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212주일 [요셉의 의가 짊어진 책임]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마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오늘 주어진 설교말씀의 주제와 달리 다른 할 말이 있다.
어떤 분은 나의 설교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러 성도들이 부분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임의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내 영감에 성경말씀을 맡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순종하여 따를 뿐이지, 내 영감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께서 사도들을 통해 성경을 쓰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 신앙을 정립하게 하신 이후로, 우리에게 전달된 것을 존중하고, 2천년간 기독교가 지켜온 주님의 말씀을 고스란히 받아서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구절을 내 임의로 해석하지 않는다.
자기 임의로 해석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주님으로부터 2천년간 모든 위기속에서 오늘까지 이르렀다.
물론 사이로 빠지는 의견들도 있다.
해석을 잘못하면, 다른 길로 빠진다.
성경책만 온 것이 아니라, 성경에 대한 이해도 함께 오늘까지 왔다.
성경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할 때, 성경의 해석도 함께 전달되었다.
그래서, 성경의 내용은 사실이다.
팩트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 해석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범위안에서 그리스도 교회를 지켜오고 있다.
나는 성도들에게 내 영감, 지혜를 자랑하듯이 한 적은 한번도 없다.
적어도 주일설교는 성경구절을 내 임의로 해석하지 않는다.
거기는 오직 하나의 사실만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도들의 장치를 통해, 오늘까지 온 그리스도의 유산을 내 기분에 따라 해석하지 않는다.
다만 적용은 다른 문제다.
적용은 백프로 나의 영감으로 하고 있다.
적용은 이미 해석된 말씀, 곧 진리가 오늘 우리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해서, 우리 삶속에 불러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때의 영감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도 우리 교회처럼 성경중심으로 달려온 교회는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그것 때문에 우리 교회를 욕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나는 내 설교가 우리 교회의 자존심임을 알고, 우리 교회의 진실인 것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우리 교회 말씀에 대해서, 이단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확실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의 내용을 모르고도 설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결정과 명령 아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내 기분에 따라, 내 임의로 별다르게 해석하여, 성도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세상 어떤 교회에도 전혀 부끄러움 없이, 누가 봐도 예수 정통 복음임을 도무지 의심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나는 누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다른 스토리를 만들지 않는다.
성경의 내용은 변할 수가 없다.
나만 모를 뿐이지, 진리를 찾아가야 한다.
성경에 나온 사실들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진리다.
어떤 사람은 열어지지 않은 것을 진리라고 하는 것 같다.
닫혀 있고,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주관, 자기 생각이다.
진리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것이 성경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비밀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사도들을 통해 다 밝혀졌다.
예수, 사도들, 초대교회, 그 다음세대부터 오늘까지 그 뜻을 전해왔다.
우리가 예수님 당시, 문화, 정치, 풍습을 알아야, 예수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언어도, 번역된 단어로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안될 것이다.
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면, 구약에서 반드시 말씀한 것이다.
이를 일컬어 진리라고 한다.
어떤 것은 우리 성도들이 오초만 듣고, 지나가는 것도 있지만, 나에게는 여러시간 걸리는 것도 많이 있다.
성도들은 그냥 지나갈 때, 나는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러나, 그 오초는 나를 통해 보내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주일설교를 들을 때, 무슨 신기한 것을 듣자고 하면 안될 것이다.
나는 원래 있던 사실만 밝히고, 우리 현실에 적용해서 나타낼 뿐이다.
그것은 성령이 현장에서 역사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경의 기초가 서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적어도 오십년에 한번은 기반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공부하고, 다루기가 엄청 힘든데, 나는 여러분의 오초를 위해 여러시간 공부한다.
그런데, 설교시간에 말씀을 듣고, 취사선택할 수 없다.
나는 설교쟁이가 아니다.
나는 여러분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성도들이 주 예수의 복음에서 좌로나 우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주 예수의 이끄심이 생소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고, 오늘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설교 따로, 교회 치리 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러분에 대한 내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돌볼 새가 없다.
내 가정을 돌볼 새도 없다.
그래서, 설교 따로, 다른 것은 따로 하자고 하면 안된다.
교회생활 모든 것에 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나는 설교쟁이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손에 갇혀서 일하는 청지기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주님이 살리시고, 보전하셨다가, 주님 나라에 올리실 때까지 훌륭하게 갈 수 있도록, 함께 신앙과 진실을 함께 하시기 바란다.
오늘 말씀 전할 때, 나는 새로운 것으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자가 아니다.
오늘 지나가면 다음 오십년간 없는 말씀일 수도 있다.
