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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성격 보기보단 화통한 편이고 쿨한 퍈인데
내가 생각해도
되출이 되풀이 적는것 좋은일도 아닌 일 적는것 적을때마다 수치스러울때도 있고
그렇다고 수십년 아득한세월 참고만 살아온 세월 원통스럽기도하고 분하고
내가 받은만큼 되갗아줄 힘도 배경도 밭침해주지못하는 현실에
뒤늦게나마 이렇게 당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고통을 적을수있게나마 된건
오늘도 무심코 화장실에 들어갔다 무색무취약에 당해
눈알이 빠질만큼 뻑뻑하고 심장이 목안이 치명타를 당해 19층 쓰레기들에 의해 훙악범들에 의해 19층에서 투입시킨
현깃증과 머리가 몸의 중심을 잡기 힘들만큼 엇질엇질
앞 베란다창문을 아예 열지도못항만큼 살며시 열면 귀신같이 알아채 독한향을 베란다로
이젠 내 발뒤꿈티까지 상처를 내 밴드를 붙이고 다니고 그 일당들을 알아채게 된다
거리를 걷다보면 내 운동화에다 눈길을 퍼부어대는
내 머리칼을 수시로 수십년동안 훵하게 만들려고 머리를 감으면 수채구멍을 막는다 빠진 머리칼이
어제 동치미에 나왔던 여자의사년이 언젠가 티비에나와 자기는 머리를 감으면 빠진 머리칼을
하수구 벽에 붙여 헤아려본다던가 뭔 할짓아 없어 벽에다 붙여 빠진 마리칼을 세어본다는건 정신감정을 밭아야할게다
그 다음날 머리를 감으니 수채구멍을 막을만큼 둥둥 떠 다니던 내 머리칼
그 여자 의사년 틀림없이 고향이 충남년일꺼다 뱅글뱅글 능수능란해게 웃으며 진실성없는게
항상 잘 웃어도 동치미에 나오는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로봇이라는 의사도 틀림없아 고향이 충남일것이다
동치미던 어느프로던 풍청도와 전라도가 싹 쓸이하니 아니면 풍청도와 전라도와 결합된 사람들이던가
로봇이라는 그사람은 고향이 충남일꺼지만 내 느낌에 인간미가 더러는느껴질때가 있다
다른사람 말할때 잘 경청해주고 유효적절한 비유로 깊이를 더러낼때기 있고 상식이 충부한 사람이다
김홍림인가 그 사람말할때 싸잡아 면박을 줄때가 있는데 시청자로서 느끼기엔 가장 한국적인 남자같다
다른사람 말할때 집중해서 듣고 다른사람들 의견에 반박할때는 있어도 면박주지는 않는다
속내를 능수능란하게 숨기지못하는게 장점일꺼다
충청도 사람들 표적되지않을려 믿보이지 않을러 잘 보일러 아첨하고 미리 선수처
앞 다투어 나를 모함하고 자기들 한짓을 내게 덥어씌우고
참 내게 못할짓 많이했다 그래서 성동일인가 그사람이 꿈에 나타나
자기들을 용서해달라고 못할짓 많이했지만 절봐 달라고 꿈에서 깨
딸에게 성동일인가 고향이 어딘지 검색해보라하니 인천이라고 실제 고향은 다를수도 있다고 딸이 예기했었다
충남일것이다 내 생각에
난 내 예기만 적는다 차마 두려워
다 충청도 사람이 그렇다는건 어니다 인성이 바르고 인품이 갖줘진 사람도 있다는걸 안다
어느 지역이던
그 촘촘하게 많던 내 머리칼이 이젠 모지를 써지않으면 볼품없어
내 등 어깨도 빠개질듯 아프든 조금 아물긴 했어도 뒤척일때마다 고통스럽고
내 손은 오른쪽 4째마디는 아예 휘어졌고 2째4째마디 고통에 어찌할수없어 밴드를 골라골라 붙이고
일을하긴 하지만 고통스럽다 2째 4째마디 끝부분은 감각이 없이 고무마냥 뻣뻣해 젓가락도 못집고 손톱은 빠지기 시작이고
언젠가 모래을 손으로 잡히지도 않는다고 적은 며칠후에 내손을
그즈음 양손4째 손가락에 실금반지를 꺘는데 그게 원인을 불렀는지
