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37. 막고굴 제217굴 ‘불정존승다라니경변’
“7일 후 죽는다” 예언 들은 주인공 운명은
중국에 전래 된 초기 밀교경전…강력한 다라니로 널리 유행
환락 즐기던 선주, 악도 윤회하는 꿈꾸고 제석천에 도움 요청
석가모니부처님에게 받은 다라니경 의지해 7일 수행 후 해탈
217굴 남벽 불정존승다라니경변. 내용은 중앙의 설법도를 중심으로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화사는 선주천자의 이야기를 사건의 전개에 따라 설법도와 분리해 세부적으로 표현했다.
대승불교가 이상적 열반과 현실적 구난(救難)의 양립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것이라면, 밀교는 그 정점의 위치에 있는 사상 및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불정존승다라니경’은 중국에 전파된 초기 밀교경전 중 하나로, 적은 분량, 업장 소멸을 위한 강력한 다라니, 경전에 녹아든 서사적 요소 등의 이유로 민간에 널리 유행하였다. 이러한 인기가 반영되어 성당 시기 이후 돈황석굴에서도 다수 변상으로 표현되었다.
그중 막고굴 제217굴 남벽의 불정존승다라니경변을 보자. 1982년 발간된 ‘돈황막고굴총록’에서는 8세기 초에 그려진 이 변상을 법화경변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정작 남벽의 벽화 어디에도 이불병좌상이나 세 개의 수레가 등장하는 화택유 장면과 같은 법화경변 특유의 도상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학자 시모노 아키코(下野玲子)는 이 점에 주목하여 연구한 결과, 남벽의 벽화가 다른 경전, 즉 ‘불정존승다라니경’을 묘사한 경변임을 밝혔는데, 방제(傍題)를 통해 경명이 확인되는 막고굴 제55굴 불정존승다라니경변과 도상 특징을 비교해 보면, 그의 주장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217굴 경변은 방제 및 도상의 마모와 비교적 복잡한 화면 구성이 세부적으로 명확한 규명을 어렵게 하지만, 경문과 도상의 대조를 통하여 맥락을 짚어보기로 한다.
경변의 전체적인 구성은 중앙의 설법도, 경문을 이끌어가는 서사(敍事) 내용, 다라니의 공덕, 경의 서문인 역승 불타파리(佛陀波利) 이야기의 네 부분으로 나뉜다. 이번 회에서는 경전의 서분(序分)과 서사(敍事)에 해당하는 설법도와 삼십삼천의 장면들을 살펴보자. 왕사성 서다림 급고독원에서의 설법회상을 묘사한 설법도는 경변의 중심으로서 좌·우·하단에 구획된 선을 통하여 주변의 세부 장면들과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설법도의 상단은 석존의 뒤에 가파르게 표현된 수미산과 그 정상에 자리한 삼십삼천에서의 장면들로 이어지며, 설법도의 좌측 상단은 서사의 주역들인 선주천자와 제석천의 지상에서의 행적을 묘사하고 있다.
수미산 상의 삼십삼천에서 먼저 가장 왼쪽의 장면을 보면 팔각당에 관을 쓰고 큰소매의 옷을 입은 천인이 앉아있고, 그 주위에는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거나 비파를 든 여인들이 보인다. 이것은 경전의 서분에서 설했듯이, 삼십삼천에서 선주(善住)라 불리는 천자가 천녀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며 환락에 빠진 모습이다. 그 오른쪽 장면을 보면 침소에서 누군가 잠자리에 들었다가 막 상체를 일으킨 모습을 그렸는데, 이것은 어느 밤 선주천자가 “7일 후 수명을 다하고, 일곱 번 축생의 몸을 받았다가 지옥에 떨어지며, 지옥에서 나온 뒤로는 비천한 집에서 눈이 먼 채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근심에 쌓인 순간이다.
선주천자는 곧 구름을 타고 제석천을 만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수미산 중앙에 그려진 제석천의 천궁에는 제석천이 보이지 않는다. 제석천은 어디로 갔을까? 경에서 제석천은 선정에 들어 선주천자의 내생(來生)을 확인한 뒤, 석존을 뵙고 선주천자를 악도에서 구제할 방도를 여쭙고자 한다. 그렇다면 천궁이 빈 것은 제석천이 석존을 뵈러 지상으로 내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빈 천궁에서 구름꼬리가 이어져 좌측 아래로 향하고 있다. 구름 위에는 선주천자의 일을 여쭙기 위해 “미묘한 천의를 입고, 갖가지 화만(華鬘)과 갖가지 향을 가지고 서다림 급고독원으로 간” 제석천 일행이 타고 있다.
제석천이 탄 구름 바로 아래에는 급고독원의 석존이 자리한 가운데 좌측에는 일행이 석존의 주위를 돌고 있고 석존의 앞에는 누군가 엎드려 절을 하고 있으며, 우측에는 일행이 무릎을 꿇은 채 석존의 설법을 듣고 있다. 이 세 무리는 각자 다른 인물이 아니며, 제석천이 석존에게 예배하고 선주천자의 문제를 여쭙는 과정을 한 화면에 중첩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217굴의 불정존승다라니경변에서는 이처럼 사건의 흐름에 따라 동일인물을 반복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많이 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그 왼쪽의 장면에는 석존이 홀로 정좌하고 있고, 그 앞의 자리는 비어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로부터 상승하는 구름에는 두 명의 천녀와 손에 무언가를 받들고 있는 제석천이 보인다. 이것은 제석천이 세존에게서 불정존승다라니를 받아 들고서 삼십삼천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건은 다시 수미산 위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중앙의 빈 천궁 오른편으로 구름을 타고 이동하는 제석천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다음 장면에는 전당에 제석천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 허리를 살짝 숙인 채 경청하는 이와 제석천에게 엎드려 절을 하는 인물이 나란히 보이는데, 이 장면은 선주천자가 돌아온 제석천으로부터 불정존승다라니를 건네받고 예를 올리는 모습을 중복적으로 표현하였다. 시선을 다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선주천자가 전당에 정좌한 채 선정에 빠져 있다. 경문에 따르면 선주천자는 7일간 법에 따라 수행하여 악도에 빠질 운명에서 해탈하게 된다.
수행하는 선주천자 앞에서 다시 구름이 하강해 중앙의 설법회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구름이 두 줄기로 나뉘고 그 위에 두 일행이 타고 있다. 하나는 보살의 산개 옆으로 하강하고, 다른 한 일행은 더 아래로 내려와 설법회상의 석존 앞에 도달했으며, 상대적으로 그 모습이 더욱 크게 부각됐다. 경에서 석존이 제석천에게 설하시길, 선주천자의 7일 수행이 끝나면 그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때의 주인공은 제석천이 아닌 선주천자다. 이렇게 하강해 석존을 만난 선주천자와 제석천은 이제 본경 법회의 일원으로서 설법회상에 등장한다. 우측 협시보살 뒤로 머리에 관을 쓰고 두광을 띤 채 다라니를 쥐고 있는 인물이 보이고, 좌측 협시보살 뒤로는 두 명의 천녀를 동반한 천인의 모습이 보인다. 다라니를 들고 있는 인물은 선주천자일까, 아니면 제석천일까?
[1691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