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8시 30분, 고덕역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역 안에 서 있는 회장님과 그린랜드, 산바람 형님을 만났습니다. 알대장은 정기산행 공지에다 ‘밖은 더울 테니’ 지하철역 안에서 만나자고 해놓고는 4번 출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톰 형과 아브믈 형은 상일동행이 아닌 마천행 5호선으로 전철을 잘못 타는 바람에 늦겠다는 연락입니다. 동기 두 사람이 따로 오면서 둘 다 노선을 헷갈리다니. 누가 절친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뒤에 따라서 오기로 하고 5 명이 먼저 출발합니다. 이마트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자 서울둘레길 코스 진입로가 바로 나옵니다. 서울 둘레길 3구간에 속하는 이 구역 길 명칭은 명일산책길. 안내판의 지도를 보면서 오늘 트레킹 코스를 정합니다. 진입로에서 왼쪽으로 가면 고덕산, 오른쪽으로 가면 일자산입니다. 한강 조망이 좋은 고덕산을 먼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일자산 쪽으로 계속 진행하기로 합니다. 10분 정도 완만한 경사 숲길을 오르자 삼거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정표엔 1차 목표인 고덕산이 없습니다. 우리가 진행하려는 방향에는 일자산과 성내천이 적혀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서울둘레길 코스 진입하면서부터 고덕산으로 가는 방향을 놓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고덕산에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일자산으로 고고. 산악회 연륜이 쌓여서인지 점점 목표 지점이나 코스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여유가 좋습니다. 고덕산으로 오고 있을 아톰, 아브믈 형들에게는 일자산 방향으로 오라고 카톡을 해 둡니다.
다시 10분 정도 진행하니 이번에는 네 갈래 갈림길이 나옵니다. 계속 우리끼리 가다간 나머지 두 사람을 못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다리기로 합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두 형입니다. 오면서 만난 사람에게 고덕산으로 가려면 어느쪽이냐 물었더니 여기에 고덕산이라는 산은 없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어리둥절했다고. 이게 웬 고덕괴담인지.
7명이 모두 모여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제법 숲이 우거져 있어서 해를 충분히 가려줍니다. ‘명일산책로’라는 길 이름 그대로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는 평탄한 산책로가 죽 이어져 있습니다. 군데군데 넓은 공간에는 운동시설이 있어서 인근 주민들이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30분 정도 가니 숲길이 끝나고 도로가 나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들어선 일자산 초입은 땡볕 구간입니다. 산책로 양쪽에 조경업자가 심어 놓은 듯한 조경수들이 있을 뿐 해를 가려 줄만한 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더위가 한풀 꺽인 데다 아침나절이라 그리 덥지는 않습니다. 아마 한주일 전이였다면 땀에 흠뻑 젖었을 겁니다.
다시 숲길로 접어들어 조금 걷다가 함께 앉기에 맞춤한 데크와 의자가 있어 쉬어 갑니다. 회장님이 가져오신 수박과 그린랜드 형님이 가져오신 토마토와 사과와 함께 아톰 형이 가져온 맥주를 나누어 마십니다. 산바람 형은 퇴직 후 3개월이 지나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푸념을 하십니다. 그린랜드 형님은 그럴 때가 됐다, 경험상 최대 6개월이 한계다 하며 공감하십니다. 산바람 형이 지인의 경험을 통해 크루즈 여행 얘기를 꺼냅니다. 크루즈 여행을 하려면 세 가지가 필수라고 하는데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바로 영어, 댄스, 의상이라고 하는군요. 오랜 기간 배에서만 생활하려면 이 세 가지가 있어야 다른 여행객들과 소통하며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답니다. 여기에 돈, 시간, 건강은 당연히 있어야 할 테니 크루즈 여행은 의지만 있다고 해서 쉽게 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린랜드 형님과 아브믈 형은 집안의 경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아브믈 형이 큰아들의 경찰공무원 시험 합격 소식을 전하며 산행 뒤풀이 비용을 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린랜드 형님은 미국에서 치과의사가 됐지만 영주권이 발급이 늦어져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던 아들에게 영주권이 나왔다며 2차를 사겠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만나 듣게 되는 컴불 형님의 아들 혼사 택일 소식과 함께 산악회에 경사가 겹쳤습니다.
