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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3코스는
온평리 동포구에서 시작하여 해안으로 이어지는 B코스
또는 산간으로 이어지는 A코스가 있다.
A코스 20.9킬로미터, 난이도 '상',
B코스는 14.4킬로미터, 난이도 '중'이다.
4코스 시작점 표지석을 거슬러 진행한다.
그 전, 옛날 부모님 모시고 들렀던
제주 민속촌을 멀리에서 잠깐 바라본다.
표선해수욕장 뒤 해안도로 변 공원에
다양한 종류의 석상이 보인다.
표선해수욕장이다.
안으로 드러난 모래사장이 상당히 길다.
현재 드러난 모래사장 바다에서 안쪽 끝까지
3 ~ 4 백미터는 되어 보인다.
밀물 때에는 수심 1미터 내외 호수처럼 보인다.
조개껍데기가 가루로 바스러져 형성된 모래사장으로
모래찜질은 신경통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평화롭고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과거 4,3 양민 학살 당시
가시리, 토산리 등 중산간 마을 사람들을 학살했던 현장이기도 하다.
바다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모래사장 바깥 풀밭에
십이지신 석상이 일렬로 세워져있다.
태왁과 망사리를 든 인어상이다.
도로 변 풀밭에는 새끼를 거느린 말이 질주하고
그 뒤를 암, 수사자가 쫓고있고
사람이 다시 그 사자뒤에서 쫓고있다.
모래해변 끝으로 해안도로가 달린다.
해안도로와 해안가 숲이 닿는 곳,
모래사장으로 올레가 간다.
모래사장을 벗어나
해안가 숲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숲 가운데 앞이 트인 곳에서
표선해수욕장을 들여다 본다.
모래사장 사이 돌로 경계를 둘러
올레가 지나간다.
다시 숲길로 들어가
해안가 언덕에 올라선다.
표선해수욕장,
바다에서 물놀이 하는 사람도
여럿 보인다.
다시 풀이 자란 사구를 지나
맞은 편 해수욕장에 다다른다.
소금막 해변 모래밭이다.
방금 지나 온 표선해수욕장과는 달리
인적이 없다.
다시 해안도로로 올라선다.
소금막이다.
큰 가마솥에 바닷물을 퍼 담아
소금을 만들던 곳이다.
이름모를 포구 옆 바닷가 돌 틈에
장방형 웅덩이가 보인다.
물고기를 잡기위해 파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름모를 포구를 지난다.
천미천은 한라산 천 백 고지에서 발원,
25.6킬로미터를 흘러
이 곳 표선 하천리와 성산 신천리 경계에서 바다로 합류한다.
그 바로 앞에 관을 묻어 수로를 만들고
그 위로 놓은 길을 건넌다.
'배고픈 다리'다.
고픈 배처럼 밑으로 꺼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가 와 물이 불면 우회해야한다,
성산읍으로 들어선다.
돌담 안에 단이 있다.
마을에서 제를 올리는 곳으로 보인다.
해안으로 길이 이어진다.
신천리마을로 들어서는 해안도로 바깥으로
올레가 꺽어진다.
신천리포구 내항이다.
방파제가 넓게 두른 안쪽으로
어선 몇 척을 정박해 놓았다,
내항을 다시 두른 방파제다.
해안 가 숲길을 지나
해안 자갈길로 이어진다.
그렇게 언덕으로 올라선다.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신풍, 신천리 해안,
10만평 초지위에 조성된 말목장이다.
'신풍, 신천 바다목장'이다.
명칭을 처음 접하며, 상품화된 수산물이 떠올라
해산물을 가꾸고 수확하는 곳으로 생각했는데
말을 방목하는 곳이다.
안쪽에 철망을 두르고
바깥 꽤 넓은 부지 위로 올레가 지나간다.
예전에는 마을 공동 목장이었으나
지금은 사유지다.
해안쪽에 앉아 쉴 수 있도록
돌의자를 배치해놓았다.
목장을 나선다.
올레가 중산간 A코스와, 해안 B코스로 나뉜다.
김영갑갤러리, 독자봉, 통오름,
산길 지명이 유혹한다.
하지만 제주도 특이한 산간보다는
넓고 푸르른 바다의 유혹이 더 크다.
게다가 30킬로미터 가까이 걸어 온
부담도 적지않다.
