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07/10화(火)시 42:1-5
인간은 모두 목마름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적, 영적 목마름입니다. 육적 목마름은 세상적인 목마름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잘 살고, 성공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육적 목마름이 있습니다. 반면 영적 목마름은 영원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둘 다 필요한 것이며 균형이 맞아야 하며 영적 목마름이 육적 목마름보다 조금 더 앞서야 합니다. 육적 목마름이 앞서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롯은 소돔과 고모라로 갑니다. 그러나 그 곳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육적 목마름으로 가득 차던 그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국가, 가정, 개인 모두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영적 목마름을 찾아 회복해야 합니다.
영적 갈급함이 회복된 자에게 오는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적 갈급함이 회복되면 인생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1-3) 육적 목마름에 치우친 사람들은 영적 목마름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나면 자기 인생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을 때 삶의 방황이 끝나게 됩니다. 수가성 여인은 결혼을 여섯번이나 했지만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참 만족을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영적 목마름이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갈급함이 회복되면 마음의 복을 받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 세상에서 가장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의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복을 받으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인간의 마음은 넓어지면 우주보다 더 커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좁아지면 바늘구멍보다 좁아집니다. 교회를 등지고 말씀을 등지고 하나님을 등지면 마음은 지옥이 됩니다. 마음에 시기, 질투, 미움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주님이 들어오시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마음의 복을 받으면 평화가 옵니다. 다 있어도 평화가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마음의 복을 받으면 마음이 강해집니다.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느 8:10).
★영적 갈급함이 회복되면 육적인 일도 잘됩니다.
육적인 목마름을 좇아 살면 세상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영적 목마름이 채워지면 육적인 일도 잘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져 살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갈 곳을 택하라고 합니다. 롯은 육적인 목마름을 좇아 소돔과 고모라로 갑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결국 부인도 재산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목마름을 좇아 사막으로 간 아브라함은 대부호가 되었습니다. 나오미라고 하는 베들레헴 여인이 있는데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갑니다. 육적 목마름을 찾아 간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모압지방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제 며느리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영적 목마름을 회복하니 며느리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육적인 일도 풀리게 됩니다.
And...
어느 한 가족이 섬의 주변 약 8마일을 자전거로 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그만 다리로 계속해서 페달을 밟기에는 꽤 먼 거리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출발하기 전에 목이 마를 거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막내가 목이 많이 말라 더 이상 가지 못하겠다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마실 것이 있는 곳은 아직도 5마일 정도를 더 가야만 했습니다. 그 주변에도 시원한 물이 풍부하게 있었지만, 수질을 알 수 없어 감히 마실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끔 이와 같은 영적인 곤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물은 안전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 물을 마시려고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에서 인류 역사상 제일 잘 살았던 사람이 누구인가를 조사 한 적이 있습니다. 뽑힌 사람은 다윗 왕이었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다윗보다 더 잘 산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잘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왕이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려고 고난도의 무술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시편 42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다윗은 자기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찾아내어 갈증을 해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함으로, 또 그의 선하심에 대해 묵상함으로 그 갈증을 가라앉혔습니다. 우리가 진리에 굶주릴 때 하나님은 생명의 양식인 말씀으로 우리를 만족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갈증 해소제를 받아 목을 축이십시오. 육신에 물이 필요하듯 영혼은 말씀이 필요합니다. 오늘같이 어려운 때에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굶주림과 목마름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좇아 살고 있습니까? 육적 목마름입니까? 아니면 영적 목마름입니까? 성도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영적 갈급함으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진정한 목마름은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참 만족을 누리고, 주어진 삶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그런대로 잘 되어 가는데 왠지 마음 한 편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오라는 신호입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상황은 답답하지만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작은 것도 크게 확대해서 해석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아주 잠시입니다. 아무리 바라고 바라던 것이 이루어져도 잠시 기쁠 수 있지만 금새 기쁨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은 겉에서 오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내적인 기쁨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안에서 뿜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갈증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영적 갈증을 채우면 다른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만족이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존재가 내 안에 가득 차게 되면 내면에서 감사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육적인 갈증도 채워지게 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영적 갈급함으로 주님을 찾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