휴식을 끝내고 다시 일자산을 향해 걷습니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꽤 많은 사람들이 있는 넓은 장소가 나왔습니다. 일자산 정상으로 짐작은 되지만 정상석은 없고 대신 각종 운동기구와 벤치 등이 놓여 있습니다. 해발 100m 남짓한 높이에 정상석이 서 있는 것도 우습겠다 싶었습니다.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운동하는가 하면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처럼 배낭을 멘 사람도 거의 없고 대부분 운동화 차림에 수건이나 물병 하나 갖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시간을 보니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하산하면 12시 정도에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뒤풀이로 뭐가 좋을까 각자 의견을 내다가 알대장이 명일역 물회를 검색해서 찾아냅니다. 명일역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물회 집은 3시에 문을 연다는 정보에 다시 암사시장으로 목적지를 바꿉니다. 암사시장에서 버스를 내려 암사역 방향으로 걷다가 신장개업 홍보물이 붙어있는 동태탕 집을 발견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아구찜 세트를 시키니 아구찜에 아구맑은탕이 나옵니다. 맛과 양이 만족스럽습니다. 회장님이 아구탕에다 동태를 추가로 시켜 넣으니 그 맛도 별미입니다.
9월 정기산행으로 예정되었던 지리산 역태극종주는 10월 초 번개 산행으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금요일 출발해서 치밭목, 벽소령, 정령치에서 숙박하는 3박 4일 일정입니다. 대신 9월 정기산행은 북한산 의상능선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이 때는 북한산 주민 아톰 형이 임시대장을 맡아 코스를 안내하기로 하였습니다. 아톰 형은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이말산을 거쳐 의상능선까지 걸어 오르는 코스를 제안합니다.
술기운이 적당히 오르는 중에 결혼식 참석으로 산행을 함께 못한 컴불 형님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잠실역에 내려 약속장소인 군산오징어로 가는 길에 석촌호수 옆에 있는 삼전도비를 둘러보았습니다. 청에 항복하고 나서 조선이 청 태종을 칭송하는 내용을 적어 조성한 이 비석은 고종의 지시로 땅속에 묻혔으나 일제가 찾아내 다시 세웠고, 해방 후 1956년 문교부 주도로 또다시 땅속에 묻혔지만 1963년 홍수로 인해서 다시 드러났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세워진 비석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놀이기구를 타는 청춘들의 비명을 들으면서 석촌호수 서호 산책로를 돌아 나오다가 뒤돌아보니 비현실적인 광경이 눈앞에 들어옵니다.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와 롯데타워 전경입니다. 성처럼 꾸며놓은 매직아일랜드와 유리벽으로 감싼 채 치솟은 타워, 그리고 타워를 감싸고 있는 구름이 조화를 이뤄서 마치 SF영화 영화에 나오는 미래도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군산오징어에 미리 와 계시던 컴불 형님은 돌로미테를 비롯한 3개월간의 장기 유럽 여행을 앞두고 또 하나의 경사 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내년 4월 아들의 혼사 날이 정해진 것입니다. 대부분 혼사를 앞둔 자녀를 두고 있는 일행은 자연스럽게 자식을 지혜롭게 장가, 시집 보내는 방법에 관심을 보입니다. 결혼 적령기 딸을 두고 있는 산바람 형과 알대장은 특별히 더 그린랜드 형님과 컴불 형님의 경험담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습니다.
군산오징어 집을 나와 근처 밀러생맥주로 자리는 이어졌습니다. 늘 그렇듯이 알대장이 먼저 졸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 옆에 앉은 아브믈 형도 따라 졸면서 자리를 파하게 될 때까지 즐거운 대화는 이어졌습니다. 가볍게 걷고 겹경사에 다함께 기뻐한 하루였습니다. 컴불 형님은 호프집에서 잠실역까지 볕을 피해서 시원하게 갈 수 있는 길로 우리를 배웅해 주셨습니다. 감사하고요, 긴 여행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멍 총무. 오랜만에 나와서 얼굴봐서 반가웠는데 산행기까지 길~~게 잘 썼네. 사실 산행기라기보다는 술행기(?)였지만 말이여. 그런데 한마디 푸념도 않고 이렇게 기억력 짱짱하게 쓸 수 있다니 역시 내공 작열! 그날 걸은 효과는 술로 다 날려버렸고...물론 난 덜 먹었지만서도...암튼 잘 읽었고 쓰느라 수고했어. 컴불 아저씨는 무사히 잘 다녀오시고요!!!
오호, 멍 총무, 디테일한 산행기 재미지네요.
다음달 산행은 우리동네로 오셔서 재밌게 걸어 보시지요.
산행기 잘 읽었고, 두루두루 감축드립니다.
간만에 읽는 총무님의 차진 산행기. 옥에 티 발견...꺽인 데다 -> 꺾인 데다 ㅎ
내가 또 졸았구나. 내공 작열? 이 뭡니까? 작렬이 옳습니다.
내공이 해처럼 빛을 발하면 작열이 맞고 흩어져서 주변에 영향을 미치면 작렬이여. 사용에 혼동하기 쉬운 단어. 글쓴 사람 맘이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