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란 영어회화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나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대화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것입니다.
주고 받으면서 저울의 수평대가 내려가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듯 대화의 내용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해야 합니다.
관계란 말도 그렇습니다.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람끼리 맺어진 관계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연장되는 것이 참 관계입니다.
만남도 그러합니다.
시간을 약속하고 식사와 차를 나누는 만남이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라는 것은 아는 것만 알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모르는 것까지도 알아내는 것입니다.
모든 확실한 것은 내가 있고 네가 있으니까 이루어지는 것이지 나만 있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 너를 아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것 " 이라고 말한 쿠헨교수의 말은 사실인 것입니다.
인간은 경험하는 것마다 이용하려는 의사가 있습니다.
첫번째 경험한 것은 신비스럽고, 두번째 경험한 것은 당연하며, 세번째 경험한 것은 이용하려 합니다.
조금 알게 되면 일방적으로 해치우려는 것이 인간의 병통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을 직접 알아 보려고 하지 않고 조금 아는 것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미루어 알려고 합니다.
오해나 불화는 이런 간접적인 것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만은 간접적 지식으로 미루어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잃는 판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눈이 오는 것을 보며 스쳐지나 간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잘 못해 줘 보낸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합니다.
내리는 수천의 눈송이가 사람들의 얼굴이 되어 눈 앞에서 흩어집니다.
차 한잔 나눌 다정한 이웃이 있으면 싶은 스산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