 있어서 저는 조금 더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발견을 놀라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뭐, 제가 지금 말씀 드린 것처럼, 놀라운 발견이고 그리고 사진까지 찍었다고 하니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예를
들어서 페이스북에 보니까, 꽤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무슨 이과 쪽 사람들이 아닌 분들까지도 와 너무 신기하다 대단하다 놀랍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사람들이 그렇게 놀라워 하는 모습이 더 신기했습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이거죠.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하는 뭐 그
정도라고 할까요? 솔직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한테는 그걸 사진으로 찍었거나 아니거나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별로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고 홍 목사 무식한 소리 하네……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물리학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아이작 뉴튼에 의해 정립된 상대성원리와 광속불변의 법칙이 중심개념으로 완성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 이번
블랙홀 개념이 등장하는 일반상대성이론, 광행차현상이다, 우라시마 효과다, 또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스티븐 호킹 박사가 주장했던
시간순서보호가설 같은 것에도, 물론 깊이 공부를 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졌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놀라워하는 것을 보니 저로서는 좀 적지 않게 의아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요? 아까 말씀
드렸던 것처럼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렇게 신기해해?”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신기하다면서 감탄했지만
거기서 끝이에요.
이건 글쎄요……로케트 발사를 보고 와~ 멋지다~ 놀랍다~ 하고 끝나는 정도? 아니, 신기해하고 놀랍다고 생각했으면 좀 더 깊이
알아보려고 한다든지, 뭔가 조 더 한 발자국 나아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게 신기해했으면서 신문 기사 하나 링크 해놓고 끝인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좀 가끔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는데, 오늘은 이 시점에서 두 가지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볼까 합니다.
먼저 첫 번째. 과학의 반대가 신학? 가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만,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과 신학 또는
과학과 성경……이라는 개념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똑 같은 개념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성경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둘째로, 가끔 보면 “나는 성경을 믿지 않아. 나는 과학을 믿어” 라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과학을 믿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것은 변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구의 기원이라고 하는 것도 20년 전 기술로 측정하는 것과 20년 후에 측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면 과학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 이 둘 모두를 믿는다는 것이지요. 과학을 믿는다는 것은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도 믿는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믿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또 믿음이 있다는 분들을 보면 아~ 이런 무슨 과학에 대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아닙니다. 서로 얼마나
깊은 연관성이 있는지 모릅니다. 저도 뭐, 글쎄요. 우주에 가보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더라도, 이런 뉴스는 대단히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버리면 이는 그야말로 가십거리. 무슨 연예인이 결혼한다거나 하는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예전에 학생시절 제가 아는 형이 있었는데, 이 분이 중학생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좀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이었나봐요. 그래서 특히 영어를 못했다고 하는데……그 학생이 중학생이었다고 하는데, 수준이 정말 대단했다고 합니다. 이건
정말 실화인데 영어로 쥐가 뭐냐……라고 물으면, 쥐가 영어로 뭐예요? 예, <마우스>죠? 그런데 이 학생. 야, 영어로 쥐가
뭐야……라고 하면 <미키>라고 한대요. 그리고 오리가 영어로는 <덕>인데, 이 아이한테 야, 오리가 영어로 뭐야……라고 하면……뭐라고
대답해요? 예, <도날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형이 하는 말이 더 재미있습니다. 조금만 더 말하면 될 텐데. 쥐를 물어볼 때 <미키>가 아니라 <마우스>까지 말하지.
오리도 <도날드>가 아니라 <덕>까지 좀 말하지 거기서 멈춰버린다고 했던 이야기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정말 이 형 말마따나 조금만 더 가면 될 것인데, 이런 우주 관련 뉴스를 보고 그냥 거기서 와 신기해 ……라고 하고 멈춰버리는 것을
보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겠지요. 한 발 더 나아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것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알아요? 성경에 적혀 있지요. 우리는 성경을 믿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고 학위를 몇 개 씩이나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이 한 순간이라도 성경을 떠나게 된다면 이는 믿음이 아니지요.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은 창세기에 등장합니다만 오늘은 욥기를 함께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욥기 3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8장을 전부 읽기는 내용이 길기 때문에 몇몇 구절을 발췌해서 읽어 드리겠습니다.
