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배추 / 박영보
한 포기에 만 삼천원, 그 크기와 무게가 얼마나 가는지 모르겠다. 이곳 환율로 계산을 해 보면 배추 한 포기에 십 일불이 넘는 가격이다. 배추 가격이 금값이라 할만큼 치솟고 있으니 김치를 ‘금치’라 불리는 것이 이상할 것 같지도 않다. 쌀로 지은 밥에는 항상 따르게 되는 김치이고 보면 우리의 주식으로 쌀만을 내 세운다면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쌀과 김치’라는 수식이 있어야만 우리의 주식이라는 말이 완성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농산물의 구매가 농민들과 소비자간에 직거래로 이루어 지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농민들이 배추를 심어 가꾸면서 소비자들로부터 미리 주문을 받아 김장철에 수확을 하여 납품을 하는 계약조건이 그 한 예이다. 농장측에서는 배추를 뽑아 다듬고 씻어 소금에 절이기까지 해서 납품을 하니 소비자는 받아서 양념에 버무리기만 하면 김치를 완성시킬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이렇게 편리한 유통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으니 한국에 계시는 분들의 생활상이 이렇게까지 개선돼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농민으로서는 판로가 확정되어 판매에 걱정없이 양질의 배추재배를 위한 노력만하면 될 것이다. 소비자 측에서도 수확된 배추의 납품만 받으면 다른 큰 어려움이 없이 김치를 담글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금년에는 심한 가뭄과 한파로 배추의 작황이 예년에 비해 기대치보다 훨씬 밑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나라 전체가 야단 법석인 고국의 뉴스를 대할 때마다 덩달아 마음을 조여오던 터이기도 했다. 응급 처치 형식으로 수입해온 중국산 배추를 할당 받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들에서도 묘한 생각이 든다. 주부님들의 손에 들린 배춧단을 바라다 보니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하는 억박자와 같은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럴 때 무슨 훈훈한 이야깃 거리는 없을까. 광저우에서의 금메달 소식이라도 자주 들려 온다면 잠시 동안만이라도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다소나마 녹여질 수 있을려나. 배추대신 양배추를 먹자는 대통령의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는 찌들어있는 민심들을 다독이기에 충분할 것 같지도 않고.
고국의 TV방송에서 보여준 아름 다운 아침 뉴스 한 토막에 눈과 귀가 쏠린다.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측에서 기대하고 있는 65개 정도의 금메달을 받아 종합 2위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해도 아마 이만큼의 기쁨과 감동을 가져다 주지는 못할 것만 같다.
‘농민은 신뢰, 고객은 의리’ 라는 타이틀로 이어져가는 내용은 가뜩이나 한기에 떨고 있는 가슴을 녹여줄 것만 같았다. ‘양심농민’, ‘양심배추’라는 부제까지 붙여가며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정치판이나 재계의 걸출한 인물들이라 한들 이러한 이웃간의 신뢰와 의리 그리고 사랑의 흉내를 내 보일 수가 있을까.
충남 연기군의 농민들이 고객들로부터 받아놓은 주문 물량들을 보내줘야 하는데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가뭄과 한파로 인한 배추의 작황이 예년같지가 않고 크기도 그렇고 속도 제대로 차지 않은 저질 배추를 납품한다는 것이 떳떳하지가 못했던 것은 사실일 게다. 농민들은 계약을 맺은 고객들에게 일일히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질이 형편없이 떨어진 배추에 관한 상황을 설명을 하며 원치 않으면 계약을 취소해도 된다는 내용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객들은 ‘날씨나 기후 탓이지 농민들이 노력을 게을리 했거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니 현재의 상태 그대로 받겠다’며 너무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격려까지 해 주었다는 이야기 였다. 양심적이고 고객을 아끼는 농민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와 배려를 하려는 고객과의 신뢰와 의리를 확인해 주는 장면이 아닌가.
십 일월에 들어선지가 얼마 전이었나 싶은데 이제 또 한 해의 마지막에 접어들려고 한다. 지금껏 살아온 삶은 어떠했으며 앞으로는 어떤 삶은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또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 왔는가를 생각해 본다. 해마다 이맘때면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 해에도 건질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마찬가지일 것만 같다. 그런중에도 이런 고국 소식이있었으니 여기서 내게 한가닥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했던 것은,
“나의 좁은 가슴 속에도 그런 농민 처럼, 그런 고객 처럼 신뢰와 의뢰 그리고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심어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