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에서 天으로 신앙의 대상을 바꾸므로 혁명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商은 上帝를 수호신으로 모셨고, 주는 상제에서 天으로 바꾸었다. 周族은 서쪽의 산악지대가 근거지인 산악족이다. 산악족은 일반적으로 天을 최고신으로 숭배한다. 상은 제와 조상신을 결합하여 끊임없이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민심을 떠나게 하였다.(아마도 백성들은 제사경비를 부담하느라 화가 났을 것이다.) 주의 입장에서는 民心이 떠났다는 것은 不德하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天에는 敬天, 保民, 明德의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것은 상의 帝 사상이 한 걸음 더 발전하여 天 사상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帝는 구체적인 어떤 神의 뜻이고, 天은 구체적인 대상물이기보다는 하늘이 법도라는 뜻.
따라서 윤리-도덕적인 의미가 강하다.)
문왕-무왕-성왕 — 서주의 왕위이고, 무왕이 상을 멸망,
무왕이 죽고 어린 아들이 성왕이다.
주공(周公)은 무왕의 동생으로 어린 조카 성왕을 도와서
주공(周公)
주공 단(이름)이고, 문왕의 아들로 무왕의 동생이다. 어린 조카 성왕을 도와서
주나라가 종주국으로 뿌리내리게 한 인물이다.
나라가 안정되고 난 뒤에 노나라의 제후로 임용받았다.
(그래서 노나라는 주나라 제도를 그대로 가져왔고, 노나라 출신인 공자는
주공이 만든 주나라 제도를 모델로 하여 유가사상을 펼쳤다.)
강태공(=태공망) 이름은 강여상
주나라를 도와서 주가 상을 멸하는데 일등 공신이다.
강족 출신이라 하고, 천수 강씨라고 한다.(천수 출신으로 추정)
산동 지역을 봉토로 한 제나라 제후가 되었다.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국의 진주 강씨, 천수 강씨도 뿌리를 강태공에 댄다
백이-숙제
사마천 사기에서 제일 먼저 수록되어 있다.
도리를 지키다 굶어죽은 백이-숙제를 두고, 과연 天道가 있는가 라고 했다.
기자
기자는 고대 중국의 은나라 사람으로, 주가 은을 침공할 때 조선으로 와서 기자 조선을 세웠다고 하였다. 지금은 기자가 조선으로 왔다는 자료가 없으므로 부정당한다.
고려-조선 시대의 유학-성리학자를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조선의 위상을 높이려 하였으나, 사대주의 사상에 의한 것이었고, 증명해내지 못했다. 지금은 믿지 않는다.
유가들이 기자를 높이는 이유는 불사이군의 유교 사상에 충실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나라가 조선 왕으로 봉했다 등등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면서 -- 하여간에
이러한 사상이 배경이 되어서 만들어진 것 禮와 刑이다. 禮와 刑은 통치술이다. 본래 禮란 사람이 神에게 접근하는 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말한다. 방법으로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금기’이다. 따라서 禮는 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필요하다. 이러한 禮가 서주 시대가 되면 신과 인간은 물론이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적용하도록 禮記가 만들어진다.
西周 때는 商과는 다른 형벌체계를 갖추었다. 잔혹한 刑罰은 모두 서민대중에게만 적용하였고, 귀족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주나라에서는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아주 엄격하였다. 노예주와 노예도 엄격히 구분하였다. 이처럼 엄격하게 나누면 갈등을 유발한다. 하층민은 죽도록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고, 귀족은 놀먹(놀고 먹기)이었다. 그래서 평민계층이 저항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귀족의 수가 자꾸 늘어나는 것도 문제가 됨으로, 종법에 의하여 귀족 수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을 억제하였다. 아들 중에 한 사람만이 아버지의 직위를 세습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아들은 한 계층씩 강등하여 신하가 되었다. 장자가 아닌 아들이 다섯 세대만 내려가면 평민이 된다. 이렇게 평민이 된 자는 본레부터 평민인 자와는 다르다. 작은 땅이나마 자기 땅도 있고(자영농민), 지식도 습득하였다. 이런 자들이 士가 되었다.
서주 때의 천자는 나라의 주인이었고, 종법에 따라 백성을 계층화 하여 다스렸다. 천자는 종법이라는 정당한 법에 의하여 최고의 권위를 지니게 되었음으로 함부로 넘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군대 조직도 종법에 따라 조직하도록 주례에 정해 놓았다. 주나라는 봉건제도와 종법을 씨줄과 낱줄로 하여 중국을 거대한 하나의 통일체로 만들었다.
*춘추 시대 —춘추 오패
전국 시대 – 전국 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