그래도 그 다음부턴 집에 마루에 운동화에 모래를 갖다놓진 않는다
앵말도 무심코 신었다간 가려운약을 뿌려놓았는지 발라놓았는지 버리기 수십켤레
발도 수시로 2백식초물에 거의 담구다싶이 한적도 많다
다 어찌 적을수있단말인가
경찰들 눈 감고도 잡을수있는 범인들을 눈감아주고 묵인하고 보호하고 편들어주고
당하는 피해자를 그리 모질게 할수있었단 말인가
비단 나에게만 악행을 해대겠는가
그들에게 적이라 간주되면 여차없이 그들에게 대항하는 저항하는 사람들겐 가차없이 악행을 감행하고 있을것이다
당하고도 모른테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 수없이 많을것이고 어찌할수있겠는가
경찰에게 도움을 청할수도 없을것이고
냐 역시 수없이 경찰에 직접 찾아가 도움을 청해봤지만 누가 그런짓을 하는지 아느냐고 오히러 내게묻고
심지어는 정신과 쪽으로 몰아붙이고
또는 대통령도 내 문제를 해결해줄수없다고 말한 경찰도 있었다 그 경찰 내 느낌에 훙청도가 고행일꺼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마스크를 써고 걷노라면 마스크가 흠뻑 젓는다
어느땐 두겹으로 겹처 마스크를 썬다 마스크가 흠뻑젓어 찬기가 스며들어
그만큼 심장이 숨쉬기가
그 숱한 세월동안 이렇게라도 숨 쉰다는게 살아있다는 자체가
내게 향하는 그들의 증오을
그 오랜세월동안
그들을 배척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것이다
다른 지역 같았음 문제될게 없었을탠데
발단의 원인을 깊이 생각해본 결과
아득히 먼 얫날 소녀시절에
월남 파병시절에 애국한다는 마음이었을까
월남 파병군인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작있는데
국가를 위해서 먼 타국에서 고생하는 군인에게라고 썼던가
그 당시 막내동생도 학교에서 월남파병군인에게 위문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베레모를 쓴 군인이 사진을 막내동생에게 보냈던 시절 누나가 있느냐며
편지가 몆번 오갔는데 언젠가부터 필체가 바뀌어졌고
문장도 처음과 틀린것같고
그런데로 편지가오면 고생한다고 계절이 기는 갈목에서 국가를위해 고생한다고 썼던가
어느날 제대한다고 자기 진짜이름은 이석기라고 중사라고 고향이 전라도라고 적었던것같다
만나러 오겠다고 내가 질색해서 위문편지였다고 만나지 않갰다고 오지말라고
그 당시만 해도 전라도가 어디붙었는지 지역적인 감정 같은건 아예 모르던 시절이었고
계속 편지가 오는데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그때부터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밥도 먹지못하고
목에 뭐가 걸린것처럼 빼빼말라가고
어느날 아버지게서 병원에가자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는데 만경관극장옆에 곽내과던가
원장이 아버지와 잘 아는 사이같았다 진찰을 하시고 목안을 보고 하시더니
따님이 뭔 신경쓸일이 있냐고 신경성이라고 괜찮다고 하시면서 약을 3일치 주샸는데
아버지게서 걱정될일 있으면 아버지게 말하라고 대 해결해주겠다고 말하라고
사실데로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각정말라고 집으로오면 아버지게서 만나겠다고 아무걱정말라고 하셔셔
그때부터 안심이되서 밥도 먹게되고 외출도 하게됐다
편지가 끓임없이 왔지만 찢어버리고 찢어버리고 골목을 지나칠때 남자가 보이면 긴장하게되고
