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곳이 서대문 근방이었다. 집 바로 앞에 감신대가 있어서, 학교를 오갈 때나 피아노학원을 오갈 때면 최루탄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특히, 피아노 학원에 갈 때가 고역이었다. 데모가 심한 날이면 학원 원장님이 여기저기 촛불을 켜두었다(촛불이 최루탄 가스를 태운다는 원장님의 주장). 촛불을 켜 둔 채, 하농이며 체르니며를 치고 있으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쩌다 한번 있을까 말까 했던 가족 나들이 길도 마찬가지였다. 버스 안에 갇혀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학생들과 경찰간의 ‘난리’가 빨리 수습되기를 하릴없이 기다리다보면 봄 나들이 길은 어느 새 힘 없이 이울고야 말았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과 손석희 아나운서의 대담을 보았다. 문 대통령의 지난 5년이 어떠했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봄날이었다. 청와대의 햇살이 담담하고 정갈했다. 대담이 마무리 되어 가던 즈음, 그 옛날 최루탄 냄새가 어디선가 환영처럼 나타났다.
피아노를 치며 눈물을 쏟아내던 내 유년시절은 무엇을 위함이었는가. 그 때 그 감신대학생들은 어떤 노년을 맞이하고 있을까. 이 좋은 세상이 왔다는데, 왜 나는 이토록 서글픈가. 최루탄 속 봄날보다 더 무기력한 나날들이 어쩌자고 흘러만 가는가. ‘난리’ 없는 세상에서 왜 우리 모두는 이토록 아픈가.
한 시절을 관통하는 검은 강물이 일순 눈 앞에 넘실거린다. 이 물길을 따라 어디론가 또 흘러가야 하리라.
최루탄이 더는 없는데,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