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대계 금융파워, 新자본주의 시험대 서다
현재 금융통화 정책을 손에 쥐고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막강한 경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제롬 파월 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임명한 그는 유대계는 아니지만 그를 둘러싼 미국 금융통화의 핵심에는 여전히 유대계 머니 파워가 있다(위 사진). 2013년 미 워싱턴에서 열린 연준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재닛 옐런,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과 벤 버냉키 당시 의장(아래 사진 왼쪽부터). 이들 모두가 유대계다. AP 뉴시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잇따른 금리 인상에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제롬 파월 의장이 이끄는 연준은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초국가적 권력이다. 미국의 통화금융 세력은 ‘월스트리트-재무부-연준’의 삼각편대로 이뤄져 있다. 한데 이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의 수장들은 대부분 유대인이다. 재무부의 지난 50년간 수장들도 대부분 유대인이다. 연준의 지난 50년간 수장들 역시 이번 파월을 제외하고 대부분 유대인이다. 삼각편대는 한 몸처럼 움직이며 세계 통화금융시장에서 머니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로마부터 월가까지 장악
이쯤해서 의문이 들 것이다. 머나먼 중동의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은 어떻게 미국 통화금융의 노른자위에 안착한 걸까? 긴 맥락이 있다. 그들은 역사를 가로질러 늘 통화와 금융의 선구자였다. 4세기 로마제국, 그리고 이슬람 지배하에서 대부업에 종사하던 유대인들은 외상거래, 환어음 등 새 금융기법을 개발했다. 15세기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정착한 네덜란드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최초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워졌다. 최초의 주식거래소, 최초의 중앙은행 격으로 설립된 암스테르담은행은 자본주의의 씨앗이 됐다.
영국의 빌럼 3세(가운데)가 1694년 영국중앙은행 설립을 승인하는 장면을 그린 레이디 제인 린지의 삽화(1905년 작).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 씨앗을 키운 것도 그들이다. 유대 금융인들은 빌럼 3세의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돕기 위해 채권시장을 활성화했다. 저금리를 활용한 해외 투자로 세계 무역망 구축을 도왔다. 빌럼 3세가 영국의 공동 왕으로 초빙되면서 유대 금융인 8000명도 함께 영국으로 건너온다. 금융 왕국의 바통을 영국이 이어 쥔 사건이다.
빌럼 3세가 프랑스와의 전쟁에 자금이 필요할 때 유대인은 ‘전쟁기금모금기구’를 설치했는데 이는 훗날 주식회사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으로 전환됐다. 국채와 화폐 발행 연계의 첫걸음이었다. 1913년 설립된 미국의 연준은 영란은행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미국 통화금융의 중심에 선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유대계 의장들이 이어온 연준의 존재감은 1970년대부터 더 뚜렷해졌다. 1970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연준 의장에 자신의 경제보좌관이자 유대계인 아서 번스(1970∼1978년·이하 재임기간)를 임명했다. 번스는 닉슨의 뜻에 따라 경기부양, 곧 통화팽창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가속시켰다. 번스는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줘 관철시켰다. 물가는 결국 두 자릿수까지 상승한다.
사고 친 번스-수습한 볼커
이 혼란을 수습한 사람도 유대계다. 1979년 8월 임명된 폴 볼커 연준 의장(1979∼1987년). 그는 취임 2개월 만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4%나 올리는 극적 조치를 단행했다. 이른바 ‘토요일 밤의 학살’이다.
그렇다면 유대계 머니 파워를 상징하던 ‘월가(街)-재무부-연준’의 삼각편대는 2022년 현재,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긴 세월 구축한 철옹성을 지키고 있을까. 일각에서 자국 이기주의 또는 특정 자본을 감싸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러온 머니 파워에도 균열은 있었다.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 벤 버냉키(2006∼2014년) 등 유대계가 이어가던 연준 의장 자리에 변혁을 가져온 것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그가 2018년 긴축을 주도하는 재닛 옐런 연준 의장(2014∼2018년)을 비난하면서 비유대계인 파월을 후임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후 트럼프는 파월에게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등 팽창정책을 공개적으로 주문했다.
파월은 2020년 2월 팬데믹 사태를 맞자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양적완화로 트럼프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후 파월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넘어섰음에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며 팽창정책을 지속하다가 올 3월 인플레이션 수치가 7.9%로 발표되고서야 긴축으로 돌아섰다. 너무나 뒤늦은 대응이었다. 앞으로도 연준은 지속적인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급격한 금리 인상의 부작용으로 세계는 스태그플레이션에 휩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내년까지도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2% 이하로 잡히지 않는다면 금리 인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행진도 오래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13일 발표된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8.3%를 나타냈다. 이 중 유가 관련 상품과 식음료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이 6.3%를 차지한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 유가와 식음료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금융 천재’ 파워 향방은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요인이 다각화하고 복잡다단해졌다는 것이다. 현재의 고금리, 인플레 행진은 단순히 유대 머니 파워, 연준의 움직임 같은 일차원적 틀로만은 해석할 수 없다. 팬데믹과 전쟁이 미국 자본주의의 체질 자체를 바꾸고 있다.
따라서 다음의 네 가지 요인이 새롭고 중요하다. 첫째, 통화 공급 주도권이 연준에서 재무부로 넘어왔다. 팬데믹 사태로 어려운 하위 50%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다. 비상 상황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통화정책보다 특정 대상을 지원하는 재정정책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연준의 통화정책으로 풀리는 돈보다 재정정책에 의해 풀리는 돈의 양이 훨씬 많아졌다. 셋째, 통화 공급이 목표 조준식 공급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금융권)를 통한 유동성 살포에서 메인스트리트(소비자와 기업이 있는 실물시장)를 통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양만큼 쏴주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서민들에게 직접 지급되는 돈이 일반 재정 집행액의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것이 소비자물가지수를 자극하고 있다. 넷째, 재정 기능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재정의 3대 기능, 곧 자원 배분, 경제 안정화, 소득 재분배 가운데 경제 안정화 기능을 중요시했다면 이제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 더 중요해졌다. 금융자본주의에서 포용적 자본주의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큰 틀은 이렇게 근본적인 변화의 도상에 있다. 여기서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 남는다. 또 한 번 다가온 이 격변의 시기에 ‘중동에서 온 금융 천재들’은 또 어떤 묘수를 낼까. 수천 년간 이어온 돈과 권력의 흐름은 이제 어디로 향할지…. 분명한 것은 미국과 세계 경제의 노른자위에서 유대계 파워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