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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지은 식물원, 그 이상향의 세계
이정환(시인)
1.
시인은 언어로 세계와 소통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그가 즐겨 쓰는 시어나 대상물을 통해 시인의 인생철학이나 문학적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이옥진은 자연친화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서는 풀냄새가 나고 이슬과 바람의 술렁임을 느낀다. 모든 시인이 그렇듯이 그도 이상향을 꿈꾼다. 물론 그 이상향의 세계는 쉽게 가닿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부단한 꿈꾸기를 통하여 그는 예술적 자아실현에 힘쓴다. 처녀시집『먼나무숲』이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그가 시조라는 정형의 그릇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는 다분히 식물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그의 시집 전편에서 그와 같은 사실은 여실하게 드러난다. 쓰인 시어들에는 이슬과 바람, 풀잎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이 점은 그가 어린 시절 자라온 자연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하이틴 시절을 제주도에서 보낸 것이다. 그렇기에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지명과 식물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우리는 이옥진의 첫 시집『먼나무숲』을 통해 다시금 자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끌림과 울림과 떨림의 세계는 그만의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문학적 배경과 분리될 수 없는 정서적 반향을 일으킨다.
2.
첨단정보화 시대와 시조 쓰기는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급격한 변화로 소용돌이치는 현대사회에서의 글쓰기는 어쩌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시조 쓰기는 소통의 수단으로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단 3행으로 자신의 견해나 생각을 축약하여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복잡다단한 사회 구조 속에서 효용성을 가진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제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그래, 그렇게 서라, 외롭다 하지 말고
애월 단애에 서서 먼 바다를 보아라
관탈섬* 견고한 고독도 은결 속에 빛난다
그렇게 다가가라, 거절을 두려워 말고
단애 향해 제 살 찢는 파도의 눈물을 보아라
벼랑의 동굴 같은 가슴도 사랑으로 흥건하다
-「애월 단애에 서서」
관탈섬은제주도와 추자도 사이 무인도로서 제주로 유배 오는 사람들이관복을 벗었던 곳이다. 애월은 제주 해안 중에 가장 아름답다. 그렇기에 많은 시인들이 애월 바다를 노래한 것이다. 시의 화자는 외롭다 하지 말고 ‘애월 단애에 서서 먼 바다’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먼 바다’는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주는 것일까. 은파 속에서 빛나는 ‘관탈섬 견고한 고독’과 마주하라고 한다. 어떤 거절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다가가서 ‘단애 향해 제 살 찢는 파도의 눈물’을 직시하고 자신을 재정립하라는 것이다. 그런 의지의 다짐 같은 것을「애월 단애에 서서」에서 읽는다.
하르르 벚꽃 지던 그날을 기억한다
겹벚꽃 양탄자 깔던 따뜻했던 그 자리도
사나흘 눈에 밟히다
가뭇없는 꽃잎들
고무줄 거꾸로 넘던 동무는 어디 있나
무심천 오르내리던 푸른 날은 어디 갔나
세상에 들까불려서
멀리 흩어진 사람들
오늘 또 그 자리에 하루치 꽃이 진다
투욱 툭
데구르르
중력이 끄는 대로
감꽃이 생생한 얼굴로 또 자리를 펴고 있다
-「그 꽃잎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봄날에 자주 목격한다. 천지를 뒤덮던 꽃잎들이 어느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을.「그 꽃잎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도 그러한 생각을 담고 있다. 