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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중세 유럽의 전쟁에서 시작
결투 중에 ‘피아 식별’ 용도로 사용
십자군 전쟁으로 ‘문장’ 널리 퍼져
개인·집단·국가 등 상징으로 확대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필수적인 기제(메커니즘)를 필요로 한다. 바로 ‘자극과 반응’이다. 노벨상을 받은
러시아의 이반 파블로프가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실험의 중요한 메시지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극을
‘인지’하는 기능과 ‘작용’하는 기능이 협력해 만든 산물이라는 점이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기병(왼쪽)과 보병. 방패·겉옷·말안장·깃발에 십자가 문양이 보인다. |
상징하는
동물
인간은 조금 다르다. 외부의 강렬한 자극이나 환경의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서히 반응을 보이거나 때로는 아예 반응하지 않기도 하며 심지어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동물에겐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이를 두고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의 주장이 가장 눈여겨 볼 만하다.
카시러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자극과 반응 외에 또 다른 하나의 메커니즘이 있다. 그는 이를 ‘상징’으로 봤다. 인간은 상징 때문에 동물들처럼 외부
자극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상징을 통해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을 설명했다.
작은
차이지만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나다. 만약 인간에게 자극과 반응만 있다면, ‘지금-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징적 기능’을 더하면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의 삶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에 갇혀 있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겐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상징의 공간’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이 공간에서 언어를 비롯해 신화, 종교, 역사, 예술, 과학 등이 다양한 상징의 형태로
존재해 다른 종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다. 그래서 인간은 ‘상징하는 동물(Animal Symbolicum)’이 되고,
‘상징’은 인간만이 영유하는 문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인이 된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보병. |
언어와 예술을 예로 들어보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은 형식적으론 ‘언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를
생각하거나 부르는 순간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나아가 ‘감정’까지도 포괄하는 ‘상징 덩어리’가 된다. 이런 현상은
일상의 대화에서도 두드러진다. 우리는 대화 속에서 전혀 생소한 영역의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표현을 하기보다는 경험적으로 익숙한 영역의 친밀한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은유(Metaphor)적 표현은 거의 일상의 일부다. 그뿐만 아니라, 리듬과 선율, 색채와 이미지, 빛과 어둠 등으로
표현하는 예술의 영역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이 가운데 시각적 상징은 그 유래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오래됐다. 전회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각종 상징의 뿌리가 전쟁에 있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문장의 유래
우선 문장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브랜드·로고·엠블럼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시각적 상징들의 뿌리는 12세기 유럽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문장(紋章)’은 영어로는 ‘Coat of arms’나 줄여서
‘Arms’ 또는 ‘Armorial’이라 하고, ‘Heraldry’로도 부르며 간혹 ‘Bearings’라고도 한다. 특히 ‘Coat of
arms’는 중세에 전신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기사들이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피아(彼我)를 식별하기 위해 ‘방패 위에 새긴 문양’ 또는 ‘갑옷
위에 입는 옷에 새긴 문양’에서 유래됐다.
처음에는 갑옷을 완전히 착용한 상태에서 방패에 우군과 적을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의 아주
간단한 문양을 그려 넣었다. 비록 전쟁의 필요에서 태어났지만, 문장은 아주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문장은 출신이나 신분 등 자신을 나타내는 여러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더욱 발전했고 사회 각계에서는 더 많은 상징들이 필요해졌다.
전쟁이나 결투 때 피아를 구분하는 용도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다 권위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명예롭게 해주는 역할로 확장되면서 문장은 더욱 정교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왕정이 자리
잡으면서 군주들은 문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아무나 문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궁중에는 이를 관장하는 기관(문장원)과 직책(문장관)을
뒀으며 심지어 학문(문장학)으로도 발전시켰다.
잉글랜드의 문장원(College of Arms)의 전경과 문장(원 안). |
문장의 진화
역사
문장은 12세기 전쟁에 참가한 군인(기사)들이 제일 먼저 사용했다. 그리고 금세 왕을 비롯해 영주와
귀족에게까지 확대되면서 국가지도층 혹은 사회고위층의 상징이 됐다. 특히 십자군 전쟁은 상징이 널리 퍼져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3세기
들어 그 범위는 성직자·도시·국가로 더욱 확장됐다. 로마 교황청과 교회, 수도원에서 문장을 받아들인 것 역시 큰 계기가 됐다. 문장은
14∼15세기 더 많은 도시로 확장됐고 각 도시들의 크고 작은 공동체와 민간 단체에까지 전파됐다. 이 시기에는 중세 수공업자들의 동업조합인
길드(Guild)나 대학 등에서도 공동체의 상징으로서 문장을 널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길드의 상징은 레스토랑·선술집의 간판이나
가방·시계와 같은 상품의 라벨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비교적 늦게 등장한 스포츠 엠블럼은 TV나 인터넷 등 시각 매체의 발전과 함께 문장의
전통을 계승·발전시켰다. 특히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의 왼쪽 가슴에 단 엠블럼은 방패에 새겨진 문양과 같은 맥락, 즉 팀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경우에는 과거 번창했던 왕권의 권위를 상징하는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단합과 결속을 강조하기 위해 민족 고유의 색이나 문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클럽의 엠블럼은 연고지의 역사나 전설 등을 모티브로 한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상징들의
대부분은 최근 100여 년 간에 걸쳐 다방면으로 진화한 산물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세 기사들의 문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개인과 조직, 단체
그리고 국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결국 현대의 상징에는 전쟁의 흔적이 명백하게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사진=필자
제공
<윤동일 육사 북극성안보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