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40606 유월의 모시적삼
유월의 모시적삼/ 이순혜
(2017년 호국보훈문예 추모헌시 최우수상)
- 충혼탑 앞에서
천둥소리 한 귀퉁이 찧어내다
천지에 놀란 찔레향이 아리도록 매운 날입니다
무더기 무더기로
아까시 마저 떨어지는데
유월의 하얀 모시적삼은 충혼탑 앞에 서 있습니다
시퍼렇다 못해 먹빛이 되었던
60년, 다 받아냈기에
아버지,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국화입니다
아니, 그 먹빛의 한(恨)
한숨으로 쌓아
한 겹 무심이 되었기에
유월의 끓는 햇살에 서 있는 흰 모시적삼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한 송이 국화입니다
아홉 번 밀리고 밀린 싸움
그날의 형산강*은
검붉은 울음을 토악질하고
포성에 묻혀버렸습니다
여기 이 산 어디쯤일까
저기 저 강 어디쯤일까
아버지,
당신이 썼던
학도의용군의 삐뚤어진 모자를
하얀 이 드러내며 고쳐주었던
옛 친구의
선한 눈망울이
파편처럼 찢어져 묻힌 자리에는
오늘도 말이 없습니다
불러도 보고
쓸어안아 보아도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아득한 날의 안부일 뿐
저 질긴 세월을 낱장으로 뜯어
다 놓아버렸습니다
살아 있다고 마음껏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속울음 삼켰을
아버지
묵념 사이렌 소리에
바람도 나무도 잠시 눈을 감고
이제야 학도의용군 이름아래
어깨동무하고 있을 생각에
칠 벗겨진 한 줄 비문처럼 저도 눈을 감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도 가벼운
아버지
그 주름진 국화 위에
6월이 글썽 입니다
* 6.25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44일간 2,300명이 넘는 국군과 학도병이 전사한 포항의 치열한 격전지
살아있는 자가 죽은자의 몫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지금도 나라는 위기를 맞으며
날마다 흔들리며 서로 뇌관을 건드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대들보가 썩고 있는데도 서까래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총 대신 펜을 들고, 깃발 대신 피켓을 든
풀들의 피리 소리를 듣습니다.
만국기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드리워 지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새벽에 잠이 깨어
초혼의 트럼펫 아련히 들리는
붉은피 유월 창가
아까시 향기가
동백 꽃처럼 뭉텅 떨어지는 유월
전장에도 노란 민들레는 피었겠지
조국은 네잎 클로버에 기대지 않았음을
함성을 듣고 알았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도 알았네