욥기 38장입니다.
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8.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16.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8.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24.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26.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27.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28.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29.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32.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33.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35.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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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욥기 38장과 39장을 읽어보면 창세기를 읽을 때와는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렇게 말씀으로 짠~ 하고
간단하게 만드신 것 같지만, 이 욥기를 읽으면 정말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세밀하게 계획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우리는 아는 것이 많지가 않습니다. 이 욥기는 적어도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이니까 기원전에 적힌 글입니다만, 이와
같은 똑 같은 질문을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에게 하셨다면, 지금 우리는 시원하게 대답할 수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38장 18절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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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때는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이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군마 현 면적도 낼 수 있고, 한국이나 일본 면적도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잴 수 있지 않는가….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좀 어려운 말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카오스이론……혼돈이론에는 이런 말이 나와요. 어떤 지형의 둘레 길이는 무한대다. 즉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주도 크기, 오키나와 섬 둘레 길이를 측정할 때, 쉽게 말해서 1미터 짜리 자로 재는 경우와 10센티짜리
자로 재는 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경우를 보면 1미터짜리 자로 재는 것보다 10센티 짜리 자로 재는 것이 더 세부적으로 잴 수 있겠죠? 그러면 길이가 어느 쪽이 더
길에 나올까요? 예, 짧은 자가 구석구석 더 잘 잴 수 있으니까 10센티짜리 자로 쟀을 때가 더 길어지겠죠?
그러면 1센티 짜리로 재면 섬 둘레 길이는 어떻게 됩니까. 예 둘레 길이는 더 길어질 것이고, 이런 식으로 과학이 발전하고 정밀도가
늘어나면 그 길이는 점점 더 길어지기 때문에 결국 섬 둘레 길이는 무한대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유리 컵 안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그것이 어떻게 퍼질 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5500만 광년 멀리 떨어진 블랙홀 사진을 찍으면 뭘 합니까. 제주도나 오키나와 섬 둘레 길이를 재는 것은 고사하고, 물컵
안에 떨어지는 잉크 한 방울 예측도 못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알면 우리는 이제 많이 알 수 있는 것인가요? 아니요. 아직 더 남았습니다. 여기까지 알고 멈춰버린다면 그야말로
<쥐가 영어로 뭐야>라는 질문에 <믹키~>라고 대답하고 마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법칙과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중요한 것이죠.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는 이를 모두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관리하도록 맡기신 것이지요.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 모두를 우리를 위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지요. 우리를 그냥 만들어놓고 일만 맡긴 다음에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라고 내버려두신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연좌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잘못하면 그 죄를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 친지들한테도 묻는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무슨 무거운 죄를 지으면 삼대를 멸한다거나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이 연좌제를 금하고 계십니다.
신명기 24장 16절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父が子のために殺されてはならない。子が父のために殺されてはならない。人が殺されるのは自分の罪過のゆえでなければならな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 자신은 벌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시게 하심으로 인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습니까.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잔인하다. 자기가 만들어놓은 사람들이 죄를 지으니까 자기 아들을 죽으라고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잔인하다? 예, 잔인하지요. 너무나도 잔인합니다. 어떻게 이 얼마나 부족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래. 내 아들이 너희의 죄를 다 해결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제 죄가
없다. 내 아들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올 수가 있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だれも父のみもとに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우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도 우리의 선행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라 하더라도 무엇 하나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도 하나님의 말 못할 놀라운
사랑을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 23장 11절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だからあなたがたは自分自身に十分に気をつけて、あなたが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이번 주는 이제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리며 아이구 쯧쯧쯧 하고 동정하는 날이 아닙니다. 5500만광년 떨어진 블랙홀을
볼 때에도, 그리고 바로 길가에 펴 있는 꽃 한송이를 볼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은혜와 사랑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믹키>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우리를 위해 맞아주신 채찍과 우리를 위해 짊어지신 십자가를 떠올리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찬양하고 더욱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통해서, 모든 것이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다음 주 부활절을 놀라운 기쁨으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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