특히 벚꽃의 위세는 몇 달을 갈 듯했지만 진실로 한 순간이다. ‘사나흘 눈에 밟히다/ 가뭇없는 꽃잎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또한 ‘세상에 들까불려서/ 멀리 흩어진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단순히 낙화의 아픔을 환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토포필리아와 바이오필리아가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면서 우리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다정했던 어린시절의 친구, 지인들과 함께 ‘무심천오르내리던푸른 날’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미 상실되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근원적인 향수의 세계를 낙화의 때에 오버랩 시켜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리하여 ‘오늘 또그 자리에 하루치꽃’이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꽃인 ‘감꽃’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다. 가고 오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유한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벽녘 당신 얼굴은 빛나는 오월의 숲
숲길 따라 먼나무꽃 연보라 향 남실대고
당신을 숨쉬고픈 나는 아주 멀리 있습니다
오련한 꿈길을 걸어 먼 학교에 갑니다
교실도 꿈속 같아 어항처럼 말이 없고
창 너머 살구나무에 새 한 마리 납니다
때로는 지하철도 풍경처럼 웁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적막을 마주한 날
도린곁 먼나무 길을 새도록 걷겠습니다
-「먼나무 길」
눈물겹도록 애틋하다. 시의 화자가 떠올리고 있는 ‘당신’은 ‘빛나는 오월의 숲’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아주 청신하고 드맑다. 그에 대한 그리움은 ‘먼나무꽃 연보라 향’이 남실대면서 더욱 간절하다. 그 순간 ‘당신을 숨쉬고픈’데도 ‘나는 아주 멀리’ 있다. 실제 거리일까. 심리적 거리일까. 둘째 수에서 ‘먼 학교’의 등장은 다소 의외다. 그러나 그 ‘먼 학교’라는 곳은 ‘당신’과 공유할 수 있는 생생한 그리움의 공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창 너머 살구나무’의 ‘새 한 마리’는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적막을 마주한 날/ 도린곁 먼나무 길을 새도록 걷겠다’는 시의 화자의 담담한 진술은 오히려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그 집엔 누가 살까 혹시 빈집 아닐까
닫힌 창문에는 꽃무늬 커튼 자락
샛노란 유자 등불만 둥글둥글 환한 집
이끼 낀 담장 위로 새벽을 깨우는 새
먼지 뿌연 창문마다 빗물자국 선연한데
언제쯤 그 창 열릴까, 둥근 마음 보일까
재개발 시작되면 골목도 사라지고
이 집도 유자나무도 떠내려 가버리겠지
나는 또 무얼 디디며 이 도시를 건널까
-「유자나무집」
「유자나무집」은 끝까지 지키지 못한, 지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한 노래다. 널리 알려진 강현덕의 시조「길」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와 엇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집’에 대한 애절한 기억들이 있고, 때로 그 기억으로 말미암아 아픔을 삭이기도 한다. 진술로 보아 ‘유자나무집’은 시의 화자가 살던 곳은 아니다. 관찰자의 눈으로 상상력을 보태어 ‘샛노란 유자 등불만 둥글둥글 환한 집’에 대하여 갖가지 생각을 펼치고 있다. ‘닫힌 창문에는 꽃무늬 커튼 자락’이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향수를 자극받는다. 이와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닫힌 창이 열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먼지 뿌연 창문마다 빗물자국 선연한데’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머잖아 재개발로 골목도 유자나무도 그 집도 사라질 것이다. 그런 후면 디디고 살만한 정든 공간은 다시 회복될 수 없다. 회귀할 수 없는 추억의 시공간에 대한 안타까움을「유자나무집」은 잔잔한 톤으로 그리고 있다.
가장 황홀한 순간 문득 온 단절 위로
애초에 없었던 듯 지워져 버린 시간
그 자리 그대 그대로 박제되어 걸려 있네
안토시안 사라지듯 조금씩 너는 없고
자국눈 내려앉듯 무심無心이 자릴 폈네
어쩌나, 아무렇지도 않게 너를 볼 수 있다니
-「마른 꽃」
「마른 꽃」도「유자나무집」의 정서와 맥이 닿아 있다. ‘가장 황홀한 순간문득 온 단절 위로/ 애초에없었던 듯 지워져 버린 시간’이라는 시적 정취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안토시안 사라지듯 조금씩 너는 없’고 그 자리에 ‘자국눈 내려앉듯 무심이 자리’ 펴고 있는 것이다. 붙들 수 없는 ‘가장 황홀한 순간’은 곧장 가고 ‘아무렇지도 않게’ 너 곧 ‘마른 꽃’을 보게 된다. 아직도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물기가 배제된 꽃이다. 단절은 아픔을 안겨주지만 유한의 시공간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된 것이기에「마른 꽃」이 함유하고 있는 미학적 성취는 그만큼 의미심장하다.
