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요트마리나에서 요트체험을 하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같은 삼학도 바로 옆에 있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명가수 이난영씨를 기리는 이난영 공원이다.
<목포의 눈물>을 노래한 이난영(본명;李玉禮 1917-1965)은 목포 출생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목포공립보통학교(현 북교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조선면화주식회사에서 여공 생활을 하다가
16세가 되던 해에 태양극단에 입단하여 무명가수로 지내던 중 1934년에 ok레코드사의 이철(李철)
사장에게 발탁되어 전속가수가 되었으며 손목인(孫牧人)이 작곡한 <불사조(不死鳥)>를 취입함
으로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차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도쿄[東京] 히비야공회당에서 열린
'전국명가수대회'에서 다시 한 번 그 재능을 인정받게 된다. 이난영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이 발표
되었을 때는 노래가 발표되자마자 삽시간에 선풍적인 인기로 전국을 휩쓸게 된다.
이난영 여사는 65년 4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치게 된다.
목포시에서는 《목포의 눈물》을 불러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목포의 위상을 높인 고 이난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6월에 MBC 주관으로 난영가요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고(故) 이난영(1916~1965 ) 여사를 기념하는 '난영공원'을 대삼학도에 개장하였는데. 약 3,300㎡
(약 1,000여평) 부지에 조성된 이 공원에는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와 우리나라
수목장 1호 이난영여사의 수목장이 있다.
수목장이란 죽은 유해를 화장한 뒤 뼛가루를 나무뿌리에 묻어 자연 친화적인 장례방식이다. 2006년에
경기도 파주 공원묘지에 있던 이난영여사의 묘를 이장한 후 유해를 목포로 운구해 삼학도에 20년생
백일홍 나무 밑에 화장한 유골을 묻는 수목장 안장식을 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41년만에 수목장으로 안장식을 하고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이난영 여사의 혼이 살아 숨쉬고 넓고 쾌적한 녹지공간과 시민 편의시설 등이 설치된 이 공원은 목포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난영공원 입구
철길을 건너 지름길로 갔다.
동백
이난영씨의 유골이 묻혀있는 배롱나무
노래비
목련과 동백 등 다양한 봄곷들이 피어나 그녀의 넋을 위로하는것 같다.
공원 뒤산으로 올라가면 정자가 있다.
정자에서는 허사도와 고하도 등 목포 앞바다의 섬들이 보인다.
유달산 방향
일몰시간이다.
삼학도 근린공원
이난영공원 바로 아래쪽에 있는 밀가루 공장은 곧 철거예정이란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첫댓글 저녁노을이 푸근하게 보입니다^^
'목포는 항구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공원의 모습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아...해지는 하늘이 너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