어느 교회든지 사실 설교했어야 하는 말씀을 하고 있다.
그 말씀이 생소하다면, 우리가 모르고 있던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하신 사람의 아들]
본문에 앞선 내용은 예수께서는 다윗의 왕위를 법적으로 이어받은 왕권이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본문에 앞서서는 왕의 족보가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보통 인간처럼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나신 분이 아니다.
예수는 여자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 세상에 나오셨다.
인간의 혈통적 씨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다.
여인의 아들로 오셨고, 사람의 아들이시다.
우리와 똑같은 물리적, 화학적 구조를 갖고 계시다.
사람과 하나도 다르지 않고, 인성도 같지만, 영적인 상태는 다르다.
죄가 없으시다.
그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분으로 오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흠없는 제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희생으로 오셨다.
그런 주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단지 사람이라고 하면, 구주를 만나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백프로 신이시고, 육신으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완전한 인성을 가진 분이시다.
본문은 인류에게 단 한번 나타나신 분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위기]
하나님은 대단한 위기 속에 오셨다.
사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을 위협할 자가 없다.
다만, 그가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니, 주님은 위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는 죄를 멸하실 분이시다.
그러나, 죄를 멸하시기 전에,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한다.
그래서, 죄인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낮추어 내어주시기 때문에, 위기에 빠지신다.
그렇게 이 땅에 오셨는데, 그는 많은 경우에 그를 도울 많은 사람을 의지하셨다.
항상 그를 도울 자가 있어야 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를 돕는 자들이 자기 삶의 방향을 바꾸고, 헌신하여 주님을 도왔다.
주님이 도우심을 받았던 자들은 의로운 자들이었다.
강직하고, 원리원칙대로 남을 정죄하는 자가 아니라, 착한 자를 말한다.
아브라함 엄청 착하다. 모세도 착하다.
주님도 착함의 원형이시다.
요셉도 착하다. 착해서 손해를 많이 본다.
남을 잘되게 하고, 자기는 불편을 갖는다.
이 세상 삶이 편하지 않다. 손해를 많이 본다.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 오늘 우리에게는 성품대로 여러가지 사람들이 있다.
믿는 자이지만, 조금 이기적인 사람들도 많다.
교회에서도 선하게 보이지만, 속은 아니고, 겉으로만 의로운 자도 있다.
그러나, 교회로 신자들을 다 부르신다.
원래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도 있지만, 침례 받고, 예수 믿고, 회개하여 바꾸길 기대하고, 전달하여 부르신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자는 주님을 도울 수 없는 자다.
그러나, 회개한 심령은 위기에 있는 주님을 돕는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 떠난다.
여러분은 준비된 사람인가.
원래 성품이 의로운 사람인가.
바리새인처럼 겉으로만 의로운 자가 아니라, 충만한 긍휼과 참아주는 것과 깊은 사랑이 있는가.
자기 일도 있고, 하나님 일도 있다. 주님은 위기에 있는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 성공을 위할 것인가, 위기에 있는 주님을 도울 것인가.
내 삶을 다 망치더라도, 주님을 돕는다면, 세상은 기억못해도, 오직 주님은 그를 기억하신다.
[정혼의 목적은 정절을 증명하는 것]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해서, 결혼을 약속했다.
여자는 보통 12-3세에 결혼을 약속한다.
신랑이 지참금을 내고, 결혼을 약속한다.
정혼은 약혼처럼 깨질 수 없도록 법적인 권리가 있다.
어쨌든 깰 수 없다.
일년의 정혼기간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 일년간 정절을 지키는가 보는 것이다.
결혼을 대하는 자세가 경건한지, 일년동안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둘 사이에 사회적 접촉도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
정혼생활중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간음이다.
간음을 하면, 이혼이 문제가 아니다. 원래 이스라엘 법으로는 사형을 당한다.
물론 매번 사형을 당한다고 볼 수 없다.
다만 그 인생은 매우 비난을 받는다.
사실 끝난 인생이나 다름 없다.
정혼한 기간중에 여자는 친정에 머물러 있다.
[마리아의 대 위기]
누가복음과는 독립적으로 마태복음이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리아와 요셉과 어떤 친밀한 관계가 전혀 없는데, 마리아가 잉태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예수는 요셉과 혈통이 무관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마리아가 정혼기간중 임신한 사실을 깨달았다.
큰일이다. 남자를 모르는데 잉태한 것이다.
나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입증할까. 나의 무죄를 누가 이해하려고 할까.
이해할 자가 없다. 이것은 사형감이고, 혹시 죽지 않아도, 평생 오명과 핍박속에 살아야 한다.