왼쪽이 산간 A코스,
오른쪽이 해안 방향 B코스다.
신풍리 신풍포구다.
높은 파다에 버틸수 있을까, 싶을만치
규모가 작다.
삼달리로 들어선다.
주어동포구 입구 제주도 전통 나무 배,
'테우'가 전시되어있다.
2013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 21호 지정된 '삼달리 어업요' 중
'테우 네젓는 소리' 와 '갈치 나끄는 소리' 노래 발상지인 이 곳에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여 전시하였다.
삼달리 '주어동포구'다.
하천을 만나 잠시 해안을 벗어난다.
제주일주 동로로 합류한다.
다시 해안으로 들어간다.
농어가 많이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
투망으로 잡는 어장이다.
'농개', '농어개'라고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이 있어
여름에는 피서객과 낚시꾼이 더위를 식힐수 있었다.
성산읍 신산리 해안이다.
밤 하늘 '카노푸스'가 보이는 곳이다.
태양 다음으로 밝은 별이 시리우스,
다음 밝은 별이 카노푸스다.
동양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 여겨 '노인성', '수(壽)성'으로 불렀다.
옛 기록에 의하면
밝게 보이면 국운이 융성하고 전쟁이 사라진다 하여
이 별을 보면 나라에 고하도록 했다.
또한 이 별을 세 번 보면 무병장수한다 하여
조선시대에는 춘분과 추분에
노인성제를 국가제사로 지냈다.
마을 연인들이 연애하며 사랑을 키우던 장소,
'앞괴바당'으로 소개하고 있다.
'신산포구'다.
신산포구 방파제다.
용천수 '만물'입구에
황금닭과 계란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다시 해안 풀숲으로 길이 이어진다.
화산석 자갈을 반반하게 고르고
그 위로 낸 길을 한참 지난다.
다시 해안도로로 오른다.
해안방향 담이 보인다.
'신산환해장성'이다.
목적지까지 3킬로미터 남았다.
뒤로 환해장성이 이어지고 있다.
해안을 빠진 올레는
바로 해안도로를 횡단한다.
숲길로 들어서
밭사이를 지나고
제법 성긴 숲으로 들어선다.
해안도로를 다시 건너
해안으로 접어든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해녀상이다.
온평포구다.
온평리 동포구 앞 신화가 있는
'신비로운 물 공원쉼터'다.
남자물인 열은이갯물과 여자물인 가르메물을 재정비하여
‘농촌건강장수마을 신비스러운 물 공원’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여자용 물은 쉼터 바깥쪽인 동측에 있는 가르메물이다.
물맛이 달아 ‘도는물’이라고도 했다.
이 산물은 일부 염분이 섞여 있어
바닷물의 염분을 가라앉혀 담수를 만들어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밀물 시작될 때에 담수의 수량이 풍부해지면
물허벅을 지고 줄 서서 기다리다가 길어다 사용한 물이다.
과거 이곳 물통은 원형이었으나 새로 정비하면서
불규칙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고
옛 원형 물통이 있던 곳을 구분하기 위해 산물을 둘로 나누어
길게 돌담을 쌓아 보전되고 있다.
쉼터 안쪽에 있는 원형 돌담으로 둘러싼 열은이갯물은
남자 물로 목욕을 하거나 가축들을 먹었던 물이다.
< 출처 : 제주의소리(http://www.jejusori.net)>
'가르메물'이다.
'열은이물'이다.
탐라국 건국 신화 조형물이다.
『고려사』지리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홀연 세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모흥혈에서 솟아났다.
첫째를 양을나, 둘째를 고을나, 셋째를 부을나라고 하였다.
세 신인은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줏빛 흙으로 봉한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로 떠밀려 와서 열어 보았더니 돌함과 사자(使者)가 있었다.
돌함 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세 명의 처녀와 송아지, 망아지,
그리고 다섯 가지 곡물의 씨가 있었다.
사자가, “나는 일본국 사자인데 우리 임금이 세 딸을 낳으시고 이르시되,
서쪽 바다에 있는 산에 신자(神子) 셋이 태어나시어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 하시며,
신에게 명하시어 세 따님을 모시고 가도록 하여 이곳으로 왔사오니,
마땅히 세 따님을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라고 말하고는 구름을 타고 떠났다.
