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잘사는 축에 속했다 국민학교 들어갈때 아버지가 통가죽가방 꽃과 나비가 새겨진...가방을 사주셨다 그때에 가방이 없어 책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질끈 짊어지고 다니는 애들이 부지기수였다
겨울에는 대전에서 공수해온 빨간 양가죽 부츠를 신고 다녔고
별표 전축이 우리집밖에 없었다 동요를 일부러 크게 틀어놓고 자랑을 했던 생각이 난다
내가 어릴적에 이쁘긴 했나보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옆에 대건고등학교라고 있는데 그때는 점심을 집이 가까운 학생들은 집에 가서 먹고오는데 우리는 하교시간였다
어떤 오빠가 " 너 이다음에 크면 나한테 시집와라" 했던 생각이 난다
우리 학교옆이 아버지가 다니는 군청이 있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다 그래서 학교갈때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갔다
국민학교 5학년때 인가 내가 짝사랑하던 남자애가 둘이나 되었다
하나는 옛날에 우리가 세살았던 집 손자였고 키도 크고 잘생겼다 그런데 한번도 같이 엮이지가 않아서 그냥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애는 우리집 건너편에 사는애인데 무슨 버스회사를 아버지가 하셨다 그애도 대전에서 학교를 다녀 방학때 밖에 볼수가 없었다
그애네집 앞에 길을 사질이라 했는데 왜 그말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그길이 넓은 편이라 고무줄뜨기 딱지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애들이 거기와서 놀았다 그러면 그애 엄마가 시끄럽다고 우리를 쫏아냈다 우리학교 남학생 하나는 누군지 이름도 모른다 여자애들 고무줄놀이 하면 고무줄 끊어다가. 주먹만하게 감아서 갔다준 애도 있었는데
우리 남동생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해서 다 잃고 오면 대타로 내가 가서 다 따다 동생을 주었다 우리 남동생은 그래서 내뒤를 졸~졸 쫏아 다녔다
한번은 멀리 뭐하러 갔는지는 모르는데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수로(시멘트로 만들어 놓은)로 다리위로 걸어오는데 친구 동생이 먼저 간다고 울 동생을 밀어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집에와서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그때 당시는 엄마가 이해가 안되었다 맨날 나만 혼내고 집안일도 나만 시키고.. 불만이 많았다
엄마는 엄마의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그칼날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고무줄 놀이(사까닥질)를 하고 있는데 큰소리로 욕을 하면서 "저년들 낼 모레면 (달걸이)할년들이 다리 더덜먹거린다며 소릴 지른다 앞엣집애가 있는데... 너무 창피하고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헌번은 옆집 남자애와 싸움을 하는데 엄마한테 맨날 혼나는 년이 까분다고 한다
너무 속상하고 그때 좋아했던 마음이 와장창 깨져버리고 원수가 되어서 보기만 하면 서로 못잡아 먹어서 으르릉거렸다
잘사는 그애네 집에는 전축이 없어 일부로 크게 틀어서 약올린적이 있다
그때 우리집에는 가정교사가 있었다 낮에는 군청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끝나면 집에와서 우리들 돌보고 잠을 잔다
집은 부여인 언니였는데 예쁘고 상냥스러웠다
그때는 아버지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줄 몰랐다 나중에 안 이야기인데 엄마도 누구와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그언니와 엄마의 속마음을 터놓았다 한다
아버지는 한평생 여자문제로 엄마의 속을 썩이다 둘째여자의 집에서 숨을 거두셨다
우리 아버지는 여자문제만 아니면 정말 남자로써는 괜찮았는데...