마리아가 어쩔 줄 모르다가 요셉에게 알렸다.
[요셉의 충격과 고뇌]
마리아는 임신했지만, 나는 깨끗하다고 했을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요셉이 알 리가 없다.
요셉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마태복음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견딜 수 없는 고민이 있었다. 이럴 때, 세상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원래 유대인은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율법적으로 의로운 자다.
드러내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목소리 높여 의를 자랑하는 자들이 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이 의로운 것인줄 알아도, 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마리아를 사회에 드러내, 일벌백계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인데, 요셉은 굉장히 고민했다.
이미 자기 인생은 굉장히 손해를 보는 것이 자명하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마리아가 치명적인 불명예로 인해 죽게 되거나, 평생 오명에 시달리고,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다.
너무나 사랑했고, 살려주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가 당한 배신감을 꼭 눌렸다.
어떻게 살려줄지 고민하다가 가만히 놓아주려고 했다.
[최고의 배려]
그나마 가질 수 있는 선택중에 가장 나은 것이다.
마리아를 살려줄 수 있는 방법이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의인은 바리새인처럼 정죄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과 신성한 약속을 어기고, 수치스러운 상황을 만든 마리아에 대해 관대하게 용서하고, 배려하려고 했다.
[꿈에 천사가 계시함]
그런 고민중에 있는데, 꿈에 천사가 나타났다.
마태복음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여기서 천사는 요셉을 존중하여 불렀다. 다윗의 아들, 요셉이여.
요셉은 이 땅에서 잉태한 아기에게 다윗의 왕위로 연결해야 할 유일한 자였다.
이 세상법적인 권리는 요셉에게 왔다.
요셉은 하나님이 성취하실 일에 대해 막강한 책임이 있었다.
요셉은 꿈에 받은 계시 때문에, 모든 관점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마리아가 죄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이니, 시행하라.
그리고, 천사가 요구한 것은 마리아가 아기를 나을 터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했다.
[아이를 예수라고 이름하라]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보통 사람처럼 자기 아들에게 이름을 주듯이 하라.
이미 있던 이름이지만, 요셉은 법적 아버지로서 그 이름을 주는 역할을 한다.
한시적으로 그 아기의 아버지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 이름의 뜻은 여호와(하나님)가 구원하시리라는 뜻이다.
예수 이름은 당시 흔한 이름이지만, 뜻이 그렇다.
여호수아, 예슈아, 헬라어로 예수다.
예수라 하라. 왜냐하면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번역본에는 접속사가 없지만 원어로는 있다.
정치적인 것을 넘어서, 그의 백성은 그의 교회를 의미한다.
[예수 탄생은 메시야 약속의 성취]
마태복음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갑자기 그가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그는 임마누엘이라는 특성을 갖고 나타나셨다.
이사야서에 보면, 유다와 이스라엘이 싸우고 있었다.
당시 왕은 아하스였는데, 유다 백성을 악하게 만드는 악한 왕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오히려 앗수르에 도움을 구했다.
그래서, 이사야가 나타났다.
이사야는 그 왕을 꾸짖기보다, 주께서 징조를 주실 것이라고 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리고, 이사야가 말한대로 다 이루어진다.
유다를 공격하려고 했던 이스라엘도 망하고, 동맹했던 수리아도 망하고, 강국이었던 앗수르도 망한다. 유다를 건들지 못했다.
[예수란 이름, 임마누엘이란 이름]
이사야의 예언은 당시만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를 말한다.
유다는 엄청 위기속에 있었다.
죄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품으시고, 살려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죄가 있어도 망하지 않고, 살려주신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예언의 내용은 상황적으로 정확하게 예수에 이르러 이루어졌다.
그동안 하나님은 성전을 통해 백성들과 함께 했다.
이제 성육신하여, 더 가까이 하며, 말도 하며 직접 인도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떠나실 때도, 끝까지 함께 하리라 약속하셨다.
마리아가 낳게 될 이름은 예수인데, 이사야는 임마누엘이라고 했다.
임마누엘은 예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8:10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임마누엘이 땅에 넓게 퍼지리라. 땅의 교회를 쓰러뜨리려고 해도, 결코 이루지 못한다.
쓰러지는 것 같아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 구원의 권세가 이루시는 것이다.
예수란 이름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약속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
동시적으로 임한 것이다.
예수는 임마누엘 하신 것이다.
그의 사역의 목적은 구원이요, 방법은 함께 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옥에 갈 자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함께 하셔야한다.
