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핵심을 알면, 전체를 이해하기가 매우 쉬워집니다. 그렇지만 기본 핵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비유(比喩, Trope)도, 은유(隱喩, Metaphor)도, 대유(代喩, Synecdoche)도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유대인들은 물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십자가의 대속(代贖)을 통한 구원이라는 구원의 핵심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자신의 몸과 피를 떡과 음료로 표현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예수님의 표현과 말씀을 들으며 어렵다고 고백합니다(60절).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는 모든 과정을 다 본 후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주님이 다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육신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63절).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그것을 여전히 믿지 않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도 요한은 가룟 유다가 나중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길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64절).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예수님께 나아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65절).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구원받기로 예정한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른다면 구원에 이른다는 성경의 전반적 가르침을 우선하여 받아들인다면, 구원에 관한 예정론으로 보기보다는 구원의 도리를 이해하려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좀 난해(難解)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느끼면서 예수님에게서 떠나게 됩니다(66절). 그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십니다(67절).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68절, 69절).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메시아로 믿는 자들은 예수님을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한 자들은 의심하다가 예수님을 떠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사탄의 미혹에 빠져 예수님을 배반하고 대제사장에게 넘겨줄 자가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언급하십니다(70절, 71절). 아무리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다녔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도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초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정해놓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고 만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기초 핵심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데 초점을 맞추어 그 핵심에서 빗나가 있다면 복음과 성경의 가르침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해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단번에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