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페이지 요약 및 견해
이번 주 예정했던 책은 ‘비극’에 관한 니체의 책이었으나, 집에 오니 도착해 있는 한 권의 책에 계속 눈이 갔다. 캐런 메싱의 <보이지 않는 고통>. 집어 든 그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노동자들의 노동여건에 대한 연구를 이어온 인간공학자의 책이어서 그런지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에서 출간한지 얼마 안 된 이 책을 알게 된 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인 김승섭교수의 추천사 덕분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분투했던 과학자의 이야기’라는 그의 소개에 솔깃했다. 김승섭교수의 책을 통해 사회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은 인간공학이란 개념을 소개한다. ‘인간공학’을 접했을 때 순간 ‘인지과학’과 동의어가 아닌가 싶었지만, 캐런 메싱은 이 분야에 몸담고 연구하는 사람을 이렇게 소개한다.
‘인간공학자가 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서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노동자의 눈으로 작업현장을 바라본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노동자들의 행동 관찰 결과를 경영자들과 논의하기 위해 작업현장과 사무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는 것을 뜻한다. 공감 격차를 관찰하기 위한 최적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역지사지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것을 저자는 ‘공감 격차’라고 일컫는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이며, 읽는 내내 곱씹어 생각해보게 만드는 단어이기도 하다. 남녀간 공감 격차, 성소수자들에 대한 공감 격차, 비장애인과 장애인 간 공감 격차, 정치인과 시민 사이의 공감 격차 등 이 사회는 수많은 공감 격차로 채워져 있다. 그 간극을 조금씩 줄여만 나가도 다함께 살기 좋은 사회가 될 테고, 그 간극을 메꾸는 작업은 전문가들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캐런 메싱은 그런 의미에서 공감하는 과학자가 필요하고, 그런 과학자들이 인간공학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그동안 이어온 연구들은 그런 연구였다. 공장노동자, 청소노동부, 슈퍼마켓 계산대 점원 등의 노동여건, 업무 처우의 적절성과 개선점 등을 연구해나갔다. 하지만 그 연구결과들이 그들의 노동여건을 개선하진 못했다고 고백한다. 몇 년 지나 방문 해봐도 그들은 여전히 같은 환경에 힘든 노동을 하고 있었다. 연구기금을 주는 기관에서는 이 연구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문제를 예측해서 예방하려고 하는 불필요한 연구로 치부하여 우선순위가 낮은 연구로 판단하고 예산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일 서 있는 계산원이 얼마나 힘들까를 공감하기 보다 손님이 들어왔을 때 계산원이 서 있어야 예의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청소노동부를 직원, 또는 고객에게 보이지 않아야 할 존재로 여긴다. 같은 사람인데 일부에게만 힘든 노동이 당연시된다.
메싱의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저자가 자신이 진행해 온 연구만을 나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소명으로 느끼게 된 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연구때마다 부딪혀 온 한계도 설명한다. 마지막에 희망적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인간공학 연구를 과학자들이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대안을 제시한다. 4가지를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 시민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게 결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대안이 저자의 생각과 같아서 놀랍고도 반가웠다. 사실 작년부터 한국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들은 모두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던 덕분이다. 우리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걸 여러 경험을 통해 배웠다. 저자도 서문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한국시민들은 직업보건 전문가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없앨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언급해두었다. 나도 그리 믿는 바이다.
2. 나를 확장시킬 책 속의 내용들
p. 9
인체공학 시뮬레이션 연구는 여성의 유방이 모델링 과정에서 배제된 상태로, 화학물질 노출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생리학 실험 연구는 여성 호르몬의 존재가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저는 캐런 메싱의 논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과학 연구에서 다치고 병들 수 있는 표준화된 신체는 남성의 몸이었던 것이지요.