그러려면, 그가 먼저 성육신하여 오셔야 한다.
그 다음에 성령으로 더 가까이 있을 것이다.
함께 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계획의 특색이다.
[주님의 위기 속에서 헌신한 의로운 요셉]
이사야가 예언한 것은 마리아의 성령잉태였다.
마태복음 1: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요셉은 꿈을 꾸고, 잠에서 깼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안도했다.
고민을 벗고, 이제 천사가 명한대로 즉각 행동했다.
이혼하기로 한 계획을 버리고, 정식 아내로 맞이했다.
그 결단은 엄청 깨끗하고, 확정적이었다.
예수 탄생과 관련한 자기 책임을 확실히 다했다.
마리아가 온전히 아기를 낳고, 잘 기를 때까지 잘 보호한다.
법적인 아들, 하나님의 아들을 잘 돌본다.
마태복음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은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의도적으로 동침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을 자기가 더럽히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께서 태어나신 후에, 정식부부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누가복음 2: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태어난 아기를 요셉은 성전에 예수란 이름으로 등록했다.
그래서, 법적 부친으로서 일을 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요셉이 나서서 했다.
다윗왕의 계보에 올렸다.
예수를 사생아로 남기지 않고, 왕의 혈통을 이어주었다.
예루살렘 멸망이 있기 전까지 족보가 보전되어있었다.
예수님의 이름은 요셉의 아들로 등재되어있다.
요셉은 사회적으로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 나라가 가장 위기에 있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을 감당했다.
자기에게도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속에서 자기를 구하기 보다, 자기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의 일을 도왔다.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의로움으로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심령이 착한 자였다.
그래서, 그는 아기가 자랄 때까지 헌신했다.
누가복음이나 마태복음을 보면, 요셉이 성전에 가서, 아기 예수를 헌아했고, 헤롯이 유아학살을 할 때도, 가족을 데리고 피신했다.
또, 이후에 유월절 때, 소년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다.
그러나, 그 이외의 기록은 없다.
그는 사회적으로 유명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 마리아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요셉은 그리 오래살지 못했고, 일찍 죽었다.
예수께서 이제 안전한 삶을 유지하시고, 공적 사역을 준비하실 무렵, 자기 소임을 다한 요셉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아내를 예수께 맡겼고, 예수님도 어머니를 모셨다가,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셨다.
[우리 인생은 책임을 다할 시간]
요셉은 이 세상의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감당한 의로운 신자였다.
우리 인생이 이 땅에 있는 것은 위기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돕도록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내 육신과 내 인간의 삶보다 하나님을 도울 수 있는 삶으로 기억하시는 것이다.
의가 없이는 하나님을 도울 수 없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침례다.
그러나, 자기 양심이 화인맞은 사람은 외식하고, 하나님께 반역한다.
성령을 통해, 이제는 선한 양심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큰 유익이 되었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의가 있어서,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기 바란다.
우리를 받아주시고, 하나님이 쓰실 의가 있어서, 하나님을 돕게 하소서.
하나님을 영접할 준비가 있게 하소서.
위기에 있는 하나님을 돕게 하소서.
설교요지
하나님은
아무도 볼 수 없다
그는
영이시니 영으로 임하셨고 영으로 말씀하셨다(요 6:63)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우리를 찾으시는 이도 영이시다(요 4:23~24)
눈으로 봄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요 20:29)
영으로 믿으며 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고전 12:1~3)
요셉에게 그리스도의 잉태하심을 말씀하시니
요셉은 그 말씀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였다(마 1:23~25)
이 같은 결심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마 1:19)
의심과 불의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였으니(창 15:6)
이것이 믿음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의 상식을 초월하여(롬 8:5~7)
하나님의 뜻을 가장 큰 것으로 여긴다(마 26:39)
현실이나 감정으로는 당해내기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을 능히 감당해야 한다(마 9:1~8)
하나님의 말씀은 아들을 나타내셨고(요 3:16)
아들은 자기의 피로써 말씀하셨다(요 6:53~55)
성령은 이를 증거하신다(요 16:13~14)
◎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생각을 비교 말라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이성과 달라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영생하는 믿음이다
◎ 요셉처럼 자기가 각각 짊어져야 할 책임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의 감정이 힘들어도 믿어야 한다
◎ 믿음을 돕기 위하여 보증하여
성령을 주셨으니
성령으로만 믿음을 가져야 한다
※ 믿는 자는 먼저 자기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한다
오직 나에게만 하신 일이라도 복종하고
억울하게 생각 말고 믿고 따라야 한다 (視無言)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고전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고전 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마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마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