세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차례에 따라 장가를 들고,
물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아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정하였다.
그리하여 양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일도, 고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이도,
부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삼도라 하였다.
그런 다음 비로소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니
날로 살림이 풍요로워졌다.
「삼성신화와 삼공주」 신화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모흥혈은
지금의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제주 삼성혈로서, 지금도 세 개의 구멍이 남아 있다.
세 신인이 거주하였다는 제일도·제이도·제삼도는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이도동·삼도동으로 제주시의 중심지이다.
또한 삼공주가 지금의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에 닿았다고 적혀 있는데,
온평리에는 삼공주가 올라올 때 찍혔다는 말 발자국이 바닷가 바위에 남아 있고,
세 신인이 삼공주와 혼인을 하였다는 ‘혼인지’라는 못이 남아 있다.
그리고 세 신인이 거처할 곳을 정할 때 쏜 화살을 맞은 돌이
제주시 화북동에 삼사석이라 하여 남아 있다.
그런데 『영주지』에 나오는 이야기는
『고려사』의 이야기와 기본 구조는 같으나
세부적인 사항에서 약간의 차이가 난다.
우선 고을나·양을나·부을나의 차례로 세 신인이 태어났고,
세 처녀는 일본국이 아닌 동해 벽랑국의 왕녀들이다.
또 이들이 들어온 곳은 조천읍 조천리의 금당이고,
세 처녀는 새알 모양의 옥함에 담겨 있었고,
고을나는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 양을나는 안덕면의 산방리,
부을나는 표선면의 토산리에 거처를 정하였다고 나와 있다.
<출처 : jeju.grandculture.net>
공원 앞 '제주 탐라국 건국신화와 온평리 안내문' 내용은
벽랑국에서 사자가 왔다고 되어있는데
이는 조천리 금당으로 소개되어있는 '영주지'와 어긋난다.
또한 제주 도심을 이룬 일도, 이도, 삼도동이
동일하다는 '디지털 제주 문화 대전'과는 달리
안내문에는 무관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지역에서 유리한 내용으로만
전해져오는 설화가 변형된 탓이리라.
공원 앞, 3코스 시작점 표지석이다.
여정을 마친 시간이 5시를 넘어서고 있다.
5시 반 경 이 곳에서 동료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30분 가까이 여유가 있다.
탐라국 건국신화를 읽으며 봤던
혼인지에 가보고 싶어진다.
지도로 확인하니 약 1.8킬로미터다.
혼인지가 올레 2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걸으며 흘린 땀 때문인지 한기가 느껴진다.
중간에 다시 돌아와야겠지만
걸음을 옮긴다.
온평어촌계가 있는 사거리 지나
간판이 떨어져 달아난 우물이 있다.
'물허벅 체험장'이다.
우물이 아주 깊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온평리 중동마을에 있는,
인공적으로 판 내통(川桶)이라는 우물이다.
‘비가 오면 내가 찬다’는 냇가 옆에 있는 우물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웃동네와 알동네 중간에 위치해 있다.
예전 이곳에 조그만 내(川)가 있었는데,
지금은 매립되어 도로로 사용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바닷가에 나는 산물은 밀물때 물에 잠겨 이용에 어려움이 많고,
물이 해수와 섞여 염분기가 많았다.
그래서 마을 안 내륙 쪽으로 와서 우물을 만들었는데
수량이 풍부하여 아무리 많이 써도 마르지 않고 물맛도 좋아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식수로 애용되었다고 한다.
우물 내부를 사각형태의 돌로 석축하여
시멘트로 덧칠한 구조다.
웃동네 사람들은 ‘흰죽’이라는 용천수를,
알동네 사람들은 펄못을 이용했는데,
가물어 두 물을 이용하지 못할 때 이 우물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 우물은 예전에 두레박을 이용하여 물허벅에 물을 길어서 먹었던 식수로,
지금은 지붕을 씌우고 정비하여 마을의 특화사업인 물허벅체험장으로 활용한다.
다만, 관리가 소홀하여 일부 시설이 훼손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크다.
<출처 : 제주의소리(http://www.jejusori.net)>
물허벅체험장 우물을 둘러보고 나와
3코스 시작점 표지석으로 돌아와
일행을 만나 숙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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