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기도문’
근래 평화 방송을 비교적 자주 시청한다. 아주 평안(편안)한 마음으로. 아니 배꼽을 잡으면서 웃을 때도 있다. 사람은 개인차가 있기 마련인데, 신부도 능력차가 있는 걸까? 정말 교우를 확 사로잡는 신부도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교우들에게 인기 있는 신부는 이름을 밝힐 수 없다. 하지만 이니셜을 따오는 건 괜찮겠지. H 신부 ‧ K 신부 ‧ C 신부 등등. H 신부가 가장 많이 방송 화면에 등장한다. 그분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그제다.
주제가 그게 아닌데, 그분은 뜬금없이 묵주기도를 들먹였다. 벌거벗고 욕조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욕조는 설사 주교 아니 추기경이라도 팬티를 걸치는 공간이 아니니까. 강의를 듣는 자매들의 표정이 일순 어지럽다. 아니 묘하다고 해야 하나? 이어 폭소가 터졌다. 신부는 거침없이 말했으니까. 그렇게 앉아 묵주기도를 바친다는 것!
그분은 염경기도도 묵상기도나 관상기도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모양이다. 백 번 옳다고 생각한다. 묵주 기도는 당연히 염경기도와 묵상기도를 겸해서 드리는 거라는 전제를 두고 보니, 나 같이 덜 깬 사람도 쉬 이해가 되더라. 아무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신실한 교우들은 소리 높여 기도한다.
그 흔한 ‘식사 전후기도’를 놓고 한 번 따져 보자.
신부들은 각자의 고집(?)이 있다. 사이다 한 잔 앞에 놓고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운운’은 약간 멋쩍다는 신부도 있다. 어떤 신부는 오천 원 자장면을 기준으로 삼는다더라. 반면에 H 신부는 천 원짜리라도 성호경을 긋고 중얼거리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나는 지금 아내와 함께 딸애한테 와서 살고 있다.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은 연후다. ‘식사 후 기도’. 그걸 절대 예사롭게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으니…….딸애를 시집보내 놓고 나서, 아내는 안달이 났었다. 사립 중 고등학교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니, 아예 경기도 공립학교 임용고시에 도전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의사를 타진했다. 큰애 그러니까 손자는 우리가 돌보아 주겠다는 배려도 했다. 딸애는 물론 얼씨구나 했고. 그렇게 온 가족이 매달리는, ‘대과’업이 시작되었다. 하나 첫해엔 실패했다. 다음 해에 다시 도전한다. 딸애는 밤낮 없이 정말 코피가 터지도록 공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변수가 생긴 것이다. 도내에 있는 가톨릭 재단 고등학교에서, 교사 모집 공고를 낸 것이다. 까짓 거 떨어져 봐야 밑져야 본전, 딸애는 거기 응시할밖에. 모든 게 순조로웠다. 시험도 잘 쳐서 마지막 남은 몇 사람이 실제 수업도 했는데, 합산한 성적도 거의 차이가 없다.
마침내 면접을 보기에까지 이르렀다. 면접관이 딸애에게 주문하더란다. ‘식사 후 기도문’을 한 번 외워 보라고. 개종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솔직히 말해, 신앙생활을 게을리 했더란다. 공부하느라 이런저런 기도를 빼먹기 일쑤였고.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우물쭈물했을 수밖에. 녀석은 끝내 쓴잔을 마시고 말았다. 부산 평협회장을 지낸 이규정 교수(소설가)의 추천서까지 첨부하는 등 기대를 많이 했는데……. 참으로 아쉬웠다.
하지만 딸애는 끝까지 씨름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중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었다. 수업 경진 대회에서 1등급에 입상하는 등 교사로서 제 몫을 다하는 것 같아, 아비 어미로서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키워왔었던 손자도 데리고 우리가 올라와 한 집에 산다. 새로운 생명이 하나 또 하나 태어나서 웃음으로 키워낸다.
특히 ‘식사 후 기도’를 바칠 때마다 의미 있는 미소가 흘러나온다. 만약 그때 그 사립학교에 채용되었더라면? 우선 좋기야 했겠지만, 아무리 가톨릭 재단이라 해도 사립은 신분 보장이 힘들다. 식사 후 기도 탓에 낙방한 것이 오히려 다행 아니고 뭔가. 그 흔한 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셈이다.
이제 우리 집 ‘식사 후 기도’는 대를 이어 울려 퍼진다. 더구나 올해 4학년 바오로가 첫영성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주임 신부가 기도문 외기 시험을 본다니, 사실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다. 어디 ‘식사후기도’뿐이랴. ‘식사전기도’, ‘아침기도’, ‘저녁기도’, ‘사도신경’, ‘영광송, ‘성모송’ ……. 끝이 없다. 녀석에겐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 같지만, 이제 한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요즘은 거의 기계적이다. 게다가 유머까지 섞다 보니 가가대소도 예사다. 그렇게 다 외웠다. 21일 통과 의식(례)만 남았다. '식사 후 기도'가 일파만파를 몰고 온 셈이라 하자. 유달리 진지한 이유가 다른 데에 있긴 하다만.
8월 14일 손자 녀석이 H 신부의 생태 마을에 간다니 더욱 좋다. 나도 끼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분은 우리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기도 해서 한번 뵙는 게 내 소원이기도 하다만. 오늘 저녁도 그분의 강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