p. 17
우리의 후학들은 대학과 저임금 노동자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뛰어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그 간극을 나는 ‘공감 격차(Empathy Gap)’라고 부르는데, 과학자나 정책 결정권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p. 39
그래서 다른 과학자들은 노동자들의 분노와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 편에 서서 발언을 하는 것은 불편하고, 스트레스와 모멸감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조사 결과에 실제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자신들이 ‘객관성’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p. 40
공감 격차는 노동‧과학‧사회의 모든 면에서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킨다. 산재보상여부를 결정하는 판사들이 조립 라인의 노동조건을 상상하지 못하면, 그들은 작업관련성 질환에 대한 보상 요청을 기각한다. 노동자들이 아픈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은 노동자들의 족부 통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 얼치기 연구를 설계하게 된다. 병원 청소노동자가 지닌 청소 업무에 대한 막대한 지식과 노력을 사업주가 모른다면 사업주들은 장비나 가구를 구입할 때 청소노동자들의 자문을 구하지 않게 된다. 결국 이는 비효율을 발생시키고 병원에서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p. 45
“이렇게 까만 가구를 만들다니, 지옥에나 떨어져라.” - 퀘벡 병원의 청소노동자, 먼지 한 톨까지 다 보이는 번쩍이는 검은색 가구의 먼지를 닦으며
p. 59
나는 과학자들이 노동자들에게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환경성 돌연변이원 연구를 마치 스포츠 경기의 경쟁처럼 생각하는 연구자들을 보면서 섬뜩해졌다.
p. 69, 70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청소노동에서 변화를 만드는 것은 노동 조건에 대한 ‘진실’이 포함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p. 75
사람들에게 청소노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청소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도 그들의 업무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방문객이 있거나 의료진이 진료실에서 업무를 볼 때 청소노동자들은 ‘사라지기를’ 요구받는다. 청소노동의 결과는 오직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을 때만 눈에 띈다.
p. 79
그녀는 환자들과 친해졌고 그중에는 아주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감독관은 그녀가 환자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일을 더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리자는 잔에게 잡담을 하지 말라고 했을 뿐 아니라 병원 내에서 청소노동자들과 말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공지 방송을 내보냈다. 잔은 모욕감과 소외감을 느꼈고, 병원 안에서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진 ‘그녀의’ 환자들이 안타까웠다. 그들은 모두 공감 격차의 희생자였다.
p. 94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보건연구소에도 노동자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를 위한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p. 99, 100
자신을 응대하고 있는 계산원을 앞에 두고 어느 프랑스인 고객이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봐. 너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 아줌마처럼 계산대나 보게 되는 거야.” 북아메리카에서 계산원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그들을 의무적으로 서 있게 하는 것이다.
p. 109
인간공학자가 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서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노동자의 눈으로 작업현장을 바라본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인간공학자가 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행동 관찰 결과를 경영자들과 논의하기 위해 작업현장과 사무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는 것을 뜻한다. 공감 격차를 관찰하기 위한 최적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p. 161
관리자는 ‘준비성(organization)’에 관한 말만 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도 ‘준비’된 여성은 직장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으며 근무 일정을 자주 바꿀 필요가 없고 지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관리자에게 이런 ‘준비’에 필요한 노력을 보여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몇몇 관리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고, 그들은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며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노동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p. 165, 166
관리자가 보기에 여성 노동자는 자신의 가정사를 잘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일을 할 땐 가정이 일터에서 보이지 않아야 했다. 아주 가끔 그들이 편하게 굴 수는 있겠지만 너무 자주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러다보면 양쪽이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p. 215, 216
연구소의 기금은 보상체계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연구하고 있는 것들은 이사회에서 ‘예방적 예방’이라며 경멸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직업보건상의 문제가 진단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졌다. 어느 이사는 “당신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막으려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우리를 비난했다. 이사회는 특히 여성이나 젠더에 특화된 연구는 기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사업이라고 보았고 그렇게 결정했다.
p. 231
공감이란 과학자에게 높게 평가되는 특성은 아닌 것 같다. 과학자들은 노동자에게 귀 기울이라고 배우지 않는다. 사실 과학자들은 노동자들에게 귀 기울이지 ‘말라’고 배운다는 편이 정확하다. 노동자에게 공감하는 과학자들은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셈이다. 그 결과 중 하나로 이 “공감하는”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새로운 방법론을 탐색할 자유가 줄어든다. 공감하는 과학자들은 공감하지 않는 과학자들 못지않게 그들이 세심하고 객관적이고 주의 깊고 엄격하며 전통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단계마다 기존의 과학적 방법과 결과를 참고문헌 삼아 자신의 논리를 증명해야 한다.
p. 240
무엇이 ‘수용 가능한 위험’인가? 누구에게 위험한 것인가? 무엇에 의한 위험인가? 위험은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p. 270
가장 고통받는 사람의 필요에 집중하는 직업보건 연구를 북돋는 것이 결국 대중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기 바란다. 또한 과학자들 역시 지역사회 연구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과학이 다른 어떤 연구로도 가능하지 않았던 귀한 결과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지식과 노력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고용주, 관리자, 학계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노동자들에게 귀 기울이고, 노동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