엄마, 언덕 위에 오동꽃이 피었어요
보랏빛 환한 안개가 주변을 맴돌아요
며칠 전 붉은 눈자위 엄마 얼굴 떠올라요
낮 시간 병실에도 밤 11시 지하철에도
찔레꽃 하얀 얼굴로 찾아오는 당신 있어
자꾸만 눈물이 나도 웃으면서 살래요
이 세상 모진 바람도 숨죽이며 잠이 드는
아직도 향기로운 모란꽃 엄마 품에서
잠깐만 나비잠 잘래요 속잎 살짝 덮어 주세요
-「오월 나비잠」
「오월 나비잠」은 어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모성을 향한 절절한 사모의 마음은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지울 길 없는 심상이자 삶의 한 동력이기도 하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오동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보랏빛 환한 안개’로 피어올라서 ‘며칠 전 붉은 눈자위 엄마 얼굴’을 떠올린다. 또한 ‘찔레꽃하얀 얼굴로 찾아오는 당신’이기도 하다. 삶에 부대끼어 ‘자꾸만 눈물이 나도웃으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시의 화자에게는 ‘아직도향기로운모란꽃 엄마 품’이다. 참으로 그 품이 정겹고도 그윽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래서 ‘잠깐만 나비잠 잘래요속잎 살짝 덮어 주’기를 간절히 희구한다. 자애로운 모성애로 말미암아 시의 화자는 꿈같은 봄 한나절을 보내게 된다. ‘나비잠’으로 형용된 쉼은 결국 삶을 새롭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씀바귀꽃 졸고 있는
위병소 문을 지나
아까시 흰 언덕에
그리움 내려놓고
네가 올
그 길을 본다
빛 무리만 가득한.
-「면회 신청」
「면회 신청」은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위병소 문 근처에 ‘씀바귀꽃’이 ‘졸고 있’다라는 진술에서 아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러한 시적 장치는 매우 효과적이다. ‘아까시 흰 언덕’도 마찬가지다.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시의 화자는 아들이 나올 길목을 지키고 서 있는데 그 길은 ‘빛 무리만 가득’한 어귀다. 기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아들은 그런 존재다. 더구나 그 아들은 신성한 병역 의무를 수행 중이다.
이렇듯 한 편의 단시조는 간결하고도 아름답다.
베어져 뒹굴다가 수로 끝에 뿌리 뻗고
이태리포플러는 통나무 다리 되었다
길과 섬 그 둘을 잇고 자다 깨는 길 하나
마름 생이가래 가득한 늪 가로 질러
팔 뻗어 찰방찰방 푸른 잎 반짝이며
나무는 다리가 되어 또 한 생을 꿈꾼다
베어도 다시 산 나무 나사렛 청년 예수
나무에 높이 달려 선 채로 다리 되었다
하늘과 사람을 잇는 빛 황홀한 길 하나
-「어떤 다리」
「어떤 다리」는 첫 수와 둘째 수까지는 생동감 있는 필치로 우포늪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둘째 수는 역동적인 생명력을 보인다. ‘베어져 뒹굴다가 수로 끝에 뿌리 뻗고/ 이태리포플러는 통나무 다리 되’어 ‘길과 섬 그 둘을 잇고 자다 깨는 길’이 되어 존재한다. 새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한 생을 꿈’꾸는 나무는 너와 나를 잇는 하나의 가교다. 그 가교가 약간의 비약과 함께 셋째 수에서 ‘하늘과 사람을 잇는 빛 황홀한 길’로 현현한다. 즉 ‘베어도 다시 산 나무 나사렛 청년 예수’가 골고다 언덕 ‘나무에 높이 달려 선 채로 다리’가 된 것이다. 수평적 상상력이 수직적 상승과 하강의 상상력으로 증폭되면서「어떤 다리」는 매우 의미심장해진다. 그래서 시가 상상력의 산물일 수밖에 없음을 또 한번 증명해 보인다. 신앙에 기초한 이러한 사유는 깊이를 획득하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심화된 형상화의 과정을 우리에게 적절하게 제시한 것이다.