그러다 몆해가 지나
친구들 6명이 포항보걍사쪽으로 3박4일인가 여행을 가게되었는데
보경사 위에서 내려올즈음 중간지점이던가 친구들과 들러앉아 게임도하고 게임벌칙으로 노래도 부르게됐고
그때 젊은 남자가 끼어들더니 트스트를 구워서 주기도하고 나는 먹지많있지만 전국을돌며 여행중이라고 했던것같다
친구들게 싸인을 부탁하며 나는 싸인에 응하지않았고 여행을마치고 집으로 와서 얼마지나
집으로 편지가 왔는데 대구의 빨간사과가 먹고싶다며 사과그림을 대구의 안내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고 적었던것같다
주소도 알려주지않았는데 예전의 위문편지 악몽이 떠올라 시내 다방에서 만나기로하고
포항여행갈때 친구들게 다 그곳으로 오라하고 친구들과 같이 보안대로 전화해서 간첩이라고 신고했었다
왠지 간첩같았다 내 주소도 알으켜주지않았는데 또 전국을 여행한다는것도 수상쩍었고
시내 전원음악다방에서 멀치감치있다 그 남자가 의자에 앉는걸보고
미리 대기하고있던 보안대사람에게 눈짓으로 알으켜주었었다
보안대원이 3명이던가 왔었는데 그 남자에가 다가가 신분증인가 확인하고 전화를걸고 하더니
간첩이 아니고 해병대 중위인데 나하고 교제하고 싶어 편지를 보낸거라고 했던것같다
미안한마음 가졌는지 생각나지않고 그 보안대원들이 잘하는 냥면집이 있다고 찝차로 갔던가
냉면집에서 친구들찍은 사진을 그날 찾았는데 보면서 다 멋쟁이라고 했었던게 기억난다
그리곤 그일 까맣게 잊었는데
청녕이 고향이라는 군무원이라는 나하고 4살차이 다방에서 만나게 되었고
내게 있어선 첫 선이었고 몆번 선 자리가 나왔지만 결혼할마음이 전연없었고
시내 다방2픙에서 기디리고 있는데 조금 늦개와선 그냥 자리에 앉는다
일어서서 늦은데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고 앉으라고 일어서선 정식으로 사과한다고
그 남자 이름이 성영식이라 했고 자기형님이 창녕군청에 다닌다고
정치가 꿈이고 승마가 취미라고
큰 오빠도 만나시곤 괜찮은 사람갗다고 하시길레
자기형님게 인사하러가자고 한 그 다음날인가 대호다방에서 만났을때 대호다방 들어갈때
입구에서 늙은초라한 여자가 바나나를 들이밀며 사라고 불쌍하기도해서 샀었던것같다
그때 빨간 장지갑을 들고 다녔는데 다방에서 그 남자를 만나서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내 무릅에서 뭐가 떨어지는것 같기도 했는데 신경써지않았고 그때 성영식 그남지가 내 무름에서 떨어진 무엇을 줍더니
내게 준다 내 주민등록증이었다
언제나 내 이름이 맘에들지않아 친구들게도 다른이름을지어 말했고
학교친구외엔 내 본이름을 말한적이 없는데 그 사람이 주민증 이름을 보니
창피해서 나도몰래 주민증을 나꿔채곤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와 뛰다 싶이 버스정류장에 도닿하니 그 남자도 어느새 왔는지 내 옆에 서있었다
마침버스가 와서 뛰어올랐다
다음다음날인가 그 남자를 소개해준 남자가 팔당교물에 빠저 익사했다고 신문에도 나고
아버지게서 산통을하셨는데 즉 계를 하셨는데 그 부부도 계에들어 그 부부기 한게 온적도있고
얼마후 친구들과 시내 종앙공원 새로생겨 개통한다고
중앙공원 안에서 접근하는 남자들게 친구들이 응했는데 나도 어쩔수없이 함게 했는데
미팔군 통역사라는 남자가 성씨가 배씨라며 모두에게 손금을 봐주는데 나만 손을감추고 손금을보지않았고
그 납자들이 사진찍어준걸 찾으러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질때
