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동 '사십계단' 부근 골목
부산 문화의 본향
부산 중앙동.
부산 문화인의 거처(居處)이자 한국동란의 애환어린 골목.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울지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고향/언제가려나~
('경상도 아가씨' 중 1절)"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전국의 피란민들이 이 곳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중앙동을 중심으로 임시 거처인 판자집을 짓고 살았는데,헤어진 가족들과 만남의 장소로
사십계단을 이용했었다.
그 시절의 피란민들에게는 사십계단이 헤어진 가족을 그리며 마냥 '앉아 우는' 장소였다.
오죽하면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그 사연을 물었겠는가?
그 시절 피란민들 애환의 장소인 중앙동이,이제는 부산 인쇄업의 중심이자
부산 문화인들의 사랑방으로 변모했다.
몇 년 전만해도 부산의 인쇄물은 중앙동 인쇄골목에서 다 처리했었다.
시청 및 관공서,방송국,신문사가 중앙동 인근에 소재했었고,각종 사업체가 밀집해 있었던 곳이니
당연한 일이겠다.
지금은 서면으로 중심이동이 되는 과정이지만 아직도 인쇄업의 메카는 단연 중앙동이라 할 수 있겠다.
중앙동에는 문화인들이 자주 들른다.
이 곳에 '문화 전문 출판사' 다수가 소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문화인들의 책을 한창 펴내고 있는 '전망'출판사와 한때 부산 원로 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빛남'출판사,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회 회장 강영환 시인이 꾸려가는 '열린시'출판사,지금은 문학기행 전문회사 '부산문화연구회'로 역할이 옮겨진 '해성'출판사 등이 부산 문화인들을 보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동에 관한 시도 유난스레 많았다.
이상개,최영철,정일근,송유미 등 제 시인들이 중앙동의 근황과 심지어 플라타너스 가로수에게까지
안부를 묻는 시를 썼었다.
그만큼 중앙동은 부산 문화인들의 '문화적 안태고향'인 곳이다.
뿐만 아니라 '부산시인협회'가 중앙동에 소재하면서 부산 시인들을 아우르고 있기도 하다.
부산시인협회장인 조의홍 시인은 중앙동을 '부산 문화 정서의 본향(本鄕)'이라 일컬을 정도로
중앙동이 부산 문화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지금은 구시대의 역사로 뒤물림하고 있지만,그래도 관할 구청이 사십계단의 '한국적 정서'를
기념사업화 함으로써,나름대로 '부산 문화의 고향'으로 체면치레는 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동 사십계단 부근은 문화인 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들의 밀집 지역이라,이들의 입맛을 다스리는 맛집도
상당수 소재하고 있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개인적으로 몇 집 소개한다면,우선 '경주돼지국밥집'이 첫 손이다.
김해 진례의 돼지고기를 그날그날 끊어와 제공하는 이 곳은,생고기의 육질과 국물의 시원함이 여간 아니다.
특히 돼지국밥에 각종 야채와 버섯,들깨가루 등을 가미한 '뚝배기탕'은 소문난 진미다.
돼지의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여성들이 더 많이 찾는 메뉴이기도 하다.
황태 요리 전문점인 '황태를 벗 삼아'는 황태찜이 좋다.
밥을 먹어도 좋고,술을 먹어도 좋은 음식이다.
자연산 생선회를 먹으려면 '성포횟집'이 좋다.
돌돔회는 부산에서도 유명하다고 한다.
청국장은 '복조리'집,설렁탕은 '이화 설렁탕',삼계탕은 '대궁 삼계탕'집이 좋다.
중국집은 '회영루',일식집은 '항도초밥'집이 유명하다.
일과를 마치고 술 한 잔 하려면 '항구 포장센터'가 좋다.
소주를 시키면 '언더 락'잔에 오이와 레몬 조각을 넣어 준다.
소주잔이 아니어서 술 대중을 몰라 너무 많이 마시는 단점(?)이 있지만 색다른 소주의 변신에 재미는 있다.
겨울의 정종 맛은 제법 그럴 듯 하다.
부산의 '문화적 안태(安胎)고향' 중앙동.
중앙동이 있기에 부산의 현대사가 존재하고 문화인들의 편안한 안식처가 있는 것이다.
이 곳을 천천히 걷다보면 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아픈 시절의 역사와 훈훈한 예술의 행간을 읽을 수가 있다.
심란한 날 중앙동 사십계단 부근을 산책해 보시라.
막힌 가슴 한 곳이 시원해짐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