믿음이 휘청거려 온 세상 허방인 날
아홉산 대숲으로 홀홀히 들어서자
맹종죽 직립을 위해 뿌리 서로 담보하는
희망이 깜빡거려 숨이 턱 막히는 날
아홉산 솔숲으로 자작자작 스며들자
금강송 높푸른 소망 허파 가득 채워주는
사랑에 상처 깊어 생명조차 위태한 날
아홉산 편백숲으로 선들선들 들어가자
두 편백 십자가 세우고 그 아래 무릎 꿇자
-「아홉산숲으로」
‘아홉산숲’은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문씨 문중 숲이다. ‘믿음이 휘청거려 온 세상 허방인 날’에 시의 화자는 숲을 찾는다. ‘맹종죽 직립을 위해 뿌리 서로 담보’하는 정경과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깜빡거려 숨이 턱 막히는 날’이나, ‘사랑에 상처 깊어 생명조차 위태한 날’도 마찬가지다. 그런 날 ‘아홉산 대숲과 솔숲, 편백숲’은 구원의 요람이다. ‘금강송 높푸른 소망’을 만나고 ‘두 편백 십자가 세우고 그 아래 무릎 꿇’을 수 있는 은밀한 곳, 그곳은 화자에게는 자그마한 이상향이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은 더 남겨놓고 싶었어
동해의 푸른 파도 갈매기 날갯짓도
흰 포말 그것도 조금은 숨겨두고 싶었어
찬바람 맞으면서 밤 새워 생각했지
아침 해 떠올라도 눈 깔고 외면해야지
짠 눈물 조금이라도 남겨둬야 하니까
날 때부터 지금까지 온 몸에 어룽이던
무지갯빛 꿈들조차 조금씩 말라붙겠지
그래도 하얀 배 흔들며 파도 따라 웃을거야
불 위에 올라가도 바로 춤추진 않겠어
은근한 갈매기 날갯짓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저물녘 어느 식탁에 사뿐히 내려앉을래
-「피데기의 노래」
우리가 즐겨 먹는 오징어 즉 ‘피데기’가 화자가 되어 실감실정으로 노래한다. ‘동해의 푸른 파도 갈매기 날갯짓’과 ‘흰 포말’을 조금은 남겨 두고 숨겨두고 싶어 한 까닭은 무엇일까. 곧 사람의 몸 일부가 되어버릴 존재지만 자신을 낳고 길러준 바다의 성정을 끝까지 품고 있겠다는 의지의 발로일 것이다. ‘짠 눈물’을 조금 남겨두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날 때부터 지금까지 온 몸에 어룽이던/ 무지갯빛 꿈들조차 조금씩 말라붙’는 것을 어찌하지 못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불 위에 올라가도 바로 춤추지 않고 ‘은근한 갈매기 날갯짓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저물녘 어느 식탁에 사뿐히 내려앉’겠노라고 말한다. 「피데기의 노래」에서 결국 우리는 우리의 초상을 읽는다. 삶의 과정과 끝맺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갈맷빛 제주바다 느닷없이 그리운 날
영도 남항시장 자리집에 혼저 옵써
조팝에 자리젓 얹어 배추쌈 먹어봅써
유리바다 햇살 꽂혀 까맣게 그을린 몸
소금 이불 덮고 꿈꾸면 하귀 바다
어둠 속 뼈대 세우고 긴 세월 살았수다
다 삭은 몸이지만 눈만은 살아 있어
뼈 가죽 추스르고 지느러미 꼿꼿 세우면
혼만은 향기로워라, 난바다도 겁 없수다
-「자리젓의 노래」
그런 관점에서 볼 때「자리젓의 노래」는「피데기의 노래」와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즉 존재론적 성찰의 깊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자리젓의 노래」는 제주 토속어로 진술하고 있어 친밀감을 갖게 한다. ‘갈맷빛 제주바다’가 ‘느닷없이 그리운’ 것은 화자의 성장 배경이기 때문이리라. ‘영도 남항시장 자리집에 혼저 옵써’라고 부르는 까닭은 ‘조팝에 자리젓 얹어 배추쌈 먹어봅써’가 가능한 까닭이다. 그렇게 하여 진한 향수를 달랜다. ‘소금 이불 덮고 꿈꾸면 하귀 바다/ 어둠 속 뼈대 세우고 긴 세월 살았수다’에서 보듯 자리젓은 곧 화자의 삶이었던 것이고, ‘하귀 바다’는 한없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다 삭은 몸이지만 눈만은 살아 있어/ 뼈 가죽 추스르고 지느러미 꼿꼿 세우면/ 혼만은 향기로워라’라고 노래한다. ‘난바다’에도 ‘겁 없수다’라는 것은 세상 모진 풍파를 다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결코 그를 둘러싼 자연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자리젓의 노래」가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가버렸지만 섬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온몸으로 껴안았던 오름의 어깨를 따라
두모악 너른 품속에 댕기머리 그가 있다
노을 속 억새 울리는 바람의 눈동자에
눈 내린 들판 위 그림이 된 나목 곁에
빛 어둠 찰나를 가르는 구름 속에 그가 있다
현무암 구멍마다 산수국향 머무는 곳
흩날리는 눈발 속 눈시울 붉은 동백으로
되살아 이어도가 된 김영갑이 웃고 있다
-「그 섬에 그가 있었네」
두모악은 원래는 한라산이라는 뜻인데 김영갑 갤러리의 이름이다. 제주도를 사랑하여 제주에 관한 사진 작업에 몰두하다가 몇 해 전에 타계한 김영갑의 생애를 세 수의 시조로 되살려 놓고 있다. 그 어떤 현실적 바람도 없이 예술이라는 한 길을 걸었던 외로운 영혼에 대한 작은 헌사인 셈이다. 그는 ‘노을 속 억새 울리는 바람의 눈동자에/ 눈 내린 들판 위 그림이 된 나목 곁에/ 빛 어둠 찰나를 가르는 구름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예술가다. 그가 추구한 세계가 그만큼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겼기 때문이다. ‘현무암 구멍마다 산수국향 머무는 곳/ 흩날리는 눈발 속 눈시울 붉은 동백으로/ 되살아 이어도’가 된 김영갑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꿈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그 섬에 그가 있었네」는 단순한 추모시가 아니다.