그 배씨와 같이 나왔던 카메라 대리점한다는 남자가 뒤따라와 애기좀하자고 거절해도 거절해도
버스정루장까지 따라와 버스에 오르니 같이 버스에 오르길레 내가 다급한 마음에 발로 찼었던같다
나도 놀라 내 정신이 아니었던같다
수십년이 지난 세월동안 종합해본 결과
서울마포군인아파트 시절 윗층에 이사가고 보안대소령이 전라도가 고향인 온갖 화장실에 자기들 배설한걸 우리집으로
내려보내고 올라가서 그런짓말라하면 그런적 없다하고
남편게서 사병불러 그 추운 겨울에 공사하고 공사하고 본시 그아파트는 소령이 오는곳이 아니었다
우리도 은평구에서 갑자기 부엌벽이 시장에 갔다오니 부엌을 다 허물어 주인마줌마게 예기했더니
주인아줌마도 놀라서 자기들도 횡당한 일이라고 갑자기 동내청년들이 골목넓힌다고 벽을허문다고
아침저녁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다 뻐꿈뻐꿈 들여다보며
남쳔게서 몆달만 기다리면 새로지은 아파트로 이사갈수있다고 정 참을수없으면 당신이 결정하라고
환경이 안좋고 헌 아파트가 한집 나왔다고 당신의견에 따르겠다해서
그 아파트로 이사가게 된건데 수리해서
그아파트에 보안대소령이 올곳이 아닌데 그 보안대소령이 오고부터
온갖일이 모함이 그보안대 옆집옆집 중사부인이라는 고향이 전라도
복도에서 군인아파트부인들 다 모이라해서 나갔는데 아들을 업고 갑자기 그 중사부인이 내팔을 붙잘길레
왜 그러냐고 돌아보니 그여자가 쓰러지고 보안대 소령부인 뚱뚱한 여자가 그여자를 업고 내려가고
주위에 있던 군인부인들 다 들어가고 나도 들어왔느데 그때 거의 남편소령진급이 거의 확실시 됣무렵이었다
부대에 최대위부인이 중사부인을 폭행해 병원에 입원해있다고 소문이 파다히 번졌고
남편게서 군인가족들 옥상에 다 모이라 해서 옥상에서
이런 불미스런 일이 뭐라고 말씀하는걸 계단에서 얼핏듣곤 억울하고 억울했지만
남편에겐 마지막 기회였고 소령진급 방해할려고 그 모든일을 계획하고 꾸민것이다
결국 3층에 까맣게 뒤인 후배가 남편대신 소령진급되어 술사들고 왔었다
어느날 밖을나가니 대구가 고향인 소령부인이 앞만보고 모른척걸으라고 하고선 옆으로 지나치며
우리를 아파트서 장교품위를 손상시켰다며 쫒아낼려고 벌써 두번째 도징찍으러 다닌다고
몆집말고는 아무도 도장짝어주지 않었다고
결국 남편게서 친척까지 동원해 합의를 할려고 했던것갗고
그때 소령심사가 진행중이었으니 위선에선 빨리 합의보라하고
끝까지 합의못해준다고 친착아제게 말하더라고
내가 남편의 초쇄해진 모습을 보다못해 직접 병원을 찾아가 원장을 만나
남편개서 지금 소량진급 심사중인데 덩치로보나 나이로보나 내가 사람때릴사람으로 보이냐고
솔직이 예기 해 달라고
그 병원에 와서 종합검진만 받았다고 종합검진비 3십만원 병원에 지불하고
심지어는 신문배달원이 훔처간돈을 누명을 쒸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재
남편에게 동료가 귀뜸해주어 남편게서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결과 신문배달원이 자백했다고
난 지금도 믿지않는다 애시당초 돈 없어진 일이 없었을것이다
며틸전부터 방위병이 갑자기 보초를 서더니 방위병이 서럽장에 돈을 넣아뒀을리 만무하고
전라도가 고향인 사병 도둑질한것을 남편게서 중대장시절 영창에넣지않고 발길질 몆대로 봐준것이 결과적으로
또 빨레하러온 전라도 에가 도둑질한것을 그냥 모른체했어야 했는데 커피잔은 돌려달라한것이
이 모든것을 종합해본 결과
위문편지 보낸것도 가로채서 전라도 이석기로 인해 밖을 나가지 못랬던
처음 편지주고밭을땐 계급이 사병이었고 성씨는 이씨가 같았고
