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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이 상제님 진리사업을 하다 망했다고 하시는 태사부님 말씀을 들으니, 일단은 거기에 관심이 쏠리면서 진리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지식 갖고 뭘 알 수가 있나.
그래도 포교를 하러 다녀 본다고 나섰다.
여기저기를 다니는데, 아침에 포교하러 나설 때 태사부님이 용돈 겸해서 천원, 많이 주면 2천 원을 주신다. 3천 원 받은 건 별로 생각 안 난다.
그래 완행버스 주차장에 가서 무조건 떠나는 차를 탄다. 그 날 그 차 행선지가 포교의 목적지다. 그러고는 250원 300원 500원 되는 데서 내려서 그 곳에 있는 마을로 포교하러 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마을을 다니며 굶어도 보고, 어디 가서 밥도 얻어 먹어보고, 이상한 도인들을 만나 도담을 나누기도 햇다. 천상 옥황상제님 계신 궁전에 갔더니 거기를 통과하려면 여러 가지 조사를 받고 몇개의 문을 통과하더라는 노인도 만나고, 또 깊은 산 속에서 도를 닦는데 한참 공부가 되려니 호랑이가 달려들더라는 도사도 있었다.
이번에 태풍 루사 때문에 피해를 입은 영동이나 김천이 포교가 잘 안되는 데다.
당시 영동 근처 이원에서 복숭아밭을 크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본래 화가였는데, 인생유전으로 농촌에서 과일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복숭아나무 숲 아래에 상한 복숭아가 굴러다니는데, 그 곳에서 그와 이런 저런 얘기 나누다가 해 질 무렵 주린 배를 움켜쥐고 뚜벅뚜벅 시골길을 걸어 나오던, 그 때의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그 때 너무 포교가 안 되는데다가, 책은 커녕 조그만 팜플렛조차 하나 없어 가끔 이렇게 해서 멀 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전후로 만난 몇 사람이 책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 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길 한다.
처음에는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박하게 못 느끼고, '일단은 먼가 풀릴 때까지 세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자.' 이렇게만 생각했다. 그러고는 영동의 이장집과 그 복숭아 수목원을 하는 사람에게 『대순전경』책을 사다가 빌려주었다.
그런데 한참 후에 책을 찾으러 갔더니, 책도 보지 않으면서 김치 국물만 잔뜩 묻히고 책장도 뜯겨져 있다.
그걸 찾아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오면서 생각해 보니, 너무 한심했다. 내 인생이 아깝고 청춘이 불쌍했다.
그래 어떻게든 책을 써봐야 겠다 해서 노트에 목차를 써놓고, 다시 그걸 땜질하고, 그렇게 하면서 총 10장으로 된 『증산도의 진리』책의 얼개가 짜여진 것이다."
도기 132년 9월 8일 증산도 대학교 종정님 도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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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