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字 隨筆 문득.1208 --- 악덕 교주의 초라한 뒷모습
10만 성도를 거느린 교주로 온갖 비리를 저질러왔다. 탈세와 법규는 안중에도 없었고 교묘한 감언이설로 신도들을 현혹하면서 착취하여 배를 불리고 이런저런 막대한 자금을 빼돌려 착복했다. 세계적 저명한 사진작가인 양 행세하며 과시하고 전국 곳곳에 영농조합을 빙자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토지를 차명으로 사들였다. 드러난 재산 규모만 수천억 원이 넘음을 넌지시 암시할 뿐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신도는 허리띠를 수시로 졸라맸고 그때마다 교주의 개인 곳간을 넓혀갔다. 본인으로 부족해 부인은 물론 자녀와 형제며 연인에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빼돌려 그 수법에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검찰의 출석요구를 거부하고 도피행각에 들어갔다. 그의 행적은 수많은 조력자와 자금을 바탕으로 묘연하여 그림자조차 남겨놓지 않는 듯싶었다. 여론의 질타에도 어디에 숨었는지 오리무중으로 도피의 달인이었다. 지명수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최고 금액인 5억 원의 현상금까지 붙었다. 그간 검경에서 수색에 동원한 연인원이 무려 17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자 영생을 꿈꾸며 그 누구도 자신을 넘볼 수 없다고 과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불의는 정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렇게 날고뛰던 그가 끝내는 비렁뱅이 노숙자 변사체가 되었다. 천만 원을 호가하는 점퍼를 입고 명품신발에 가방을 지녔어도 결국 산중 매실나무밭 구석에서 십여 일만에 얼굴조차 긴가민가 알아보기 힘든 백골이 되어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곳에서는 교주의 당당함도 구원파의 간판으로 신도 앞에 그 여유만만함도 사진작가의 고상함도 없었다. 촌로가 시신을 처음 보고 신고하였듯이 그저 평범한 비렁뱅이 노숙자의 싸늘한 변사체였다. 그토록 열렬하게 추앙하며 받들던 신도는 어디 가고 애지중지하던 재물은 어디로 갔는가. 결국은 모두 공수표 빈손이었다. 쫓기는 신세로 허망한 심정을 토로한 마지막 메모마저 뉘우침보다 허황한 독백 유언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