만나러온다해서 제대한다고 만나지않겠다고 위문편지는 제대하면 의미가 없다고
그때사 자기고향은 전라도고 이름도 이석기라고 위협조로 계급은 중사라고했다
그때 이름과 계급을 알았다 편지봉투 겉면엔 단 한번도 계급과 이름을 적은적 없었다
포항 여행때 접근한 해병대중위 라는 그남자도 전라도
버스정류장까지 따라와 놀래키던 그 카메라 대리점 한다던 그 남자도 전라도
여느지역같았음 아무런 문제되지않았을
요즘 생각해본다 전라도지역사람 혼인 거절한다면 그 삶은
더구나 연예인들은
자꾸만 내 적은 단어를 바꿈질한다
계속
시간을 끌려고 그러는것 같가도 하다
언제나 글 을 적을땐
엊그제부턴 컴퓨터 켤때마다 디스크 7 숫자가 뜨면서 뭐라7초내에 아무키나 누르라해서
아무키나 무작위로 누르면 41숫자로 완로라면서 뜨고 그대로있고
또 꺼고 또 끄고 다시켜고 다시켜고 쓰레기들이 좋아하는 숫자 741라는걸 증명한다
이젠 디스크 8 숫자가뜬다
나로인헤 나로인해서 나로인해서 딸나이 이십대 후반쯤
듀오결혼정보업체 선우결혼정보업체에 떨에게 의논하지않고 가입했는데
조건을 묻는란에 나이는 4살차이나는 전문직이면 좋겠다고 나이차는 꼭 4살차이로
단 풍남과 전라도를 제외한다고 제외시켜달라고 조건 좋은 고향이 잔라도라고 할땐
내가 아니라고 다른사람으로 알아봐달라고 딸에겐 말하지 않았고
그땐 딸에게 행한 서울마포군인아파트서 방공호속으로 꺼꾸로 머리는밑으로 다리만 허공에서 허우적대며
겨우 꺼내보니 머리있는쪽에 온통 깨진 유리조각들이 깔려있었다
얼굴은 피투성이 급히 병원으로 갔을때 의사가 예길듣고 운이좋다고 콧잔등을 먖번꿔매고 약을먹고 주사를맞고
아물었는데
그때 남편소령심사때 전라도여자게 종합검진비 30만원을 뜯긴 그 즈음이었을꺼다
얼마쯤 자나서였을까
남편게서 여자도 힘을길러야한다고 성장해서도 도움된다고 태권도도장을 알아봐야겠다고
마침 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친다고 어느날 딸이 귀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태극도 배우다 그렇게 됐단다 배우지말라고 내가 즉시 중단하라고 남편게선 다른 일반도장을 알아봐애겠다고
내가 반대했고 그러다 1년쯤지났던가 콧잔등은 상처부위는 아물었는데
왼쪽 콧구멍옆에 지방을넣어 왼쪽볼과 경계선이 없게 붙여놓았다
보통 예들같았음 외모에 신경많이 쓰느 예들같았음 감당키 어려웠을캔데
대구로왔을때 시내 이영길 성형외과에 택시타고 찾아가니 의사기 고등학교 졸업하고 히는게 좋다고
지금 성장기인데 지금하면 뭐라고 했던것같은데 그 며칠후 수예점바로앞에서 내가 미싱을 밝고있는데
차가 이웃집개를 즉사시키고 온갖 무서운일이 결국 이웃집아줌마가
뒤에 가야산도사가있는데 같이가보자고
그때 친정식구는 2층에서 생활하셨고 우리는 1층에서 생활할때였는데 급히 몸만빠저나와 앞집으로 비어있던 2층으로
사는게 사는것이 아닌 자녀들겐 일체내색하지않아도
요즘 티비를 보노라면 내 자녀들게 한없이 고맙고 단 한번도 불평하지않고 묻지않았어도
사회물정에 어두웠던 지금도 마차가지지만
내 자녀들게 고맙고 미안하고
속내깊은 내 자녀들의 마음 털어놓지못하는 어린그마음들의 온갖
눈물날때가 많다
가끔씩 아빠 역횔까지 해야한다는 강박감에 다정함을 억눌렸는지
그 모든것이 잠재돼 있는 상태에서
두려움에 딸 콧잔등븉은채로 두려움에 성형외가에 갈 엄두도 잡은채로
대학시절도 선볼때도 콧잔등붙은채로 딸 그쪽으론 별로 크게신경쓰지않는데도 나 혼자서만 속은 속은
어느날 지하철을 내려와서 집으로 올즈음 위를보노라니 성형욋과가 보였다 급리 들어가보니