파도를 친구 삼아 천 년쯤 살려했는데
먼 길 걸어온 산들 하나 둘 쓰러져 눕고
바다는 충혈된 눈으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물비늘 반짝반짝 속살대던 나의 바다는
굉음과 흙먼지에 귀 잃고 눈 먼 짐승
더 이상 춤추지 않고 노래마저 잊었다
어디로 뽑혀가든 이제 나도 떠날 시간
수의 같은 옷을 입고 생목숨 휘청대던 날
한순간 마취도 없이 발끝마저 잘렸다
가는 곳은 어디일까 다시 또 할 수 있을까
온갖 여린 생명들, 기대오는 사람들 위해
끝없이 투명한 초록을 퍼 올리는 그 일을
-「가덕도 율리 팽나무」
가덕도 율리 팽나무 두 그루는 수령이 500년 가까운데 신 항만공사로 해운대 센텀시티 신세계백화점 옆 나루공원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가덕도 율리 팽나무」에서 보듯 그의 적잖은 시편들에서 생태학적 시각을 읽게 된다. 즉「한라산 겨우살이」,「저문 밤 숲에서」,「신세계 팽나무」등에서 생태주의 정신이 연이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어떠한 관점에서 세상과 자연, 사물을 바라보는가 하는 점은 중요하다.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설정에서 그는 늘 자연 편이다. 그의 생명이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잘 아는 까닭이다. ‘가덕도 율리 팽나무’가 그의 뜻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제는 나루공원을 지키는 나무가 된 것이다. 옮겨지는 과정에서 ‘생목숨 휘청’대기도 하였지만, 그의 새로운 삶은 다시 또 ‘끝없이 투명한 초록을 퍼 올리는 일’이다. ‘온갖 여린 생명들, 기대오는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기 때문이다.
집세 없고 주인 없는 파도리 우리집에
파도 늘 철썩이는 파도초등 우리학교에
갑자기 검은 파도가 삼킬 듯 밀려왔어요
우리에겐 바지락도 그냥 캐랬는데
이웃 할머니는 살아줘서 고맙댔는데
바지락 고운 텃밭이 기름밭이 되었어요
오늘도 갯바위에서 기름을 닦았어요
이사 가기 싫어요, 우리 학교가 좋아요
쏴아아 파도와 놀며 여기서 살고파요
-「파도초등학교」
파도초등학교는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에 있는 작은 학교다. ‘갑자기 검은 파도가 삼킬 듯 밀려’ 오는 바람에 ‘바지락 고운 텃밭이 기름밭’이 되었다. 삶의 현장인 갯바위가 온통 기름투성이어서 아무리 닦아도 끝없다. 회복을 위해 힘쓰지만, 그 폐해는 말할 수 없이 크기만 하다. 그런 정황을 ‘파도초등학교’의 아이의 눈으로 노래하고 있다. ‘파도초등학교’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한 표상이므로 그곳을 온전히 지켜내는 일은 그만큼 소중한 일일 것이다.
