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너무도 피곤하고,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읽은 마11:28을 보면, 주님께서 피곤하고, 지친 영혼들에게 평안한 쉼으로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마11:28)
우리들이 지하철나 버스를 타면, 정신없이 자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차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정신없이 잠들어 버립니다. 차 속에서 잠을 자는 것은 우리 시대에 너무도 흔한 풍속도입니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잡니다. "아! 피곤하다"라는 말들은 이제 너무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만성 피로증후군). 현대인들은 실제적인 일도 일이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과중하기 때문에 더욱더 피로를 빨리 느낍니다.
2. 피곤하고 지친 학생들...
사실 피곤하기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느끼는 것인데, 주일 아침에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상당히 피곤한 상태에 있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말입니다(밤샘, 시험공부, 학업 스트레스, 컴퓨터 등). 아마 여러분 중에는 '모든 것을 잊고, 잠 한 번 실컷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요즈음 고등학생들 만큼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피곤하고 지친 부류도 또 있을가 싶을 정도입니다. 점수, 진로문제 등... 뭐 그리도 학생들을 달달 볶아대는지, 옆에서 분노가 날 지경입니다.
몇 년 전 모(某) 방송국에서 '교실붕괴'에 대한 주제로 방영했던 프로그램 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방송의 내용을 보면,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들의 너무도 큰 시각차이를 갖고, 서로의 주장을 내세웁니다. 교실이 서로 상처를 입히는 현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대체로 학생들은 대학시험을 위해서 학원선생처럼 잘 찍어주는 선생을 좋아합니다(인기있는 교사의 조건). 그러나 교사들은 많이 고민합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관심은 오직 시험점수에 있고, 이것을 교사들에게 요구합니다. 이것은 이것이 그들에게는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죠. 물론 이것은 이 사회의 현실 제도가 그렇게 만든 면이 있습니다. .
어떤 학생들은 교실의 옆에 있는 친구들이 적(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갈등이 많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자퇴(自退)를 고려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고, 어떤 규정된 틀에 메여있는 인스턴드 같은 학교를 싫어했습니다. 특히 학교를 자퇴한 아이들은 '내가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마음을 교사들에게 말했을 때, 교사들이 '그럼 그렇게 하라'고 했을때는 절망감이 더 컸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자기들을 완전히 휘어잡던가, 아니면 학원처럼 잘 찍어주든가'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즉시 반발했습니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심한 간섭으로 뭔가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한다. 또한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특히 학생들이 가정에서 받는 상처들에 대해서 교사는 속수무책인 상황을 만나고, 이런 때는 교사로서의 회의감과 절망감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학부모들은 단순하게 '학생들이 공부(점수)만 잘하면 되지 않은가?'에 맞춰져 있습니다. 서울대에 몇 명이 갔는냐에 따라서 명문고가 결정됩니다. 이 모든 학생들의 생활 싸이클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거의 관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실적인 이러한 문제들 외에도 정신적이고 영적인 짐들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가정에서의 상처, 대화부족, 미래에 대한 걱정, 영적인 압박감, 죄책감 등등....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매주 수요일 저녁에 서울체고에서 수요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 중에 상당수가 현실적인 성적과 대회 입상 등의 문제들로 인해서 헛것을 본다든지, 영적인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합을 앞두고 징크스다 뭐다 찾아가면서, 머리를 감지 않는다든지, 선배들의 옷을 빌려 입는다든지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너무도 바쁘고, 피곤하고, 조급해하는 것을 이용해서 마귀가 틈을 타려고 시도하는 것들입니다.
3.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다시 본문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마11:28)
예수님은 이 모든 우리들의 문제와 무거운 짐들을 아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초청하십니다.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이유는 쉼(Rest)을 주기 위함이다. 이 쉼은 참된 쉼이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된 평안입니다. 요14:27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신다는 약속은 바꿔 말하면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짐을 대신 감당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영혼육의 모든 문제와 죄악들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4. 맡기는 일은 내가....
우리에게 참된 안식과 평안을 주시는 주님 앞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초청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서, 나의 모든 짐을 맡기는 일'입니다. 잠16:3과 시37:5-6을 보시기 바랍니다.
"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5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6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우리를 초청하시는 주님 앞에, 죄의 모든 짐도 맡기고, 영혼도 맡기고, 삶의 무거운 짐들도 맡기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려운 짐들이 다가올 때마다, 맡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최초로 우리들이 마음을 열고, 주님 앞에서 나의 죄짐과 영혼을 맡겨드리는 것을 영접(迎接)이라고 합니다(요1:12). 그리고 계속해서 맡기는 삶을 사는 것을 성결(聖潔, 또는 성화, 누림)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이 시간 주님께서 피곤하고 지친 영혼을 들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절)"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시간에 진실된 마음으로 참된 안식과 평안을 주시는 주님을 영접하기 원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함께 기도합니다. 이미 영접한 분들은 '주님 제가 계속해서 저의 문제들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청하시는 주님, 지금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저의 모든 문제와 삶을 주 예수님께 맡깁니다. 이 시간에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믿으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이 시간 저를 구원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 설교 후 찬송 : "주님 보좌 앞에 나아가" --> 경배와 찬양집에서 찾아서 주보에 넣을 것
* 추가 광고 : 오늘은 세례대상자 교육이 있고, 다음 주에는 세례예식이 있습니다. 세례대상자는 전체 기도회 후에 바로 세례교육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