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기념 공원
바람과 햇살이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11월의 이즈음이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유엔 국의 국기가 나부끼고, 빙하의 펭귄 때처럼 같은 모습의 묘지가 잘 정돈 된 잔디 위에 가지런하게 누워있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어 딛는 발자국에 무게가 느껴졌고, 13만3701㎡ 축구장 열여덟 개를 합친 크기의 넓은 공원에는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2300여 명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곳. 묘비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다 이 땅에 묻혔다는 사실이다. 숭고한 그들의 주검 앞에 고개가 저절로 숙어졌다.
11월 11일<유엔 참전용사 추모의 날> 법정기념일로 격상된 지 16년이 흘렀다. 이날 11시,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용사들은 전몰장병이 잠들어 있는, 부산 유엔기념 공원을 향하여 1분간 묵념한다. 73년 전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유엔이 최초로 국제 연합군을 조직하여 공동의 적을 무찌르자는 결의가 있었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며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엔기념 공원이 〈부산〉 대연동에 있다. 당시 유엔 16개국의 나라가 한국에 군대를 파견했고, 여섯 나라가 의료진을 보냈으며 38개국의 나라가 물자를 지원했다고 한다.
우리는 현재 휴전 중이다. 숱한 젊음, 귀한 자식이 때로는 형제가 6.25의 참화에 휩싸인 이역만리 땅에 와서 싸우다 스러져 갔다. 국가의 명命 아래 이름도 낯선 동아시아의 외진 나라에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그들 덕분에 우리의 오늘이 있다. 유엔의 깃발 아래 자유와 평화를 부르짖던 그들의 용맹스러움은 이제, 자국의 실익이 없는 한 타국의 전쟁에 무고한 젊은이를 희생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쟁의 아픔을 처절하게 경험했던 대한민국, 새겨들어야 한다.
1950년 한국전쟁, 우리 군과 유엔군을 포함하여 77만 명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올해 11월11일, 충북북부보훈지청은 ‘Turn Toward Busan’(턴투워드부산)‘유엔 참전용사 추모의 날’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했다.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의 포화는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참상의 중심에 있었던 지난 일을 잊지 않고 1970년⁃ 1980년에는 월남전쟁에 우리 젊은이를 파병했고, 지금도 전쟁의 폐허 속에 신음하는 나라에 의료지원과 물자를 보내주고 있다.
지난해, 국적도 불분명한 외국 문물에 취해 많은 젊은이가 생을 달리했고, 언제부터인가 11월 11일은 젊은이들에게 초콜릿 과자를 주고받는 인기 있는 기념일이 되었다. 모某 제과 회사의 상업적 발상에서 시작한 빼빼로데이를 해외에서도 글로벌 문화로 자리매김했다고 하니…. 시대의 흐름에 둔감하기 때문일까. 젊은 날 유엔기념공원을 다녀온 뒤, 나에게 11월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고, 우리나라를 위해 청춘을 버린 그들을 생각하면 다문 입술을 감쳐물게 된다.
11월11일,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안정은 세계의 피 끓는 젊은이가 바친 고귀한 희생이었음을 잊지 말고 후손들에게도 전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