반쯤 물에 잠겼어도 나는 아직 배입니다
뼈대만 남았어도 품어주는 당신 있고
재빠른 살감싱이 재롱, 행복한 나날입니다
한참 잘 나갈 때는 느끼지 못했어요
물빛이 당신 속살이 이리 맑고 고운 줄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해초 무리의 애무도
먼 바다 누빌 때도 도무지 몰랐어요
갯내음 갯바람이 이리 달고 싸한 줄을
몸에 밴 기름 냄새가 스스로도 역한 줄을
끄응 힘 줘 일어서면 먼 바다도 갈 듯 하고
만선 깃발 펄럭이며 신나게 올 듯도 한데
폐수종 아픈 가슴 안고 여위어만 갑니다
-「폐선의 노래」
배는 그에게 주어진 일생의 몫을 다하여 폐선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할말이 남아 있다. 그 할말이 곧「폐선의 노래」다. ‘뼈대만 남았어도 품어주는 당신’이 있고 ‘재빠른 살감싱이 재롱’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열심히 일할 때는 ‘물빛’과 ‘당신 속살이 이리 맑고 고운 줄’을 미처 모르고 지냈고, ‘갯내음 갯바람이 이리 달고 싸한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폐선은 아직도 꿈꾼다. 몽상일지라도 먼 바다를 오랫동안 항해한 뒤 만선으로 돌아올 것만 같은 생각에 잠긴다. 그렇지만 결국 ‘폐수종 아픈 가슴 안고 여위어만’ 갈 뿐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그 주어진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폐선의 노래」는 은연중 일깨우는 듯하다.
마음에 비 오는 날 송곳을 꺼내 봅니다
유일한 아버지 유품 소반쟁이 목수 송곳
뚫어라 길을 내어라 나직한 음성 들립니다
동그란 나무손잡이 손에 가득 차오르고
철 사각뿔 뾰족한 끝 가늘게 눈을 뜨면
사라진 숲길을 뚫어 옛집 찾아 갑니다
대패밥 향기롭고 아교 풀 끓는 그 곳
귓등에 연필 꽂고 상다리 깎는 아버지
흥건한 그 땀을 먹고 여섯 남매 컸습니다
삼십 년을 어둠 뚫다 삼십 년은 서랍 신세
붉은 녹 삭은 나무, 놓아 달라 애원해도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더욱 움켜쥡니다
-「아버지의 송곳」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아버지의 ‘송곳’은 유일한 유품이다. ‘소반쟁이 목수 송곳’은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뚫어라 길을 내어라’라고 자신에게 연신 말하고 있다. 예민한 귀를 가진 시의 화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듣는다. ‘송곳’ 하나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대패밥 향기롭고 아교 풀 끓는 그 곳/ 귓등에 연필 꽂고 상다리 깎는 아버지’와 평생을 함께 한 ‘송곳’은 곧 아버지의 분신이다. 그 ‘송곳’을 움켜쥐고 아버지가 전하는 그 힘으로 다시금 자신의 삶을 다잡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3.
지금까지 이옥진 시인의 시조 세계를 살펴보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그의 시편들 속에는 다음과 낱말들이 다채롭게 등장함으로써 그의 시집이 흡사 ‘언어로 지은 식물원’을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자연주의적 삶을 구현하고 추구하며 살고 있다는 한 방증이 되고도 남는다.
은목서 담쟁이 벚꽃 감꽃 먼나무 살구나무 해송 유자나무 산수유 매화나무 쑥 고사리 목련 자운영 이팝꽃 오동꽃 찔레꽃 씀바귀꽃 아까시 이태리포플러 생이가래 마름 금강송 편백숲 헛꽃 산수국 참꽃 대나무 벼 송이 소나무 참나무 때죽꽃 물푸레꽃 팽나무 벽오동 비파꽃 앵두나무 구상나무 자목련 버즘꽃 보리수 천상초
자작나무 복수초 수세미 고추 억새꽃 맹종죽 패랭이꽃 구절초 배롱나무 취나물 이끼 상사화 자미화 잔디 은사시
그가 시집의 재목으로 삼은 ‘먼나무숲’은 그에게는 하나의 이상향이다. 그것은 시를 통해서 다다를 수 있는 예술적 성취의 드높은 세계이기도 하고, 성화되어 가고 있는 그의 신앙이 지향하는 영적인 나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으로 사는 시업의 길에서 남다른 희열과 보람을 얻고 있을 터이니, 그가 이루고자 하는 ‘가락의 높은 궁전’으로 여겨도 좋을 듯 하다.
식물적 상상력의 세계가 생태학적 가치관과 맞물려서 새로운 삶의 지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처녀시집『먼나무숲』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다만 절차탁마의 연금술사로서의 면모를 다음 번 시집에서는 보다 밀도 높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덧붙이면서 첫 시집 상재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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