그건 그렇고 다음해에 중학교에 갔는데 내친구들은 2학년였다
일년동안 나는 서울에 있다 내려가서 친구들은 내가 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반으로 찾아왔다
어찌나 창피한지 나는 1학년이고 친구들은2학년
엄마,아버지는 서울에 계시고 나는 울 막내 고모네서 학교를 다녔다 막내고모가 논산에 사시는 바람에
빨리 전학을 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한달만에 서울로 전학을 갔다
그때에 8학군인 종로에 있는 남의집으로 주소를 옮겨 위장전입을 해서(울아버지 학구열이 대단했다)뺑뺑이로 된곳이 덕성여중이였다
우리집은 효창동이였고. . 학교에 가려면 남영동까지 걸어가서 종로2가나 청계천2가까지 와야만했다
토요일날은 종로에 결혼식장이 많았다
친구랑 결혼식장 하객으로 가 그때는 모찌라고 (흰찹쌀떡에 팥앙갱을 넣은)한팩을 선물로 주었다 아님 우산을 주었고..
모찌주는 결혼식장만 찾아가 한팩을 받아 꿀맛같은 시간을 즐겼다
논산에서는 영어를..ABCD 배웠는데 서울에 오니 발음기호를 다 떼었다 그리고 논산에서는 괜찮게 사는축에 속했는데 서울에 오니 가정생활통지서가 있었다 TV 전화 자가용등등 집의생활정도를 알아보는 것이였다
그때 당시 우리집은 아버지의 부하직원이 공금횡령을 하여 신문에도 났었다고 했다 난 그때는 몰랐었는데... 그래서 아버지가 직위해제(걍 짤렸다)당해서 아버지 무직(백수) 이셨다
그때 우리집이 젤 어려웠을때였는데
기죽어서 공부도 하기 싫고(원래 공부도 못했지만) 집에도 일찍 들어가기 싫고 해서 친구들과 사직공원으로 가서 놀았다 거기서 남학생들과 싸움도 하고(난 여학생과는 안싸웠다)
서울 생활 중에 사직공원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초등학교 시절에 자주 갔었던 그 곳엔 수영장이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파라다이스라는 비싼 수영장이고 다른 곳은 이름도 기억없는 싸구려 수영장이었는데 집에서 미리 속에 수영복을 입고 가서 그 저렴한 수영장에서 놀다가 물기를 거의 닦지도 않고 그대로 겉 옷을 입고 지금은 없어진 현저동 금화아파트 집까지 걸어 가는 길은 바지에 쉬라도 한 것처럼 항상 젖어 있었네요..ㅎ
첫댓글 ㅍㅎㅎㅎ
어릴적 이야기를 넘 생생하게 쓰시니...
읽는 동안 나도 마치 그곳에 있었는 냥 싶어요.
닉도 솔직히 본명 쓰듯이
성격도 솔직화끈 ~!!!!
너무 재밌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2.3편 모두요
글재주
생생하게
아주 많습니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적어놓으니 그시절에 뽁 빠져드는 느낌이라오
고무줄놀이 칼 로 끊기 오자미 가로채기등.
떨어진 고무신에 책보자기인데 가죽 가방 가죽신발 최신 모델이었네요.
다음편 부우탁 해 요 ^♡^
이건 엄연한 반칙입니다.
예쁜 언니가
글까지 이렇게 잘 쓰시면
저같은 사람은 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저는 그냥 돌아서서
훌쩍훌쩍 울겠습니다~^^
결혼식장에 가서 하객들에게 돌리는 찹쌀떡을
얻어올 정도면 내공이 만만치 않았네요...
장하다 최병선
지나온 시간들의 세월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음을 보고 갑니다~~
서울 생활 중에 사직공원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초등학교 시절에 자주 갔었던 그 곳엔 수영장이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파라다이스라는 비싼 수영장이고
다른 곳은 이름도 기억없는 싸구려 수영장이었는데 집에서 미리 속에 수영복을 입고 가서
그 저렴한 수영장에서 놀다가 물기를 거의 닦지도 않고 그대로 겉 옷을 입고
지금은 없어진 현저동 금화아파트 집까지 걸어 가는 길은 바지에 쉬라도 한 것처럼 항상 젖어 있었네요..ㅎ
역시 최병선언니는 절 실망시키지 않으시네요~~ㅎ
지금일어나는 일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