성형욋가 교수직하다 따로나와 성령욋과 차렸다고 백성형욋과던가
딸은 괜찮다고 내가 다구처 데려가서 수술밭는데 의사혼자한다 덩그러니
딸을 좁은 의자위에 눕혀놓고
마포군인아파트시절 콧잔등꿔맨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는데 그 자국을 레이저로 지우겠다헤서
오히러 그 자국이 크게 벌어저 콧잔등 왼쪽볼과 붙은곳은 지방이라고 제거됐는데
내가 화를내며 어떡하겠냐고 의사가 하는말이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손이 떨려서 그렇게됐다고
내가 봐도 연세가 많아 섬세한 수술은 무리였을것같았다
세월이 가니 콧잔등 그 부위도 아물고 표시도나지않고 조금지나 지하철을 타러가다보니 그 성형욋과가 없어졌다
잠시잠깐 영업을 한것인가
지금 내 오른쪽 이마에 큰혹 하루밤 사이에생긴 머리칼부위에 이곳저곳에 샹긴 작은 혹들 몸부위에 보이지않는
바람이 불면 머리칼이 날려 이마의 혹이 여실히 드러나 챙피해서 그때만해도 지금보단 젊은때여서얐는지
지나가다보니 성형왓관가 내과던가 마음이 끌러 들어가보니 내 이마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지방덩어리라고
전에 갔았음 이자리에서 단번에 제거할수있는데 기구가 없다던가 뭐라한다
구리 아파트시절에 어들과 딸과 같이간 지나치다 들렸는데 성형욋과에
의사가 갑자기 내이마를 보는척하더니 양손으로 머리를 꾹끅누르며 혹있는데 손톱으로 꾹꾹누른디
내 의사도 묻지않고 부지불식간에 급히 아들과 딸에게 나가자고 해서 나왔는데
아직까지 손톱으로 눌린자국이 이마윗쪽이 움푹파여있다
언제가 아들에게 혹이 자꾸 내려오는것같다고 했더니 실제로 처진다
아들이 서울 어느성형욋과에 진료선약을 했는데 그 날자 하루전에 무서운일이 생겨 취소하게되었고
자꾸만 밑으로 처지는것같은 바람만불면 가뜩이나 머리칼이 점점 없어지는데
머리컬칼부위에도 쬐끄맣게 내 엉덩이 지방을 주사기로 그랬겠지
남편게 행했던 돌아가실때까지 고통밭았던 그것을 상기시켜주려고
내머리칼 부위에 내 엉덩이 지방을 투입했겠지
극히 부분적으로만 적는 다 적을수조차없는 인간의 탈를쓰곤 저질을수없는 짓걸이들
다 적지못한다 천인공노할짓 적지못하다
가정이 있는자들이라면 하늘로머리를 치켜든자들이라면 그런짓 생각조차도 못하것이다
이래저래 저들에게 당한
딸 선자리 알아볼시절에도 그 악행을 고스란히 감내했던
충남과 전라도 사위를 볼마음이 생기겠는가 당연히 배제시키지
나 사람인데
아무리 조건이 좋데도 단번에 거절했지
내 선에서 딸에겐 일절 말하지않고
대구의명물 선짓국집에 붙더니 선짓국맛을 흐려놓고
요즘은 온갖 반찬을파는 가게로 전략시킨
엣적엔 선짓국 하나로 유명세를 타고 꽉 자리를 채웠던 그곳이
충북은 괜찮다고 친정암마와 충북에 사잔관하던 사촌아제집에 여행갔던 기억이 남아
충남만 싫다고 했고
언제나 내게 악행질하는 충남과 합심해 전라도라는걸 알고있다
아니면 같은패거리들
요즘은 노란색을 자기들색이라고 노란색을 입고 설친다
두서없는 글을 적게된다
그결과로 아직까지 딸 미혼이다
내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어디하니 나무랄데없었던 흠잡때 없었던
키울때 나 걱정시킨적 없었던
상주곳감을 살때던가 티비속에 상주곳감이 나올땐가
문득 이런생각이 든적이 있다
어느날 집으로 배달되오는 약사신문에 전문직만 소개해즌다는
역촌동이던가 물어물어 찾아가 돈 삽십만원내고 가입하고
얼마후 약사라고 집안이 배경이 좋다고 그 부친게선 경찰서장으로 퇴임하셨고 경찰소장이라했던가
