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신부 (1962~2010)】 「수단 남쪽의 가난한 마을 톤즈에서 벗이된 고 이태석 신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수단(現 남수단) 톤즈(Tonj)에 선교 사제로 파견돼 구호, 의료, 교육, 사목 활동에 힘썼으며, 현지인을 진심으로 감화시킨 헌신적인 그의 봉사가 널리 알려져 사회적으로 큰 존경을 받는다. 남수단 현지에서 부르는 애칭은 세례명 요한의 영어식 표기인 존(John)과 성씨 리(Lee)의 합성어인 '쫄리'다.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만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묵상」, 갓등중창단 1집 『내 발을 씻기신 예수』
10남매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난 이태석 신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인 신명남 안토니아 슬하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홀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였다. 특히 수학에서 성적이 우수했으며 어린 시절 작곡을 지망하여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했으나, 당시 배울만한 형편이 여의치 않아 성당에 있던 풍금을 독학으로 익히고 직접 작사, 작곡, 청음 공부도 하는 등 음악적 열정도 상당했으며, 훗날 공개된 다큐에선 드럼과 기타, 신디사이저 연주를 비롯해 남수단의 학생들에게 직접 작곡부터 리듬에 대한 음악 이론을 비롯해 리코더로 단성 청음까지 가르칠 정도로 음악적인 실력 또한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음이 알려졌다. 천주교 부산교구 송도본당에서 가경자 알로이시오 슈워츠 몬시뇰(Venerable Aloysius Philip Schwartz Monsignor)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다. 미국인인 슈워츠 신부는 훗날의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살아온 인생과 비슷한 인생을 한국에서 먼저 살아가고 있던 인물로, 이태석 신부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전후 최빈국으로 떨어진 한국에 들어와 오랫동안 부산에서 봉사하고 학교법인 소년의집학원을 세워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영화 오 마이 파파가 슈워츠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다. 이 시기에 성당에서 보여준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고 소년 이태석은 그 신부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어린 시절 뿌려진 성소를 향한 작은 씨앗은 인간 이태석을 신부 이태석의 삶으로 이끌었다. 의사를 꿈꿨던 청년 이태석이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된 과정, 열악한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떠나 그 안에서 경험한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담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 신부는 톤즈의 처참한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된 마을에서 악취를 참지 못해 빈 들판을 향해 달음질치기도 했다. 의술만 믿고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은 이 신부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고, 진짜 선교사가 됐다. 삶과 신앙의 좌절을 극복하고 오롯이 자신을 봉헌한 한 사제의 삶. 이 신부의 일생을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그가 보여준 사랑의 의미를 깊이 새기도록 안내한다.
“이태석 신부님은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을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가난한 곳에서 실천하려 노력하고 또 노력한 사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