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레닌그라드 포위전
독일과 소련의 레닌그라드 포위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전선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인 레닌그라드에서 발발한 독일 북부 집단군의 장기간 군사 작전이며, 포위전은 1941년 9월 8일 마지막 육상 연결 통로가 끊어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소비에트 연방이 1943년 1월 18일 도시로 연결되는 작은 회랑 부분을 해방하지만, 완전한 포위전 종료는 전투 시작 872일 만인 1944년 1월 27일 끝나게 되었죠. 이 전투는 너무나 긴 전투였으며, 파괴적인 포위전이었을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생긴 전투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 900일간의 전투에서 약 400만명의 군인이 사망 했습니다.
6. 테르모필레 전투
페르시아의 왕 '크레스크세스'는 약 16만 명의 병력과 1200척의 함선을 끌고 육로와 바다로 동시에 진격하는 제3차 그리스 원정을 단행하게 됩니다. 수륙진공에 의한 페르시아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스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를 포함한 7000명의 보병으로 그리스로 향하는 길목이며 협곡인 요해지 ‘테르모필레’에서 맞서 싸우게 되지만 1000명의 병력 중에서 후대를 위한 사람을 제외하고 '300명'의 결사대로 결사항전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용감하게 싸웠지만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5. 게티즈버그 전투
미국 남북전쟁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 알려진것이 바로 게티즈버그 전투 입니다. 남부의 로버트리 장군은 워싱턴을 공격하여 남부독립을 승인받으려 했으나 이전투에서 패배하여 전략을 수정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전투는 게티즈버그 인근에서 3일동안 치열한 전투를 치루게 되었으며, 남부는 결국 북부의 수비를 뚫지 못하고 패배하게 된 것이죠.
4. 제3차 십자군 전쟁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이자 '이슬람의 옹호자'라고 알려진 살라딘에 의해 정복당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결성된 기독교의 십자군과 이슬람이 싸운 전쟁 입니다. 십자군의 리처드 왕은 살라딘에게 아르수프에서 공격을 받았으나 눈부신 활약으로 살라딘을 이기게 됩니다. 이후 리처드 군대는 피로 누적과 함께 결국 살라딘과 협상 후 후퇴하게 되었죠.
3. 살수대첩 & 안시성 전투
6세기 후반 ~ 7세기 중반까지 이뤄진 고구려와 중국 대륙 통일 국가들 간 전쟁입니다. 결과적으로 당나라에 의한 고구려의 패망으로 끝난 전쟁이지만 113만 수나라 대군을 물리치고 수차례에 걸친 당의 침공을 격퇴한 것만으로도 우리 한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남겨져 있습니다.
2.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야르무크 전투로 시리아 전역은 정복당했으며, 북아프리카의 마지막 근거지 카르타고 마저 상실되었죠. 비잔티움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놓인 듯 하였습니다. 이에 우야미야조는 대군을 일으켜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자 하였고, 비잔티움 제국 전역은 공포에 떨었으나 이사우리아인 레오가 평화적인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되어 콘스탄티노플를 방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혹독한 추위와 그리스의 공격으로 이슬람군은 퇴각하게 되었습니다.
1. 명량대첩
1597년 7월 15일. 동북아 최강의 조선수군은 허무하게 전멸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로 임명되어 간신배들의 말은 무시하고, 희대의 명언을 남겼는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사옵니다'로 유명한 장계를 올리고 전투에 임하게 되었었죠.
전투 전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며 한명이 길을 막으면 천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라는 말로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으며, 그 결과 세계가 믿지 못하는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