그 형은 육사졸업해서 소령이고 그 누나도 약대졸업해 약국하고있고 그 매형은 의사라고
딸에게 예기해 만나게 했는데
만나고와선 별 의향을 예기 하지않아서
내가 꿈이 좋은것같다고 만나보라고 재촉했고
몆번 만나는것 같았는데
그 누니집으로 가자고해서 따라갔다와선 마음이 조금 움직이는것 같았다
그 누나 참 예뿌더라고 그 매형도 야무지게 보이더라고 욋과의사라했던가
얼마후 시내서 딸과 그약사와 어머님되시는 분과 만나게 되었는데
딸은 물어도 잘모르갰다고 의향을 내보이지않던 그 약사를 꼼꼼히 보노라니
왠지 내 딸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콧진등의 희미한 흉터와 콧구멍옆과 볼이 붙은채로 였는데 왼쪽에
그악사는 말끔하게 생겼고 살갑게 의자도빼서 앉기쉽게 배려해주고 나이도 4살차이치곤 어려보이고
그 어머님되시는분 빈틈이 없는 사회생활에 능한 그런인상을 밭았었다
결혼하면 그 약사를 다 맡기겠노라고
2년후엔 약국도 차려줄 의향을 비쳤고
돌아와선 딸에게 딱 잘라 말했다
딸 짝이 아니라고 두반 거론하지말라고
딸이 지금와서 그러냐고
꿈이 좋다고 다구칠땐 언제냐고
역폰동에 전화걸어 아니라고 거절하곤
그 다음그다음날 벨이 울리길레
현관문 쬐끄만 뚫린데로 밖을내다보니 그 약사가 서 있었다
놀라서 뭄도 열어주지않은채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지읺고
이따금씩 벨을누르니 차마 못할짓이어사
남의 귀한 아들을 딱히 흠잡을데없는
다민 내딸에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어서였를까
역촌동에 전화해 빨리 가달라고 예기해 달라고
조금있다보니 보이지않았다
딸에겐 자세힌 에기는 하지않았고
먀칠뒤 딸에게 물었다 혹시 찾아오지 앉았냐고
딸이 퇴근할때 기다리고 있었는지 예기좀 하자해서 인연이 아닌것같다고 거절했단다
딸이 그때 약국에서 근무할때였는데 그 당시민해도
많은 제안이 약국을 맡아 운영해달라던가 월 얼마줄태니 약사자격증만 빌려달라던가
또는 선 자리가 5살차이가 많이 들어왔는데 내 선에서 일체 거절했었다
지금사 내가 딸 앞길을 나로인해서 세상물정 어두운 내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때 상주가 고향인 그약사와 결혼시켰담 가정을 꾸렸을탠데
생각하다가도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역시 내딸 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만큼 딸에대한 기대치가 큰만큼 딸은 나를 실망시킨적 없었다
요즘 티비를 보노라면
내 자녀들의 고충 꽁꽁 안으로만 삭였을거다 든든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것같다
수시로 이사해 바뀌는 환경과 아빠에 대한 그리움 내색 하지않았고
내 온 정성과 내 삶의 지표는 오직 내 자녀들게 점철됐는데도
고맙고 미안하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과 하나뿐인 딸인데
나를 자책하게 되는지
어느땐 내 마음의 상처도 있을탠데 스스로 생각하다가도 잠시 잠깐
다시 내자녀들게 고마움괴 미안함으로 가득찬다
남편에게도 항상 따나지않는 미안함과 가슴저린 슬품을 느끼며
꿈속에서 큰 남자쥐가 내게 알랑댄다해도
절대절대 동요하지 않겠다
글 내 적은데로 두었음 좋겠다
빼먹지 말고 글 바꾸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