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19]월간 <전라도닷컴> 구독을 권하는 이유
어제, 오랜 벗 세 명에게 문득, 전라도 광주에서 나오는 토종 월간잡지 <전라도닷컴>을 1년 정기구독하면 좋겠다는 카톡을 보냈다. 한 친구는 즉각 “벌고 있을 때 봐야지”라며 주소를 보내왔다. 또 한 친구는 “옛날 네 권유로 몇 년 봤는데, 잘 안 읽게 되더라. 그냥 쌓아놓았다가 다 버렸어./ 고교 친구 중에서도 전라도닷컴 초창기 멤버가 권유하는데 정중히 거절했어./ 이젠 주위를 정리해야겠어. 모든 걸 가볍게 가볍게 언제든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도록……” 또 한 친구는 “몇 년 전부터 정기구독하고 있다”고 보내왔다.
보고 있고, 즉각 좋다고 했거나 정중히 거절한 친구에게 모두 “오케이. 감사”라고 답을 보낸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답은 진심(眞心)이고 아무 유감은 없다. 그런데 생각에 잠긴 까닭은 ‘이젠 주위를 정리해야겠어. 모든 걸 가볍게 언제든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도록’하는 구절이 마음 한 켠을 슬쩍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벌써 수십 년이 된 듯한데, 마음을 비운 것처럼 세상을 사는 듯한 ‘개똥철학자(주체철학자의 애칭)’로서 시니컬하다. 뭐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나와는 참 다르구나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내일이면 칠십, 왕년에는 고래희(古來稀)라 하여, 마음 먹은 대로 해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欲不踰矩)는 나이가 되므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 고마운 친구다.
실제로 그 친구는 언제든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며 사는 것같아 부럽게 보일 때도 있긴 하다. 그런데 나는 무슨 ‘욕심’과 미련이 남아 있는 걸까? 솔직히 세속(世俗)에 대한 욕심이나 미련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아니 이럴 때는 인간人間이 더 맞다)에 대한 애정(어느 때에는 증오)은 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것이 문제이다. 어떤 친구는 어떤 점에서 편협된 것같아 안타깝고, 어떤 친구는 삶을 기름지게(윤택하게) 사는 것같아 자꾸 칭찬해주고 싶다. 주변에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에게 <전라도닷컴> 구독을 권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쓴 이 시대 현자(賢者)이나 은자(隱者)로 사셨던 분이 계셨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문 14]內亂을 바라보는 오일장 시골할매들의 말씀 - Daum 카페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던 비행사를 아시리라. 슬픔은 같이 나누기 어렵지만, 기쁨이나 즐거움은 같이 나누기가 쉽지 않던가. 그런 차원으로 잡지 구독을 권하는 게, 거의 다 ‘성공’(구독수락)하는 이유(비결)이라면 지나친 자만일까. 귀향한 지 6년차, 그 잡지의 ‘홍보이사’직을 스스로 요청한 까닭이다. 무슨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근직도 아니어서 좋다. 그냥 ‘내 마음’이었던 것을. 나는 오늘도 10여명이 모이는 모임에서 후배들에게 이 잡지 구독을 ‘떳떳하게’ 권할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 쓴 그런 이유이기 때문이다. 농촌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한 말씀 한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인생을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체 지까짓게 잘나면 얼마나 잘났단 말인가. 반면에 도시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추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꼰대’되기 십상이다. 자칫하면 ‘태극기부대’도 된다. 그렇다고 전체 어르신들을 비난하거나 폄하할 뜻은 전혀 없다. 단지, 그러기 쉽다는 것이다. 나의 친구처럼 뚜렷한 주체철학으로 ‘줏대’를 갖고 살면 무슨 문제이겠는가.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문 14-1]內亂을 바라보는 오일장 어르신 말씀 - Daum 카페
전라고6회 동창회 | [또 우연히 발견한 졸문]'잡지읽기공모전' 낙선작 - Daum 카페
언젠가 잡지협회 공모전에 “나를 '효자'로 만드는 잡지”라며 이 잡지를 상찬(賞讚)했는데, 낙방하여 실망한 적도 있었지만, 20년 열혈독자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진짜 효도를 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흑흑. 살가운, 정겨운, 찰진 우리 고향의 말을 들으면 왜 나는 ‘살 맛’이 나는 걸까? 이 살 맛나는 느낌, 기분, 분위기를 우리 친구와 지인이 함께 나누면 세상이 조금은 윤택해지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종종, 아니 많이 하는 ‘별난’ 놈의 열정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작금(昨今)의 권력 소유자나 정치인들을 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한없이 가소롭고 우습다. 정말로 천리(天理)를 모르는 자들 같다. ‘그까짓 5년권력이 무슨 대수라고’를 공개적으로 외쳤던 사람의 언행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화사한 꽃도 열흘을 채 못가는 것이거늘. 쯧쯧쯧이다. 하여, 나는 도올한 철학자 檮杌 ‘김용옥TV'를 곧잘 시청하는 편이다. 뭔가 거대한 역사가 돌아가는 ‘꿰미’를 알고 있는 것같아서이다.
나는 <전라도닷컴> 과월호를 260여권 갖고 있다. 2025년 2월호는 통권 274호이다. 나의 ‘흐뭇한’ 책 자산(資産)이다. 그제 판교도서관에서 아주 오랜만에 한겨레신문을 뒤적이다가 ‘이광이’라는 사람이 쓴 <잡념잡상>글을 봤다(한 면 전체). 전라도닷컴 1월호에 기획특집으로 실린, 전남 5일장 할매들이 불쑥불쑥 밝힌 시평(時評)을 축약한 것이어서 화들짝 눈에 띄었다. 나 역시 졸문으로 축약해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한 분이 “짱짱한 견해에 경의를 표한다”는 댓글을 보내왔다. 나로선 이런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살맛나는 것이다.
결론은, 주체철학 ‘대마왕’인 친구처럼 언제든 훌훌 털고 버리고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같이 차를, 술을 마시며,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서로 사랑하며 나눌 이야기가 많다는, 욕심 많고 미련한 꼰대의 신새벽 푸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